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  2005/09/16 11:58

이행강령 3

이행기의 노동조합

부분적 요구들 그리고 이행 요구들을 쟁취하는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특히 지금 대표적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프랑스와 미국의 노동조합운동은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는 초좌익 공론가들의 설교를 이 현상은 가장 확실하고 논박하고 있다.

볼세비키-레닌주의자는 모든 투쟁의 선두에 선다. 노동계급의 가장 사소한 물질적 이익과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조합을 강화시키고 그 전투성을 고양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중적 노동조합에 참여해야한다. 그리고 파시스트 국가나 “민주적” 국가 할 것 없이 노동조합을 부르주아 국가에 종속시키고 `의무적 중재'와 모든 형태의 경찰 보호조치로 노동계급을 통제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한다. 이와 같은 작업에 기반해서만 스탈린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노동조합에서 올바로 투쟁할 수 있다. 소규모의 “혁명적 노동조합”을 당의 하부조직으로 건설하거나 보존하려는 종파주의 시도는 실제로는 노동계급의 지도력을 확립하려는 투쟁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 확고한 원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적 노동조합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투항적 노선은 혁명을 배반하는 것과 같다; 이 노선으로는 제 4 인터내셔널에 가입할 수 없다.

노동조합 활동가과 조합주의자들은 똑같이 노동조합을 신주 모시듯 한다. 이러한 태도 역시 제 4 인터내셔널은 결연히 거부하고 비난한다.

(ㄱ) 노동조합은 완성된 혁명 강령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 설정한 임무, 구성원, 회원 모집 방식 때문에 완성된 혁명 강령을 제공할 수도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을 대신할 수 없다.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부인 각국 혁명정당의 건설은 이행기의 중심적 임무이다.

(ㄴ) 아무리 강력한 노동조합 전국조직도 노동계급의 20%에서 25% 이상을 포괄할 수 없다. 더욱이 숙련된 그리고 봉급 수준이 높은 부위만을 압도적으로 포괄한다. 더욱 착취당하는 열악한 조건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예외적인 상승기에 간헐적으로만 투쟁에 이끌린다. 이러한 순간에 투쟁하는 대중 전체를 포괄하는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비에트 등 특별 조직들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ㄷ) 스페인의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 계열 노동조합을 포함해서 모든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최상부위를 표현하는 조직이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이 증명하는 바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과 타협하는 강력한 경향을 보여주었다. 첨예한 계급투쟁의 시기에 노동조합의 지도적 기구들은 대중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 운동을 주도하려한다. 이것은 단순한 파업 특히 부르주아의 사적 소유를 뒤흔드는 대중의 점거 파업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이 대단한 곤경에 처하는 전쟁이나 혁명의 시기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보통 부르주아 정권의 장관이 된다.

따라서 각국의 제 4 인터내셔널 지부들은 노동조합의 최상층 지도부를 갈아치우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고 이들 붙박이 관료들과 출세주의자들을 대체할 새로운 전투적 지도자들을 중요한 시기에 대담하고 결연하게 내세워야 한다. 또한 대중투쟁의 임무에 좀더 걸맞는 독립적 전투조직들을 가능한 모든 경우에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노동조합의 보수적 기구들과 즉시 결별해야할 상황에서 움츠러들지 말아야 한다. 종파주의 허구를 위해 대중조직에 등을 돌리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혁명적 대중운동이 공공연히 반동적이거나 위장된 보수적(“진보적”) 관료 파벌들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수동적으로 용인하는 것도 같은 정도의 범죄행위이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노동계급 혁명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공장위원회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노동자운동은 체계와 안정성을 갖추지 못한 채 열병에 걸린 것 같은 폭발적인 특성을 보인다. 조직 형태 뿐 아니라 구호 역시 운동의 이러한 특성에 맞게 설정되어야 한다. 혐오스러운 물건을 다루듯이 판에 박힌 방식으로 대중투쟁에 대응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지도자들은 대중의 자발적 투쟁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한다.

이런 자발성은 최근 점거농성 파업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선다.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와는 별개로 공장을 일시적으로 점거하는 행위는 신성불가침으로 인식되었던 부르주아 소유체제에 타격을 가한다. 모든 점거 파업은 공장의 진짜 주인이 자본가인지 노동자인지를 묻는다.

이 질문을 점거 파업이 간헐적으로 제기한다면 공장위원회는 조직적으로 제기한다. 공장 종업원 모두에 의해 선출되는 공장위원회는 경영진의 의지에 대항하는 구심을 즉시 형성한다.

개량주의자들은 “인정이 있는”, “민주적” 착취자를 포드와 같은 “돈만 아는” 착취자와 구별한다. 그리고 후자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우리는 두 종류의 착취자 모두에 대항하는 투쟁 구심으로 공장위원회를 구호로 내세운다. (편집자 주: 자유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노골적인 노동 탄압으로 악명이 높은 자동차 왕 헨리 포드를 “돈만 아는” 자본가라고 불렀다.)

대중을 투쟁의 길로 내세우는 모든 대담한 조치들에 대해 노동조합 관료들은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일반적으로 공장위원회 건설에 대해서도 훼방을 놓으려고 한다.

그러나 대중운동의 위력이 강할수록 이 방해 책동은 그만큼 더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계급투쟁이 가라앉은 평화로운” 시기에 이미 모든 종업원이 노동조합원이 되는 관행이 정착된 경우에 공장위원회는 노동조합 기구와 형식적으로는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임원을 갈아치우고 조직의 기능도 그 범위를 넓힌다. 노동조합이 보통의 경우 투쟁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노동계급의 부위를 위한 전투사령부가 공장위원회이다. 이것이 공장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의의이다. 자신을 가장 많이 희생시키면서 투쟁에 나서는 혁명의 군대는 바로 이들 더욱 착취당하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서 나온다.

공장위원회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공장에는 실질적으로 이중권력이 성립한다. 공장위원회는 핵심 성격상 이행기를 대표한다. 왜냐하면 공장위원회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화해할 수 없는 체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위원회는 직접 혁명기 또는 준혁명기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준다. 즉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공장위원회의 기본적인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나라에서 퍼지고 있는 점거 파업의 물결은 공장위원회 사상의 확산이 시기상조도 아니며 인위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풍부히 증명한다. 가까운 미래에 이런 유형의 물결은 불가피할 것이다. 공장위원회 수립을 위한 운동을 제때에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투쟁의 폭발에 의해 놀라자빠지는 꼴을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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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6 11:58 2005/09/1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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