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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연예 통신" 따위

개인적으로 뒷담화 까는 걸 매우 싫어한다. 누구 말대로 세상 좋은 일만 하다 가도 무척 짧은 게 인생이다. 기껏 모여서 한다는 소리가 허무맹랑한 남 뒷담화 까기라면 화장실에서 있는 힘껏 쾌변을 보고 약간은 빨개진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 닦아내는 거 그게 훨씬 뿌듯하다.

 

비슷한 이유로 남 뒷담화를 까는 사람도 싫어한다. 걔는 일종의 비밀의 공유 또는 나쁜 짓을 같이 한다는 걸로 어떻게 나랑 친해져보려고 애써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서 남 뒷담화 까는 애가 남들 앞에서 내 뒷담화 안 깔 리 없다. 행여 내가 싫은 티 내는 걸 알게 됐다면 딴 데 가서  "그 새끼 지만 잘난 척 한다" 안 할 리 없지. 뭐든지 나쁜 점만 캐내고 부각시키려는 애들이랑은 별로 엮이고 싶지 않다. 나는 누가 뭐래도 이 세상이 완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살 만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뒷담화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없다. 누군가를 찐따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나를 더 치켜세우고 나아가 그 얘기를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치켜세운다. 이건 누구든지 깔아 뭉개고 올라가려는 고약한 인간의 본성이랑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다. 의식적으로 경쟁자나 포식자(?)를 욕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게 되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내가 지금 네 앞에서는 꿇지만 뒤에 가면 ㅈ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고 완전히 굴복당하지 않았다는 알량한 자부심도 갖게 되는 것이다.

 

길었지만, '섹션 연예 통신' 따위의 프로그램은 이런 심리를 잘 파고든다. 이건 완전 처음부터 끝까지 뒷담화 덩어리다. 누가 누구랑 사귀다 깨지고 이혼하고 남자가 여자를 뚜드려 패고 서로 소송을 건다. 가끔은 출연자의 진실한 마음이 담긴 것 같은 눈물 한 방을 보여주고 정말로 걱정하고 있다는 듯이 경건한 표정을 짓곤 하지만 남들 '안 좋은 일'을 대놓고 카메라 들이대고 어떻게든 취재해 보여주는 건 '대놓고 뒷담화 까기'다. 해당하는 연애인은 철저히 찐따가 되고 시청자들, 남들 못 되는 꼴 보니 좋아 죽는다. 요컨대 이런 프로그램은 '뒷담화의 오피니언 리더' 인 것이다.

 

임지현 씨 같은 학자들은 '대중 독재'라는 말을 하면서 나치 때 수많은 '국민 대중'이 그것에 동조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거 멀리 안 가도 이런 방송만 봐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뒷담화, 정말 구린 짓이다. 한 사람 찐따 만드는 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본인은 전전긍긍 하루에도 목 맬 생각을 수백번도 더 할 것이다. 이제는 식상해진 '언론의 자유'를 여기서 꺼낸다면 할 말 없다만 그런 말엔 더 식상한 '자유의 정당한 제한'으로 받아치겠다. 세상에 깔린 게 채널이고 방송 프로그램이다. 어떻게든 구린 짓은 피할 요량이라면 "섹션 연예 통신" 따위의 방송을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남들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이 많고 그것이 알려져 마땅하다 생각한다면 먼저 자신의 농밀한 사생활부터 빨갛게 세상에 까발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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