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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5/19
    특박 포스트 3
    JSA
  2. 2007/05/19
    특박 포스트 2(1)
    JSA
  3. 2007/05/19
    특박 포스트 1
    JSA

특박 포스트 3

소위되기 참 힘들다.

훈련병, 사병들 걸을 때 뛰고 뛸 때는 기어가는 이 생활, 끝이 올까 싶었지만 벌써 8주가 지났다. 아까 저녁을 먹으면서 훈련받은 얘기를 부모님께 말씀드리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생각해보면 사실 이 눈물은 고생한 게 억울하거나 당시의 고통이 생각나 나온 게 아니었다.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소외감 때문이었고 돌연히 바뀌어버린 내 처지에 억울하고 불쌍하고 짜증나는 여러가지 심정이 뒤섞여버린 탓이었다.

 

직접 마주대하고도 사라지지 않았던 답답함은 한동안 나를 옥죌 것이다. 오히려 완전히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답답함만 더해졌다. 감정은 애초에 비언어의 영역에 있는바, 말이나 글로 감정의 실체를 보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잊겠다" 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잊어야할 대상의 한계는 연기처럼 불투명할 뿐이다. 그렇다면 답답함을 없애겠다고 자꾸 내 안으로 파고들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려는 것은 내 기준에서 새로운 판타지만 계속 만들어낼 것 같다. 이래서 편지를 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답답함을 없애려 편지를 보내지만 글을 쓰는 내내 혹은 글쓰기를 마치고 편지 봉투를 풀로 봉하는 순간부터 답답함은 더 더해져버린다. 나도 나를 잘 설명하기 힘들고 상대방도 자신을 명확히 묘사하기 힘든 이 난관에서 의사소통은 가능한 것일까.

 

선택은 두 가지. '체념'과 '끝까지 알아내는 것'이다. 체념한다면 연기는 바람을 따라 조금씩 사라져갈 것이며 답답함의 정체는 영원한 미결로 남아 하나의 단편적인 추억으로만 기억될 것이다. 꿈만 같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절실함이 달랑 사진 하나, 편지 몇 개로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건 현재로서는 너무나 아쉽고 슬픈 일이지만 답답함은 분명 사라질 것이다. '끝까지 알아내는 것'은 하나의 선택항으로서 가능할 뿐 실제로 이루어지긴 힘들 거다. 나도 나를, 상대도 상대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에서 뭔가 알아낸다는 건 힘든 일이다. 정말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근사치를 짚어내거나 아니면 아예 먼 소설을 하나 뚝딱 만들지도 모른다.

 

체념해버리자니, 켜켜이 쌓였던 기억과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조금만 뭔가를 더 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흩어져버린 연기를 다시 예전의 연기로 돌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 이러면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미워하게 되는 거지. 이런 건 이제 알만큼 나이도 들었고 경험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내 인생 가장 중요한 3년이 될지 모르고 가장 중요한 8주가 될지도 모른다. 이 때의 경험과 감정, 생각은 나를 바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온갖 시련과 고통,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디고 이겨야겠다. 하나하나 나의 눈과 발을 넓혀주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직접 정면으로 대하고 절대 피하지 않겠다. 23살, 클 때가 됐고 반드시 크고 말 것이다. 겁먹지 말고 숨지 말고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자.

 

힘내자 세안아. 짧디 짧았던 2박 3일의 특박, 참 뜻깊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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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박 포스트 2

특박 나와서 읽은 책 두 권 中,

     

 

1/  "도대체의 다락방", 도대체, 시공사

     집에 돌아와 얼마전 구입한 오디오에 몽크의 시디를 넣은 후,

     수많은 책 중에서 곧장 눈에 들어온 두 권의 책.

     술 냄새가 한시도 혀끝에서 떠나지 않았던 19살때 방바닥을 혼자 괴롭게 뒹굴며 읽었던 "다락방".

     "너"가 보이데.

 

무사고

-오늘은 무사고 32일째입니다-

공사장 한 켠에 세워진 무사고 기록판을 보며

33일전 사고가 난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하다

 

갑자기 내 이마 한복판에

無思考 몇 일째, 기록판을 붙이고 싶데.

 

자취

나는 내 안으로 자꾸만 꼭꼭 숨고 기어들어가고

너는 어디에도 없고 그러나 너는 어디에나 여러 모습으로 남고.

 

 

2/ 화, 탓닉한, 명진출판

 

편지를 쓰는 데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베트남 불교의 역사에 관한 나의 세 번째 책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미국인 교수가 탓닉한이라는 사람에 관한 책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 편지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편지를 쓰는 데 들인 시간은 박사 논문을 쓰는 데 투자한 몇 년의 세월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다. 박사 논문은 그 편지만큼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편지를 쓰는 것은 난관을 뚫고 대화의 길을 다시 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앉아 있거나 걷거나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 편지와 관련된다. 책상에 앉아서 편지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우리의 감정을 종이에 옮겨 적는 데 걸리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편지를 쓰는 순간은 그때만이 아니다. 밭에서 채소에 물을 주고, 걸으면서 명상을 하고, 주방에서 요리를 할 때, 우리는 이미 그 편지를 쓴다. 그러한 활동은 모두가 우리를 더욱더 견고하고 평화롭게 해준다. 그럴 때 발생하는 자각과 집중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이해와 연민의 씨앗에 물을 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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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박 포스트 1

맛없는 담배를 뻑뻑 펴대며 많은 얘기를 한 것 같지만, 남는 건 별로 없다.

내 속에 있는 얘기들을 힘들게 꺼내 펼쳐놓았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기회는 이제 없다. 오늘까지의 기회는 이제 여기서 끝. 내일은 없다.

호언장담 내일과 모레에 대한 자신감은 아무 필요 없다.

생각해도 또 생각해도 이해되거나 납득되지 않은 이 상태에서

얼마나 가게 될지 얼마나 버티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한편으로는 끝없는 후회와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원래 끝은 여기였나 싶다.

애초에 내가 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단 인정하고 존중하자.

시간은 지나고 감정도 변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인정하고, 체념하자.

 

이제 6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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