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을 망친 사람들은 자숙하고 나서지 말아야

                                                                                   칼럼니스트 유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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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저 혼자 오지 않는다. 불행은 또 비극의 칼날을 겨누면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피폐하게 하는 몹쓸 속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제 아무리 큰 불행이 닥쳐도 극복하지 못할 일은 무엇이며 이겨내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라는 자세로 맞닥뜨리다 보면 새로운 힘이 생기고 돌파구를 찾아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문제는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게 문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면서 불행과 실패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이전보다 더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다. 지금 멘붕 상태다. 7.30 재보선에서 참패를 했기 때문이다. 이일로 해서 김한길과 안철수 두 공동대표는 물론 최고위원들까지 총 사퇴를 하게 됐다. 이들은 어째서 똑같은 실패를 연이어서 되풀이 하는지 모르겠다.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떤 대착이 필요한지 짚어보자.

새정치연합은 국민들 앞에 공천 잡음과 새로울 것 없는 정권심판론과 유권자의 마음을 사지 못한 야권 연대로서 패배를 안았다. 여기에 군웅할거 시대를 맞아 계파 간 이익과 패권의식의 극대화가 물밑에 깔리면서 정치와 당권의 정도를 가기 보다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하는 짓이다.

우선 ‘정권심판론’을 보자. 이는 소아적인 시선에 갇혀서 국가와 정치에 대한 비전을 넓고 크게 보지 못한 외눈박이 짓에 다름 아니었다. 무릇 싸움에서는 일대 일 싸움도 중요하지만 보다 큰 그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데 ‘정권심판론’이라는 단선적인 구호를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면서 쉽고도 게으른 싸움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 패인이었다.

둘째는 공천 잡음이다. 이번 공천은 원칙도 기준도 명분도 없는 3무(無) 공천이었다. 이는 김한길과 안철수 공동대표 측과 당내 최대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친노(親) 문재인을 비롯한 486들 간의 활극이요 저 OK 목장의 결투처럼 질과 재미를 담보하기는커녕 형편없는 3류 극을 연출한 산물이다. 이것으로서 민주당(4개월의 실험으로 끝난 새정치민주연합 이전엔 민주당이었으므로)은 그동안 온갖 편법과 억지와 정파이익이 들판의 검불처럼 뒤엉켜 그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볼썽사나운 분란만 자초하고 말았다.

좀 더 부연하자면 7.30 재보선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엄중한데도 불구하고 박원순 대 나경민의 대결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 출몰하는가 하면 민주당의 재건과 혁신에 적극적인 천정배 정동영 김상곤 씨와 같은 개혁적인 인물들의 의미 있는 진입(進入)이 원천봉쇄 되는 등 퇴행적인 쪽으로 당권이 작동하고 말았다. 이런 공천 결과는 독재적이고도 패권적인 발상의 전형에 다름 아니다.

이런 기저는 진즉부터 형성되었다. 손학규, 정세균, 손학규, 한명숙+문성근, 이해찬+문재인, 김한길+안철수 이들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약 7년 동안 민주당을 거친 얼굴들인데 문제는 이들이 민주당의 대표 혹은 간판노릇을 하는 동안에 빛나는 민주당의 찬란한 빛은 간데없고 민주당의 가치와 자산을 갉아먹고 탕진하는데 만 혁혁한 공로를 세운 점이다.

먼저 손학규 전의원을 보자. 손학규 전 의원은 2008년과 2010년 두 번의 당대표를 역임하는 동안 당의 공천방식을 상향식에서 하향식으로 바꿔버렸다. 이는 민주당 내에 계파정치의 단초를 제공하는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또한 호남 1표와 영남 10 표라는 해괴한 논리를 적용하여 당내 민주화의 근간을 흔들어 놓은 짓을 자행한다. 이후 후임자들은 전임자의 악행을 대놓고 본받았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한술 더 뜨는 정파적 이익에 충실한다. 그 결과 당의 가치와 유무형의 자산은 급속히 소진되고 이들은 민주당을 몰락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된다.

단언 컨데 손학규, 정세균, 한명숙+문성근, 이해찬+문재인, 김한길+안철수 등은 그들이 누구건 간에 지금 패자의 모습을 하고서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납작 엎드리는 연기를 한다고 해서 그들의 악행마저 용서돼선 안 된다. 그, 혹은 그들이 어떻게 하이에나와 같은 갈취본능을 민주당과 당원에게 행사했는지 준엄한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독 우리사회에서 공감을 얻는 말 하나가 생겼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는 제 아무리 큰 사고가 나더라도 반성과 재발장지를 위한 학습이나 반면교사로 삼기는커녕 도로 냄비근성과 망각 병 환자로 돌아가는 통에 오늘 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행한 일로 이어지게 됐음을 뼈저리게 경계하는 야무진 다짐의 메시지다. 이 시점에서 민주당이 필요한 정신도 “잊지 않겠습니다.”이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을 경우 민주당의 혁신과 환골탈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야권연대다. 이번 7.30 재보선에서 야당은 다시 절차적 정당성도 감동과 당위성도 없는 습관적인 단일화를 또 했다. 이게 언제 적 부터 시작한 버릇인가 하면, 손학규 전 의원이 당대표일 때 서울시장 재보선 후보를 시민사회에 양보한 때부터다. 민주당은 이때부터 걸핏하면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자당 후보를 내지 않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민주당은 점점 약체 정당이 돼가고 말이다.

지난 2012년 총선 때를 보자. 당권을 잡은 친노 민주당은 2012년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기획해놓고 진보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 관악을, 은평을, 노원병, 고양시덕양구갑, 의왕시 등 무려 다섯 군데를 양보했고, 이상규 노회찬 심상정 송호창 등은 이 같은 양보로 인해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다. 자력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아닌 거다. 여기서 심상정이나 노희찬 천호선 씨 등이 즐겨 행하는 행동의 패턴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들은 야권연대에 재미가 들려서 걸핏하면 야권연대를 부르대며 옆구리 찌르면서 다가든다.

이번에 7.30 재보선에서 또다시 노회찬 후보가 당선됐다고 치자. 그럼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의 표를 받아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므로 여전히 국회의원 자리를 정의당에 헌상하는 것이며 자력갱생이 아닌 점이다. 국민들과 유권자들은 이 같은 원칙도 감동도 없는 야권연대에 드디어는 싫증을 내며 외면하기 시작했다. 번번이 선뵈는 3류 공연에 식상해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단 말이다. 이는 민주당 즉 새정치민주연합 측에도 진보당 측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나아가서는 강한 야당, 건전한 정당정치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넷째 리더십이 실종됐다. 군웅할거시대를 이뤄 고만고만한 계파들 간의 갈등만 증폭되다 보니 마치 추수가 끝난 가을 들판에 서로 엉겨붙어있는 검불 같은 양상이다. 여기에 날씨마저 건조해서 바람 한점에 성냥개비 하나면 활화산 같은 불바다가 될 것은 뻔하다. 불은 이내 산 전체로 번지고도 성이 안차서 이웃 동네로까지 삼킬 태세다. 계파갈등은 공천문제를 낳고, 공천문제는 표심과 민심을 잃게 만들었다. 국민들은 이유도 없는 이따위 불벼락이 싫다.

민주당은 언제 강한 야당, 대안정당의로서 거듭날 것인가? 하루 빨리 구악을 일소하고 당의 철학과 노선을 정립할 일이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민들의 마음을 얻는 사람들이 그 지역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하자. 유권자들에게 후보 선출 권을 돌려주자. 바로 상향식 공천이다. 당내 민주화가 반칙 없는 사회로 이어지고 정의가 들꽃처럼 만발하는 세상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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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2 09:05 2014/08/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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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편 아니면 죽이는 공천파동, “당원들의 직접선거가 답”

                            [단독인터뷰] 고연호 은평을 위원장에게서 공천문제 등 현안문제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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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꿈이 있는 한 행복하다. 하지만 행복은 그 자체가 인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행복이란 결심이요 결정이다.’라고 한 앤드류 매튜스라는 사람의 말에 보다 더 공감이 간다.

“왜 정치를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고연호 은평을 위원장에게다. 그녀는 “우리 부모님은 평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셨지만 저는 초등학교서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등록금을 제때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부모님을 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 일을 제가 해야 한다고 다짐했고요. 이 결심은 변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고연호 은평을 위원장이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렇다. 고연호 씨는 90평생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고도 딸자식에게 학비는 물론 용돈 한 번 제 때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고뇌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고뇌를 바탕으로 정치가로서의 꿈을 키우며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 농민, 비정규직 건설하청업자들 그리고 노인과 어린이며 장애인들과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 같은 포부가 있었기에 누구보다 당찬 젊은 시절을 보낸다.

60년대 태어나고 80년대 대학을 다녔으니 흔히 말해서 그녀도 486이다. 전두환 독재정권을 살면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생운동은 당연히 제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지만 486 운동권이라 해서 다 똑같은 길을 가진 않는다. 고연호는 졸업 후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남들처럼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서 위장취업이나 공장에 취직하거나 야학활동을 하기위한 말하자면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우선 어려운 살림을 일으켜 다만 얼마간이라도 부모님을 부양하는 일이 목전에 닥친 의무라 생각했다. 그래야 부모님에게는 “잘 키운 딸자식 열 아들 부럽지 않은” 기쁨을 선사하는 일일 테고, 고연호도 자식으로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인륜에 부응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특히 운동권에 있던 486 남학생들은 나름대로의 연대나 동지애를 통해서 NGO 활동이든 정치활동이든 그들만의 패턴이 있었다. 하지만 고연호는 느슨하나마 그러한 고리조차 유지할 틈도 없이 손수 회사를 설립하여 여성 사업가로서 무역업체를 이끌어간다. 그게 24살 대학을 막 졸업한 20대 때 일이었다. 은평구 구산동에서였다. 딱히 몇 년이라는 기약은 없었지만, 사업이 번창하여 40대 초반까지 20여 년을 그렇게 정신없이 열중했다.

그렇다면 고연호는 언제 어떤 계기를 맞아 정치계에 입문 했을까. 그녀의 정치관은 무엇이며 이때까지 민주당(즉 새정치민주연합)에 몸을 담고서 은평을 지역위원회를 어떤 마인드로 이끌고 있을까 고연호 씨를 만나서 현안문제와 함께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정치는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2004년도였습니다. 열린우리당 때였지요. 초등학교 3학년 학력이 전부인 분의 딸자식으로 우리부모님처럼 열심히 일하면 잘 사는 사회가 돼야한다. 그 일을 내가 한 번 해보자 하는 이유에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 뜻을 포기하지 않고 잘 가기위해서라도 가족부양을 좀 해 놓고 민주화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요. 20여 년간, 처음엔 저도 그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죠. ㅎㅎ”

-은평을을 지역구로 삼은 이유가 있나요?

“당시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 양쪽이 다 어려운 때여서 제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입당한 시점이 정동영 당의장 때였습니다. 지역구 활동은 2004년 전국구의원에 탈락을 하고나서 사업을 하면서 처녀 때부터 살던 은평을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됐습니다. 2006년엔 다들 어렵다고 할 때 총대를 메고 구청장에도 나섰지요. 당시 25개 서울시 소속 열린우리당 구청장후보로서는 서울시에서 최다득표를 했지만 상대 당 후보에게는 밀렸어요. 처음 나가본 선거였구요. 많이 배운 선거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국회의원서거를 준비해오고 있었습니다.”

-정치인 생활 10년인데 시련은 없었습니까?

“시련요? 저희 정치인들에게는 공천문제가 늘 뒤따르지요. 아시는 대로 2010년 재보선 때는 장상후보가 저희 지역에 전략 공천으로 왔다가 실패했고, 2012년 선거에는 야권연대라는 이유로 당의 잘못된 결정의 한복판에서 또 밀렸고요. 그게 다 시련이고 우여곡절이지요. 지역에서 다년간 거리에서 골목에서 고생을 하고도 자기편 아니면 무조건 죽이는 패거리정치와 끼리끼리 패권문화가 사라져야 합니다. 원칙이 서면 억울한 사람이 없고, 남의 꿈을 빼앗는 것 나쁜 짓입니다. 이번 7.30재보선 선거에서도 보셨듯이 원칙 없는 공천과 감동과 필연성도 결여된 선거공학적인 측면에서의 야권연대라는 것이 얼마나 유권들을 식상하게 하는지 제대로 목격했습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치고 하나같이 지적하는 사항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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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는 어떻게 치르셨습니까?

미번 6.4지방선거는 시작 전에 이미 승리가 보이던데요?”

-그러게요. 정말 그랬는지 두루 아울러서 고위원장님 의견을 좀 말씀해주십시오.

“이런 여론의 지지위에서 당내 민주적절차로 좋은 후보를 내고, 세월호 심판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려운 시국을 이러저러하게 풀어가겠다고 하는 비전과 희망을 국민들께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런 점만 잘 다듬어졌더라도 큰 차이로 승리를 할 것이라 자신했었는데, 저희 당이 이겼다는 평가가 흔쾌히 내려지지 않는 선거로 끝나서 조금 아쉽습니다.”

-며칠 전에 끝난 7.30 재보선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중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요. 저라면 몇 가지 원칙 외에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는 실정입니다. 뭐냐면 어떤 선거든 원칙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죠. 첫째 전략공천이 없어야 하고, 둘째 모바일선거에 반대합니다. 체육관 선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도 모바일 선거 없이 다 자기 발로 걸어가서 체육관이든 학교강당이든 직접선거를 하니까요.

당원이 당대표를 뽑지 않고 불특정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자기 당의 대표든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다는 것은 정당의 존립을 뒤흔드는 거라고 봐요. 바로 말해서 의사협회 회장선거에 약사들이 나서서 뽑는 거하고 뭐가 다르냐 말이에요. 제대로 된 경선 룰에 의해서 올바로 뽑고 깨끗이 승복하는 문화가 정착해야 합니다. 어디서건 누군 된다. 누군 안 된다 말릴 필요도 없습니다. 선거에 나오고 싶은 사람들은 해당 지역에 가서 주민들과 밀착해서 살며 부대끼면서 인정받고 검증을 받는 겁니다. 미국이 좋은 예죠. 클린턴이 이름도 없는 아칸소 주에 가서 터를 잡은 이유가 뭐겠어요? 거기서 잘하니까 전국적인 지도자가 되지 않습니까?

좋은 선례 좋은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조지 워싱턴이은 왕으로 등극하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미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웁니다. 그래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그 나라 정치는 법과 시스템과 반칙 없는 룰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고 가고 있어요.

총선이든 대선이든 일관된 원칙과 좋은 선례에 따라서 스케줄대로 가야한다는 거지요. 한 번 잘못하면 물러나야 한다?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거에 지면 공동 책임을 지고 자숙하는 게 맞고 세월호 사건이다 열차탈선이다 윤일병 사건 등으로 국민은 정부도 못 믿고 속상해 하고 있는데 그들의 삶을 담아낼 그릇인 공당인 야당이 안 보인다는 말이죠. 야당이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니까 국민들의 눈높이를 못 맞추니까 저희 생정치민주연합이 신뢰를 못 받은 결과가 이번 7.30재보선에서 11대 4의 참패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고연호 씨의 말을 듣다 보니 신뢰받는 야당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행복하게 지내는 자는 대게 노력가라고 한다, 고연호 은평을 지역위원장이 딱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에 천착하며 적지 않은 고민과 함께 쌓은 내공이 뚜렷해 보여서다.

이뿐만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바쁘게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자신의 사업을 성공시키며 한국여성경제인연합에서 부위원장의 반열에 오르며 여성 사업가로서도 바쁜 일정을 보내왔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는 크고 작은 선거를 치루면서 더욱 단단해졌고 이번 6.4지방선거에서는 당의 공천심사위원에 소속되어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지금 현제는 90세가 넘은 노모를 모시며 양녀 여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작년에 작고하신 부친은 평생 가난하고 검소하게 사셨지만 건강 하나는 타고나신 분답게 생애에 여하한 흠결도 남기지 않으시고 대과(大過)없이 천수를 누리다 가셨다.

여기서 고연호 은평을 지역위원장만의 특이점이 부각된다. 고연호는 누가 뭐해도 때 묻지 않은 마지막 남은 486이다. 지금 우리 정치사에서 486 만큼 이중적인 이미지로 조명되는 정치집단은 다시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때로는 격렬하고 순수하게 이 나라의 민주발전을 위해서 헌신한 이름으로 불리는가 하면 오늘 날엔 계파정치의 일원으로서 권력의 단맛을 뒤늦게 알아버린 패권집단으로 일컬어지기에 말이다.

하지만 고연호 그녀만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신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그 흔한 국회의원 한 번 한 적도 없다. 파벌 없고, 줄 없고, 든든한 선후배도 밝히지 않기에 그렇다. 그녀가 오직 추구하는 것은 지역민들을 상대로 생활정치에 헌신하는 것이다. 고연호가 정체계와 새정치민주연합과 은평을에 큰 자산이고 희망인 이유다.

고연호 은평을 지역위원장에게 탄탄하고 다부진 행보를 기대한다.

인터뷰어 박정례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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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8 15:38 2014/08/0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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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친민주연합 소속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 제목은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다.

정동영 전 장관이 발제해준 내용은 당당하게 '유능한 진보정당'의 길을 가자였다.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나는 사람도 많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니 머리가 복잡할텐데

그 많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 많은 숫자를 기억하고, 그 많은 국정 현안들을 다 기억한다. 기억력을 유지하는 무슨 비결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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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끝까지 내려와 많은 것을 섭렵하고 공부하고 노력한 정 전 장관의 부지런함을

보통 사람이 따라가기엔 쉽지 않을 것 같다.

토론장 밖에 있다가, 익숙한 것도 같은 목소리인데 누군가는 잘 모르겠고.....막힘없는 지식에 적당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그러나 다소 속도감 있게 들려와서 누군가 하고 급히 들아가봤더니

정동영 전 장관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었다.

와? 저 꽉 들어찬 내용들을 원고도 없이 저런 속도로 저렇게 콕콕 짚어서, 참 된 사람이다. 제대로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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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10:12 2014/08/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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