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규칙 혹은 행복을 위한 규칙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을 위한 규칙은 없지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은 있다. 인간 사회의 정치활동과 관련해서는 상황이나 시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몇 가지 중심 개념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중심 개념들을 아는 것 자체가 현 체제에 대한 실질적 공격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규칙들이 바로 현실적인 급진주의자가 되는 것과 말로만 하는 급진주의자가 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말로만 하는 구두선식 급진주의자란 낡아버린 옛 단어나 구호를 사용하고 경찰을 '돼지'라든지 '백인 파시스트 인종 차별주의자' 혹은 '쌍놈'이라고 부르는 등의 방식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정형화시킴으로써 남들이 "아, 뭐 쟤는 그냥 저런 애"라고 하는 말로 대응하고는 즉시 돌아서게끔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다.

의사소통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젊은 활동가들의 실패는 처참했다. 의사소통은 청중의 경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타인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개념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해만 있었어도, 미국 국기에 대한 공격은 제외되었을 것이다.(26~27)

 

의사소통의 또 다른 차원에서는 유머 감각이 필수적인데, 이는 심각하게 제안할 경우 거부당할 수 있는 많은 것이 유머를 통하여 제안할 경우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 만약 내가 조직화 활동을 하고 싶다면, 내 '일'은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확실한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면 실질적으로 나는 침묵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침묵은 동의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이 경우, 동의는 현 체제에 대한 것이다.

조직가로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의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부터 시작해 나간다. … 그리고 그것은 바로 체제 내부에서 일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28)

 

체제 내부에서 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에 따르자면, 새롭게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모든 혁명적 변화는 반드시 우리 대중들이 변화를 수동적으로나마 수용하고 거부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난 다음에야 일어난다. 그들은 현재의 지배체제 안에서 너무나 절망하고, 패배감에 젖고, 상실감을 느끼고, 아무런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야만, 비로소 과거를 떠나 미래에 희망을 걸어 보고자 하게 된다. 변화를 수용하는 이러한 태도는 모든 종류의 혁명에 필수적인 의식 변화이다. 이러한 의식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조직가는 체제 내부에서, 중산층뿐만 아니라 일년에 5천 달러에서 1만 달러 정도를 버는 40%에 달하는 미국 가정들(7천만 명이 넘는다) 가운데에서 일해야 한다. 그들을 블루칼라 혹은 건설노동자 부류라고 불러버림으로써, 우리가 그들을 내팽개치는 꼴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다소 수동적이고 도전 의식이 미약한 상태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가 연합하도록 그들을 격려하지 않으면, 그들은 보수화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어쨌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28~29)

 

혁명적 변화를 원하는 우리 중 일부는 혁명이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너무도 중요하다. 정치적 혁명이 대중적 개혁이라는 지지 기반 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정치에서는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경험이 주는 안전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경험에서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리를 필요로 한다. 혁명적 조직가는 그들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정형화된 행동양식들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31)
 

개혁이란 우리 국민 중 다수가 과거의 방식과 가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게 되는 시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현재의 지배체제가 자멸적이고 절망적이며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변화를 위해 직접 행동하지는 않겠지만,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바로 이 때가 혁명이 무르익은 시기이다.(31~32)

 

그 시작부터 인민people은 민주주의적 이상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 중 일부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모든 사람이 공동 이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데에 있다.(35)

 

이데올로기가 독단적 교리로 타락할 위험을 감소시키고 인간의 자유롭고 열려 있으며 탐구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을 보호하고 동시에 변화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미국 헌법 제정자들의 이데올로기보다 더 구체적이어서는 안 된다.(42)

 

유산자와 무산자들 사이에는 조금 가지고 있지만 더 갖고 싶어 하는 자들, 곧 중산층이 존재한다. 자신들이 가진 조그마한 것이나마 지키기 위하여 현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와 더 많이 갖기 위하여 변화를 추구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그들은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고 만다.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정신분열증 환자라 불릴 만하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변화로 이득을 보지만, 자신들이 가진 조그마한 것이라도 잃어버릴 위험에는 처하지 않도록 해 줄 안전한 길을 찾고자 한다. 그들은 혁명이라는 정치적 포커게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손에 적어도 3장의 에이스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고집한다.(61)

 

실제 인간사의 정치에서, 일관성은 미덕이 아니다. 옥스퍼드 대사전에 따르면, 일관성이 있다는 것은 "정지하고 있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거나 죽거나 해야 한다.(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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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2 09:53 2012/08/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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