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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belong there. In three generations, social utopia will have come to pass.
There'll be no war, crime or poverty. And no disease either, John.
Men will live like brothers, and in equality with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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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here.
- We live in a cosmic charnel house. Mankind has not changed in 2000 years
We hunt, we're hunted. That's how it is. How it will always be.
오늘은, 지난날 언젠가 내다보고 꿈꾸었던 그대로가 아니다. 꿈들은 달라지거나 작거나 커지기도 하며 또는 도둑맞은 듯 스멀스멀 사라지기도 한다. 그날로 돌아가 보면 나는 1초에 몇 년은 커녕 별안간, 너무나 급작스럽게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듯하다. 나는 방금 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이 '덴장맞을' 미래로 건너왔던가. 그렇게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볼 수록 미래라는 게 터무니없이 빨리 다가와 있고, '자유의지'를 벗어나 내 앞에 턱하니 버티고 있다. 내가 내다본 미래, 또는 넉넉히 잡아 한 세대가 지난 오늘은 이토록 작고, 초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빛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미래가 지금, 여기 꽃피고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시간을 잘못 건너온 것 같다. 아무렴 , 내가 지금 이렇게 서 있게 된데는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할 몫도 없지 않아 있다. 여기에 이르는데 내가 키를 잡고 시간을 거슬러오지 않았는가. 나는 지금과 달리 더 잘, 살아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미래는 이렇게 뻔뻔스럽게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다.
'미래의 추적자 Time after time(1979)'에서 허버트H. G. Wells는, 타임머신을 타고(친구들이 과거로 돌아가 클레오파트라라도 만날 모양이라고 하지만) 미래로 갈 것이라고 한다. 1893년으로부터 3세대가 지난 1979년, 그러니까 이 영화가 태어난 1979년 오늘로. 그 미래는 전쟁과 범죄와 가난, 질병이 사라지고 만인이 형제자매애로 연대하고, 남녀가 평등한 그런 사회적 유토피아가 실현된 사회이고 그런 사회에 속하기를 바라면서( 그의 친구들은 그런 미래보다는 차라리, 한결같이 과거로 가자고 하지만). 그렇지만 살인광 스티븐슨은 우리는 거대한 납골당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2천년 동안 인류는 전혀 변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약육강식의 세계가 계속될 것이라고, 허버트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들 앞에선 미래 또는 오늘은 사회주의자 허버트보다 살인광의 이야기가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살인광의 폭력 즈음이야 일개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 전쟁과 학살과 범죄와 향락 뒷편 가난과 착취가 난무하는 세계가 그들이 건너온 미래이다.
어떻게 보면 이 세계는 한꺼번에 변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고 내게 말한 이들이 옳았다. 그렇지만 3세대는 커녕 1세대도 못되어 갑작스레 맞이한 이 세계는 가히 비약적으로 달라졌다. 그들도 나도 예측은 빗나가서 세계가 이토록 엉터리이고, 망가져 있으리라고는 아마 몰랐으리라. 공상가 또는 소설가인 허버트는 감히 낙관하지 않고, 엄청난 것들을 예언했다지만.
그래서 무엇을 어찌할 것인가. 어느 순간 우뚝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지만 언제나 지랄같고, 더욱 망가질 것이 뻔한데 왜 미래여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타임머신이 없다. 언젠가 말했듯 과거로 시간여행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다만, 우리에게 닥칠 것은 미래 뿐이다. 어느날 그렇게 급작스럽게 서 있게 될 오늘로서. 아마 그날은 북극의 빙하가 다 녹고, 우리는 날마다 열대야 속에 살 것이며, 전쟁과 약탈과 학살은 더욱 치열할 것이고, 우리는 물과 식량도 제대로 없이 몇몇 사람을 위해 죽어라고 노동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날들은 스티븐슨이 말한 것보다 더 거대하고 전지구적이며 세계화된 납골당에 갇혀 있을지도, H. G. Wells가 내다본 것보다 더 비참한 지하세계에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미래여야 하는가. 감히 미래를 떠벌리는 자 어떤 미치광이들인가. 그러나 다시 또 말하자면 우리가 맞이할 날들은 미래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3세대나 또는 1세대 이후는 아닐지라도 지금 내일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큰 이야기이건 작은 이야기이건, 거대담론이건 소담론이건 그리고 나처럼 잘난척이건 못난척이건 또는 나발이건 우리는, 누구나 다시 내일을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야만 1979년에서 한 세대가 지난 오늘도 더 분명해지지 않겠는가. 그동안 나와 당신이 건너온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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