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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9
    살아남은 자의 슬픔 천 한 번째(2)
    펼쳐라

부재(不在)

 

 

 

Acrylic on canvas
145.5×112.1cm
예쁜 나방이 될거냐 배고픈 새들에게 몸을 내어 줄거냐
애벌레 너가 존재가 할 권리있다.
 


Painting
너의 삶, 권리있다
The right of your life
2008

(방정아)


작가의 말을 오독할 뻔했다. 처음에 나는, "애벌레 너는 존재의 권리, 예쁜 나방의 권리가 있다, 새들의 먹이감으로부터 피해라, 너의 권리를 지켜라", 이렇게 읽었다. 그럴법하다. 존재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에 저항하라,는 슬로건은 이 시대에, 이 봄날에 지극히 어울린다, 적절하다.

그렇지만 그녀의 작품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니 "예쁜 나방이 되건, 새들에게 몸을 내어주건, 그것은 너의 삶, 너의 권리이다. 어떻게 존재하든 그 권리는 너의 것이다."라고 다시 들리기도 한다. 단순하게 바라본 풍경 속에 존재들이 존재로서 꿈틀대고 있다. 저 애벌레의 존재 권리를 부당하게 짓밟는 것은 다리를 쭈욱 뻗고 기지개를 켜는 곤양이도 아니고 새들도 아니다. 그럼 무엇이?

말이 뒤섞였지만, 내가 정작 말하고픈 건 이 그림에서 존재 권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비상한 상황이 아니라  변화의 지속 속 "존재 그대로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있음"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는 "부재" 중인 사람들이 몇몇 있다.  마치 저 멀리 '소환장'을 보내건만 '폐문부재, 문 닫아걸고 있지 않다"는 답신이 되돌아오는 것 같은, 그렇게 부재 중인 이들 말이다.

꿈 속에서 "부재" 중인 그/녀가 나타났다(내가 꿈 이야기를 종종하는 것 같은데, 사실 꿈을 그렇게 자주 기억하는 편은 아니다. 잠을 잘잔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는 말하기도 어렵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정확히 나도 모르겠다. '그/녀'라고 복수의 성으로 쓴 이유는 "부재" 중인 이들이 남/여 여럿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리어, 나를 향해 "당신은 부재 중"이라고, '그/녀'가 말한다. 내가 부재 중이라니, 나는 여기에 있다고, 나는 있다고, 나를 놓치지 말라고 도리짓을 해보지만 그렇구나, 당신들에게는 내가 "부재" 중이구나, 내가 당신들을 떠나온 것이구나, 머리를 때리며 나는 깨어난다. 그래 그렇고 보니, 그렇게 우리는 서로 "부재" 중이나 그렇지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젠장, 굳이 어렵게 말하자면 "현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포섭하고자 했던 꿈들은 어쨌거나 진화하면서, 다만 이 거리에 서로 부재인 채로, 눈빛을 주고 받는 일도 의사소통도 부재인 채로 우리는, 서로에게 부재이면서 각기, 무소식이 희소식인 채로 각기, 지나가고 있구나, 다시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구나.

그래, 그렇게 있어보자, 있자. 다만, 부디 가끔은 서로에게 부재 중이라는 것이나마 잊지를 말고.

이것은 "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재 [不在]
[명사]그곳에 있지 아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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