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고향 순창서 씨감자 생산 이유

-김재훈 박사가 특허 얻은 씨감자 생산법으로 씨감자 생산 '북한의 식량 해결'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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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땅이 선물한 슈퍼푸드는 밀 보리 옥수수 감자를 꼽는다. 감자와 밀 보리는 유럽 쪽에서 단위생산량이 많고, 옥수수는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주식으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식물이다.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데 베트남처럼 삼모작을 할 수 없어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한정돼 있다. 

요즘 시골에 가보면 노령화로 휴경지가 넘쳐나고, 그마저도 경작에 일손이 부족하여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에서 시집온 부모들이 초청받고 입국하여 일당 5만 원 정도를 받고 대단위 기업농의 일손을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수나 양돈 양계는 일손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라 농촌의 노령화됨 노인들이 경영하기엔 불가능하다. 70년대에도 농번기엔 방학을 하고, 향토사단 군병력 등을 이용하며 모내기와 추수를 도왔다.

일손도 70% 이상 덜고 이모작(하지 동지) 감자를 거둘 수 있게 하기 위해 정동영 전 의원과 김재훈 생명공학 박사가 연일 실험실과 육묘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순창 복흥면 답동리에서 새까맣게 탄 얼굴로 방문객인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폐교농장과 인근의 비닐하우스 씨감자 생산 포전으로 이루어진 1만여 평 되는 시설로 구성된, 농사용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정동영 전 의장의 차트 브리핑과 시설물 이동 설명이 있었다. 생명공학 권위자인 김재훈 박사의 부가 설명도 있어서 어안이벙벙한 우리 일행은 호기심에서 확신으로 표정들이 바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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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최대복병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환경에서 바이러스성 썩는 병을 제압하다

 

김재훈 박사는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얻고 고향 순창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폐교를 인수, ‘씨감자 대량생산에 관한 특허’를 발판삼아 지난한 고행을 하고 있었다. 정동영 전 의원의 브리핑 중에 씨감자 대량생산을 통하여 북한에 연 200만 톤 감자 증산을 이루고, 식량자급율이 30%도 안 되는 대한민국에서 병해충에 강하고 균일한 영양소를 고루 갖춘 감자를 대량생산한다면 식량안보에도 쉽게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농작물의 종자 준비율이 쌀은 140알 중 1개요, 감자는 10개 중에 1개를 보관해야 하는데 썩고 짓무르는 감자 대신 약 15도 내외의 저장 공간에 씨감자를 저장하면 아주 적은 양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전국의 폐교를 이용하면 사시사철 씨감자생산이 가능하여 차후 5년 안에 남북의 식량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는 대관령에 농진청 산하 연구시설에 200억을 지원하여 씨감자 생산해왔다. 감자 싹 하나씩을 키워 줄기를 잘라 삽목(揷木)하는 방식이라 단위 시간당 생산성이 현저히 약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재훈 박사는 씨감자 씨앗을 플라스틱 양분배양기에 넣어 동시에 수 십 가닥의 싹을 동시에 키우는데 성공했다. 이 싹을 육모판에 삽목하여 층층의 선반 위에 올려놓고 배양함으로서 단위 기간 당 생산율을 정부의 대관령 육묘장 보다 50~100배로 높였다. 

또한, 평당 감자생산량이 미국은 16kg, 한국은 8kg, 북한은 4kg이라 한다. 이렇게 나라마다 생산량차이가 나는 것은 토질 기후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감자가 바이러스에 약해서 썩고 짓무르는 씨앗에 문제가 있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재훈 박사가 취득한 특허가 있는데 유전학적으로 조작하여 병해충에 내성을 가지게 하고 균질의 감자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구동 밖의 노지에 감자를 심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재배해온 2백평의 감자밭에서 씨감자 생산법을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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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산과정과 특허기술로 재배한 세계 초고의 씨감자 시설을 둘러보기 위하여 맥도날드 기술진이 방문, 기술이전이냐 로열티를 받느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한다. 정 전 의원은 “감자는 미국산이 크지만 그 씨감자생산 기술은 순창의 김재훈 박사 특허가 세계 제일이라는데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만하다”고 말했다.

콩알만한 씨감자를 배양하면 80~90%가 발아된다. 삽목하고 키워 감자밭에 포전하면 평당 20kg이 생산되니 이는 미국의 평당 16kg 생산량보다 4kg이 더 많다고 한다. 지난 5월, 맥도날드 기술관계자들이 순창 현지에 와서 시설과 생산과정들을 실사하고 돌아갔다. 내년 1월에 맥도날드 관계자들이 다시 방문한다는 전언이다. 이 기술은 미국에 로열티를 받고 파는 것도 좋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전 야당지도자라 등한시 하지 말고 적극 지원해서 남북한 식량난과 식량안보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동영 전 의원은 이제 개성공단을 넘어 씨감자로 7천만 겨레의 식량난을 해결하고, 대결이 아닌 화해와 교류의 새장을 열 것이라고 씨감자의 미래를 예견했다 

북한은 인민들의 먹거리를 위해 한해 500만 톤 이상의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 400만 톤이면 인민들이 굶주리고, 300만톤이면 수백만의 아사자가 생긴다. 여기에서 북한의 평당 생산량이 4kg인데 씨감자 기술로 식재하면 평당 거의 20kg이 생산되니 약 5배의 증산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만약에 북한이 연간 50만톤의 감자를 생산한다하면 씨감자 기술로 년간 250만톤이 생산되니 천지개벽할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겨레의 구성원으로서 정부당국은 전북 순창에 있는 “식생원” 씨감자 생산단지를 적극 지원하길 기대한다.

정치논리로 전 야당지도자가 하는 일이라 정치적 해석으로 지원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단위생산량이 민간시설 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대관령 씨감자생산 시설에 연 200억의 절반인 100억이라도 순창 복흥(福興) “식생원”에 전략적 식량안보 차원에서 도움은 손길이 있었으면 한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개성공단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즈런데 지금 민족의 굶주림 해결을 위해 김재훈 박사와 힘을 합하고 있다. 새까맣게 탄 얼굴로 우리 일행을 맞아 열심히 씨감자 관련 설명을 해준다.

 

떠나는 길에 내장사 대우 큰스님이 씨감자생산 시설을 견학하고 나서 시를 낭송해줬다.

 

“<시> 어느 가을날 
-대우 시인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물어와서 

버리고 갈 줄 아는  
낙엽을 붙들고 있다 하였더니 

 

낙엽의 그 무게가 
얼마냐 물어와서 

바람에게 물어보라고 
일러 주었네 

 

고요도 몸져누운 뜨락에 
낙엽이 지는 날에는 

바람따라 가고싶으나 
빈손이 부끄러워 

 

산새울어 금이가는  
먼 허공이나 훔쳐보고 있다네“ 

 

노승의 사부대중을 위한 고뇌가 켜켜이 뭉뚱그려진 법어이다. 이제 ‘자네들이 나를 위해 용맹정진하여 이웃과 국가를 위해 힘쓰시게. 자네들이 나를 부처로 만들고 또는 식충이로 살다간 똥집 막대기로도 만들 것이니…….모두 소중하게 맺어진 인연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의 곳간을 들여다 보시게!’ 라는 법어가 가슴을 후벼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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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09:55 2015/10/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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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 내몸의 상처

9월 15일 이후 큰 병이 났다. 몸에 칼 안대고, 병원에 입원 안했으니 무지한 탓에 큰 병이 아니라고 애써 혼자 위안하고 잇었다. 그러나 난 지금 큰 병이 나서 된통 고생하고 있다.

여름 내내 무리를 거듭했다. 글을 쓴답시고 하루에 10시간, 때로는12~14시간을 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냥 이일저일 하면서 서성거린 시간도 있었지만 영감을 벼리기 위해서 온갖 독서를 병행하면서 말이다.

열, 열 두시간 나아가서 열네시간 씩 온전히 빵빵하게 자판을 두드리지 않은 날이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컴을 켜놓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시동이 걸릴 때까지 혹은 예열을 하기위해서 보낸 시간까지 여름내내 복더위를 견디면서 무척이나 노심초사했다.

그랬다.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8월 말까지 일단 끝내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교정과 교열을 볼 수 있다는 목표를 두고서 퍽이나 열심히 임했으니까. 마치 기계처럼 일했다.

"난 나이를 먹었으니까 성실해야 돼."

"난 그동안 인생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고 볼 수 있어. 그동안 못했던 걸 보충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해!"

생각의 기저에는 이런 정신이 깔렸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같은 생각이 아니라도 선택의 여지 없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글을 사용해야 내년에 출마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시일이 촉박한, 그런 목적을 가진 글이었으니까.

내가 기일 안에 결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내년 선거에 차질이 오는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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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드디어 병이 났다. 키보드 두드리고 마우스 움직이는 일을 오른 손이 거의 한다. 거기다 일평생 오른 손 잡이로서 온갖 일을 오른 손으로 하였으니 오른 손은 더 이상은 못살겠다고 신호를 한 두 번 보낸 것이 아니었다.

사실 컴퓨터를 하는데 있어서 자판 두드리는 일은 그리 힘들지 않다. 마우스를 움직이는 일이 더 많은 노동을 요하고, 노동이 심했을 경우 어김없이 아픈 팔은 오른 팔이다. 이같이 오른 팔을 쓰기 위해 움직인 근육과 신경에 병이 났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 시간 작업하고 나면 어깨근육도 근육이지만 팔꿈치가 저리고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목도 오른 쪽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른 쪽 등줄기, 오른 쪽 팔꿈치에서 내리 손등으로까지 연결되어 온 근육과 온 힘줄이 금방이라도 화석처럼 굳어져서 다시는 원상복구 되지 않을 것처럼 아프고 딱딱한 것이어서 병원 가는 것을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의사가 근육주사를 팍팍 찔렀는데 그 순간 대상포진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른 손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동원되는 온 신경라인을 타고 준비 상태에 있던 바이러스 균이 급속도로 퍼졌던가 보았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근육을 풀려는 욕심에만 팔려서 근육주사에 더구나 상처부위에 찜질팩을 가했으니 잘 하는 짓이었다.

온몸에 열이 나고, 확산될 모든 준비를 갖추고서 대기하고 있던 바이러스균에 근육을 푼답시고 물리치료 용 찜질팩을 부착했으니, 기름에 불을 부은 격이 되어 상처는 성이 나서 순식간에 포도송이 같은 수포가 맺히기 시작했다. 등판에서 앞가슴까지 띠를 두른 것처럼...

피부과 병원 찾아가는 과정에서 고생과 시행착오도 많았다. 고생을 바가지로 했던 것이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9.18일엔 큰 행사 취재차 한강변에 가서 하는 수 없이 카메라를 들고 나섰고, 이어서 이사를 하느라 무리를 거듭했다.

베니는 내가 아프다고 한날 택시 잡아 타고 원자력병원 응급실로 입원하러 오라고 극 성화였지만 나에게는 일이 너무 겹쳤던 것이다. 이게 재수라면 재수 아닌가벼?

어쩐지 을지병원 의사는 날 볼 때마다 '입원하실래요?"를 거듭해서 묻는 것이었다. "왜 저러시나?"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남들은 이 정도면 다 입원을 했던가 보다. 하긴 1차 초이스 병원에서는 나의 경우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병실이 있는 병원으로 가야한다고 소견서 당장 써줄테니 어서 가라 말했다. 대상포진 이놈의 병은 발병 당시의 고통은 그야말로 세발의 피였던가 보다

 

그런데도 입원시기를 놓친거다. 행사와 이사 때문에, 글 다듬는 일 때문에

당하고나서 이제야 알았다. 겪으면서 이제야 실감했다.

올른쪽 젖꼭지에서부터 옷깃이 닿는 모든 곳이 인두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의사는 이게 감각이상증이라고 불렀다. 정말 그런가보다. 아무 것도 닿게 하지마! 가까이 오면 너 죽는다(?) 신경도 상처도 근육도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수십년 간 참았던 거 이제 쏟아놓는 거야. 특히나 십년 이쪽저쪽 혹사한 네 오른 팔, 지금 넌 큰 병났지!

맞어 맞어 앗 뜨거! 컴 앞에 앉으면 상처가 번진 환부와 신경조직이 생난리다. 인간은 고생덩어리. 못말리는 모순덩어리 으헤헤ㅅㅅ

"10동안 무리했던 근육이야! 잠시만 쉬게 해줘." 일제히 아우성을 치면서 아무 것도 상처에 닿게 하지 말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좋았던 벗님네들 모두 떠나가고

눈부심만이 내 방에 남아 나를 못살게 하네 못살게 하네!

이성부 시인의 시 한구절이다.

온 신경들이 일어나서 나를 못살게 하네 못살게 하네! 이 고통이 한달 째다

 

거울을 보면 진한 상처가 보인다. 이병은 다 나아도 검게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미 각오하고 있다. 이 진한 상처가 본래의 내 살색 피부를 온전하게 돌려줄 것 같진 않다. 이번 병은 흔적과 흉을 꽤나 깊게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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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0 10:50 2015/10/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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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생명사랑밤길걷기, 1만여 명 한강변 가득 채워

-자살예방 대단위 힐링퍼포먼스 1만명 모여, 밤길 걸으며 펼치다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선임기자] 2015 생명사랑밤길걷기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여의도 한강공원 계절광장에서 1만여 명의 참가자가 모인 가운데 오늘(9.18. 금) 밤 5:30분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이튿날 새벽 6시30분 남산 팔각정에서 마무리됐다.

아이돌그룹 B.I.G 등 네 팀의 식전 공연으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중고등학생들과 직장인 단체참가자들과 수많은 개인, 가족참가자들이며 대학생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띤 호응 속에서 개그맨 유상무 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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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50여명의 서포터즈들은 대학생 봉사자들만으로 이루어졌고, 이들은 접수봉사에서부터 50여 부스에 배치되어 각종 프로그램 진행을 비롯하여 5km, 10km, 36km로 이어지는 각 코스의 지킴이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냈다.

생명사랑밤길걷기는 ‘’한국생명의 전화‘에서 10년 째 진행하고 있는 자살예방캠페인을 위한 대단위 행사다. 여기서 밤길은 우리 인생에 닥친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련이 아무리 크고 힘들지라도 누군가 함께 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면, 밤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이 오듯이 그 어려움을 극복하여 기필코 새로운 시간을 맞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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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어떤 사람이 수렁에 빠져 있을 때 때마침 나타난 친절한 도움 덕분에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수렁 속을 손쉽게 탈출한 경우와 같이, ‘생명사랑밤길걷기’는 우리 사회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힐링메시지가 담겨 있는 행사다.

이 같은 정신으로 ‘한국생명의 전화’는 1976년도인 39년 전에 자살예방을 위한 목적으로 상담전화 업무를 시작하였고, 오늘 날 종로구 이화동에 본부를 두고 전국18개 도시 19개 센터에서, 잘 훈련받은 2천여 명의 봉사자들이 365일 봉사하며 270만 명의 고민 상담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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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의 전화’는 전화상담 외에도 ‘사이버 상담’과 ‘면접 상담’과 자살 다발 지역과 한남대교와 같은 한강 교량 등에 설치한 “SOS 생명의 전화‘를 가동시키고 있다. 이곳은 특히 자살시도가 목격되거나 전화 이용자 중에 자살 위험 인(人)으로 감지될 경우 119 신고를 통한 실시간 긴급출동체계가 구축되어 있다. 이 전화를 통한 상담현황은 2013년 통계기준으로 1,250여건에 구조현황은 170여 건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듯이 39년의 연륜을 가진 ‘한국생명의 전화’에서 ‘생명사랑밤길걷기’를 10년 째 진행하고 있는 목적은 우리사회에서 자살자 증가와 나날이 심각해지는 사회여건에 경각심을 주는, 대단위 치유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행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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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 현장에는 각종 상담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도록 50여개의 부스가 설치되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걷기 참가자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해줬다.

출발은 330여 명에 이르는 36km 걷기가 선두에 서고, 10km, 5km 순으로 이어졌다. 36km 참가자들은 특히 남산 팔각정에서 아침을 맞게 되는데 36km 걷기를 수행하기 위한 장시간의 레이스 일정상 선두에서 출발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10km 1700여명에 5km 8000여 명, 밤길 걷기에 나선 인원이 모두 합해 1만여 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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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10km 출발 시에는 구세군악대의 팡파르 울림 속에서 이 행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40여 명의 내빈들이 모두 함께 출발 선두에 선 가운데 김종훈(생명의 전화 이사장) 윤무섭(EBS부사장) 황용대(기독교협의회회장) 이동섭(국민생활체육 태권도연합회장) 이명호(서울시립상이군경복지관장) 노용성(대한법무사협회회장) 강지원 변호사 문일석(브레이크뉴스대표) 등이 출발 테이프를 끊었다.

바로 직전 생명사랑 실천기업인 국민은행과 현대건설 두 곳과 경복여고와 화곡고와 삼광고 등 고등학교 3곳과 동양중학교에 감사장 전달식과, 생명사랑 10대 선언과 대회선언에 이어 참가자 전원의 준비운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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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21:58 2015/09/1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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