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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42797
가장 큰 편견은 ‘편견’이라 인식조차 되지 않는 것
_ 난다 ‘인권교육 온다’ 상임활동가
반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이 만나자마자 “어, 안녕? 만나서 반갑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어느 회의 자리에 참석한 당신에게 “넌 누구 따라 회의 왔니?”라고 물어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낯설기도 하고, ‘이 사람 왜 이래’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를 이런 경험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어려보이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쉽게 말을 놓고는 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친한 척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군가에겐 당혹스러운 일이 누군가에겐 그렇게 대접받아도 상관없는 일로 여겨져 왔다면, 그 ‘당연함’에 대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동안 처음 만난 사람을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으로, 나에게 반말을 쓰는지, 존대를 하는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하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쉽게 반말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야말로 청소년인권이 어느 정도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사람에 대한 ‘너무 익숙한’ 편견
나이가 적다는 것. 몇 년 늦게 태어났다는 것. 보통 그것만 가지고도 그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이유가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청소년들은 나이를 이유로 미성숙한 존재, 아직 덜 되고 부족한 존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규정당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참여를 경험하거나, 어떤 결정에 동참하는 것에서 쉽게 배제되도록 만듭니다. 어린이, 청소년의 주체성을 의심하는 것이죠.
오늘날 만약 “여성은 남성에 비해 판단력이 부족하므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라거나 “흑인은 백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열등하므로 시민의 자격을 갖출 때까지 일정한 교육과정을 받아야 한다”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몇 백 년 전에는 그 사회에서 당연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졌고, 소수자들의 권리를 억압하는 근거로 쓰였다고 합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기준이 될 때, 나이를 넘나드는 관계와 구조를 잘 상상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야”, “나이도 어린 것이...”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요구받는 순간, 그 누구도 특정한 사회적 기준과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나이’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말에는 그 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고들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은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 그리고 당신이 어린이,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관점과 태도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한’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함께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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