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출품작 <공산국가 유머집(Hammer&Tickle, 벤 루이스 작, 캐나다, 2006)>을 봤다. 

 

혹시 영화 소개를 보고 싶은 분은 http://www.eidf.org/2006/fall/sub/program_view.htm?prog_no=118#cmt을 보시라.

 

지난 일주일 간 EBS에서는 하루종일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출품작을 틀어줬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작품은 이게 유일하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영화제 시작 전부터 시놉시스를 읽고 기대하던 작품이었다.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영화는 제목 그대로 공산주의 체제 하에 존재했던 유머들을 시대별로 추적해나간다. 마치 한 권의 책을 영상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으로, 공산주의시절 체제비판적 농담들을 배우들을 사용해 재연하거나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데.. 뭐.. 유머는 생각보다 그리 재밌진 않다.:)

 

작가에 따르면,  "공산국가의 유산 중 가장 위대한 것"은 "풍자 유머"다. 공산권 내에 풍자유머는 체제를 비판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 중 하나였으며, 이러한 유머를 이용해 체제를 비판하던 사람들 중 감옥에 간 사람만 무려 1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탄압에도 불구하고 체제 풍자 유머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 사이에 퍼져나갔고, 유인물에 인쇄되어 사람들 사이에 몰래 뿌려졌다.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강하면 강할수록 유머의 수와 강도도 증가했고, 결국 이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공산권의 전면적 해체로 이어진다. 

 

감독은 아주 과감하게도 "유머가 공산주의를 무너뜨렸다"라고 말한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 수사처럼, 공산주의 정권은 사람들의 풍자 유머와 웃음을 강박적으로 통제하려 했다. 그들은 체제에 대한 조금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았고, 웃음과 풍자를 탄압하여 획일적-강압적 이데올로기를 재부과하길 원했다. 하지만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을 막고자했던 호르헤 수사의 시도가 실패하고 결국 폐쇄적인 수도원은 무너져내리듯이, 공산주의 정권도 이러한 전체주의에 맞서는 웃음의 힘과 반체제 운동들에 의해 붕괴되고 만다....

 

그래.. 여기까지는 영화가 얘기하는 바에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다.

웃음과 거리두기, 풍자는 확실히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이자 그것에 저항하는 힘일 수 있다. 누군가 "웃음 많은 파시스트는 없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감독이 공산권 붕괴 이후 날카로운 풍자 유머가 사라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는 획일적인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풍자와 유머를 필요로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와 동일한 논리를, "쿨cool해질 것"과 "즐길 것"을 끊임없이 강요하면서 그것이 마치 진보적인 것이라도 되는 양 선전하는 한국의 수많은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감독은 분명히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웃지 않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이 웃는다.(TV, 라디오, 영화 등등에서 강요하는 수많은 웃음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웃음은 체제에 저항적이라기보다는 체제에 완벽히 기능적이다. 지젝의 말처럼,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 vs. 웃음과 풍자"라는 움베르트 에코 식의 도식을 통해 분석하는 건 언제나 위험하다. 획일적이고 억압적이며 전체주의적인 공식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이에 대한 저항의 기제로서 웃음과 풍자, 아이러니 등이 추앙받던 시대는 "이미" 예전에 지나갔다.

 

오늘날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냉소주의"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의 전체주의는 냉소주의를 통해 작동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어떤 가치나 이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지한 어떤 주장도 그냥 한 번 웃어주고 넘기면 그만이다. 소위 수구반동파들의 "꼴통같은" 외침에 우리는 한 번 웃어준다. 하하하. 하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진지하게 "혁명"과 "변혁"을 외치는 이들에게도 우리는 한 번 웃어준다. 당신 지금 농담하냐고...

 

따라서 "웃음은 공산주의적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힘이다"라고 외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어쩌라고?(so what?)" 왜냐하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싸워야 할 적은, 더 이상 공산주의적 전체주의 체제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붕괴시킨 바로 그 체제, 사람들에게 냉소적 웃음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서 마지막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구동독권 독일인이 던지는 말은 심오하다. "공산주의도 좋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는 말그대로 '웃긴' 체제다." 웃음에 '대한' 지배가 아닌 웃음을 '통한'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풍자와 냉소적 웃음이 저항적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메세지는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덧.

영화를 보면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온다. 작가의 인터뷰이 중 하나인 로이 메드베제프(Roy Aleksandrovich Medvedev, 1925~). 80년대 말에 벌어진 '사회주의 체제개혁'을 둘러싼 논쟁을 접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익숙한 이름일 게다. 그 때 개혁파의 선봉에 서서 "인간적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메드베제프는 90년대 후반부터 완전한 푸틴주의자가 되어 그의 체첸에 대한 강경진압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최근 저서가 우리 나라에 번역되기도 했다. <한국, 푸틴의 리더십을 배우다(정현미 역, 굿뉴스, 2005)>란 제목으로..) 메드베제프는 과거 공산주의 체제의 반-꼬뮤니스트들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변해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인 것이다.

 

이런 사람을 주요 인터뷰이 중 하나로 정한 작가인 만큼, 영화는 반공적 색채를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군사 쿠데타(military coup)"로 칭하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이 사람이 메드베제프다. 어쩌다 그리 망가졌을꼬.. 쯔쯔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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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7 12:25 2006/07/17 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