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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조용한 고궁박물관
 
‘아, 이런. 경복궁에 있는 고궁박물관이라니.’
나는 역사 관련 박물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옛 조상의 얼을 느끼라는 말도 부자연스럽고, 옛날 것이란 말부터 멀게 느껴져서이다. 그래도 소풍이라면 참을 만하다. 관람이 끝난 후엔 고대하던 점심시간, 즉 도시락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기회에 진지하게 역사박물관을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자신에게 범생이 같은 핑계를 대면서 박물관에 들어갔다.
공짜라서 다행이군.
 
박물관 안에 들어갔을 때 처음 한 생각은 ‘덥다!’였다. 아직 봄이라서 에어컨을 안 틀었나보다. 박물관은 ‘에어컨이 빵빵한 곳’이란 이미지도 있는데 뭔가 새로운 느낌이었다. 근데 덥긴 했다. 어쨌든, 전시실 안에는 생각했던 것 보다 사람이 많았다. 한국 역사박물관이어서인지 관람객들은 주로 외국인이었고, 관람하는 도중에 가끔씩 중국어와 불어, 일어, 영어 등을 들을 수 있어서 재밌었다.
 
2층부터 볼 수 있게 돼있는데 처음으로 제왕 기록실에 들어가니 조선시대 왕 연표가 쫙 붙어 있었다. 조선시대 유물들을 모아 놓았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왕이 앉던 의자 뒤에 거는 병풍 천을 봤는데 보존 상태를 봐서는 별로 오래 돼 보이지 않았다. 해와 달이 양쪽에 하나씩 그려져 있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그려 논 거 라고 했다. 왕의 의자도 높게 해놓고 병풍에도 왕의 위치와 권력을 부여한 걸 보면 왕이 세긴 셌나보다. 그리고 문서 앞 쪽에 멋들어지게 쓴 붓글씨들이나 왕이 쓴 자필들도 남아 있는 걸 봤을 때 기본 교육도 세게 받아야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든 국민의 우상과 통솔자역할을 하려면 그래야 했겠지? 우상과 통솔자라….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국가 의례실에는 언제 무슨 행사를 했는지 전시 돼 있었는데 썩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돈 많은 나라님들의 행사라는 데 나 같은 서민이 어찌 흥미를 느끼리오. 구지 뽑는다면 휴식시간을 가졌다는 거다. 같은 조인 의영이가 필기를 오랫동안 하는 바람에 전시관 한 구석에 조용히 있을 수 있었는데, 전시물은 그렇다 쳐도 박물관 한 구석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어쨌든, 그다음엔 궁궐 건축실에서 잠깐 시간을 보낸 다음 과학실로 넘어갔다. 나는 역사 교육을 철저히 안 받아왔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조선의 과학이 그렇게까지 발달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놀랐다. 자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자는 물론 의사도 있고 천문학자도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2층의 마지막 전시관인 왕실 생활실에는 왕실 사람들의 옷차림과 그릇들을 전시해 놨는데, 돈으로 도배를 해 논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경복‘궁’이니까 궁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전시해 놨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모든 게 번쩍 거리고 화려하니까 서민 된 심정으로서 기가 죽는달까…. 여하튼 돈 냄새가 너무 났다. 1층과 지하 1층도 보고 싶었지만(예의상)배도 좀 고프고 다른 관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2층 밖에 못 보고 나왔다. 바깥은 아직도 따뜻했다.
 
모든 전시물들이 궁궐 사람들 위주로 돼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박물관에서도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발견한 점에선 인상 깊은 관람이었다. 앞으로 학교 안 간다는 것을 이용해 가끔 시간을 내 공짜가 아니더라도 조용한 박물관을 많이 놀러 다녀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와 숙제의 힘인가. 근데 내기억이 맞다면 나는 사실 조용함에 의미를 많이 뒀었는데 이 부분이 왜 이렇게 없냐..
나는 그 박물관의 파란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친구가 길고 긴 필기를 마칠때 까지 박물관 냄새 맡고 클로디아의 비밀처럼 여기서 죽치고 있다가 화장실 가서 자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진짜 그 때 완전 조용했다. 하으 다시 가고싶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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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2 22:49 2010/01/22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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