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10.09~10.11 이야기

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10.09~10.11 이야기

 

16. 새벽 방비엥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을 이제 막 분주해지는 아침이라 비유한다면 루앙프라방은 늦은 오후의 해가 걸쳐져 있는 오후와 저녁의 여유와 같았다. 이제 우리는 새벽과 같이 고요한 방비엥으로 떠난다.

아침부터 짐을 꾸리고 까오삐약(고기와 육수로 만든 쌀죽)을 먹으로 숙소 근처 거리식당으로 왔다. 아침에만 잠시 여는 이 가게는 어제 아침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쳐 인사를 했던 곳이다. 학교를 가는 학생들이나 직장으로 출근하는 이들이 잠시 들러 한 그릇을 뚝딱 비우거나 비닐봉지에 담아간다. 대접 한 그릇 분량에 5천킵이다. 라오스에서는 돼지갈비 부위를 삶아 죽에 담아주는데 뼈가 작은 것이 고깃살도 적당히 부드러워 아침에 먹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맛있는 까오삐약과 진심을 다하는 ‘사바이디’ 인사에 마음은 배부르지만 약간 모자란 식사량에 ‘루앙프랑방 No.1 Mama's sandwich'에 들러 바게트 샌드위치를 두 개 준비했다. 하나는 치즈 누텔라 잼을 발랐고, 하나는 라오스식 샌드위치로 갖은 소스와 재료를 듬뿍 넣어주셨다. 인자한 미소가 멋진 마마는 역시나 나에게 라오스 사람과 똑같다며 까맣게 탄 얼굴을 당신과 비교하시며 웃으신다.

배낭을 숙소 앞에 내려놓고 미니밴을 기다린다. 먼저 온 미니밴은 북부 농키아우로 올라간다. 벌써 자리가 꽉 찼다. 우리는 어제 폭포에 가면서 본 일제 도요타 미니밴같이 좋은 차가 오기를 바랐다. 또 시내를 빙빙 돌아도 되니 우리에게 먼저 오기를 바랐는데 빙고! 두 가지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 최신형 밴이 우리 앞에 빈 차 상태로 나타난 것이다. 좌석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었다. 숙소에서는 우리 외에 아르헨티나 남녀 친구들이 4명 더 탑승하였다. 우리는 뒤쪽의 두 명 좌석을 선택하였다.

방비엥으로 가는 길은 미시령 길을 4시간 타는 것과 같았다. 빙빙 도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흔들어주시는 미니밴은 시속 30㎞를 넘어서지 못했다. 미니밴이 최신형이라 아주 좁은 것은 아닌데도 키가 매우 큰 외국인은 다리를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졸다가도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펴든다. 3시간쯤 지났는데 발이 뜨끈해진다. 내 발 앞의 라디에이터가 작동되었다. 차 안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기사에게 라디에이터가 켜져서 덥다고 했다. 기사는 알았다고 하더니 뒤에 앉은 아르헨티나 남자보고 뭐라고 한다. 그런데 에어컨만 더 켰을 뿐이다. 이제 내 자리는 더운 정도가 아니라 발이 익어가고 있다.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혹시나 이동중 에어컨 추위를 대비해서 준비한 은박지 블랑켓을 펴서 라디에이터와 우리 자리 사이를 막았다. 이제 열기는 앞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이제 자기들이 더우니 기사를 부르고 난리가 났다. 이제야 기사는 차를 멈추고 아르헨티안이 건드린 난방 버튼을 직접 끈다.

곧은 도로가 나오고도 두 시간을 더 달려 방비엥에 도착하였다. 시골 어느 읍과 비슷한 방비엥은 비엔티엔과 가까워서 휴양 도시처럼 기능하고 있다. 우리는 루앙프랑방에서 하루 먼저 떠난 경○씨 일행이 묵고 있는 쑥솜분G/H로 향했다. 한국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께서 기분 좋은 환대를 해주셨다. 객실은 6만킵으로 저렴하였다. 그러나 루앙프라방의 방에 눈높이가 맞추어져 다소 불만족스러웠다.

짐을 부리고 마당으로 내려오니 경○씨가 지친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다. 동굴 튜빙과 카약을 하고 왔는데 혼자 1인용 카약을 몰다가 진이 빠졌다고 한다. 다른 남자 동행은 가이드와 둘이 타서 지치지 않고 재미있었다고 꼭 타보라고 권한다. 이들의 운명은 다음 날 정반대가 되었다. 지친 경○씨는 오토바이를 몰고 방비엥 외곽까지 멀리 구경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고, 오토바이를 못타는 일행은 시골길을 자전거로 다니느라 푹 절은 얼굴로 나타났다.

한국인 G/H이다보니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았다. 울산 중공업에서 일하다가 한 달 계획으로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동갑내기 여행객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볼 것을 권한다. 멀리 가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 떨어져 보아야 제 모습이 보이고, 마음을 놓아야 마음이 느껴질 수 있다.

 

어둑해지기 전에 방비엥을 돌아보고 싶어 걸음을 나섰다. 널빤지를 엮어 만든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다리를 오토바이는 속도도 줄이지 않고 잘도 건너간다. 우기에 물에 잠기어 쇠락한 섬을 지나 모래사장에는 라오스인들이 먹을 것인지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 모를 바비큐가 준비되고 있었고 불쑥 허니 튀어나온 바위산들은 겹겹이 병풍을 쳐주고 있다. 여행자 거리와 맞닿은 마을의 사원에는 라오스의 축제 기간에 열리는 보트 경주를 대비한 배를 만들고 있다. 보트 경주는 마을 대항으로 50명 또는 20명이 타는 배로 시합을 한다. 보통 매년 배를 새로 건조한다고 한다,

방비엥은 관광 도시이지만 작은 규모의 도시라 마을과 혼합되어 있었다. 덕분에 라오스 사람들의 삶을 잠깐이라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밤이 찾아오자 학교에는 축구와 세팍타크로를 하는 청년들이 모여들었고 일을 마친 이들은 집으로 분주히 돌아가고 지역 식당에는 저녁식사를 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행자에게도, 현지인에게도 하루는 그렇게 저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7. 남쏭강, 그리고 카약

 

10월 10일, 집 떠나온 지 2주가 되었다.

목청이 채 트이지 않은 방비엥의 닭들은 꼬끼옥 소리를 내며 또 잠을 깨운다. 라오스의 닭들은 풀어놓고 키워서인지 다리가 길고 굵은 싸움닭의 자태를 취하고 있다. 닭 울음소리가 ‘꼬끼오’하고나서 ‘끼욱’하며 후렴이 하나 더 들어가는 것이 우리 닭들과 달라서 신기하다 싶었다. 그러나 새벽부터 울어 되는 닭 울음소리에 짜증이 난 나는 닭 울음이 ‘꼬끼오 커억’하는 것 같다며 닭 목을 치는 모양을 취하곤 했다. 그런데 방비엥 우리 숙소 부근의 닭들은 목청이 아직 트이지 않은 것처럼 울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잠깬 마당에 숙소의 강가 테라스에 앉아 남쏭강의 고요한 아침을 촬영하였다. 삼각대가 없는 카메라를 난간에 기대어서라도 풍경을 담고 싶었지만 결국 카메라에 남은 풍경은 내 가슴에 남은 기억보다 못하다. 풍경은 경험과 결합되어야 의미가 된다. 나는 기록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기억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기억은 내 안의 것과 내 밖의 것의 만남이다.

오늘은 튜브를 타고 동굴을 보고 남쏭강을 카약으로 타고 내려오는 프로그램을 신청하였다. 라오스에서 처음 레포츠 활동을 한 것이다. 레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고민하다가 남편이 심심해할까 어렵게 동의하였다. 아마 그러지 않으면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고집피울까 걱정했는지 모르겠다.

참가자들을 픽업하러 돌아다니는 썽태우에는 열 명이 꽉 찼다. 까맣게 탔지만 레포츠 강사 분위기가 나는 리더는 카약 경험이 있는지를 묻고 팀을 나누었다. 우리는 처음이라고 물을 무서워한다고 빠득빠득 우겨서 리더와 같이 3인용 카약을 탔다. 간단한 방향 지시를 한국어로 말할 수 있는 가이드 리더는 이동할 적마다 우리와 같이 걸어가면서 나의 라오스어 발음을 교정해주었다.

오전에는 코끼리 동굴 사원을 보고난 후, 튜브를 타고 동굴을 밧줄을 당기며 들어갔다. 걱정과 달리 튜브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에 줄을 놓치어서 한참을 물장구를 쳐서 줄을 잡을 수 있었다. 300M 가량을 줄을 잡아당기며 이동하며 보는 동굴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튜브를 마치고 나면 점심식사 시간이다. 각 팀의 가이드들은 이미 닭고기와 야채를 사와서 꼬치구이를 하고 있었다. 볶음밥과 바게트, 꼬치 두 개의 점심은 양에 넘치지만 카약을 타기 위해서 조금 과하게 먹어두어야 한다.

오후에는 12㎞ 정도를 3시간 정도 카약을 탔다. 가이드가 동행한 카약이라 편하게 간 것이지만 다리를 펴지도 접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내뻗고 앉은 자세가 허리를 받쳐주지 못했다. 노를 저어서 팔이 아픈 것이 아니라 자세를 유지하느라 대퇴부 근육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햇빛에 피부가 익는다고 해서 입고 간 코끼리 문양 몸빼 바지가 튜브를 타고나서 물에 젖으니 몸에 붙어서 다리를 들어 올리다가 쭉 찢어졌었다. 수건으로 가렸지만 다른 카약이 옆으로 오면 혹시 보일세라 다리를 모아 앉느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에라! 모르겠다.’하며 아내의 무릎을 등받이 삼아 뒤로 벌러덩 누우면 가이드가 노를 저었고 쉬다가 내가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햇살은 뜨거워도 물은 맑은 소리를 내주고 산들은 나에게 다가온다. 좋다!

저녁식사는 블로그에서 본 식당으로 갔다. 적당한 맛과 가격이었지만 팝송과 프렌즈 류의 미국드라마로 시끄러운 식당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맥주가 고팠던 우리는 숙소 옆의 텅 빈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미 식사를 해서 배는 부르니 맥주만 먹어도 되겠냐고 묻자 착한 얼굴의 여주인은 괜찮다고 하였다. 바(BAR)를 제외한 라오스 식당의 맥주 값은 마트에서 파는 가격과 같거나 천킵 정도 차이나기 때문에 맥주만 파는 것은 그리 이문이 남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대화를 알 리 없는 듬직한 착한(?) 남편은 우리에게 메뉴판을 갖다 주었고 라오스의 마지막 술판이다 싶어 안주로 적당한 영국식 스테이크를 주문하였다. 이 집을 들어온 것은 라오비어 다크와 타이거비어를 동시에 팔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라오비어의 광팬이 된 우리들은 다른 맥주의 맛이 궁금하였다. 그러나 동남아의 강자 타이거비어는 라오비어에 비해 싱거웠고, 흑맥주는 너무 무거웠다.

술이 충분히 들어가니 몸이 무거워진다. 침대에 누워 아야야 소리 한번 하고 잠이 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 다시 돌아온 비엔티엔

 

비행기 시간은 밤늦게인데도 비엔티엔으로 아침 일찍 출발한 것은 미처 보지 못한 시사켓 사원과 호파깨우 사원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4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자기들의 미니밴은 좁은 중고차가 아니라는 말에 혹해서 5천킵을 더 주고 예매를 했다. 미니밴에 올라타니 어제 같이 카약을 한 여성이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인사를 건넨다. 조금 뒤에는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탔다. 무뚝뚝한 얼굴이었던 여성도 세 번째 마주치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숙박을 할 것이 아니니 비엔티엔에서는 가방을 맡길 곳을 찾아야 했다. 한국분이 운영하신다는 독참파 레스토랑에 들리니 라오스인 직원이 명함에 사인을 해서 가방을 맡아주었다. 달리 해드릴 것은 없으니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편하게 오후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거리에 차들이 엄청 많다고 아내는 놀란다. 우리가 지지난주 토요일에 왔을 적에는 이리 차가 많지 않았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자동차의 수가 차이가 난다. 그래도 어디서 자동차 경적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뒤엉키면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 나중에 이곳에 거주하고 계시는 한국 분에게 들으니 가끔 경적이 울리는데 한국인 아니면 중국인이라는 것이다. 자신도 몇 번 울리다가도 머쓱해져서 울리지 않게 되었다고 하였다.

메콩강변에는 야시장이 열리는데 다시 와보니 규모가 훨씬 커져 있었다. 축제 기간을 앞두고 강가에는 놀이공원도 만들어지고 무대도 곳곳에 설치되었다. 소비에트 깃발과 라오스 국기가 펄럭이는 중앙광장에는 신나는 댄스음악에 맞추어 저녁 에어로빅 교실이 열리고 나는 그 뒤에서 몇 동작을 따라했다. 어제 뭉친 근육이 풀리는 느낌이다.

조금 일찍 공항으로 이동한 것은 공항 뷔페식당을 이용하면서 발권 시간까지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였다. 라오비어 생맥주를 곁들인 식사는 적당했지만 벌레의 출몰과 조금 이른 마감시간이 불편하였다. 내일 아침 공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출근을 해야 되니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쉬고 싶었지만 시끌벅적한 공항 대합실에 앉아 쪽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남은 라오스 화폐를 달러로 바꾸면서 실수가 있었다. 환전하고 남은 작은 지폐 몇 장은 기념품으로 가져올 요량이었는데 은행원은 1달러가 안 되는 라오스 돈은 영수증에 표시만 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3천킵 정도였다. 잠시 셈을 잘못하기도 했고, 이미 지쳤던 나는 그냥 돌아섰다.

그 순간 야시장의 소녀 상인이 떠올랐고, 미안한 마음이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그동안 쇼핑을 즐기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합리적 가격이면 가능한 깎지 않으려고 했다. 루앙프라방에서 코끼리 몸빼 바지도 가격을 물어볼 때 간단한 영어가 안 되서 당황하는 아저씨가 부른 값이 터무니없지 않다싶어 그냥 샀었다. 물론 다음 날, 그는 내가 입고 입는 바지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였다.

그런데 좀 전에 들른 야시장에서 간단한 열쇠고리 몇 개 사면서 자존심 대결처럼 천킵을 깎았었다. 다른 가게에서 5개 들이 묶음을 2만킵이라 했으니 6개 들이는 2만 4천킵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2만 5천킵에서 버티던 소녀는 체념하듯 깎아주었고, 나는 무엇인가 승리한 듯한 느낌으로 잔돈을 거슬러 받았었다. 이렇게 은행에 바칠 바에 소녀의 아쉬움이나 달래주는 것인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 기억

 

토요일 아침 인천공항의 공기는 차가웠다. 그러나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분명 차가운 날씨라고 알려주지만 내 안의 피는 아직 라오스의 더운 날씨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여정을 기록하는 지금은 여행을 다녀온 지 딱 2주가 지난 날이다. 2주간의 여행기간만큼이나 길었던 그 시간이 흘렀지만 또렷이 기억되는 것은 라오스에서 보낸 2주의 시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다소 비일상적인 일상’으로 파악”하라고 했다. 여행에서 거창한 이유와 목적을 세우기보다는 일상과 다름없는 비일상을 즐기라는 뜻일 게다. 라오스에서 보낸 2주는 그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 물어도 딱히 뭐라고 집어서 말하기 어렵기만 하다. 아침시장에서 상인들이 파는 야채에서 나와 골목 전체를 풍겼던 팍취(고수)의 냄새와 같이 풍경과 함께 기억되는 그 무엇들이 일상같이 때로는 비일상 같이, 문득문득 떠오를 것이다. 라오스, 그리고 사람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팍쎄에서 루앙프라방까지 이용한 비행기이다. 이번 라오스 항공사고가 난 같은 기종이다. 저 비행기를 올라탈 적의 내 기분을 생각하면 생과 사의 갈림길이 순간이다 싶다. 삼가 항공기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