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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7
    운명 中
    不気味
  2. 2008/03/17
    절망
    不気味
  3. 2008/02/28
    윤상, 일상, 상상 그리고 새벽
    不気味
  4. 2008/02/13
    슬픔이 기쁨에게
    不気味
  5. 2008/02/13
    그는
    不気味
  6. 2008/02/02
    잠 못 이루는 사람들
    不気味
  7. 2008/02/02
    10년을 참은 눈물
    不気味
  8. 2008/01/30
    서문을 대신해
    不気味

운명 中

대기 중으로 퍼지는 떫은 냄새 때문에 멀리서도 나는 이것이 '양배추 무 수프'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아쉬웠다. 이 광경, 이 냄새가 벌서 무딘 내 가슴에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메마른 눈에서조차 몇 방울 뜨거운 눈물을 차가운 얼굴 위로 쏟아내게 하는, 마치 몰아치는 파도처럼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무리 냉정하게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하나의 동경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점 더 집요하게 마음속을 울려대는 그 은밀한 동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동경이었다.

 

- 임레 케르테스, <운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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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이미 오래 전에 결정지어진

나의 이 아픔이라면

이 정도의 외로움쯤이야

하늘을 보면서도 지울 수 있다.

 

또 얼마나 지난 후에

이보다 더한 고통이 온대도

나에게 나의 황혼을 가질 고독이 있다면

투명한 겨울단풍으로 자신을

지워갈 수만 있다면

내, 알지 못할 변화의 순간들을

부러워 않을 수 있다.

 

밤하늘 윤동주의 별을 보며

그의 바람을 맞으며,

나는 오늘의 이 아픔을

그의 탓으로 돌려 버렸다.

헤어짐도 만남처럼 반가운 것이라면

한갓, 인간의 우울쯤이야

흔적없이 지워질 수 있으리라.


하루하루가 아픈 오늘의 하늘,

어쩌면

하염없이 울어 버릴 수도 있으련만

무엇에 걸고 살아야 할지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주질 않는다.

 

- 서정윤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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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 일상, 상상 그리고 새벽

하루 종일 발갛게 달아오르는 기운을 느끼며 어질어질 했다.

맥주 반 잔을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떴는데도 오는 내내 버스의 진동에 따라 오장육부가 넘실 거리는 그 느낌. 아마도 버스에 1분만 더 앉아 있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토하고 말았을 것이다.

 

몸 속의 찌든 때마저 개워내지는 못한 찝찝한 샤워를 끝내고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는데 불현듯 십수년 도 전의 기억이 머리를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간다. 가끔씩 이럴 때 있다. 켭켭히 내려앉은 먼지를 떨쳐내며 일어나는 기억들. 시간의 요철에 꼭 맞지 않아 그 틈을 기어코 벌리며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기억들이 꼭 있다.

 

철이 들고나서부터 처음으로 음악을 느끼게 되었던 계기는 윤상이었다.

우리 학교 다닐 적에 윤상 좋아하지 않은 사람은 못 봤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새벽'이란 연주곡은 내게 있는 너댓개의 윤상의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다. 같은 앨범에 있는, 노영심과 함께 부른 '잃어버린 세상'이란 노래도 무척 좋아했다.

 

그 시절에는 노래만 듣고도 행복해하고, 우수에 젖기도 하고 그랬다. 사랑이나, 상실이나, 우정이나, 배신이나, 절망이나 하는 등등의 복잡다난한 감정들에 대한 경험도 기억도 전혀 없었음에도, 온 마음으로 노래를 느꼈던 것 같다.

 

경험과 기억의 빈 자리를 채워나갔던 것은 상상이었다.

 

그 때는 일상이 참 지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나의 일상은 모든 것들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던 시기였던 듯 하다. 그래서 별 것 아닌 노래나 소설, 만화 속의 이야기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던 듯 하다.

 

새벽에 조용히 내리는 눈을 보며 벅찬 마음에 몰래 집 밖으로 나가 눈위를 굴러다녔던 그 감수성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눈이 오면 추위만을 느끼고, 서울이 아닌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은 지금은 일상이 더 이상 나에게 자극이 되지 못하는 거다. 나이를 먹어가는 일상을 채우는 것은 상상이 아닌 물질.

노래말 그대로 "잃어버린 작은 세상".

 

잿빛거리 위엔 아직 남은 어둠이
아쉬운 한숨을 여기 남겨둔채
지루했던 침묵은 깨어지고
눈을 뜨는 하루

- 윤상,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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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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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 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 정호승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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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사람들

새벽 두 시, 세 시, 또는 네 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간다면,

만일 백 명, 천 명, 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예를 들어 잠자다가 죽을까봐 잠들지 못하는 노인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따로 연애하는 남편

성적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식과

생활비가 걱정되는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운이 없는 여자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만일 그들 모두가 하나의 물결처럼

자신들의 집을 나온다면,

달빛이 그들의 발길을 비추고

그래서 그들이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살기 힘들어질까.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까.

사람들은 더 멋진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더 외로워질까.

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들 모두가 공원으로 와서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태양이 다른 날보다 더 찬란해 보일까.

또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그들이 서로를 껴안을까.

 

- 로렌스 티르노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잠 못 이루는 밤에 공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아마도 온 마음으로 서로를 포옹해줄 듯.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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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참은 눈물

我有數行淚  내게도 몇 줄기 눈물이 있지만

不落十餘年  10여 년 동안 흘린 적 없네

今日爲君盡  오늘 그대를 위해 모두 흘려

幷灑秋風前  함께 가을 바람에 날려보내리.

 

- 도홍경(陶弘景)

 

10년을 넘게 수련한 도가 사상가의 가슴에도 넘쳐 흐르는 감정이 있나보다.

결국 인간임을 잊고 살 수는 없는 거겠지.

단지 억누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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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을 대신해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 파블로 네루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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