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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년행진(slut walk) 웹자보를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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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판 작업

 

@riotg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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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자와 철거민

 

1.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 및 시행으로 인해
2011년 다시 성노동자 운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진보넷 블로그와 여러 커뮤니티의 포스팅을 읽어보면서 하나의 의문을
생겼다.

 

'왜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를 이야기 하지 않지?'

 

  2004년 성특법이 제정되자, 성노동자 투쟁은 각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났었다. 국회 앞 단식 및 농성을 비롯하여, 각종 집회와 현장투쟁이 있었다.
 2005년에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에서 탈퇴하고 성노동자 자치조직으로서의
 민성노련이 출범하기까지의 논쟁은 매우 치열했다. 민성노련은 성노동자 주체들의
자치조직을 준비하면서 학계,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계와 교류를 하였다.
 
 '민주성노동자연대 출범선언문'에도 나와 있듯이 성노동자들이 처한 상이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민성노련은 전성노련을 탈퇴하면서 노동단체
, 철거민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성노동자 투쟁의 강도를 높였다.

 

2.
 '참세상'에서 기사화된 민성노련철대위의 현장투쟁에서의 연대 발언(http://j.mp/inT126)은
민성노련에 대한 소개와 성노동자와 철거민의 연대에 대한 부분이 간략하게 나와 있다. 
  2011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의 시위에서도 볼수 있듯이, 재개발로 인해
내몰리는 성노동자의 현실은 여전하다. 도시개발로 인해 일하고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위협받고 있다. 각지역에서의 재개발과 철거로 인해 성특법보다 더 강력하게
불안과 긴장으로 성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길 하나를 두고 명품샾을 드나드는
이들의 편견과도 맞서야 한다.

 

3.
 여전히 死대강반대나 be정규직 문구를 트위터 프로필에 달고서, 성노동자 운동을 폄하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칭 좌파, 진보 운동진영에서 주류의 정치, 사회경제 용어를
사용하는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 또한 그러하다.
 성노동자 운동에 기존 운동이 적극적으로 연대함과 동시에 도시 개발로 인한 철거민투쟁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박 겉핣기식의 성노동 이해는
성노동자와 운동을 짖밟는 행태라는 것을 것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riotg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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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적기 제작기

 

 

  올해 메이데이를 맞아서 대나무 낚시대 + 흑기에서
바다낚시용 뜰채 + 흑적기로 업그레이드를 하였다.

 

  흑적기는 광장시장에서 검은 천과 붉은 천을 사서
수선집에서 바느질하고 오바로크를 하니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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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천 1 마 : 2000원
붉은 천 1 마 : 2000원
바느질, 오바로크 :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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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 인천공항 방사선 검출

인천공항 입국객 기준이상 방사선 검출  http://durl.me/6r48d

기사 내용은 대략 인천공항 입국한 일본인 한 분에게서 기준 (1μSv :마이크로시버트)를 넘어서
정밀검사를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기사 덕분에 언론, 포탈 사이트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구요.

마이크로시버트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잘 정리한 글이 있더군요.

http://blog.naver.com/mrban82?Redirect=Log&logNo=10105191978

1 Sv = 1000 mSv (millisieverts) = 1,000,000 μSv (microsieverts)
1 시버트 = 1000 밀리시버트 = 1,000,000 마이크로시버트

그러니까 기준에 따르면
담배 한개피를 핀 사람은 이미 방사선 오염이 된 사례에 속합니다.
X-레이나 CT촬영을 한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사회불안조성'이 언론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는지 이제야 알것 같습니다.
주위에 CT 촬영을 최근에 한 친구분이 있다면 조심하십시요. 언제라도 괴물로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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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이트에 쓴 글이라 존댓말을;;

 

@riotg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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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 공감

 

 

 두리반에 관한 논쟁에 참여할려고 글을 썼는데, 논쟁글이 닫혀져 버렸다.

이왕 쓴김에 두리반에 더해서 운동에 대한 생각을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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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리반과 관련한 트윗과 포스팅을 보다가 참담한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의 내용은 몇 년전에 본 기사에 나온 법학자의 관점과 흡사했다.

 

 '트랜스젠더가 성폭행을 당했더라도, 법규정이 없고, 성립이 되지 않기 때

문에  폭행죄만 적용될 수 있다'

 

 내가 참담함을 느낀 이유는 논란이 된 글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동정

과 시혜로 두리반을 바라보고 있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두리반

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권리금과 보상에 대한 포스팅을 읽고 나

니, 명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나보다. 보상과 이면합의의 시나리오 하나

가 死대강반대나 be정규직 문구를 프로필 사진에 달고 있는 이들로 하여

금 두리반을 비합리적 투쟁으로 단정짓게 만들었다.

 

1. '권리금'이라는 떡밥과 명분찾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이나 두리반에서 앰네스티에 보낸 호소문에 나

와 있는  '시설투자비'도 권리금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권리

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동북아시아, 한국에서만 있기 때문이다. 시설권리금,

바닥권리금, 영업권리금의 땅, 임대, 상가 뿐만 아니라 우유배달, 신문배달

등의 사회전반을 아우르는 권리금을 뭐라 말할 것인가.

 

 김대중 정부의 정비사업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 (재)개발은 수많은 문제

들을 야기 시켰다. 권리금에 대한 논의, 입법도 전무하다가 2001년에  만

들어진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다. 하지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도

계약해지, (재)개발 등으로 인해 권리금을 잃게 되어 자살한 임차인들의

죽음을 대변하지 못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에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지금까지도 '권리금'에 대해 국가, 자본 뿐만이니라, 기존 사회운동에서도

대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 뿐만 아니라 맑스정치경제학에

서도 '권리금'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운동조차 그들이 말하는 '중간계급'의 죽음을 모른채 하다가 용산

참사로 인해 무시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마련한 것이 '계급동맹'을 내세운

소극적 연대이다. 권리금과 (재)개발 대한 논의와 대안은 헨리조지를 따르

는 토지정의시민연대가 홀로 내놓고 있는 형편이다.

 

 두리반에 연대는 해야 겠으나 어디에 나와있지도 않은 새로운 투쟁에 갈

피를 못잡고 있다가, 권리금과 이면합의의 시나리오 하나에 명분찾기 마저

도 그만두는 것이다.

 

2.

 

 권리금 하나만의 이슈가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

나고 있는 두리반 현장에 왜 기존 운동이 소극적 연대에 그치고 있을까?

 

  합법투쟁, 의회투쟁을 하는 민노당이 법에 나와 있지 않는 '권리금'과 이

를 둘러싼 관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리 만무할 뿐 아니라, 민주노총

을 비롯한 운동들이 맑스정치, 경제, 담론에 갇혀 도심재개발에 맞선 투쟁

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용산에서도 그러했듯이 운동 안에서도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논쟁글에 써

있는 있는 것처럼, 그들이 원하는 명분을 찾지 못한 투쟁은 '아나키스트'의

투쟁이 되버리고 마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파시스트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 역시 그들과 다른 운

동을 하는이들을 아나키스트라고 칭했다. 파시스트와 사회주의자에 의해서

'아나키스트'들이 추방되고 숙청당한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 운동이 용산, 두리반 뿐만 아니라 촛불 '광장'의  '잡민

(multitude)의 투쟁'에 갈피를 못잡고 두리반을 '아나키스트'라고 칭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두리반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진행되고 있는 '직접행동'이 '

아나키'인가에 대해서는 평가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기존과 다른 운동'을

아나키로 폄하하는 용법은 다시 말하지만 늘 있어왔던 일이다.

 

3. 두리반의 '생동'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때 '아나키'로 폄하하

기는 너무나도 쉽다. 명분찾기를 그만두고 방관하면 되기 때문이다.

 2003~4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의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때도 운동 내부

의 반응도 이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노동운동에서의 비정규직노동자, 여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실업노동자운동 등에 대한 운동내부의 미온적 태도,

온건화된 민주노총의 문제만이 아니다.

 

  두리반을 철거민의 시선이 아닌, 국가,자본의 관점으로 보는 것에 자칭 '

진보'들이 동의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이는  홍대 총장, 직원, 학생들이 보

기에는 똥휴지 치우는 아줌마들이 어디에서 쉬고 얼마를 받는지 지 알바

가 아닌 것처럼 두리반을 대하는 것이다. 국가와 자본은 언제라도 법과 정

의에 따라 정당하게 처리할 수 있지 않은가?

 

 서울만해도 300개가 넘는 곳에서 (재)개발이 예정 중에 있거나 진행중에

있다. 그곳에서 두리반은 현실에 맞서고 있는 투쟁의 현장이다. 철거민, 기

륭 노동자, 홍대청소노동자의 시선이 아니라 일반적인 법적인 원칙에 따라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이면 합의금을 받고  끝내라는 것이 뼈아픈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혹자는 두리반을 뉴욕에서의 '도시투쟁'과 비교하기도 한다. 두리반의 '생

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비판적 성찰을 가지고 2011년에도 여전히 진

행중인 두리반을 운동에서조차 고립시키지 않고 같이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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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rchy action 2003~

 

 

 

 

외장하드를 사서, 전 컴퓨터, 전전 컴퓨터 자료를 옮기는 도중

발견한 것 중에 일부 사진입니다.

시간대는 2003년도 파병부터 2010년 g20 까지이고 순서는 뒤죽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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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민주노총 항의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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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wef 신라호텔 앞

수만명의 대오가 모였으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주최자들이
작성한 항의서한 전달식에 불과했던 허무한 집회.
온건파 이수호 체제의 민주노총을 비판한 피켓팅이었는데 욕을 좀 많이 먹었었다. 이수호 체제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의 온건화는 이제는 돌이킬수 없을 것 같다.

hahaha, i'm just playing. 민주노총, you know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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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부산 apec
준비물 : 전농 모자, 빨간 수건, 흰색 스프레이, 목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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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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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꾸메니 무깟떼 젠신시요 !!

 

페인트가 아직까지 안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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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사진을 찾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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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대포에 맞서는 사운드데모!! (1)

 

 단상, 중앙집중, 마이크, 사회자 중심의 집회는 쉽게 질린다.
피켓을 들고 두어시간 앉아 있자면 허리, 엉덩이만 아프지 않은가

 

 사운드 데모에서는 발언자 대신에 dj 부스와 앰프를 실은 사운드카가 거리로

나와 댄스, 일렉 음악이 사방에 흐른다.
 

 조직화된, 금욕적이고 통일적인 메세지를 호소하는 데모와는 달리
참가자 각각이 다양한 메세지를 춤추며 발산하는 것이다.

 

  조직위원회가 데모나 집회를 조직해 참가자가 그 이야기를 듣는 형식
이 주류의 방식이다. 사운드 데모는 비장함보다는 시위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축제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정당이나 조직이 참가자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를
표현하는 사운데 데모는 거리, 광장을 되찾는 것이다.

 

 

미야시타 공원 봉쇄 항의 행동

 

 

reclaim the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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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borders (1)

 

 no borders 소개글은 작년말 '뭐라도'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올리기로
되있었는데, 그동안 노트북에 꼬깃꼬깃 모아두었던 것을  G20과 추석(?)을 맞아

하나씩 올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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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9월 벨기에 브뤼셀의 EU 의회건물 앞에서, 50명이 넘는 noborders 활동가들이
피켓과 젬베등의 도구를 들고 항의시위를 하였다. 차후 유럽연합(EU)의 이주자들을 향한
죽임과 억류에 관한 5개년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스톡홀름 프로그램’이라 불리우는 이 계획은 EU 회원국들의 시민권과 사생활을 약화시키고
감시와 제어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 No border network(noborders) 소개
 

  no borders network는 유럽 전역에 걸쳐 있는 개인, 자율적 조직, 모임들의 연대체이다.
이들은  시위, 직접행동, 추방반대 캠페인, 회의(no border camp) 등을 통해서 이주의 자유를

지지하고, 통제하는 모든 것에 저항한다. noborders는 이주노동자와 난민(망명 신청자)과의

연대를 통해서 유럽의 망명, 이주 정책을 반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noborders가 내세우는 구호 중에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No Border, No Nation, Stop Deportations!
 Freedom of Movement, Freedom of Residence: Right to Come, Right to Go, Right to Stay!
 No one is illegal
 and Papers for All or No Papers at All

 

2. sans papiers
 

  sans papiers, 상 파피에는 서류(등록증)가 없는 사람들, 즉 미등록 인간을 뜻한다.
정부와 자본에 의해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자녀들은 강제수용, 강제추방을 당한다.  시장, 직장,

학교 안에서 등록증이 없는 노동자, 아이들은 마구잡이로 잡혀 수용소에 집어넣어진다.

 정부에 의해 인간사냥을 당하고, 폭력적인 강제추방을 당하는 것이다. 단속기간에 맞춰 정부

와 EU가 정한 숫자와 실적을 맞추기 위해 인간 사냥꾼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3. Frontex : the European border agency 유럽국경감시청
 

   프론텍스는 국경을 감시하는 migrant hunting agency, 즉 이주민을 잡아들이는 인간사냥을

하는 EU 산하의 기구이다. 프론텍스가 자행한 일들 중에 대표적 사례는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의 죽음을 방치한 것이다.
   이는 유럽자체를 요새화시키려는 EU의 정책에 의한 것인데 아프리카와 유럽사이, 지중해의 

Ceuta 와 Melilla에서는 매년 수많은 난민들이 바다를 건너다가 프론텍스의 방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는 유럽의 국경 체제의  잔혹성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이다.

  유럽과 아프리카 내외에서 자본의 착취와 인종격리의 폭력을 거부하고 더 낫고 안전한 삶을

위해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많은 이주자와 난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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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과 이주의 흐름은 부정의한 체제에 도전하고, 인종주의적 체제와 차별을 약화시킨다. 평등과

정의와 자유에 대한 요구는 이주를 통제하는 구조적 부정과 맞서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출신과 신

분에 상관없이 그들이 살기 원하는 장소와 방법들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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