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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 '종현'의 유서가 동아일보에 실려서 가져왔다. 가슴이 찡하고 먹먹하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고,소속사의 돈 버는 기계로만 움직이는 생활과 펜들 앞에서 예쁜 미소만 지어야 하는 밖으로만 나도는 생활에 얼마나 지쳤으면 그랬을까.

요즘 조카 하나가 상당히 심한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어 동병상련의 아품이 가슴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점심이라도 챙겨 먹이며 다가서려고 달걀 푼 맑을 야채국을 끓이고, 돼지고기 향정살을 구어 점심상을 차렸지만 그닥 많이 먹진 않는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조카의 의식과 속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리리 싶어 샤이니 종현의 자살로 화제를 몰고 가봤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담케어를 한다든지 연예활동을 하는 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치가 기획사나 아이돌 연예인 주변에 마련됐는지에 대해 말했다. 조카 말이 "거기도 나름 힘쓰고 있을 거"라는 대답이었고, 젊은층들은 연예인들의 일을 통해서 자신들을 투영하며 화제로 올려 현실을 재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는 일이 많기에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일은 필요하다.

퓨로듀서 워너원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 "뽑힌 얘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머지 얘들은 들러리로 선 것 밖에 안 되는데...." "들러리가 뭐에요. 얘들 부모에 가족들까지 온통 못 보일 것까지 다 노출돼요."라고 말한다. 절실하게 하고 싶어 필사적인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고 카메라 한 번 안 비춰준다는 것이다.

그 많은 아이들을 들러리로 세울 거면서, 뽑힌 얘들을 키우기 위한 받이로 사용할 거면서 첫 화면에서나마 슬라이드식으로나마 잠깐 씩 기본으로 보여주고 본 방송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견을 제시해봤다. "이번이 제 2회인데 워너원 얘들은 남자들인데 F조까지 있다."고 했다. 에프조 어디라도 단 한 번이라도 비춰줘야 "쟨 D조인데 참 잘하네!" 해서 A B조로 월반할 기회라도 있을텐데 아예 비춰주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왜 강다니엘이라는 얘만 맨날 띄우는 거니?"

"말했듯이 지금 푸로듀서 2회 째인데 CJ라고 재벌그룹이 하는 건데 1회 때는 알리고 띄우는 역할을 했다면 2회에선 돈을 벌어야는데 뽑아놨으니 걔가 떠야 프로도 살고 돈드 벌 수 있으니까죠. 글고 남자들 같으면 반짝 좋다 가라앉는 수가 많은데 여자 펜들은 그렇지 않고, 펜덤을 형성해서 지들끼리 펜클럽을 한다든지 캐릭터상품을 산다든지 돈이 되는게 남자 아이돌 그룹이라고 한다. 

그래서 기획사들은 아이들 그릅에서 수익을 많이 뽑기 위해 남자 아이돌 그룹을 더 선호하며 상대적으로 여자그릅들은 소외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조카와 얘기를 나눈 화제는 그래서 너무 이른 나이에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아이들의 정신건강과 인간관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그들만의 돌봄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는 것,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남자 아이돌그룹을 통해서 발생하는 수익구조가 더 좋기 때문에 이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

"샤이니의 다른 멤버들은 종현의 사고로 인해서 좋지에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된 거 아니냐?"하는 나의 질문에 "그렇지도 않은 걸요. 요즘 휴지기였거든요." "그래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샤이니로 활동하려 해도 뜻대로 안 될 수도 있잖을까? 클론의 예를 봐도 그렇고. 강원래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구준엽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했을 건데 지금은 아니잖아. 둘의 조화로 이뤄낸 결과였지 혼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고 말야" "그런 면이 있지요."

조카는 요즘 시험에서 연거퍼 두번 떨어지는 바람에 대단히 의기소침해 있는 처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일어나지 않아서 그냥 두면 12시 2시 3시 이런 식으로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마음이 여린 애를 다구치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고, 지 엄마도 이런 점을 걱정하고 이모가 이야기를 건네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 생각나는 것이 남편이 전에 운전면허를 딸 때 10번도 더 떨어진 얘기를 하면서 그땐 정말 속상했다는 얘길 해줬다. 2번의 낙방으로 다 팽개치듯이 너무 다운 돼 있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아무튼 종현이 일과 조카의 일 그리고 내일 등이 겹쳐와서 서글품을 머금고 나역시 애도를 표했다는 사실은 현실이다. 종현 씨 명복을 빌게요.


<종현 삼가 명복을 빈다>

​난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날 미워했다. 끊기는 기억을 붙들고 아무리 정신차리라고 소리쳐봐도 답은 없었다.
막히는 숨을 틔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추는게 나아.
날 책임질 수 있는건 누구인지 물었다.
너뿐이야.
난 오롯이 혼자였다.
끝낸다는 말은 쉽다.
끝내기는 어렵다.
그 어려움에 여지껏 살았다. 
도망치고 싶은거라 했다. 
맞아. 난 도망치고 싶었어. 
나에게서. 
너에게서.
거기 누구냐고 물었다. 나라고 했다. 또 나라고 했다. 그리고 또 나라고했다.
왜 자꾸만 기억을 잃냐 했다. 성격 탓이란다. 그렇군요. 결국엔 다 내탓이군요.
눈치채주길 바랬지만 아무도 몰랐다. 날 만난적 없으니 내가 있는지도 모르는게 당연해.
왜 사느냐 물었다. 그냥. 그냥. 다들 그냥 산단다.
왜 죽으냐 물으면 지쳤다 하겠다.
시달리고 고민했다. 지겨운 통증들을 환희로 바꾸는 법은 배운 적도 없었다.
통증은 통증일 뿐이다. 
그러지 말라고 날 다그쳤다.
왜요? 난 왜 내 마음대로 끝도 못맺게 해요?
왜 아픈지를 찾으라 했다.
너무 잘 알고있다. 난 나 때문에 아프다. 전부 다 내 탓이고 내가 못나서야.
선생님 이말이 듣고싶었나요?
아뇨. 난 잘못한게 없어요. 
조근한 목소리로 내성격을 탓할때 의사 참 쉽다 생각했다.
왜 이렇게까지 아픈지 신기한 노릇이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잘만 살던데. 나보다 약한 사람들도 잘만 살던데. 아닌가보다. 살아있는 사람 중에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없다.
그래도 살으라고 했다.
왜 그래야하는지 수백번 물어봐도 날위해서는 아니다. 널위해서다.
날 위하고 싶었다.
제발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왜 힘든지를 찾으라니. 몇번이나 얘기해 줬잖아. 왜 내가 힘든지. 그걸로는 이만큼 힘들면 안돼는거야? 더 구체적인 드라마가 있어야 하는거야? 좀 더 사연이 있었으면 하는 거야? 
이미 이야기했잖아. 혹시 흘려들은 거 아니야? 이겨낼 수있는건 흉터로 남지 않아.
세상과 부딪히는 건 내 몫이 아니었나봐.
세상에 알려지는 건 내 삶이 아니었나봐. 
다 그래서 힘든 거더라. 부딪혀서, 알려져서 힘들더라. 왜 그걸 택했을까. 웃긴 일이다.
지금껏 버티고 있었던게 용하지.
무슨 말을 더해. 그냥 수고했다고 해줘.
이만하면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줘.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줘.
수고했어.
정말 고생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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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9 16:51 2017/12/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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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닮지 않은 ‘하의도의 김대중 ‘全身像’
-‘DJ의 인상, 표정, 특징‘ 전무한 김대중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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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의 DJ 생가에 가면 김대중 전신상(全身像)이 있다. 그곳엔 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형물이 있을까. 당연히 그의 족적을 찾아 하의도를 찾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전의 DJ와 좀 더 가깝게 교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저 조형물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3차원의 공간에서 구현된 양감(量感:volume)을 지닌 구성체를 말한다. 현대에 와서는 그것이 석재든 금속이든 재료나 기법 등의 세세한 것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일정 수준의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는 입체조형물들을 통칭하여 조각(彫刻 sculpture)이라 한다.

예컨대 인체를 소재로 한 조각 작품들은 대게 특정한 사건이나 업적이나 인물을 기리기 위해서 제작한 것이 대부분이다. 전자의 것으로 유명한 조각작품으로는 로뎅의 ‘칼레의 시민’이 있고 후자의 것으로 유명한 조각 작품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다윗 상’이나‘ 피에타 상’이 고대 그리이스 작품으로는 미로의 ‘비너스’ 상이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비근한 예로 광화문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을 볼 수 있다. 세종대왕 상은 좌상(坐像)이요 이순신 상은 입상(立像)으로 제작돼 있다. 이중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조선 조 제 4대 임금으로서 후덕하고 영민한 성군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대체로 시비가 일지 않으나 입상으로 제작된 이순신 장군 상은 끊임없이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시기적으로도 문제였다.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인 1968년도에 제작된 이순신 상은 베트남 전쟁에서 국민의 지지와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국민동원을 위한 수단 그리고 무력을 통해 집권한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항일의 영웅인 이순신을 내세워 정권의 보신에 이용하려한다는 시선이 강했다. 이에 더해서 중국식 갑옷에, 일본도를 더구나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점, 표준영정과 전혀 닮지 않은 모습, ‘독전고(督戰鼓: 전투를 독려하는 북)’를 뉘여 놓은 점 등 허다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어 두고두고 시비를 자아내고 있는 대표적인 거상(巨像)이다.
그런데 하의도의 김대중 생가에 안치된 DJ 전신상 또한 문제가 적지 않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그를 전혀 닮지 않은 점이다. “도대체 이런 조각상을 무엇 때문에 세워놓았지?”하는 질문이 절로 나왔던 것, DJ 다운 체상(體相)이 전혀 아닌 것이, 전신을 너무 왜소하게 만들어 소인공화국의 어느 소인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면상에서는 DJ 만의 특징도 표정도 인상도 조형감도 찾아볼 수 없는, 한마디로 DJ와 별 상관없는 번지수 다른 사람을 세워놓고 우기는 꼴이었다.

그 조각상에서는 언감생심 “DJ의 혼까지 느낄 수 있었다.”는 정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표정 한 구석이라도 닮은, 아니면 고뇌하는 모습이라도, 그도 아니면 늘 진중하게 처신한 탓에 특유의 긴장하는 모습 한구석인들 엿볼 수 있었더라면 여한이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에 의해서 별 가치도 없는 허상(虛像) 하나가 의례적인 절차로 안치됐다 싶을 뿐이어서 “도대체 왜 이런 짓을 굳이 하는 거지?”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오늘 날의 시각으로 보자. 김대중 골격이라면 왜소한 체형이 아니요, 상당히 두툼한 입술에, 살짝 뭉툭한 코끝을 지탱하고 있는 높은 콧대와 안광을 빛내고 있는 눈을 담고 있는 전체 이목구비 또한 균형미를 엔간히 갖추고 있는 관상(觀相)의 소유자다 그는. 다만 정치역정이 워낙 순탄하지 못했던 탓에, 가끔 씩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고뇌의 표정까지는 어쩌지 못한 면이 있다 하겠다.

그래서다. 고인을 의도적으로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건설업자가 하도급 단가 후려치듯이 싼값에 흥정하여 일괄적으로 맡긴 탓에 획일적인 기성품을 찍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지 않았다면, 그처럼 인상 하나 닮지 않은 결과물을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40대 대통령 후보로서 100만 청중을 상대로 포효하는 장충단공원 유세장면도 있고, 기쁘지만 고뇌에 찬 취임식 장면도 있었다. 일부러 폄훼할 요량이 아니라면 DJ가 DJ답도록 있는 그대로만 표현해줘도 이처럼 번지수 다른 DJ상(像)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것이 울먹이는 표정이든, 박장대소를 하는 모습이든, 찡그리는 모습이든 간에 ‘DJ 인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해낼 줄 아는 능력과 조형감, 입체감, 형태감을 살릴 줄 아는 데셍 능력(드로잉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협의체라도 구성하여 선발한 작가가 제작한 작품이었다면 도무지 이런 우스운 꼴의 영혼 없는 조각상을 DJ상이라고 내놓진 않았을 거다.

폐 일언하고 DJ를 팔아서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DJ를 팔아서 선양사업을 한답시고 생색을 내던 허다한 사람들, 이제라도 어줍잖은 자세와 수준미달의 안목으로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단호한 결심과 반성이 필요하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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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9:54 2017/12/0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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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 ‘김대중 평화공원’...스토리텔링의 보고
<현지르포-③>‘김대중 평화정신’과 ‘하의도 역사’

DJ의 섬 하의도, 목포에서 뱃길로 57.9km라 한다. 돛대.삿대 하나인들 변변했을 리 없었던 오래전이었을 게다. 성능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배와 바람에 의지하던 풍선(風船)으로 물살을 가르던 시절엔 너 댓 시간이나 족히 걸렸다는 하의도였다.

그렇지만 DJ가 태어난 1924년부터 따져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속도와 더불어 오늘 날의 해로교통사정은 가히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한 생태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목포에서 쾌속선(엔젤호)으로 달리면 1시간 10분 정도요, 일반 차도선(뉴 조양페리)로 바다를 건넌다 해도 2시간 30분이면 너끈히 닿을 수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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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이주와 하의도 생가

세상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처연하고도 장엄한 장면 몇 개가 겹쳐온다. 고향을 떠나오던 날의 DJ는 어땠을까. 손때 묻은 가재도구를 싣고,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서 뭍을 향해 가는 DJ모친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똑똑하고 영특한 아들의 싹수를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과 사랑하는 아들의 학업을 책임져야할 어머니로서의 얼굴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으리라. “‘대중’이를 위해서라면 ‘뼈마디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결심 하나는 단단했지만 말이다.

모친은 용감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들은 마침내 큰 꿈을 이룬다. 천로역정이었으나 제 15대 대통령에 오른다. 대한민국 최초로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경제난국을 극복했는가 하면, 재임시절 내내 남북의 평화공존시대를 열었다. 그 공로로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밀려드는 상념을 뒤로 하며 DJ의 집터에 들어섰다. 그 집이 소옥이든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든 획일적인 인상을 주는 곳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탄생지 안팎에는 대통령의 목포상고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정치여정을 바라볼 수 있는 사진들이 맞아주었다. 일행은 안채로 들어가 옷매무세를 가다듬었다. 영정사진 앞에서 향을 사르고 열을 맞춰 절을 올렸다. 유난히 숙연한 표정들이다. “좀 웃어요!” 말을 던지며 지인들을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눈물이 솟네요. 생애 처음으로 찾아뵙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후광리에서 대통령님의 정취를 듬뿍 느끼고 갑니다.” “남도 출신이지만 하의도에는 처음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대통령님의 재직 기간이 제일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방명록에 적힌 내용이 제각각이다. 베로니카 씨와 문 선생이 생가 지킴이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혼자 언덕바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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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의 표적이 된 간척지

언덕뒤편에는 논.밭이 널려 있었다. 하의도는 강수량이 많은 곳이라 했다. 섬치고는 농수(農水) 걱정이 별로 없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수탈지가 되는 운명을 거친다. 선조는 정실부인에게서 난 맏딸 정명공주를 홍씨 문중으로 시집보내면서 농지기로 하의3도의 농토 24결을 하사하고 세미(稅米)를 받게 하였다. 후손 4대까지 만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민들이 자체 개간하여 일군 땅까지 합하여 총164결(약 49만9000평)을 수탈지로 삼았던 것, 하의주민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 국가와 홍씨 가문에 시달렸다. 이른바 이중과세에 해당하는 일토양세(一土兩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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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농지반환쟁의 역사가 360년간이나 계속된다. 해결점을 찾았을 때가 1956년이었다. 정부는 하의도 땅을 유상몰수*유상분배의 원칙을 세우고 농민들에게 넘긴다. 간단치 않은 역사였다. 하의도 농민들의 쟁의는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고, 일제 수탈기간을 거쳐 해방을 맞고도 11년이 지나서야 종결을 본다.

하의3도에는 흔히 말해서 두 종류의 밭과 논이 있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곡식을 경작하는 밭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금밭이다. 김대중의 생가 앞은 소금밭이었다. 갯벌로 둘러싸인 섬 속의 섬이라 말하는 곳, 그 옛날, 아주 작은 새끼 섬 하나가 있었는데 이를 없애 염전을 일군 장소가 집 앞이다. 하의도 주민들은 갯벌을 드러난 곳이면 어김없이 달려가 간척지를 만들었다. 쌀은 온갖 물산 중에서도 천하가 알아주는 으뜸물산으로 꼽혔다. 그러기에 “오직 쌀!” 쌀을 낼 수 있는 땅을 소유한 자라야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간척지에 목을 맨 이유다. 피와 땀과 눈물 없이는 소출을 허락하지 않는 야박한 곳 간척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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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운 건물 ‘유스호스텔’

그러니 간척지 위에 세워진 김대중의 생가 터를 두고 “그 삶이 바다를 메워서 길을 내듯 험했다”며 생가 주변의 평범함과 한가로움을 약간 비틀어 "대통령께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혼신의 노력으로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다던,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 집필가요 언론인인 김택근 씨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 말이라 싶다.

올해는 김 대통령 서거 8년째다. 하의도는 DJ의 선양사업지로 부상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는 2009년도에 도비와 지방세 85억여 원을 들여서 ‘노벨평화공원’을 조성하기로 발표하다.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생가 뒤편에 축구장 6개 면적을 확보하고 기념탑과 공원, 노벨평화관을 짓기로 한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약속했던 노벨평화관은 간 데 없고 그 자리에 박준영 전 지사의 지시로 유스호스텔이 세워지는 것으로 끝난다. DJ 서거 8년이 지나도록 개장도 못한 건물이 됐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혈세를 낭비한 면에서는 울어야겠지만 역설적이긴 하지만 본 기자가 바라본 관점에서는 유스호스텔을 개장하지 못한 점은 다행이라 싶다. 건물이 들어앉은 장소는 인체로 치면 생가의 뒷목덜미에 해당하는 곳이고, 좀 과장해서 말하면 뜬금없기 이를 데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유적지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노벨평화공원’이라는 알맹이는 사라지고, 허울 좋은 시멘트건물 하나가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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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스토리와 세계의 정원

꽃과 김대중, DJ는 옥살이를 하면서도 꽃을 가꾼 분이다. 1,5평의 독방에서도, 2.3천명의 경찰들이 집 주위를 에워싸며 겁박을 일삼을 때에도 정원을 돌보며 지냈다. 정적들이 목숨을 노릴 때나, 교도소에 갇혔을 때나, 가택연금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도 꽃과 나무를 통해서 위안을 얻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다독였다.
 
그랬다. 그의 일생은 늘 자유를 억압당하고,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DJ는 남들이 허투루 여기는 자투리 시간에도 ‘정의와 평화와 통일’에의 비전을 구상했으며, 비좁은 공간에서도 이름 없는 꽃들과 대화를 나누며 희망을 선물한 사람이었다. 이는 김대중이 김대중을 치유하는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을 향해서 건네는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였다. 아무도 김대중의 머릿속 재산은 어쩌지 못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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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김대중 대통령이 죽어서나마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살아서는 생명의 위험을 5번이나 겪고, 6년간의 옥살이에, 55번이나 가택연금을 당하면서도 기어코 도달한 그의 인간승리의 역사만큼이나 찬연하게 빛나는 정원, 춘,하,추,동 철따라 피고지는 귀물다운 꽃들이 가득한 그만의 정원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정원 몇을 소개한다. 캐나다의 ‘부차드공원’은 시멘트 공장에 석회석을 공급하던 채굴장이었다. 브라질의 ‘이뇨칭 공원과 야외갤러리’는 폐 광산을 활용하여 조성한 공간이다. 이집트의 ‘아즈하르 공원’은 난개발과 폐기물 매립지로 얼룩진 곳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우주적 사색의 공간’도 사람이 가꾼 독특한 정원이다. 세상은 지금 개발로 인한 자연의 상처를 치유하여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려 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디제이 생가 주변은 ‘유스호스텔’이라는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 뜬금없는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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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오물이 가득하고 해충이 우글거리는 곳을 자랑하지 않는다. 올바른 인간이라면 더럽고 음습하며 악취가 진동하는 흉측한 곳을 내세우진 않는다. 석회석 채굴장이었던 부차드 공원과 폐 광산이었던 이뇨칭 야외미술관이, 이집트의 카이로가 특히나 폐기물 매립지였던 이즈하르공원을 자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힐링 공간이라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내나라 내 땅에서 자라고 있는 꽃과 식물들이 “이만큼 예쁘고, 이만큼 아름답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김대중에 헌정하는 ‘김대중 평화공원’

DJ의 후예들은 안목을 키우자. 하의도를 넘어서 전국을 아우르는 인식의 폭을 넓히자.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앞을 내다보자. DJ의 생가가 ‘척박한 간척지 위에 자릴 잡았네 마네’만 되 내지 말고 하의도를 다시 보고. 김대중을 제대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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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DJ가 탄생지 뒤편에 유스호스텔을 지어달라던 사람이었던가? 아니다. 치워버려야 한다. 그 자리에 ‘김대중 평화공원’을 조성하자. ‘노벨평화공원’이라고 할 필요도 없다. 노벨은 빼고 그냥 ‘김대중 평화공원’이라고 하면 된다. 대통령을 찾아오는 사람이나 그를 반기는 DJ나 서로 마주보며 꽃 웃음 한 번이나마 크게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자.

역발상을 해보자. 지구상에, 온 우주 안에 DJ처럼 사면팔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딴 섬에 태어난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DJ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이 되는 사람이다. 오직 DJ만이 그처럼 슬프도록 처절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탄생했다. 측은지심이 들 정도로 척박하고 외딴 볼모지에 자란 대통령, 그럴수록 스토리가 넘친다. 그러니 DJ만큼 눈물 날 정도로 서러운 오지에서 갯바람 흩날리는 가운데서 태어난 사람이 또 어디에 있는지 헤아려 보자. 대한민국은 물론 세상 세상 어디에도 9개소의 유인도와 49개소의 무인도로 둘러싸인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없을 거다. 재밌는 이야기는 현대 판 ‘권력’이라고 한다. 이처럼 DJ에게는 스토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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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당부

사족 한 가지를 덧붙인다. 평창 올림픽 플라자는 개.폐막식이 끝나면 최소 4개 층이 헐린다고 한다. 1163억원이 공중에 나라가는 턱이다. 인천아시아올림픽에서도 익히 보지 않았나. 수천 억 원대를 들여 지은 경기장들이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되어 연간 수십억 씩 돈 잡아먹는 하마가 되고 있는 사실 말이다.

85억 원의 세금이 아깝긴 하다. 그렇지만 몇 번 쓰고 허물어버릴 경기장 하나 짓는데도 수천억 씩 허비하는 것에 비하면 85억 원은 조족지혈이라 할 정도로 작은 돈이라 생각하고 털어버려야 한다. 그래서다. ‘하의도 해양테마파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지금껏 개장 한 번도 못해 본 유스호스텔에 대한 미련일랑 정말 버려야 한다. 비워두는 날이 더 많을 것이 뻔한 곳인데 어설프게 개장을 하려했다간 수도세, 전기세, 가스 값, 인건비 등 유지관리비가 더 들어 간다. 그러니 유스호스텔을 아깝다 생각지 말고 과감하게 허물어 버려야 한다.

예컨대 ‘김대중 평화공원’을 조성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빛날 수 있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하의도를 찾는 사람들과 세계인들에게 보여달라. ’360년 하의도의 토지반환투쟁 역사’와 함께 김대중의 스토리를 올바르게 펼쳐야 한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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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5:19 2017/11/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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