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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마음과 몸의 치유력’(노만 커진스 지음)

‘신비로운 마음과 몸의 치유력’(노만 커진스 지음)

201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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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 몸과 마음은 따로 있지 않다.

원제가 ‘Anatomy of an illness(질병의 해부)’인 책은 의학적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UCLA의대 교수로 재직한 노만 커진스의 경험적 심리치료학 저서(1979년)이다.

커진스는 1964년, 교원질 파괴로 인한 강직성 척추염으로 온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질병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고, 고작 0.2%만이 완치되는 질병이었다. 커진스는 자신에 대해 치유 의지와 적절한 생리적 기능의 향상을 위한 실행에 착수하였고, 그로부터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을 통한 자연의 치유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명 현대의학 발전은 인류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200년 남짓한 현대의학의 역사는 그 공과(功過)를 판단하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더욱이 석기시대의 유전자를 지닌 인간의 신체에 비해 현대 사회의 물리화학적, 생물학적 질병요인은 얼마나 많아졌던가? 더욱이 의학과 결합된 자본의 탐욕과 미디어 광고는 강한 효과(!)의 약물로 우리를 유혹하지 않던가?

커진스의 결론은 모든 사람은 자기 질병과 장애의 회복에 책임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에 있어 핵심은 ‘좋은 의사-환자 관계’라고 말한다. 즉, 환자의 책임은 건강한 생활양식을 실천하는 것 이상, 가능하다면 치료의 선택과 적용에 관한 책임을 의사와 함께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의사는 이러한 환자의 선택에 적절한 정보와 생존의지에 대한 격려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에서 시작된 이 책은 수많은 문헌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단일사례 연구이다. 그러므로 읽는 이는 자칫 동굴로 빠지지 않도록 걸음을 조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상식의 동굴에서 나올 수 있는 징검다리일지 모를 일이다.

 

2. 신비로운 마음과 몸의 치유력

1) 환자가 본 질병의 해부

커진스는 1964년, 모스크바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온 몸이 굳어버리는 원인모를 질병에 걸린다. 입원한 그에게 병원은 적절한 치료와 휴식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신의 질병에 대해 주의 깊은 고민을 하던 그는 질병의 원인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아드레날린 고갈 상태에서 모스크바의 오염된 환경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제 그가 할 일은 긍정적인 정서 신호를 통해 신체에 긍정적 화학물질이 분비될 수 있도록 유머 책을 보고, 코미디를 보면서 배꼽 빠지게 웃는 것이다. 물론 화학적 치료 약물을 중단하고 아스코르빈산(비타민 C)의 복용으로 대체하였으며, 병원에서 빠져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의 결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살려는 의지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치료적 특성을 가진 생리적 실체라는 것이다. 둘째, 의사의 가장 큰 의무는 환자의 살려는 의지와 환자가 신체 및 마음의 모든 자연적인 자원들을 질병과 싸우는데 동원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주는 것이다. 나의 주치의가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2) 신비한 위약 효과

커진스의 경험에 대해 ‘웃음과 아스코스빈산의 효과가 아니라 위약(가짜 약) 효과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커진스는 이를 인정하며 덧붙인다. ‘치료의 역사는 오히려 위약 효과의 역사이다.’

커진스는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사용되던 가짜 약이 실제 약물치료와 같은 치료 효과와 환자의 생화학적 변화를 만들어 낸 연구 결과들을 제시한다. 그는 이것으로부터 ‘위약은 약물이라기보다 일정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의사에 대한 환자의 믿음으로 보터 시작되고, 자신의 면역체계와 치유체계가 충분히 기능을 함으로써 과정이 더욱 확장’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커진스는 위약은 이점 못지않게 진짜 약과 같이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위약의 사용이 ‘좋은 의사-환자 관계’와 모순된다는 점을 제기하고, 근본적으로 약물에 대한 신비화가 윤리적인지를 자문한다.

그는 ‘어떤 약물이든 환자의 살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면 효험은 의심스럽다’고 말하며 위약의 최고 가치는 위약 자체보다는 ‘우리의 마음이 어렵고도 신비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3) 창조성과 장수

인간의 영원한 관심인 장수에 대해 하버드 의대 리이프 박사는 ‘장수란 간소하지만 균형이 잘 잡힌 식사, 정력적이고 지속적인 신체 활동, 죽을 때까지 지역사회의 일들에 애정을 가지고 관영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커진스는 ‘긍정적인 정서와 창조성, 삶에의 의지’가 장수와 건강한 삶의 심리적 조건이 된다며 두 사람을 이야기한다.

돈 파블로는 90세를 앞두고 있는 노인으로 그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에는 스스로 옷을 입기조차 어려워보였다. 돈 파블로는 아침 식사 이전임에도 굳은 몸을 이끌고 피아노로 가서 브람스의 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그는 더 이상 구부정한 노인이 아니었다. 적절한 산책과 방문자들과의 유머 넘치는 대화를 나누는 파블로의 태도는 ‘낙천적이며 동정심이 많았고, 방문자들의 관심사에 빠르게 몰두하되 차분하며 진실하고 충실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늘 어떤 일에도 가장 좋은 약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여기에 더해 훌륭한 유머 감각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90세가 넘도록 아프리카 의료 활동을 했던 그의 일과는 회진과 목공, 편지와 음악 등 목적과 창조성을 지닌 활동이었다. 특히 유머는 그에게나 그의 병원에서 힘들게 일하는 젊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4) 통증은 궁극적인 적이 아니다.

커진스는 일반의 불안과 다르게 통증의 약 90%는 자기소멸적 성질이며, ‘많은 형태의 통증들이 아무런 신체적 원인이 없으며,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단지 긴장, 스트레스, 적개심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통증에 대한 그의 결론은 ‘자신의 신체의 통합성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경고체계이자 방어기제’이므로 개인이 스스로 통증에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통증에 대한 무지는 진통제의 남용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제약회사의 마케팅 활동의 결합과 교육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커진스는 아스피린의 사용은 혈액의 손실과 세포 결합조직의 손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예로 제시한다.

커진스는 1947년부터 인도 벨로레에서 나병 환자를 돌본 폴 브랜드의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나병 환자에 대한 일반의 상식은 피부병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브랜드의 연구는 나병이 신경 말단부를 괴사하고 이로 인해 나병환자가 통증한계를 느끼지 못하여서 신체의 손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일하던 작업장은 중량의 부품과 장비를 손으로 다루어야 하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10년이 지나면서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동안 허리보호대가 지급되어 허리 통증이 있는 동료들은 이를 차고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허리의 통증한계를 늘려 장기적으로 허리를 손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계를 인지한다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5) 전인적 건강과 치유

커진스는 전인적 건강 운동 중 일부가 의학의 과학적 발전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환자와 의사 사이의 장막을 거두고 질병의 치료만이 아닌 예방을 위한 협력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의하면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자연치유력을 이해하고, 치료에 있어 전인적 접근을 시도한 최고의 의사였다.

약물의 놀라운 효력만큼이나 그 부작용은 사람들을 전인적 의학으로 이끌었고, 의료 행위 외에 영양과 좋은 의사-환자 관계, 정신(마음)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 왔다.

그러나 전형적인 현대 의학과 전인적 의학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커진스의 주장이다. 환자의 전인적 요구가 의사의 과학적 접근을 불신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의사의 전문적 지식이 환자 자신의 자기 질환에 대한 관심을 제한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이다.

 

6) 삼천 명의 의사에게 얻은 교훈

커진스는 자신의 경험에서 많은 의사들이 ‘의사와 환자의 동반자 관계’를 지지해주는 것에 대해 고무되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의사들이 ‘의사의 주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질병의 치료에서 환자의 마음과 몸을 움직여 환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작동시키는데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커진스는 건강한 치료를 위한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그것은 약물이 아닌 영양적 균형, 환자와 의사의 따뜻한 관계, 긍정적인 정서이다. 그는 중환자실의 첨단 장비가 의료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환자 손에 얹는 의사의 확신에 찬 위로만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3. 맺는 말 : 건강한 관계가 내 몸과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

이 책을 다분히 건강심리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몸과 마음의 상관성이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연구와 성과의 축적도 의학적 범위에서 다루어져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커진스의 결론 세 가지, 영양과 좋은 의사-환자 관계 그리고 긍정적인 정서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좋은 의사-환자 관계가 많이 와 닿는다. 질병의 치료에 있어 환자 자신의 의지를 북돋아줄 수 있는 것은 의사의기 때문이다.

한양대학병원에 가면 류마티스 병원이 따로 있다. 그만큼 한양대병원에는 류마티스 환자들도 많고, 잘 고치는 명의라고 소문이 나있다. 이 병원에 진료를 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꽤 오래 전에 나는 류마티스과에 근무하는 아는 간호사에게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 선배의 대답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질환 특성상 노인들이 많이 오는데 담당 의사가 환자마다 그 신세 한탄이며, 아픈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 병원의 특별한 비법은 이것에 있었던 것이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고, 그들을 나을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지지를 해주는 것이 그 비법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위독하실 때의 일이다.

1년에 예닐곱 번을 응급실로 달려갔었다. 거의 같은 병원 응급실이라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갈 적마다 느끼는 것은 차갑고 낯선 공기였다. 위중한 상태의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중환자실의 첨단 장비들로 둘러 싸여도 단 한번 30분의 면회만 허락되는 환경이 당신들에게는 편안함을 제공해주었을까?

“죽음은 삶의 궁극적인 비극이 아니다. 궁극적인 비극은 비인간화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정신적 위안으로부터 분리되고, 남은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희망도 없이 소외된 불모의 땅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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