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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되돌아보고 나를 찾다)’(김용택 외 19인 지음)

‘반성(되돌아보고 나를 찾다)’(김용택 외 19인 지음)

201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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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되돌아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사소한 일조차 기억을 잘하는 편인데도 최근에는 어떤 일에 대해 봉인하듯 기억을 덮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다. 그 일을.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남에게 더 끼친 그 상처를.

올해 들어 바싹 삶의 글들을 읽어 가다보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지만 묵혀 놓은 감정들이 하나 둘씩 비집고 올라온다. ‘너는 어땠는데?’ 계속 물어본다.

그나마 페이스북에 여행 이야기도 올리면서 최근에 얽인 실타래는 하나씩 풀어가고 있었지만 좀 더 먼 일에 대해서는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무엇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인지? 나의 반성은 누구에 대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지? 아! 나는 반성할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을 반성해야할 성싶다.

그래서 글쟁이들은 어떤 반성을 하는지 엿보고 싶었다. ‘반성(되돌아보고 나를 찾다)’이다.

 

 

2. 남의 반성에 기댄 나의 반성

○ 어머니의 문안 전화(서석화)

“얼떨결에 사랑한다는 말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날, 작가가 갑자기 고쳐 쓴 대본을 받은 배우처럼 입에 붙지 않은 말을 어설프게 하면서도 가슴이 참 따뜻했다. 내 나이 쉰이 되도록 어머님에게 한 번도 못했던 말, 사랑해요!”

: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신 주검 앞에서 간신히 내뱉은 이 말, 왜 진즉 하지 못했을까. 침대에 누워 지긋이 바라보시던 그 미소가 그립다.

 

○ 예술가 아들의 삶(이순원)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털어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 돌아보면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내 살아온 길 고비고비마다 이슬털이를 해주셨다. 아마 그렇게 털어내 주신 이슬만 모아도 작은 강 하나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 사춘기 시절, 엄마는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다. 불만에 찬 얼굴로 학교를 가는 길에 당신은 목발을 짚고 나와 나의 등굣길을 바라보셨다. 금세라도 울음이 터질듯 한 당신의 얼굴.

 

○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박완서)

“지어먹은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오랫동안 지켜온 절약정신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음식물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중략) 남은 음식은 지딱지딱 버리고 새로 사먹은 게 젊은 사람 마음에 드는 일도 되고 농사짓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도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내 자본주의 공부는 끝도 없어라.”

: 대학 1학년의 농촌활동은 밥공기의 밥은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남겼다. 그러나 밥은 남겨야 한다. 아니 애초에 덜 담으면 될 일이었다.

 

○ 집착과 울컥으로부터의 도피(이재무)

“사랑이란 서로 간에 거리를 필요로 한다. 거리가 무화된 사랑은 억압을 낳는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지배욕이 거리의 결핍을 가져온다. 이렇게 해서 비극은 탄생되는 것이다.”

: 사람에 대한 사랑만이 아닐 터이다. 좋아하는 것, 일생을 걸만한 과업을 바라보는 태도도 이러 할지다. 선한 욕심과 지배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 태환이 형, 진짜 미안해!(김용택)

“매일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난 형은 찬란한 햇살 아래 드러난 자기 삶의 누추함과 초라함과 참담함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형은 아침부터 술을 마셨을 것이다. 아내와 아들들과 헤어져 견디는 외로움이 그를 술 마시게 했을 것이다.”

: 음주를 즐겨도 집에서 잘 마시지 않는 개인사가 있다. 몇 해 전, 집 앞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 사들고 퇴근하는 어느 아저씨, 그 남루한 점퍼 아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세상 아비들의 무게를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러하셨겠지.

 

○ 언제 한번 봐(이승우)

“사람이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기를 꺼려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신의 형상이 아니라 악마의 형상을 보는 일의 두려움. 그런 상황에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형벌이고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고, 그래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지옥같이 굳어서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때로 아귀같이 마지막 뼈다귀까지 핥아먹으려 덤비는 모습을 볼 적마다 나는 두렵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 아이(구효서)

“……음, 아무래도 이 아저씨가 잘못한 것 같구나. 아까 사과하고 싶었지만 솔직하지 못했어. 미안해. 그 아이한테도 이 아저씨가 정말 미안해하더라고 전해주련? 진심이야……”

: 때를 잃어 사과하지 못한 일이 많다. 미안한 마음을 몇 해 동안 담고 있지만 사과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리 큰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아닌가?

 

○ 반성은 자기 돌아봄이다(장석주)

“어느 날 나는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왔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검은 유령처럼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서른 몇 해 전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내가 쓴 환멸의 문장 / 빗속에 장화를 신고 서있는 문장 // 혀는 이미 굳고 퍼런 이끼가 돋아나기 시작한 문장 / 내가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 문장이 빗물 위에서 흩어져간다”

: 휴대폰이 없던 20여 년 전, 전화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 자식이 걱정되는 아버지는 어찌 알았을지 학생회실로 전화를 걸어 물어물어 아들의 안부를 확인하신다. 아들은 나도 성인이라고 되레 화를 내었다. 나는 참 어리석었구나.

 

○ 이까짓 풀 정도야(안도현)

“사람은 사람대로 사는 방식이 있고, 풀은 풀대로 사는 방식이 있다. (중략) 잎이 넓은 풀은 자기의 그늘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잎이 넓은 것이며, 그 끝이 날카로운 풀은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중략) 하찮은 풀잎 앞에서도 우리는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 노동운동을 한다고 술에 취해 밤늦게 돌아가는 길, 정류장과 편의점마다 대리운전 기사님들의 불빛이 너울거린다. 너는 그들만큼 치열하게 살았는가?

 

○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서하진)

“아이는 그러니까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제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차마 내게 그 말을 하지 못한 거였다. (중략)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가, 화내지 않는 엄마가, 울고 소리치고 소란을 피우지 않는 엄마가, 그 교양이 아이의 입을 막았다는 걸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 ‘자판기 노조 간부’ 이렇게는 하지 않을 거야 결심했었다. 해방의 꿈은 노동조합의 권력 문제로 선거 문제로 변질되고, 대중성 있는 활동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바보 같은 일이었다. 자판기는 자판기일 뿐.

 

○ 내 기억 속의 음화(은미희)

“그 고단한 삶에, 가족을 위해 당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 노고에 대해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말씀 한 번 드리지 못했고, 고마워해본 적이 없다. 뒤늦은 후회는 참으로 사람을 맥 풀리게 만드느니, 나는 내가 부끄럽다.”

: 엄마의 꿈은 뭐였지? 아버지의 희망은 무엇이었지? 알지 못한다. 당신들에게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당신들도 꿈꾸던 10대, 빛나던 20대, 열정의 30대가 있었을 것을. 부끄럽다.

 

○ 세상을 바로 살기 위한 여섯 가지 반성(고운기)

다산 정약용이 열다섯 살 난 어린 제자 황상에게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라 했더니 제자가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는 병이 세 가지가 있어서요. 첫째는 둔하고, 둘째는 꽉 막혔고, 셋째는 미욱합니다.”

나름 겸손한 척 한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공부하는 자들은 큰 병을 세 가지나 가지고 있는데 너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는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 짓는 재주가 좋은 것으로, 이는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것으로, 이는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단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자는 식견이 넓어질 것이고, 막혔지만 잘 뚫는 자는 흐름이 거세질 것이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자는 빛이 날 것이다. 파고드는 방법이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이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이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을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단다.”

: 나의 스승께서 상담자의 조건을 말씀하셨다. 가장 큰 것은 ‘절실함’이라 하셨다. 아픔을 절실하게 느끼고, 돕기를 원하는 마음이 절실할 때에 공부할 수 있다고 하셨다. 더욱 절실해야 한다.

 

○ 엄마의 나쁜 딸(차현숙)

“화장터에서 뼛가루와 함께 삼각으로 된 철과 나사못, 대못 따위가 나왔다. 잿더미에서 헤쳐져 골라지는 그것들을 보며 몹시 가슴이 아파왔다. 아, 저건 내가 박은 못이야. 아, 얼마나 아팠을까.”

: 엄마는 쉰 살이 되던 해에 일을 하시다 다리가 부러지셨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뼈가 왜 그리 하얀지를 물어보니 의사는 골이 다 비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형님과 누이들과 나는 울었다. 서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 사소한 계란말이의 기억(김이은)

“절제와 의무, 철저한 자기 억제만으로 평생의 삶을 꾸려온 엄마로서는 자신을 위해 그 어떤 것도 소비하지 않는 것이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더러 어찌 생각해보면 최고의 자기 존중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 금가락지에 양장 옷,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한 약속이었다. 정규직으로 부족함 없이 벌고 살면서도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었고, 오히려 당신의 하나 있던 가락지를 결혼반지 하라며 내주셨다. 엄마 가는 날, 핑크빛 수의 입혀드려 꽃마차에 실어 보내드렸지만 그 말 빚을 어찌 갚을꼬.

 

○ 너무나 안전했던 대구(우광훈)

“난 지금에야 비로소 이 안전한 도시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그 당시 그 공포에 휩싸였던 도시를 떠올려본다. (중략) 과연, 누가 내 마음의 광주를 불태워버릴 것인가?”

: 80년대 운동의 끝자락 세대이라 광주는 마음의 빚이고 빛이었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떠올린다. 쌍용차 진압과 24명의 사회적 타살을 기억한다. 군인의 총칼은 걷어졌지만 효율이라는 이름의 탐욕의 칼춤 앞에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

 

○ 일곱 가지 새똥 같은 이야기(김규나)

“네가 옳았다면 누가 알아주고 아니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니 넌 그 일을 빨리 잊어버려야 해. 넌 벌써 몇 분째 그 불쾌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는데 네 소중한 인생을 소모하고 있잖아.”

: 내가 나를 알아주면 괜찮다. 그만큼 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으면 됐다.

 

○ 오르한 파묵의 바늘(공애린)

“진정한 문학의 출발을 책들로 둘러싸인 방에 자신을 감금하는 일이라고 말한 오르한 파묵. 그는 바늘로 우물을 파는 일을 묵묵히 실천했고, 결과적으로 달콤한 물을 마셨다.”

: 소크라테스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그랬단다. 매일 한 번씩 팔을 쭉 내뻗는 동작을 하라고. 제자들은 그 쉬운 것을 왜 못하겠냐고 했다. 한 달이 지나고 제자들에게 물어보니 네댓 명의 제자만이 매일 그리 했다. 일 년이 지나고 물어보니 오로지 한 명의 제자만이 매일같이 동작을 행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다. ‘옳거니. 너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그 제자는 플라톤이었다.

 

○ 상수리나무[櫟]를 찾아서(고형렬)

“나에게 쓸모 있는 것이 없기를 오랫동안 갈구해왔다(여구무소가용구의予求無所可用久矣).”

“나는 중얼거린다. 인간은 반성하는 존재다. 그 반성 속에서 문장과 사람의 길이 열리고 그리고 조용히 사라질 것을 복습하고 반성한다.”

: 채워야 비울 수 있고, 존재해야 사라질 수 있다. 또한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사라지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만이 자연 이치이다. 이 변증법적 관계의 첨단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물의 흐름이지 않을까? 갖고 싶은 욕심이 언제나 버려질지…….

 

○ 욕먹고 나면 더 잘하게 돼(권태현)

“지금도 나는 욕을 먹고 싶지 않다. 글에서도 그렇고 사는 일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감추는 바람에 욕을 안 먹는 것하고, 더 노력해서 욕먹는 일을 안 만드는 것하고는 다르다.”

: 논쟁을 즐겨, 아니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에는 얼굴에 노기가 넘쳤다. 시간이 지나 다툴 일이 없으니 얼굴은 편해졌다는 소리를 들어도 마음은 불편했다. 이전의 일이던, 새로운 일이든 더 다툴 일은 만들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사에 다툴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세상과 거짓과 다투어도 편안한 얼굴로 다툴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다투지 않는 길이다.

 

 

3. 겨우 하는 다짐

남의 문장을 따라만 가도 반성할 일이 차고 넘친다. 걷는 걸음마다 업의 도장을 찍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어쩌면 겨우 고백하는 내 반성에 대해 네 업이 고작 그뿐인 줄 아냐고 지적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나의 스승은 ‘읽고, 묵상하고 실행하라’하셨다. 어찌 읽을 것이 책뿐이랴? 스스로 자기 흔적을 돌아보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면 어찌 행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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