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제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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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문 -이동현

 

우리 책모임의 성격을 명확히 하자!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며,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학회

 

우리가 모인 지 벌써 세번째다. 동기가 다짜고짜 책모임을 하자고 해서 일단 하긴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속마음은 좀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등등 수많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딱히 사회문제라던가 모순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작할 때 <전태일 평전>을 읽기로 했었는데,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지지부진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조금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방향의 일치도 없이 책모임을 진행하다 보면 우리의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를 위한 책읽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나에겐 있다.

 

그렇다면 모임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지금부터 제안한다. 어떻게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우리의 방향을 우리가 정해가자! 더 이상 부끄러워 할 이유도, 속내를 감출 이유도 없다. 자기가 고민하고 있었던 내용들을 가감없이 털어놓고 토론하자. 그리고 그 토론의 바탕 위에서 우리의 방향을 정해나가자. 나는 이 모임이 모두가 참여하며 각자의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모임이라 해도, 우리의 전체적인 방향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전제 하에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해나가고 비판과 지지의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우리는 더 발전할 수 있다.

 

■질문 두가지; 왜 책을 읽는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첫 번째, ‘왜 책을 읽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 내 교양을 쌓기 위해 읽는다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왜 읽어야 하는가’가 문제다.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을 갖지도 못한 채로 흥미만을 위해, 어떤 분야에 대한 소양인 지도 모르는 채로 소양을 쌓기 위해 책을 읽는 게 과연 우리에게 긍정적인 일일까? 무엇을 위해 읽는가에 대한 조금의 고민도 없다면 애초부터 모임을 꾸릴 필요가 없이 혼자서 책을 읽으면 되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모임이 ‘무엇을 위해 읽는가’라는 고민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일환이었으면 좋겠다. 왜 우리는 첫모임에 <전태일 평전>을 선택했는가? 단순히 모임을 제안한 12학번 동기가 추천한 책들 중에 조금 그나마 나아보여서? 나는 그런 이유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이 책을 선택한 동기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 책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좀 더 구체화 시켜야 한다. 책을 읽고 얻은 것들을 모임 참가자들과 함께 나누고 자기 속에 쌓아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책읽기를 하자는 것이 전혀 아니다. 시작할 때는 별다른 목표의식 없이 시작할 수도 있다. 그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책을 한 권 다 읽었다. 이제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추상적인 고민들을 언어로 풀어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 개인의 언어들을 한데 모아 우리의 집단적인 사고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단순한 다짐으로 될 것이 아니라 모임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틀 아래서 우리 모임이 좀 더 체계화되어야 한다.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자

우리의 첫 책은 <전태일 평전>이었다. 우리는 21세기에 왜 전태일을 읽는가? 단순히 60년대 말~70년대 초반의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조건을 동정하기 위해서 읽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불에 타들어가며 그가 외치는 절규의 소리, 그 소리를 파고들어 가야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그는 왜 그렇게 외치며 죽어가야 했던가. 그것은 이 사회의 모순 때문이다. 소수의 자본가들이 산업시설과 기계를 사적으로 소유하며 수많은 노동자들을 빈곤과 궁핍으로 내모는 사회. 노동자는 최소한의 생활보장도, 인간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성도 가지지 못한 채 생존경쟁의 쇠사슬에 묶여있다 생을 마감하게 만드는 사회. 이런 사회의 모순에 대해 전태일은 자기 몸에 불을 지름으로써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가 잘못됐다!“ 는 피비린내 나는 절규를 우리 뇌 속에 새겼다.

 

지금의 사회는 과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노동자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고 있다. 현장통제에 울분을 머금은 노동자는 목을 맨다. 불법파견에 항거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기 몸에 불을 지른다. 입시경쟁과 가정파탄에 메마른 청소년들은 창밖으로 몸을 던진다. 등록금은 우리가 숭앙하는 ‘선진국’ 미국 다음으로 높다. 그런데 등록금과 생활금을 알바로 충당할 수는 없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부터 빚방석에 앉게 된다.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자본주의는 “니가 실능력을 가져라, 너를 잘 가꿔라”고 얘기한다. 그 말은 결국 내가 이렇게 된건 능력이 없는 내 탓이라는 말이다. 그래 내탓이다, 모든게 내 탓이다. 남아있는 길은 없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더 이상 나아질 가능성도 없다. 그래서 몸을 던진다.

 

실질임금은 갈수록 하락한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물가가 높아진다는 것은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다는 얘기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갈수록 빈곤해진다. 이 말인 즉슨, 정부가 그렇게 많이 투여한 돈이 다 자본가들에게만 갔다는 얘기다. 위기를 생산한 주범들이 돈방석에 앉고, 열심히 일하기만 해온 노동자들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IMF 이후에 몇몇 재벌들은 몰락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구제금융과 기업 지원(수천명에 대한 해고를 동반하는)으로 삼성과 현대는 초국적 자본으로 성장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 위기를 누가 가져왔는가. 경기호황에 정신 못차리고 금융투기, 부동산투기, 즉 거품 가득한 돈놀이를 벌여온 자본의 탓 아닌가. 그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노동자들이 만든 생산물을 독점하며 자본의 이윤논리에 따라 생산을 해왔던 것 아닌가. 그런데 IMF당시 정부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금의 정부는 위기를 모든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와 민중에게 위기를 전가시켰고, 지금도 그리하고 있다.

 

생활만 팍팍할 뿐인가. 우리 정신도 팍팍해지고 있다. 가정, 공장, 사무실, 학교 어느 곳 어느 때에서나 여성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성소수자에 대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와 억압이 존재한다. 물론 우리 모두 그런 억압적 시선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렇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체 왜 우리가, 계속 빼앗기며 황폐화된 삶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가 우리 사이에 선을 긋고 보이지 않는 폭력을 일삼으며 스스로를 괴롭혀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이게 우리가 사는 사회다. 과연 전태일의 시대는 우리의 시대와 다른가? 아니다. 그 외양과 자본가들이 우리를 통치하는 기술만 바뀌었을 뿐이지, 체제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언제든지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등골을 빼먹으려 하는 그 본질적 성격은 털끝 하나 변하지 않고 똑같다. 불과 몇 달 전에 노동자가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노동탄압에 항거하여 크레인에 목을 매달고 죽는 노동자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선거에서 우리가 좋은 정치인을 찍으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약속을 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할 것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명박만 끌어내리면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우리가 교양을 쌓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행동할 용기가 없다는 핑계로 이런 참혹하고 엄혹한 현실을 스스로의 흥미를 만족시키는 데 이용하는 건 아닌가. 책을 읽는게 그런 이유여서는 안된다. 무엇을 위해 읽는가의 문제와, 어떻게 해야 할까의 문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엇을 위해 읽는지를 알았다면, 그 무엇을 실행으로 옮겨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우리 사회의 조그마한 문제고, 우리가 그것을 지금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조금조금씩 수정해 좋은 자본주의를 만들어나가면 되는건가? 아니면 우리가 기존의 갇힌 생각만 바꾸고,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평등하게 대한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런 모순을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사회의 구조를 보아야 한다.

 

■결론과 제안

‘구조를 보아야 한다’는 말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대체 구조가 뭔가? 구조가 어떻게 잘못되었길래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고, 삶은 팍팍한 걸까? 그것에 관해서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고, 위의 글에서도 조금은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생각들을 굳이 구체화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말그대로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구조적으로 해명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잘못되었다!” 라는 당위적이고 낭만적인 말로 호소하고 싶지는 않다.(물론 나는 이 자본주의 사회가 엄청나게, 굉장히,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제안은 이 사회가 모순덩어리라고, 갈아엎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기의 실천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그 불타는 몸과 불타는 절규를 한번 두 눈으로 똑똑히 보자는 것이다. 전태일의 절규를 당시의 노동자들과 80년대의 학생운동가들이 실천으로 옮겼듯이, 우리도 지금 이 시대의 노동자들과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절규를 듣고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어떠한 짐도 씌우고 싶지 않다. 다만 스스로가 짐을 짊어지는 건 어떤가? 사회를 보는 눈을 밝히는 길에, 아니 ‘전태일 사상‘이 그러하였듯이 어둠의 시대를 밝히는 길에 한번 나서보는 것은 어떤가?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우리 책모임을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며,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학회‘로 만들자! 물론 여기에 지도교수나 선배는 없다. 모임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자격을 가지고 서로를 비판하며 토론한다. 과의 내부 학회로 공식 승인을 지금 곧장 받을 생각은 없다. 그건 모임 구성원들의 다짐의 수준에 따라 나중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시적으로 비공식 학회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며,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학회‘라는 기치 하에 우리 모임의 방향을 우리가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정한 그 방향에 따라 올곧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지도해 주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맞다. 사람들이 늘상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를 자본주의에 맞게 잘 꾸며 나가며 기업이 날 잘 골라서 이용해 먹을 수 있도록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적으로’ 보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우리의 삶이 나락으로 몰려날 때, 우리는 우리 탓을 할 것인가, 아니면 억압을 정당화하는 사회구조의 위에 서 있는, 착취와 억압의 가해자인 지배계급의 추악한 몰골을 직시할 것인가. 아까 처음 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바로 사회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사회를 바꾸는 책읽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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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글을 봐주셔서 감사하고, 안건을 제출한다는 것에 대해 미리 말씀을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일단 우리 모임에 있어서 몇 가지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규칙도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사항을 공유하고 토론과 수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1주 1회 모여서 책읽고 토론

-1주당 책읽기 분량은 책의 난이도와 양을 보고 정함.

-읽은 부분에 대한 느낀점과 말하고 싶은점을 글로 써오기(양은 상관없음)- 최소 A4용지 반의 분량이면 허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됨.

-쓴 내용과,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

-모임이 끝날 때 모임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모두가 공유

●책 선정은 몇 개의 안이 제출되면 그 안들을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토론을 거쳐 단일한 안 을 채택

-채택된 안을 제출한 사람이 책 선정자가 되는 것으로 함.

-안건은 위의 장문의 글처럼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우리 모임의 성격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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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1 23:50 2012/04/0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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