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툰 전쟁

from 카메라 폴리티카 2007/10/10 00:48

euzine님의 [파편들] 에 관련된 글.

 

오늘 EBS에서 방영된 <카툰 전쟁(Bloody Cartoons, 2007)>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euzine님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글이 길어질 듯 하여 그냥 트랙백을 걸었다.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당분간은 없을 것 같아 그냥 파편들만 늘어놓는다.

 

이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년 한 해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달구었던 마호메트 카툰을 둘러싼 논쟁이다. 덴마크인 감독  칼스텐 케이어(Karsten Kjaer)는 한 시간 동안 카툰을 옹호하는 이들과 카툰을 비난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주는데, 아마도 두 입장의 극단적 대립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입장은, 흥미롭게도 서로 동일한 담론 구성체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마호메트 카툰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관점의 "차이"를 "관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카툰에 반대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반대로 카툰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카툰의 옹호자들이 다른 종교의 특수성과 "차이"을 "관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더 역설적인(?) 것은 사람이 죽을 정도로 격렬하고 폭력적이었던 시위가 바로 이러한 "관용"에 대한 요구와 함께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수렴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이제는 모든 정치적 갈등을 포섭하기 시작한 "차이"와 "관용"이라는 개념의 제국주의? 실재의 적대를 "차이"와 "관용"의 문제로 전치시켜버리는, 그래서 적대를 부인하려는 전지구적 이데올로기?(작가의 말대로, 카툰 반대 시위에 참여한 이슬람인들은 대부분 카툰을 보지도 않은 이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거리로 끌어낸 것은 무엇인가? 지젝의 말대로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적대 지점의 전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은, 서구와 이슬람의 대립으로 몰고가려는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내게는 이 논쟁의 대립 구도가 서구에서 근대적 정치 형식이 발전하면서 발생했던 각종 문제들(초기의 유대인 문제에서 최근의 동성애 결혼 문제까지)의 전세계적 확장판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다큐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서구적 근대성의 완성과 외부없음,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충돌이 서구와 비서구의 충돌이 아니라 사실은 서구적 근대성 내부의 충돌이라는 점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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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0 00:48 2007/10/10 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