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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후기] 왕재산 사건 1심 최종공판 (1)

 1월 26일에 열린 소위 왕재산 사건 1심 최종공판에 다녀 왔다.

 작년 7월 4일 국정원의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그날부터 온갖 관심을 받아온
사건인 만큼, 법정에는 기자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결국 6시간 동안 서서 지켜봐야 했다.


최종 공판 순서는 검사 구형 - 변호인단의 최종변론 - 피고인의 최후진술


 검찰측의 공소장이 재판 전날(25일) 전면수정되어 변호인단도 최종변론을
수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부분은 뒤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다.


1. 검사 구형


 검사가 구형전에 1시간 30분 정도 ppt 브리핑을 했다. 친구의 말을 빌자면 '어릴
적 반공 글짓기 열심히 한'듯 했다. 그리고 무기징역 1명, 15년 2명, 12년 2명 이
렇게 구형을 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문제가 된 검사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을 용서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살
행위'
'잡초를 솎아내지 않으면 옥토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고, 암세포를 미리 도려내
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피고인을 잡초, 암세포와 비유한 검사의 어투는 당장이라도 사형시킬기세였다.
민청학련 사건이 생각나는 순간.
(민청학련-인혁당 판결은 세계 헌정사상 유래 없는 사법살인. 대법원에서 상소가
기각된 지 20시간도 채 되기 전에 전격적으로 사형 집행을 당했다. 스위스 제네바
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f Jurists)는 인혁당 판결(
대법원 전원재판부, 재판장 민복기)이 난 1974년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
》로 선포했고,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는 다음과 같은 강력한 항의성명을 발표
했다.

“사형수 8명에게 공공연히 씌운 증거가 의심스러운 것으로 판단한다. ”

1995년 MBC가 사법제도 1백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판사 315명
에게 실시한 〈근대 사법제도 100주년 기념 설문조사〉에 인혁당 사건 재판이 ‘우
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었다고 응답함으로 이 사건이 정상적이
지 못했음을 법조인들도 인정했다. <위키백과>)


 구형이 끝나자 마자 앞에 있었던 기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서 좀 더 앞쪽으로
갈 수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대부분의 기사는 '왕재산 무기징역 구형' 제목
에 검찰의 구형내용만 나와 있었다. 오늘 나온 기사들도 이미 선고를 내린 듯한 논
조와 더불어 최후변론과 최후진술 내용이 들어간 기사는 거의 찾아 볼수 없었다.
축구기사에 비유하자면 전반만 보고 쓴 것과 다를께 없다.

2. 변호인들의 최후변론 (1)


 앞서 말한대로 재판 전날 검찰의 공소장이 전면 수정되었다. 7개월 동안 언론에 사실인
것 마냥 보도 되었던 검찰측 주장이 증거와 맞지 않아서 였다.


1) 압수목록에 없는 하드, usb를 검찰이 증거로 낸 것이 밝혀짐.
2) 검찰이 증거로 낸 문서가 압수 이후에 등록정보의 날짜가 수정된 것 발견
3) 검찰과 국정원이 언론에 흘린 '김일성을 직접 만나 지령을 받았다'가 검찰 주장
   이었다는 것. 언론에는 사실로 보도된 이 주장을 검찰 스스로 번복. 비공개증인
   조모씨의 개인주장으로 바뀜
4) 공소장에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의 소위 지원사상을 따서 회사이름을 '지원넷'이라고
   지었다는 주장을 검찰 스스로 삭제
5) 2)번처럼 문서가 수정된 경우와 함께 검찰이 제출한 문서의 원본과 사본이 틀림
6) 언론에 크게 보도된 하드디스크에 북한노래가 나왔다는 부분 - 찾아보니 그 컴
   퓨터에 스피커가 없음(뭐 보관했을수도?) - 그런데 압수목록에 그 하드디스크가
   없는 것으로 밝혀짐.
7) 검찰 주장의 말을 그대로 따르자면, 중국, 일본 여행, 출장 등 갔다 온 사람 모두 국가
   보안법 대상이 됨. 그리고 중국에서 국정원요원이 찍은 도촬 사진이 증거로 제출됐는데,
   국정원이 해외여행객 사찰한것을 검찰이 발표해버린게 되버림
 

@riotg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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