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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8
    전작권
    JSA

전작권

미군들이랑 회식을 했다.한국음식은 처음이라는 이 사람들 소주부터 비빔냉면 마무리까지 잘도 처먹더라. "너 이거 먹고 죽을지도 모르니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먹어라"라고 겁줬는데도 참 용감했다 이 사람들은. 25년 경력의 미군 군무원 아저씨랑 전작권 이양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이 아저씨는, 참 똑똑했다. 남북문제에 대해, 한국 역사에 대해, 세계사에 대해 나보다 다섯배는 더 잘 알더라. 딸은 미국에서 의대를 다닌다고 했던가. 똑똑하고 차분한 아버지를 두었으니 그럴만 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한 얘기는 얼추 다 맞았다. "한국은 그럴 능력이 없다"인데, 이건 정말 우긴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전작권 이양을 두고 크게 찬반이 나뉘고 한쪽에서는 아예 이 논의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반전' 여론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더라. 난 이 시점에서 "전쟁엔 반대하지만 군대까지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상투적인 성악설이나 경제학의 무임승차자 얘기를 꺼냈고 이 사람도 잘 알아들었다.  미국이 수집하는 정보 중 반의 반도 못 받으면서 감지덕지 감사하다며 받으면서 그것도 다 소화 못해 죽으려고 하는 걸 보면 전작권 이양은 정말 먼 후 얘기일 뿐이다.  정보 소통하는 방식이며 장비, 기술, 항공기가 모두 'U.S PROPERTY' 다. 을지포커스렌즈 훈련하자며 여러 부대에서 사람들을 차출하고서는 교관 스스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미군 장비 사용법을 버벅대며 시현한다. 영관급 장교들은 인맥 쌓느라 바쁘고 소위중위들은 아무것도 몰라 이리저리 당황할 뿐이다. 나같은 애들 미군식당에서 스테이끼 썰며 낄낄댈 때 수많은 증원미군들은 저 구석 한국인이 출입할 수 없는 폐쇄지역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처장의 비서급인 한 육군 대령은 파견 장교들에게 "당신들이 전작권 이양 후 새로운 시스템을 이끌  사람들이니 열심히 배워두라" 했지만 글쎄요, 여기 온 소.중위들은 2010년 전작권 이양 전에 다 제대할 생각이랍니다. 장기할 생각은, 죽어도 없어요.

 

솔직히 지금 한국이 갖고 있는 무기쳬계만으로도 북한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서해나 동해에 남한 함정 뜨면 북한 함정들 다 위로 올라간다. 남한 하루에 비행기 수십번 띄워 훈련시키는 동안 북한은 고작 2~3번 뜰 뿐이다. 어느 기지에서 몇 명이 굶어죽고 기름이 없어 북한 쪽으로 꽃게 잡으러 넘어온 중국 상선 잡아다가 걔네 배에 들어있는 기름까지 빼 가져갔다는 걸 들을 때마다 불쌍해 죽겠다 북한 사람들. 이지스함이나AWACS까지 남한에서 운용된다면 북한으로서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압박을 느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맨날 방송에다가 '남한의 획책' 운운하지.

 

이건 딜레마다. 남한과 미국의 관계를 놓고는 남측이 답답할 정도로 미측에 의존하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서는 현 수준으로도 충분히 전쟁 억지가 가능하다. 그러니 미국이 덜컥 넘겨준 군 운용 방식과 체계를 빨리 한국화하는 게 급선무겠지만 역량을 그쪽으로 쏟기에는 북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부족하다. 여전히 남한의 민주세력과 노무현 정권을 친북세력으로 여기는 북 정권이 가끔 또는 지속적으로 쏴대는 미사일 실험에 남한은 간이 떨어질 지경이다. 그러니 더욱 미국에 붙어 뭔가 가시적인 시스템, 무기를 도입하고 사오는 거지만 그럴수록 미의존성은 커질 수밖에. 이건 딱, 안보 딜레마구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리가 끝나고 나서는 훌쩍 학교 쪽으로 넘어와 친구 집에서 소소한 앞가림 얘기나 하다가 잤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 보안과로 발령 났으니 이쪽 세계는 제대할 때까지 거의 볼 일 없겠구나. 그러면서 이 훈련에 끌려오다니. 임관한지 두달도 안된 신임소위가 보안과'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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