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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8
    유시민, 중도, 대한민국 개조론(2)
    고양아

유시민, 중도, 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柳時敏, 경주 출생, 1959년 7월 28일(1959-07-28) (50)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사회 평론가 및 문화방송100분 토론》의 사회자로 활동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친(親) 노무현 진영의 핵심 인물로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2] 유시민은 박근혜와 더불어 지지자들의 충성도가 가장 높은 정치인으로 꼽힌다.[3] 특히 20~30대 젊은층에게 지지율이 높다.[4]

 

2010년 현재 국민참여당 당원으로 있으며, 2010년 6월 2일 제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야권 후보들과 단일화에 성공하여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게 되었으나, 김문수와 4%p정도의 득표율 차이로 낙선하였다.[5]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1.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범위는 아직 너무나 좁은지라 마찬가지로 유시민씨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할 수는 없고, 다만 책으로 읽은 바를 가벼웁게 생각할 뿐이다. (혹은 유시민을 지지하는 사람의 주장과 의견을 듣는다던지, 하지만 이것도 유시민씨의 생각임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어제 유시민씨가 2007년에 써서 내놓은 '대한민국 개조론'을 빌렸다. 나는 여러가지 책을 한 파트 씩 나눠서 읽기 때문에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글씨의 크기가 커서 보기에 좋고 빌려온 다른 책들에 비해서 무게감은 약간 덜 한 책이라서 부담도 적다는 첫 느낌을 먼저 적는다.

 

아, 그리고 유시민씨가 100분 토론의 사회자였던 건 몰랐다. 예전에는 TV를 보기가 힘들었고, 설령 볼 수 있다고 해도 잘 안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2. 

대여 가능 권수가 4권 밖에 안되는데도 굳이 '대한민국 개조론'을 빌린 이유는 유빠를 자처하는 친구와 네이트온에서 했던 대화가 떠올라서다. 나는 유시민씨의 지지자가 아니고,  진보신당의 지지자에 가깝다. 그 친구와 내가 했던 대화는 일단 중도와 극단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현실 정치'를 말하며 중도를 표방하는 유시민씨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였는데, 정치 구도가 양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진보와 보수 대화 단절의 문제를 가운데를 표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듯 했다. 

 

나는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나는 중도도 극단적인 진보와 보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중재의 역할을 하리라 믿지만, 중도도 극좌와 극우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의견으로 취급되어야 하며, 또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한정된 주장일 뿐 정치적 스펙트럼의 다원화나 다양성의 포용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도는 어디까지나 중도일 뿐이다. 좌와 우의 대안이 아니다.  

 

3.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유시민씨가 '왕'으로 섬기는 시민들에게 전언하고 있는 것, 대한민국의 '선진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로의 진화... 잘 아는 문제가 아니라서 제대로 논할 수는 없겠지만, 짧은 내 생각을 말해보자면 유시민씨가 이러한 대안을 내놓는 까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분명 민주주의의 가치를 탄압한 독재자였지만 한국의 기본 경제 토대와 모델(수출 주도형 경제 발전 모델)을 제대로 시행했고 따라서 한국은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그가 말하는 두 가지 대안들은 내가 보기에는 좀 못미더웠다. 뭐랄까... 내가 보기에 이것도 약간 시기상조이다. 전 지구적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고, 신자유주의의 파도가 범람하는데 이것도 시기상조라니! 마음 속으론 조금 씁쓸하지만 그래도 버스에 타야한다고 주장하는 유빠가 보기에는 답답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이 나라엔 좌파의 봄이 온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4.

내 생각일 뿐이지만, 이 말인 즉슨 내가 보기에 아직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좌파가 자리잡은 적이 없다는 말이다.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데, 이 나라의 스펙트럼은 그 범위가 너무나 좁아서 그 동안 기껏해야 수구와 중도의 사이에서만 아등바등거릴 뿐이었다. 반공이니, 뭐니 해서. 그래서 내놓을 수 있는 대안도 이토록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한정적일 뿐이고. 

 

이 스펙트럼을 넓히지 않는 한 더 나은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나오는 것들은 다만 '절충안'에 불과할 뿐이다.  유시민씨가 내놓은 것들은 한 마디로 절충안이다. 좌파와 우파의 대립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내놓고 싶은' 절충안이지,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유시민이라는, 중도적 정파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진보와 보수의 합의를 도출하라는 얘기다. 나는, 그것을 반대한다.

 

이에 관련해 이진경씨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에 쓰인 말을 많이많이 빌려오자면,(괄호 친 부분은 임의적으로 넣은 부분)  

 

(대화의 단절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견에 대한) 이러한 회의가 이제까지의 논쟁 및 그것의 의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논의의 지양이라는 변증법적 발전 대신에 다른 어떤 것으로의 '대체'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그 '어떤 것' 또한 한계가 드러나게 되면 또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된다고 하는 악무한적 진동 속에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늘 지적하는 것, '보수가 여당이 되면 정책이 보수적으로 바뀌고, 진보가 여당이 되면 정책이 진보적으로 바뀌어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괜히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대화의 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서로 공통적 목표와 방법론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건 서로 깊이 골이 파였기 때문일진대, 그렇다고 해서 유시민씨 스스로 다리가 되려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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