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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8
    윤상, 일상, 상상 그리고 새벽
    不気味

윤상, 일상, 상상 그리고 새벽

하루 종일 발갛게 달아오르는 기운을 느끼며 어질어질 했다.

맥주 반 잔을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떴는데도 오는 내내 버스의 진동에 따라 오장육부가 넘실 거리는 그 느낌. 아마도 버스에 1분만 더 앉아 있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토하고 말았을 것이다.

 

몸 속의 찌든 때마저 개워내지는 못한 찝찝한 샤워를 끝내고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는데 불현듯 십수년 도 전의 기억이 머리를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간다. 가끔씩 이럴 때 있다. 켭켭히 내려앉은 먼지를 떨쳐내며 일어나는 기억들. 시간의 요철에 꼭 맞지 않아 그 틈을 기어코 벌리며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기억들이 꼭 있다.

 

철이 들고나서부터 처음으로 음악을 느끼게 되었던 계기는 윤상이었다.

우리 학교 다닐 적에 윤상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못 봤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새벽'이란 연주곡은 내게 있는 너댓개의 윤상의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다. 같은 앨범에 있는, 노영심과 함께 부른 '잃어버린 세상'이란 노래도 무척 좋아했다.

 

그 시절에는 노래만 듣고도 행복해하고, 우수에 젖기도 하고 그랬다. 사랑이나, 상실이나, 우정이나, 배신이나, 절망이나 하는 등등의 복잡다난한 감정들에 대한 경험도 기억도 전혀 없었음에도, 온 마음으로 노래를 느꼈던 것 같다.

 

경험과 기억의 빈 자리를 채워나갔던 것은 상상이었다.

 

그 때는 일상이 참 지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나의 일상은 모든 것들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던 시기였던 듯 하다. 그래서 별 것 아닌 노래나 소설, 만화 속의 이야기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던 듯 하다.

 

새벽에 조용히 내리는 눈을 보며 벅찬 마음에 몰래 집 밖으로 나가 눈위를 굴러다녔던 그 감수성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눈이 오면 추위만을 느끼고, 서울이 아닌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은 지금은 일상이 더 이상 나에게 자극이 되지 못하는 거다. 나이를 먹어가는 일상을 채우는 것은 상상이 아닌 물질.

노래말 그대로 "잃어버린 작은 세상".

 

잿빛거리 위엔 아직 남은 어둠이
아쉬운 한숨을 여기 남겨둔채
지루했던 침묵은 깨어지고
눈을 뜨는 하루

- 윤상,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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