따뜻한 연대, 진도 팽목항에서의 ‘스님 밥 차’

-진도에서 먹은 밥 세끼의 추억 “대동(大同)세상 알게 해줘”

 

지난 2월 14일은 의미 있는 날이었다. 팽목항에 간 날이라서가 아니다. 그곳은 남을 깔아뭉개고 죽여야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따뜻한 밥 세끼가 있었고 차와 음료수와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는 따뜻한 대동세계가 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처럼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도로 출발한 것은 금요일 7시였다. 지인 네 명과 함께 모두 5명이 출발하기 위해 모인 장소는 3호선 금호역 8번 출구였다. 애초 잠실역 너구리 상 앞에 모이기로 했으나 차주(車主)의 집이 금호동이었기 때문에 출발장소를 변경한 것이다.

7인 승 스타렉스에 올라타고 전남 목포를 향해서 달렸다. 가는 도중에 두 번 쉬긴 했으나 교대하는 사람 없이 파록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차주(車主)가 운전을 도맡았다.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대단한 체력으로 쉼 없이 혼자 전 코스를 운전한 파록님은 술 담배도 하지 않은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 사람으로서 마치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모범장병처럼 운전대 아래 부분을 꼭 쥐고 시종일관 같은 자세로 달렸다.

12시에 목포에 도착한 일행은 찜질방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남자 네 사람은 다른 일행과 만나서 한잔 꺾으러 가고 먼저 찜질방으로 올라간 나는 더운 물에 잠시 몸을 담근 후 여성전용실로 가서 몸을 뉘었다. 이튿날 5시 알람을 맞춰 논 탓에 늦지 않게 일어났다. 애초엔 5시에 출발할 거라는 말을 들은 터였지만 6시 반이 되서야 진도를 향해서 출발을 했다. 일행이 진도군청 앞에 도착한 것은 7시 조금 못 됐을 때다. 

새벽기운을 가르며 도착한 눈앞에는 일찌감치 모여든 인파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바닥에 내려서니 한기가 몰려들었다. 바람까지 불어 녹록치 않은 아침이었다. 새벽녘의 한기는 밤이 아직도 그 끝자락을 거두지 않고 있었던 때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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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밥 차가 보였다. 발길은 본능처럼 김이 피어오르는 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가마솥에서 국이 끓고 있었고 체격이 건장한 스님 한분이 커다란 국자를 들고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스님은 연신 국을 퍼 담아서 줄을 선 사람들에게 건네고, 그 옆에서는 배식봉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밥과 반찬을 담아 손에 들려주고 있었다. 열을 지어 밥을 건네받는 중에 반찬접시 쪽으로 시선이 꽂혔다. 아니 이 새벽에? 노랗고 빨갛고 하얀 접시위에 놓인 가지 수는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

그랬다. 반찬의 종류가 꽤나 푸짐했다. 난장에서 먹는 아침 한 끼에 정말이지 웬 떡이냐 싶었다. 김치, 버섯고추조림, 콩나물, 무말랭이, 그렇다면 받아든 이 떡을 어디서 먹을까. 옹색한 자세로 먹기는 싫고, 두리번 거리다보니 군데군데 하얀 식탁이 놓여있었다. 탁자위에는 살짝 깔린 살얼음이 눈에 띄었다. 안에서는 어서 밥 달라고 재촉을 한다. 행동개시 빨리 하란다. 서둘러서 자릴 잡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바로 이 맛이야!

국에 만 밥을 입으로 가져가기 바쁘다. 밥맛이 그만이다. 제대로 된 김치 맛이 똑 쏘며 혀 끝에 감겨온다. 소위 음식을 팔아 생계를 도모하고자 하는 요식업자들도 여차하면 중국제 김치를 사용하는 세상에 여기 김치는 정말 순수하고 맛있다. 어느 집 도가지에서 갓 나온 김치인지 솜씨 좋은 대가 집 김치 맛에 손색이 없다. 콩나물에 버섯고추조림에 김무침에 장아찌까지 네 다섯 가지는 족히 된다. 솜씨 좋은 가정식 백반 집을 만난 것처럼 이 새벽에 잘도 먹는다. 이 모든 것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 맛에 수많은 촛불들은 민중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려고 모이고 또 모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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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밥을 가지러 가니 미역에 홍합이 가득 든 국을 준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다시 탁자로 와서 마저 먹었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이번엔 다른 것들이 보였다. 끓는 물통을 세워놓고 차를 배급해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진도 울금 차(茶)였다. 먹을까 말까? 국물 있는 밥을 넉넉히 먹었는데 차까지 마시면 소변이 자주 마려울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을 내밀었다. 진도까지 와서 진도에서 주는 뜨끈한 차 하잔 마시지 않으면 누구 손해 게? 내 손해다.

빨주노초파남보, 문가 눈길을 끌고 있다. 다가가니 한 부부가 수제 사탕을 만들어 왔단다. 종이컵을 내밀면서 먹을 만큼만 담으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부부가 시키는 대로 종이컵에 사탕을 담았다. 이런 친절 오래간만이야! 그 자리를 떠나자 어느 새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후식으로 한입씩 먹으라고 사탕을 권하고 있었다. 진도에 오니 가진 것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대동정신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 오니 사람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건네주는 사랑의 레이저가 한가득 파도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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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인터뷰 하는 소리가 들렸다. “19박 20일 동안 걷는 동안에 지나가는 사람이 차안에서 저희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걸으면 누가 쳐다봅니까?”라고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개도 안 보고 소도 안 쳐다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봅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같이 못 걸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더군요.”

점심이 됐다. 12시가 가까워오자 배식이 시작됐다. 배추국과 김치와 버섯고추조림이 나왔다, 이번 시간엔 김치에 손이 많이 갔다. 세끼 밥 외에는 간식을 즐기지 않는 나. 밥이 입맛에 맞으니 맛있게 먹기만 하면 그저 좋았다. “김치 이거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진도 농협에서 담은 김칩니다.” “참 맛있네요. 제가 아는 최고의 김치는 배추 몸통이 아삭거리면서도 간이 잘 배어 있는 김치입니다. 색깔도 곱네요. 최고의 맛이에요.” 김치 맛있는 걸 실증이라도 해보이듯이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 사이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밥 상자는 연신 쌓이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때를 맞춰서 밥 봉사를 잘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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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잘 먹고 하는 일엔 신이 난다. 목적지를 향해서 걷는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쉰 것 까지 두 번 쉬고 마지막 구간에 와서 다시 한 번 걸음을 멈췄다. “이 고개를 넘으면 팽목항이다.”는 소리가 들렸다.

4시가 넘자 예정대로 팽목항에 다다를 모양이다. 이쯤해서 고백해야겠다. 오늘 진도군청에서 팽목항까지의 도보행진 구간은 27Km다. “27키로를 다 걸었냐고요? 그러지 못했습니다.” 고관절에 이상이 있어서 도중에서 전남금속노조 차량에 올라탔다. 그러다가 팽목항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 와서야 차에서 내려 도보대열에 합류를 했다. 그나마 염치불구하고 견인차에 몸을 싫은 덕분에 행렬에서 낙오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자위해본다.

4시 조금 넘은 시간의 팽목항, 안내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유족들의 숙소가 있는 마당에서 저녁식사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애초엔 행사가 다 끝나고 배식을 할 예정이었으나 식이 늦어질지도 모르고,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러니 도착하는 족족 식사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식사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다시 줄을 섰다. 이번엔 어느 단체가 나와서 밥을 준다는 것일까. 배식이 이루어지는 곳을 가보니 이번에도 ‘사랑 실은 스님 짜장’ 밥 차 팀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남원의 선원사 주지 운천 스님이에요.” 세상에, 저렇게 고마운 스님이 어디서 뚝 떨어진 걸까. 불교연합팀이라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스님 여러 분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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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떡국이었다. 떡국은 어떻게 끓여낼 건지....., 가마솥에서 나오는 펄펄 끓는 떡국을 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그 상태를 꼭 지켜보리라고 맘먹었다. 그러나 그릇에 이미 담겨있는 대접에 국물을 부어주는 식이었다. 거기다가 점심 때 아낙네들이 함지박에서 씻고 있던 봄 동을 겉절이한 것을 떡국에 얹어주었다. 부드럽고도 간이 맞았다. 2천 명 정도의 떡국을 끓이는 방법은 갓 뽑아낸 떡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5시 반이 되자 도보순례단의 활동보고가 시작됐다. 방파제를 중심으로 준비된 객석은 1800좌석이락 했다. 좌석은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도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아서 도보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의 숫자는 적어도 2천 명은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추가로 몰려드는 사람까지 합하면 추산인원이 얼마가 될지 몰랐다.

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6시에 귀성하자.”할 것 같았다. 문자가 떴다. 6시에 분향소 쪽으로 모이라고. 밥을 먹지 않은 동료가 있었기 때문에 배식하는 줄에 서있었다. 밥도 있다며 밥을 건넨다. 떠나기 전에 먹어두라는 것이었다. 뭐 좋지. 먹으라는데 평소 과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식탐하는 사람도 아닌데 뭘, 아삭아삭 맛있는 김치에 약간의 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신기했다.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세끼 밥을, 아니 네 끼나 되는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 이 같은 밥 차를 띄워 수천 명을 먹고 먹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희망이 들꽃처럼 피는 세상 그 소망을 일궈내려는 민중들의 의지 때문이다. 대동정신을 아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스님 밥 차 덕분이다. 맛있는 김치를 제공해준 진도군민 손맛 그만이다.‘사랑 실은 스님 짜장’ 따뜻한 밥 세끼 고마워요.

 

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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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1 11:02 2015/02/2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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