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야권연대'의 잘못인가, 야권연대의 파국적 결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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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야권연대'의 잘못인가, 야권연대의 파국적 결말인가

-이번 총선에 대한 해석, 그 정치적 결론에 대하여-

 

(http://rushingbolshevik1057.tistory.com/m/post/view/id/41, "울산 북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분석한 통합진보당의 울산 총선 결과 분석-통합진보당은 울산에서 노동계급의 표를 잃었는가?" 에 대한 비판)

 

 

'묻지마 야권연대'가 아니라 '야권연대 자체'가 문제다

 사노위는  "노동자계급정치와 대중투쟁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 총선"(http://blog.jinbo.net/cswp/476)이라는 글에서 이번 총선에 대하여 "노동자계급정치와 대중투쟁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 총선"이라고 논평하며 야권연대의 근본적 성격을 다시 한번 폭로했다. 부르주아, 개혁주의 언론이나 HG Jeon님과 같은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묻지마' 야권연대에 비판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묻지마 야권연대'를 비판하지 않는다. 민주당과 연합하는 야권연대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계급의 문제를 실종시키고 정치를 의석 나눠먹기로 환원시키는 반MB심판론은 야권연대의 본질적 성격이 반영된 필연적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을 포함해 야권연대에 참가하는 모든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민주노총, 심지어 통합진보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하는 세력들까지도 노동자들에게 계급의 적, 혹은 적과 연합하는 세력을 찍으라고 강요&요구한다. 이러한 야권연대 바람 속에서 노동자정치는 실종되고, 전 정권의 반계급적 성격과 현 민주당 지방정부의 노동자탄압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장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무지하고 비정치적이며, 미래의 운동을 현재의 야합정치에 복속시키라고 말하는 기만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회주의적이다.

 

 "민주당과 연합하긴 하지만, 그래도 반MB만으로 뭉치는 묻지마 야권연대가 아니다"라는 주장만큼 어불성설인 것은 없다. 반MB심판론은 야권연대의 성격 상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 문제를 은폐하는 야권연대의 필연적인 결과다. '묻지마' 야권연대만이 문제이며 올바른 야권연대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마치 까마귀의 몸에다 하얀 물감을 몇방울 튀겨놓고 저것은 까마귀가 아니라 까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가치 지향의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야권연대라면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노동자의 적, 자본가계급의 정치분파에게 개혁에의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게 인민전선주의가 아니라 무엇인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성격에는 차이가 없음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과 연합하는 것은 바로 인민전선이라는 것에 대하여 '사회주의자'에게 재차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여나 그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의 개혁적 성격에 기대를 거는 '대중'의 심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부르주아 분파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 나눠져있는 이유다. 자본가계급은 바로 그 개혁에 대한 기대심리를 이용하여 자기의 지배를 영속화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선 HG Jeon님은  "‘노동자 선거구’인 울산에서는 1석도 얻지 못했다."는 결과가 '통진당이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정당임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 반박한다. 그리고 그 반박의 논거는 "통합보당이 여전히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는 노조 상층 관료들에 기반이 있는 우파 사회민주주의 노동자 정당"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선 이 두 문장 사이에 대체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지 이 글에서는 설명되어 있지 못하다.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의 반노동적 성격에 대해 지적하며 '통진당은 노동자정당이 아니다!'라고 비판할때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노동자를 설득시키려 들텐가? 우리가 할 것은 그런 훈계, 심지어 우파적인 훈계가 아니다. 우리는 민주당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반계급적 성격 뿐 아니라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통합진보당의 몰계급적-반계급적 성격 또한 폭로해야 한다.

 

 부르주아 언론, 또는 개혁주의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묻지마 야권연대'에 한정한 문제의식과 비판 속에서 야권연대의 본질적 성격은 은폐된다.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당의 후보가 민주당과 연합하는 것, 그 자체가 노동자계급투쟁에 대한 외면이다. 그리고 그 외면속에서 통진당의 정책에서 '비정규직 철폐'에서 '비정규직 문제해결'로의 후퇴, '파견법 철폐'가 아닌 '불법파견 금지'로의 후퇴가 이루어졌다. (물론 이 정책상 후퇴는 계급적 성격의 상실로 설명되어야 한다.) 상황이 이럴진대 야권연대 그 자체를 비판하지 않고 대체 통진당의 정치에 어떻게 실천적으로 개입한단 말인가? 우리는 야권연대, 그리고 반계급세력과의 연립정부 수립이 목적인 통진당류의 노동자당 참칭세력에 대한 폭로와 비판 속에서 지도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 목적 하에서 이번 총선의 결과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계급적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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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G Jeon님은 이번 총선 결과를 통한 통진당의 성격 분석의 대상을 '울산'으로 한정한다. 그런데도 그는 '울산'에서의 통진당의 계급적 성격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글의 정치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울산의 선진 노동계급이 여전히 통합진보당을 노동자 정당이라고 본다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따라서 좌파는 궁극적으로 연립정부 수립이 목적인 통합진보당의 우경화 및 묻지마 야권연대를 비판하는 한편진보의 단결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대안으로 제시하여 노동계급을 진보로 견인해야 할 것이다."

 

 

울산에서 통진당이 득세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노동자당이다?

 '울산에서 통합진보당의 득표율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어째서 '선진 노동자계급이 통합진보당을 노동자당이라고 본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지 눈을 씻고 봐도 합당한 논리적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가 없다. 우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선진 노동자계급'에 대한 규정이다. 그에 따르면 울산의 선진노동자계급은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 투표할 바에는 기권할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표로 정리한 내용과 이 말을 비교해 보았을때 대체 그의 결론이 무엇인지 독자는 알 수가 없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울산에서는 민주당과의 야권연대가 이루어졌다. 울산 뿐 아니라 전라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통진당이 후보를 낼 수 있는 역량이 되는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 각 지역구에서 통진당 후보를 찍는 것과 민주당 후보를 찍는 것 사이에 대체 어떤 정치적인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물론 지역구에서 개별 노동자후보가 노동자계급의 적과의 연합인 야권연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노동자계급 독자성을 내세울 때 사회주의자들은 그 후보를 한시적, 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것은 불필요한 사족일 뿐이다. 야권연대를 자신의 생존전략으로 삼고 노동자계급의 적과 연합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진보-자유주의연합당의 후보에 애초부터 그런 독자성은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보았을때 그가 만약 '선진 노동자계급'이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에 투표할 바에는 기권할 사람들"이라고 본다면, 그는 이번 총선의 결과(물론 내가 그 억측스러운 데이터적 결론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때에 한해서 말이다)에 대해서도 일관된 주장을 펼쳐야 한다. 즉 그는 민주당과 연합한 통합진보당의 후보에 대해 지지를 보낸 울산의 노동자는 선진노동자계급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이에 대한 내 의견을 조금 붙이겠다. 나는 노동자계급의 의식수준이 지역별로 그 정도의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진노동자들의 일부가 상주한다고 생각되는 지역의 정치적 행동(투표)을 바탕으로 선진노동자 전체의 정치의식을 단언하는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울산 노동자집단은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집단'이라거나 '울산의 노동자는 선진노동자계급이 아니다'라는 주장 모두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급의식 발전의 균등성이나 불균등성에 대하여 올바르게 서술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역 혹은 계층이라는 이름으로 쉽사리 획일화되기 때문이며, 또한 그 획일화는 투쟁의 주체적 조건에 관련된 의식발전을 은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울산의 전체 노동자집단에 대해 추상적으로 '선진적'이라고 서술하는 순간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통진당을 외면한 데에 대한 해석은 (마치 HG Jeon님이 그러하는 것처럼) 통진당의 '비판받아야 할 행동' 쯤으로 격하된다. 자본가계급과 부르주아, 개혁주의 언론이 좋아하는 정치공학의 논리와 큰 차이가 없는 논리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을 찍지 않은 것은,  이경훈과 함께 선거운동을 한 김창현을 후보로 내세우는 등의 반계급적 정치를 보인 통합진보당에 대한 계급적 정치의식의 표현이다. 이렇게 구분짓는 것조차 모호하지만, 울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말로 선진적인 노동자집단이 아닌가!

 

 통합진보당의 노동자계급성을 옹호하느라 바쁜 HG Jeon님은 이번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획득한 십수석의 의석 중 노동자지역구의 후보가 단 한자리도 없다는 것에 대해 해명하지 못한 채로 울산의 계급대중 일부가 통합진보당에게 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은 노동자당'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통합진보당 연합과 민주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 연합의 노동자 밀집지역구에서의 패배가 가지는 함의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노동자 밀집지역구'에서는 울산도 포함된다) 물론 그의 논의가 '울산의 노동자'들에만 한정되어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위에서 밝힌것처럼 야권연대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의 정치적 결론이 일반적 정치상황으로 도약하여 '묻지마 야권연대'를 비판하고 진보의 단결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강조한다는 것임은 분명히 어떤 종류의 믿음에 기인한다. 나는 그 믿음을 깨부수는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통진당이 노조 상층 관료들에 기반이 있는 우파 사민주의 노동자정당이라고 보는 것에 대해 간단히 오류를 지적하고 넘어가겠다.

 

 통합진보당의 기반은 노조 상층 관료들 뿐 아니라 구 국민참여당계의 자본가세력, 자유주의 정치세력에도 있다. 그런 성격에 대한 고찰이 없으며 그 기반이 '노조 상층 관료'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HG Jeon님이 지지하는 매체, 레프트21에서는 어째서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탈당파의 3자통합안을 왜 비판했던 것인가? 이번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은 민주당과의 기만적 정책합의문과 지역구 노동자기반의 상실을 통해 노동자당의 성격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몰계급적 국민정당으로 스스로의 탄생을 고했다. 그 강령의 성격에 있어서는 '중소기업의 육성', '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을 내세웠다. 뿐 아니라 이경훈, 채길용 등의 반노동 어용세력들에 대한 제명절차 또한 거치지 않았으며 이미 자본가정당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통합진보당은 민주당과 같이 모든 정치를 반MB로 환원하며 대중의 개혁적 심리에 기대어 재집권을 노리는 자본가정당과 일견 다른 면이 있다. HG Jeon님이 지적했던 대로 '노조 상층관료들'에도 그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점, 노동자세력 안에도 일부의 기반과 지도력을 가진다는 점이 자유주의-진보연합당인 통합진보당의 정치가 노동자계급투쟁에 매우 해악적이라고 보는 점이다. 노조 상층부를 회유하고 투쟁을 압박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에게 노동자의 적과 그들과 연합하는 세력을찍으라고 강요하여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자본가계급이 의도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통합진보당의 반동성과 기만성에 대한 폭로가 절실히 요청된다. HG Jeon님이 '통합진보당은 노동자당'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정세의 요청과 사회주의자의 임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계급기반의 성격에 대한 분석 또한 잘못됐다. 

 

 이번의 총선결과는 이렇듯 계급성을 상실해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환멸이 응집된 결과다. 이 환멸은 과거의 노동자당이 보여주는 우경화와 야합정치, 그리고 현장정치에서의 그들의 반동적 정치에 대한 환멸이다.  물론 이것이 정치적 기권표 조직이나 야권연대에 대한 반대주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그 표현이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주의(혹은 반자본주의) 후보를 내지 못한 혁명적 사회주의 진영의 역량 부족은 그 계급의식을, 혹은 그 소극적 계급의식 표현을 정치적이며 지향성 있는 계급의식 표현으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비판할만한 점이다. 

 

야권연대의 파국적 결말, 그리고 파국의 정치

 재차 지적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울산에서 뿐만아니라 노동자 밀집지역에 전부 낙선했다. 통합진보당 스스로도 "노동자-농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아파해야"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미 노동자계급성을 완전히 상실한 그들에게는 노동자-농민이 수백만의 표로 보일 따름이겠지만, 주지해야 할 것은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 지형에 대하여 HG Jeon님이 심지어 통합진보당 정도의 분석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HG Jeon님이 말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모호한 의미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노동자 후보 개인이 국회의원이 되는것인가? 이렇게 본다면 민주노동당 10년간의 경험은 그에게 노동자 정치세력화 자체의 실패가 아니게 된다. 이미 우리에게 스스로의 파산을 선고한 국회의원 의석수 확대를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그에게는 아직도 노동자계급의 올바른 대안으로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예전의 노동자 국회의원 확보로서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자본가정당에 대한 단절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의 한시적 대안으로서 사고되었으며, 그것 자체도 역시 합법-개량노선의 반영이지만 시대적 한계로 일면적으로 옹호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한다는 사람이 그것을 재차 내세우는 행동에서는 이미 매우 국한된 의미에서의 진전조차도 찾아낼 수 없다. 이러한 구시대적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복원은 마치 이미 진주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가짜 유리알을 헤집어내어 '이것이 진짜 진주요!'하고 소리치는 것과도 같다.

 

 반MB 심판론을 내세운 야권연대는 이번 총선에서 패배하며 이미 그 파산을 선고받았다.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후보를 단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했음에도 '진보의 세력화'에 성공했다며 일견 자축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야권연대의 정치적 귀결은 노동자투쟁의 자제를 강요하는 원내 '중재정치'로 이미 현실화된 노사 협조주의이며, 그 궁극적 결과는 결국은 노동자 탄압세력과의 연립정부 구성이다. '진보'가 단결하고 세력화되었다면 그 세력화는 대체 무엇과 어떤 계급을 위함인가? 여기에 대해 노동자에게 해명하지도 못하고, 해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가 노동자계급의 미래의 정치와 미래의 전선에 대해 대체 어떤 책임을 어떻게 지겠다는 것인가!

 

 야권연대로 상징되는 계급타협, 인민전선주의가 노동자계급투쟁에 비수를 꽂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묻지마 야권연대'가 아니라 야권연대 그 자체에 비수를 꽂아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노동자의 적과 연합하는 것이 노동자의 대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과 야권연대로의 실천은 '통합진보당은 노동자당인데 그 정치적 실수가 있었다'는 논리로 결코 해명될 수 없다. 우리는 야권연대에 대한 첨예한 비판과 통합진보당의 반계급적 성격에 대한 폭로를 발전시켜 노동자당을 참칭하는 정당에 대한 계급적 환멸을 정치화해야 한다. 그리고 원내진출을 의미하는 구시대적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노동해방, 사회주의에 대한 지향을 명확히 하는 노동자 계급정당, 사회주의당으로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사회주의자들은 단순히 개량주의 노동자당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에 대한 명확한 당파성을 가지는 노동자계급정당으로 스스로를 내세워야 한다. 그것이 야권연대의 파국이라는 정치적 시기를 맞은 우리가 해야 할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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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 Jeon님의 글은 야권연대의 일반론이나 통진당의 노동자계급적 성격을 옹호하는 데 주된 관심을 기울인 글은 아니지만, 그 데이터의 정치적 결론이 '묻지마' 야권연대에 대한 비판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점에서 비판을 일반론으로 서술한 부분이 상당부분 있음을 밝힙니다. 글 곳곳에서 발견되는 무심한 표현과 과도하다 생각되는 지적, 그리고 다소간 발견되는 비논리성에 대해서는 독자와 HG Jeon님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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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8 00:52 2012/04/18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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