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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10.1~10.3 이야기

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10.1~10.3 이야기

 

7. 남쪽으로 튀어라!

2013101, 여행 5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볼라벤 고원의 밤은 가을 날씨처럼 서늘하다. 이불을 끌어안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아침 7, 버스가 다니는 도로까지 Tim의 차를 타고 나왔다. 버스 시간까지 30분이 남았으니 시장을 둘러보며 아침 요기를 할 참이다. 어제 타고 온 시골버스에서 아주머니들이 고기 BBQ와 찰밥을 싸서 먹는 것을 본 아내는 우리도 버스에서 그렇게 먹자고 한다. 우리는 닭 BBQ와 찰밥, 닭똥집 꼬치구이를 몇 개 샀다. 시골버스가 오기 전에 미니밴 한 대가 팍세로 나간다며 인당 5만 킵을 달라하기에 4만 킵으로 흥정하고 올라탔다. 시골버스가 3만 킵이니 조금 빨리 갈 요량으로 탔지만 미니밴 기사는 자기 볼 일 다보면서 달려서 걸린 시간은 똑같았다.

팍세 남부터미널에서 돈뎃과 돈콘 섬을 갈 수 있는 반나까상으로 가는 차편은 썽태우(트럭 개조 버스)뿐이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으니 행선지가 유일하게 영어가 병기되어 있는 차이다. 서로 더듬거리며 라오스어와 영어를 섞어 물어보니 4만 킵에 열시에 출발하고,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썽태우에는 우리 외에 라오스인 열 명과 아기들 셋이 타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주 앉아 가는 좌석이다 보니 얼굴을 자세히 볼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눈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운동복을 잘 빼입은 저 친구는 내 친구 화이를 닮았고, 눈매 진한 저 친구는 내 사촌 진이를 닮았다. 낡은 농구화와 잠바를 걸쳤지만 얼굴 잘 생긴 어느 아저씨는 탄광촌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의 박중훈과 같이 멋있다. 피부색 진한 거야 우리 시골에 가면 내 할매, 삼촌들의 그것과 다를 것이 무엇 있을까?

시골길 가다 잠시 서는 정류장마다 닭 BBQ, 과일이며 파는 이들은 썽태우를 에워싸고, 혹시 오래된 것은 아닐까 사길 망설이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작은 거라도 팔아준다. 판매로 생계를 잇는 이들과 함께하는 경제의 선순환구조이다. 수수하게 입었지만 선한 눈매를 지닌 아기 엄마는 가난한 부부와 두 아이를 위해 닭 BBQ를 반 마리 건네준다. 큰 아이는 망설이며 안 받지만, 뭔가 고픈 눈총을 지닌 작은 아이는 재빨리 받는다. 불편한 자리와 먼지와 매연을 마시며 달리는 트럭 버스였지만 이를 안탔으면 어찌 이 선한 이들과 눈 마주치며 긴 시간을 갈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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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멈춘 성태우 안에 먹을 것을 팔고 있다.>

 

8. 돈뎃, 벼 익는 섬마을

라오스어로 (Don)’은 섬이라는 뜻이다. 내륙 국가인 라오스에 웬 섬인가 하면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서 중국 윈난성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 호치민의 메콩 델타(삼각주)로 흐르는 메콩강이 너무나 커서 형성된 섬들이다. 4,000개의 섬들이라는 의미의 시판돈지역에서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섬들은 돈뎃과 돈콘, 돈콩이다.

우리는 돈콩은 너무 넓고 다른 섬과 거리가 있어 포기하고, 다리로 연결된 돈뎃과 돈콘 중에 그나마 여행자가 적다고 하는 돈콘으로 가려 했었다. 그러나 선착장에서 돈콘으로 가는 배삵을 돈뎃보다 3배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돈콘은 걸어서 가겠다는 심정으로 돈뎃으로 향했다.

돈뎃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술집들과 서양 아이들은 땃로의 고요함과 달라 당황스러웠다. 보이는 주민들 역시 여행 관련 종사자들이다보니 눈빛부터 다르다. 6시간의 이동으로 지쳐서 빨리 방을 구하고 싶었다. 위치가 나쁘지 않은 곳의 방갈로는 4만 킵(5,700)부터였지만 우리는 좀 깨끗한 건물인 DALMON G/H6만 킵에 머물기로 하였다. 주인집 딸은 에어컨을 사용하려면 4만 킵을 더 내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볼라벤의 밤처럼 시원할 줄 알고, 선풍기만 사용하겠다고 하였다. 그건 착각이었다.

샤워를 하고, 정보를 찾기 위해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에 나갔다 돌아왔다. 방 안이 찜통이다. 창문을 열려고 하니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 침대 위의 모기장을 펴보니 구멍이 송송 뜷려 있다. 겉보기와 달리 내부는 엉망이었다. 에어컨 비용을 더 낼까 하다가 하룻밤만 버티고 숙소를 옮기기로 하였다.

돈뎃은 일출을 볼 수 있는 선라이즈 지역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선셋 지역으로 구분된다. 선라이즈 지역은 과거 선착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저렴한 방갈로만 남아있다. 늦잠을 자는 우리는 선셋 지역을 둘러보았다. 마음에 드는 방갈로는 이미 꽉 차 있었다. 돈뎃에서 제일 좋은 숙소라고 하는 리틀 에덴을 들렀다. 식당에서 보는 메콩강의 풍경은 거칠 것이 없이 뚫려 있었다. 깨끗하고 널찍한 방과 화장실이 있는 객실은 25만 킵이었다. 미리 산정한 예산의 4배였지만 돈뎃의 더위에 지친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체크인해도 되겠냐고 말해버렸다.

해가 지는 돈뎃을 여행자 거리를 벗어나서 걸었다. 뜨거운 햇살과 풍부한 물은 이 섬들에 벼농사 다모작을 선물해주었다. 들녘에는 이제 심겨진 벼와 껑충하게 자란 벼가 한편에 있고 반대편에는 또 추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나무로 엮은 동남아식 모자를 쓴 아낙들은 여행객들이 지겨운지 눈길도 주지 않고 벼를 낫으로 한 뭉큼 베어내어 논바닥 물에 젖지 않도록 벼 밑둥이 위에 받쳐둔다. 하릴없는 물소들은 베어진 벼 밭에 들어가 마음껏 만찬을 즐기고 있다. 해는 논들 가운데 신령한 나무 위에 걸려있다.

누렁이, 깜둥이, 휜둥이. 물소의 색은 제각각이고, 커다란 덩치는 위협적이지만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길 가운데 있다가도 풀밭으로 숨어들어간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짐승인가보다.

잠시 찾아본 정보에서 괜찮다는 식당 정보가 있었다. Oi’s Sunset이란다. 식당을 찾아 선셋 거리를 끝까지 가보않지만 보이지 않았다. 되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까 지나가는 우리에게 큰 소리로 사바이디인사하던 처자였다. 간판도 없이 벽에 쓰인 가게명이 전부인 테이블 세 개짜리 식당이다. 여기가 그 유명한 Mama noodle을 파는 곳이냐고 물으니 맞다며 격하게 환영해준다.

할머니는 비수기에는 팍세에서 지내신다며 동생과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딱 한 번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선셋 뷰를 본다고 다른 집에서 맛없는 식사를 한 것을 빼곤 삼일 동안 주구장창 이 집에서만 식사를 하였다. 식사도 식사이지만 시끄러운 서양 애들 없는 곳에서 주인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자리가 마음이 편하다.

우리는 둘째 날 아침에 파파야를 무채 썰 듯이 해서 생선 젓갈(빠덱)과 고추, 레몬, 방울토마토, 땅콩으로 버무려 내놓는 땀막홍을 주문하였다. 식당의 주인 Oi는 이날에는 빠덱의 냄새가 안 나게 외국인용 땀막홍을 내놓더니 다음날 저녁에는 생선구이에 어울리는 빠덱 내음 진한 땀막홍을 준비하였다. 우리가 라오스 음식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보았나보다. 언제 또 돈뎃에 올 수 있을까 싶지만 다음에 오면 Oi의 가족들이 새로 짓는 방갈로에 머물면서 밥값 미리 내고 알아서 밥 차려달라고 해보고 싶다.

My sister, Oi.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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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뎃의 벼는 껑충히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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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논에서는 벼를 추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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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메콩강의 노을>

 

9. 돈뎃, 돈콘 둘레길

사실 섬은 튜빙이나 낚시 같은 활동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쉬는 것과 기껏해야 걷는 것에 익숙하지만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숙소를 옮긴 우리는 오늘은 돈뎃을 돌아다니고 다음 날은 돈콘섬을 오토바이를 타고 가자는 것에 합의했다. 오늘은 어제 밤에 내린 비로 길이 진흙창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쉬면서 여행 일기를 쓰며 보냈고, 점심을 먹고 돈콘과 연결되는 다리를 향해 걸었다. Oi는 다리 통행료 25,000킵을 내지 말고 그냥 쭉 지나가라고 일러준다. 한번 그래 볼까?

어제와는 다른 길로 섬의 반을 돌아서 걸어간다. 여행자들의 숙소가 길게 늘어져 있어도 섬은 벼와 물소와 주민들의 것이다. 지나가는 곳의 아이들이 수줍게 인사하거나 웃으며 도망간다. 숯을 만드는지 진흙으로 작은 가마를 만들고 있는 어른은 와서 자세히 보라며 불러주신다.

50여 분을 걸어 돈콘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나왔다. 섬과 섬을 둘러싸는 것은 황토빛 메콩강의 넓은 강물이다. 난간도 없는 50M 길이의 다리를 건너는데 Oi의 말처럼 그냥 쭈욱 지나가면 다리 아래에 있는 매표소 직원이 못 볼 것 같다. 삥땅의 즐거움을 맛보려는 찰나, 매표소 앞에서 있던 두 프랑스 여자가 아는 척을 한다. 땃로에서 같은 숙소 옆방에 묵었던 아가씨들이다. 반갑다며 인사하는 통에 매표소의 직원이 우리를 보고야 말았다. 프랑스 아가씨는 통행료가 너무 비싸다며 나에게 동의를 구했지만 나는 그 좋은 인사성 때문에 머쓱한 꼴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통행료가 있는 것을 몰랐던 듯 연기를 하고,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하고 뒤돌아섰다. 궂은 날씨는 계속 빗방울을 내리친다.

다음날 아내는 나에게 아침밥 먹기 전에 오토바이 연습을 하고 오란다. 수동 조작 오토바이를 타본 적은 없기에 걱정된다는 것이다. 아침밥을 먹으러 들르니 Oi는 돈콘의 길은 돈뎃보다 안 좋다며 오토바이를 타지 말라고 말린다. 결국 아내는 그냥 걷자고 나를 꼬신다.

돈뎃의 논 한가운데를 걸어가다 논을 매고 오시는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오시기에 길 한편으로 비켜섰다. 노인은 갑자기 길을 멈추더니 나에게 ‘How old?’라고 묻는다. 그러더니 주저앉아 칼로 ‘62’를 땅바닥에 새기더니 당신을 가리키고는 나에게 손짓을 한다. ‘42’라 적어드리니 태양을 그리고는 다시 12지간으로 구분해서 나의 운세를 봐주기 시작한다. 말은 못 알아들으니 손짓을 섞어가며 설명하시는데 2010년이 제일 안 좋았고, 내년에는 운수대통할 것이라고 한다. 2017년에는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도 하신다. 아내의 운수까지 설명해주는 것이 그것의 맞고 틀림보다 길을 걷다 만나는 인연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예상처럼 노인은 다 끝나고는 ‘10,000Kip’을 바닥에 적으셨다. 나는 챙겨온 간식 몇 가지와 2,000Kip을 드렸고, 우리는 기분 좋게 헤어졌다.

돈뎃의 길은 해안을 따르는 길과 가운데 길이 있다. 가운데 길은 비가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길이 반듯하게 나있다. 나는 이 길을 신작로인가보다 하였는데 돈콘으로 넘어와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돈콘의 입구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협궤 열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섬을 가로지르는 길이 울창한 삼림을 뚫고 일직선에 가깝게 놓여 있었다. 그 길은 섬의 남단, 메콩 강의 깊은 물과 닿는 곳으로 나있었고, 그 끝에도 열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일직선의 그 신작로는 식민지의 유산이었고, 라오스 민중 수탈의 철로이거나 도로였다. 섬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큰 배에 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길의 목적이었다.

섬 밖의 콘파팽 폭포보다 작다하여 라오스 가이드들이 작은 폭포라고 부르는 리피 폭포에 다다랐다. 돈콘 통행권에 폭포 입장권이 포함된 줄도 모르고 구매한 입장권은 각 25,000Kip(3,500)이었다. 어제 삥땅치려 마음먹다 벌 받았다. 작은 폭포라는 리피(솜파밋) 폭포는 낙차는 낮지만 그 너비가 어림잡아 200M는 넘어 보였다. 이제까지 본 폭포는 더 이상 폭포가 아니었다. 그 맹렬한 물살을 넋 놓고 바라보다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이리와디 섬을 가기 위해 돈콘의 남단 마을, 항쿤으로 걸어갔다.

항쿤에 도착한 우리는 배를 타는 문제로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배타기를 무서워하는 아내는 배가 사람 하나 앉을 너비로 좁다며 못 타겠다고 버틴다. 서울대공원 돌고래 본지도 30년이 다 되가는 나는 바다의 꿈, 고래를 보고 싶었지만 아내가 버티는데 혼자 갔다 올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바비킴의 고래의 꿈을 혼자 속으로 부르다가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흑흑,

내려갔던 식민의 길, 신작로와 달리 올라가는 길은 정글에 낸 길이었다. 간혹 오토바이도 다니기는 하였지만 사람 하나 지나갈만한 길이었다. 점심도 건너뛰고 7시간을 걸은 이 날, 어림잡아 22Km정도 걸은 것 같다. 라오스를 오면서 오지 트레킹을 하고 싶었는데 그 대신에 우리는 돈뎃-돈콩 둘레길을 걸은 셈이다. 막바지에 이르러 배가 고프면서 기력이 딸렸지만 메콩강을 바라보며 마신 천 원의 아이스커피는 너무나 달콤쌉쌀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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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점(?)을 봐주시는 아저씨(마눌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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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민 수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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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폭포의 한 장면, 이 사진 6장은 족히 붙혀야 폭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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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는 길, 길이 직선인 것으로 미루어 아마 철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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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항쿤에서 보는 메콩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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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오른편 길. 철로를 피해 라오스인들은 이 길로 다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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