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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새슬 2011.04.25 19:36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얼마 전 TV에서 록그룹 부활의 김태원 씨가 출연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TV에서 그를 자주 보아 왔던지라, 그가 털어놓을 인생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린 시절 학교에서 겪었던 경험담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선생님이 교실의 앞에서부터 뒤까지 “따귀를 수도 없이 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얘기를 이어갔습니다. “몸이 다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망가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향(냄새) 자체도 싫었다.”, “학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에는 학교를 간다고 하고 담벼락을 따라 학교를 돌았다. 영화로 치면 굉장히 안타까운 장면이다.”
재치 있는 입담과 상식을 깨는 자유로운 발상이 좋아 김태원 씨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아직도 응어리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학교가 가한 폭력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교실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뒷걸음질을 치면서 맞아야 했을까요?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연초록빛 ‘태원이’가 얼마나 맞을 짓을 했기에 그렇게 맞았어야 했을까요?
스페인의 자유교육 선구자였던 프란시스코 페레(Francisco Ferrer, 1859~1909)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검붉은 멍꽃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피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피어난 멍꽃은 쉽게 지지 않고 세월과 더불어 더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돌이켜보면 학교에서 길들여진 매타작의 그늘은 제게도 깊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며칠 안 맞았더니 몸이 근질근질하지?”라는 선생님의 겁박은 단지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제 몸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전달되는 신경계의 리얼리티였습니다. 며칠 안 맞으니 정말 근질근질하더군요. 매에 길들여진 신체. 하지만 더욱 몸서리쳐지는 것은 그런 폭력의 희생자가 지위와 위치가 바뀌었을 때 또 다른 가해자가 되거나 그런 폭력의 구조를 목도하고도 쉽게 동의하고 방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출처: 학생인권조례운동 서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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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아버지인 지인이 며칠 전 트위터에 이런 내용의 트윗을 남겼습니다.
“교사의 체벌에 학생이 대들다가, 출동한 학생부 교사들에게 심하게 맞았다. 우리 딸은 교사의 폭력과 이에 덤덤한 친구들의 모습에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다. … 교사폭력을 본 아이는 어젯밤 많이 울었다. 교사가 밉고, 무덤덤한 친구들에게 실망하고, 현실이 억울해서인가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운 진짜 이유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껴서였다. 나도 그냥 같이 울었다.”
김태원 씨의 기사에는 네티즌들이 몇 천 개의 댓글을 달아 각자의 체벌 경험담을 쏟아놓았습니다. 댓글을 읽다 보니 우리 기억 속 악몽 같던 학교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 안에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비겁하다고 느껴서 울었던 아이 대신 자책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서명과 8백 16만의 부끄러움
UN 은 1989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고 이 협약은 1990년 발효됐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동’은 18세미만의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협약에는 놀랍게도 신체적, 정신적 폭력과 학대로부터 아동이 보호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아동의 결사․집회․표현의 자유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이 이 협약을 1991년에 비준했다는 사실입니다. 20년 전에 말이죠. 하지만 각종 국제통상과 관련한 협약을 맺으면 그에 발맞춰 국내법을 서둘러 정비하는 이 나라에서 20년이 지나도 아동권리와 관련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발맞추겠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시민, 청소년, 교육, 종교, 인권 단체 등이 나서기로 했습니다. 작년 7월 7일,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을 조직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가 출범한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단순히 ‘체벌 금지’ 내용만이 아니라 결사․집회․표현의 자유와 같은 UN 아동인권협약 등이 담지하고 있는 철학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서는 8만 2천 명의 서명을 모아야 했습니다. 서울 시민 8백 2십만의 1%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합니다. 6개월 동안 이 서명을 받기 위해 청소년들은 그야말로 서울시내 여기저기서 ‘동분서주’했습니다. ‘동분서주’라는 단어가 너무 상투적인가요? 이 상투적인 말을 청소년 활동가가 직접 풀어 쓰면 더 생생하게 와 닿을 것 같습니다.
7시간 동안 서명을 받으며 13.5km를 꼬박 걷고 다음날에도 뻐근한 온몸을 억지로 스스로 두들겨 깨워 거리서명에 나서는 청소년 활동가들,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해온 서명 받는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는 청소년.
청소년 활동가들이 방사능 비가 내린다는 거리에서 흘린 땀이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서명지로 갈무리 됐습니다. 명품 서명지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는 4만 명을 갓 넘은 수준입니다. 며칠 남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출처: 학생인권조례운동 서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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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지금 상황이 부끄럽습니다. 서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같은 또래 시절 친구가 매타작을 맞는 걸 보면서도 손을 들어 “때리지 마세요”라고 말 한마디 못했던 사람으로서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끄러운 건 4만 명이라는 그 숫자는 아닙니다. 인터넷 서명도, 팩스도, 이메일도 아닌 자필로 서명해 우편으로 보내거나 혹은 직접 건네야만 유효한, 어렵사리 모아진 그 숫자 4만 명은 오히려 자랑스럽고 감사한 숫자입니다. 외려 제가 부끄러운 숫자는 8백 2십만 서울 시민 중 아직 서명을 하지 않은 8백 16만 명이라는 숫자입니다. 제가 보탠 힘이 작아서 부끄럽고, 제 주위에 아직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부끄럽습니다. 오늘이라도 서울에 사는 지인들에게 전화라도 열심히 돌려봐야겠습니다.
더 부끄러운 것은 지금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매를 맞고 있을 전국의 수많은 ‘태원이들’ 때문입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엽기 체벌’이라고 한번 검색해보면 수많은 엽기적 뉴스가 뜹니다. 심했으니 뉴스거리가 됐겠죠. 작곡상도 받고 좋은 노래도 만들 미래의 ‘태원이’가 지금도 학교에 대한 공포, 절망을 느끼면서 어디에선가 학교 담벼락 주위를 빙빙 돌고 있을 것입니다. 자학 속에 멍꽃이 피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태원이들 앞에 엉엉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서입니다.
내년 대통령선거와 총선 때문에 온통 세간의 관심은 진보대통합이니 야권연대니 보궐선거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1987년 6월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청소년들에게는 학교가 남영동 대공분실처럼 여겨집니다. 2011년의 ‘태원이’도 말할 겁니다.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말입니다. 멍꽃을 몸과 마음에 새겨 넣는 곳, 검붉은 멍꽃을 훈장처럼 달고 평생 지워지지 않는 울음을 소리 없이 울어야 하는 곳, 그곳을 학교로, 말 그대로 ‘배움터’로 만들어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멍꽃 대신 매값을 줬다는 어느 재벌과는 달리 우리는 멍꽃 대신 소중한 서명지에 이름자를 채워 8만 2천 명의 숫자를, 아니 10만, 20만, 100만 명의 숫자를 채워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의 6.29를 위해 지금도 거리에서 따가운 봄볕을 맞으며 목청을 높이고 있을 이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화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이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지금 어른들도 청소년 시기를 보내셨고 학교 다닐 때 부당한 일이나 서럽던 일 많이 당해보셨을 겁니다. 그때 하셨던 학교가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들, 그런 걸 떠올리며 서명을 위해 펜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청소년 활동가 둠코의 말)
※ 학생인권조례 참여 방법 : 학생인권조례제정 서울본부 www.sturightnow.net 에 접속해 서명지를 다운받아 작성한 뒤 우체통에 넣으면 수신인부담으로 보내집니다. (참고로 애초 4.26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주민발의 서명운동의 기한이 강남, 중구 재보궐 선거로 인해 5월 10일로 연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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