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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김현경, 책읽는 오두막)

김수영의 연인(김현경, 책읽는 오두막)

 

일요일 오후, 출근에 앞서 들른 도서관 열람실은 이미 꽉 차있었다.

하는 수 없이 지하 서가의 한 자리를 맡아 앉았는데 이왕지사 서가로 온 거 가지고 간 책보다는 서가에 꽂힌 책을 읽고 싶어졌다. 문학 서고에 눈에 띈 것은 김수영이라는 세 글자. 난 그의 시집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지만 '풀'을 사랑하고, 그의 저항적 시선을 사랑하지 않던가.

김현경은 김수영 시인의 아내이다. 김현경이 고른 김수영의 시에서 그녀는 돈뿐 모르는 아내라고도 소개되기도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문학소녀를 꿈꾸었지만 그녀의 삶은 김수영과의 결혼으로, 아니 어쩌면 한국전쟁을 지나온 많은 이들의 삶처럼 호구를 먼저 생각해야만 하였다. 그녀는 양계장, 봉제일을 하다 양장점으로 꽤 돈을 모았고, 이후 미술디렉터를 하기도 하였다.

책은 김현경의 회고담과 김현경이 뽑은 시선과 아포리즘, 김현경의 글로 구성되었다. 회고담은 김수영을 만나는 과정에서 어쩌면 개인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런 굴레가 어쩌면 긴 시간을 저작권과 관련된 일들을 그리 내두었지도 모르겠다. 시선은 그녀가 좋아하는 김수영의 시들을, 아포리즘의 김수영의 시작노트의 구절들을 소개하고 있다.

위대한 시인의 곁에는 세속적인 배우자가 있어야 했다. 김수영도 그걸 알면서도 그 맛을 경계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시인의 아내에게 존경의 인사를 보낸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기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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