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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3
    친절한 금자씨 문학적인 크리티시즘.
    가나니점 필립
  2. 2009/04/08
    조심하자 HID, 조심하자 military-police state
    가나니점 필립
  3. 2008/10/03
    ahora
    가나니점 필립
  4. 2008/09/27
    홍익인간 주의
    가나니점 필립
  5. 2008/09/09
    좀 갈등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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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8/13
    6.25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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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8/12
    남쪽의 청년들은 역사를 잃었다.
    가나니점 필립
  8. 2008/08/11
    독립? 정부수립일? 음모? - 한토마에서 퍼온글
    가나니점 필립
  9. 2008/08/09
    네오리버럴 과 군사정권에서 나온 칠레는 지금
    가나니점 필립

친절한 금자씨 문학적인 크리티시즘.

 

금자, 감옥에서 1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영화는 그녀의 열렬히 종교적인 감옥안에서의 삶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전도사에 의해 스카웃되듯 종교에 연루된 그녀의 감옥밖에서의 첫번째 행동은 “why don’t you screw yourself.” (너나 잘하세요). 여기서 우리는 금자의 감옥안과 밖에서의 다른 행동에 의아함을 가지게 되며, 감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싶다는 의문을 품지 않을수 없다.
 
빵집에서 같이 일하게 될 소년이 묻는다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금자 대답한다. “그냥 금자씨.”
남파간첩으로 30년을 복역한 치매노인이 금자에게 말한다. “이 꽃을 너에게 준다. 동지에게는 원수가 있으니.”
간통죄.
마녀 – 죄수들간의 왕, 죄수들은 다 같은 죄수이다. 죄목이나 죄의 무게가 다를뿐 감옥안에서는 같은 죄인일뿐. 하지만 마녀가 존재하면서 죄수들간의 계급격차가 생기는것은 마녀로 인해 핍박받는 죄수들에게는 하나의 적대시 할 대상이다.
금자가 “마녀”의 이름을 이어받게되고 “마녀”가 완전히 다른 생활을 다수의 죄수들에게 제공하게 된다는것은 중요하다.
“자기 스타일이 많이 변했네, 왜이렇게 눈은 시뻘겋게 칠하고 다녀.” “친절해 보일까봐.” 금자는 자신이 친절하지 않다는걸 보여주려한다. 그래서 빨간 눈화장은 그녀가 말한대로 친절하게 보이지 않기 위한 수단인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녀는, 그녀의 죄수동료들에게 무관심한 태도에서도 나타나듯이, 남의 눈치볼 필요없이 그녀의 할일을 할 셈인거다. 그럼에도 모든 죄수들이 그녀에게 변했다고 말하는것은 그녀와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큰 오해가 있다는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담당형사와 금자의 만남에 담당형사의 아내와 금자의 어린 빵집 동료는 지극히도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 “누구야?”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 하지만 대답에 따라 금방이라도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바꿀 태세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독하게도 전문적이고 사무적인 관계인 “형사”와 “살인용의자”. 실제로 당사자들은 너무도 차분하지만 그주위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붉히는것이, 이 장면에서 실제로 어떤일이 있었는지 더욱 잘 아는 금자와 형사를 주인공이라고 봤을때 주변인인 아내와 어린 빵집 동료는 어쩜 전문성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이해와 실천이 떨어지는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것은 아닌지…
금자의 범행증명 회상장면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악마 물러가라하며 예수를 찾고, 사진기자들은 백선생이 옆에서 승리의 스트라이크 사인을 금자에게 태연히 보내는 동안에도 금자 – 범인이 아닌 – 를 쉴세없이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금자가 마네킹에 나비고름을 메며 당황하지만 우르르 터지는 플래시 발광 소리와 함께 기자의 전문성은 하루살이 마냥 사라진다.
“그러니까 유괴범이 유괴범의 아이를 유괴한거야.” -그러니까 노동자가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한거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착취된 노동자 부모들의 자본주의 안에서의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인해 아이들의 고난은 운명적인것이 되었다. 금자도 그랬지만 지금의 금자는 다르다. 직장에서 가불도 3개월씩치씩 자신의 전문성으로 꿀리지 않고 이루워 낸다.
아이는 엄마를 금자라고 부른다. 엄마일수 없고 금자일수 밖에 없는거다. 자신의 어린시절 무력함 속에서 생겼던 딸에게 볼품없고 분노섞이기만한 현실을 준것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찾은 가족안에서의 관계에서까지도 이어지는거다. 여기서, 나는 한국의 전쟁이후의 지난 근대역사를 떠올린다. 힘이 없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역사가 정해졌고 그로인해 근 60년간 우리는 변화를 꿈꾸기 힘든 부패의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는것에 큰 공통점을 찾았다 …
백선생의 직업 – 영어강사 – 프로페셔널리즘의 상실 – 흉내내기식의 껍데기 뿐인 우리사회의 부패를 보여줌
금자는 왜 벌써 죽어서 묻힌 차가운 백선생의 얼굴을 향해  총알을 두발 남긴후 총을 백선생과 함께 묻을까?
“생일축하합니다.” (happy birthday song) – “sorry, it felt like birthday.”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복수끝에 흘러나오는 생일 축하노래는 혼돈스럽고, 의아하다. 이런 아이러니 를 모두들 합창하며 되새긴다. 노래의 이유를 알건 알지 못하건 현재 그들의 상태가 행복하건 불행하건 빵집에 모인 하나의 인생의 주인공들은 반사적인 행동을 보일뿐 자신들의 모습이나 행동에 주체인지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의 비논리성을 더욱 확신시키는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배고픔에 케이크를 먹다가 계좌로 돈을 넣어주냐는 질문에서 “프랑스에서는 천사가 지나가는거래요.” 라며 뭐하나에도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고 이끌려 다니기만 하는 군중심리를 꼬집어 낸다. 감독은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행동과 비현실적인 행동을 나란히 배치하며 우리네 모습을 꼬집는다, 극중 금자의 얼굴에 나타나듯이.
복수후 금자는 벌건  눈화장을 지운다. 그리고 그녀의 발아래로 흐르는 원모의 구슬 (marble), 그녀는 약간은 뿌듯한 얼굴 표정을 보이며 그녀의 생각을 아직은 어린모습의 원모에게 이야기 해주려 한다. 하지만 금새 자란 원모는 그녀에게 제갈을 물리며 아무 이야기도 듣기 싫다는듯한 표정을 짓고는 사라진다. 그렇다, 원모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다. 그의 부모는 돈문제에 이혼문제 시달리는 삶을 계속하고 있고, 원모에게 사죄하지 않는다. 금자는 그녀가 사죄를 하는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긴 일이지만 이미 끝난일이다. 원모는 죽었고, 그때 원모가 죽게 놔두었던 패행의 사회는 그대로다. 이 영화속에서는 마녀이고, 천사인 금자조차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거다. 그리고, 그녀는 피해자에 의해 올바르게 괄시받아 지는것이다. 마치 세월이 지나고 청년이 기성세대가 되어도 사회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부패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는것처럼. 다시 말하자면 원모는 사회의 부패로 죽었지만 사회는 원모에게 사죄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변화는 없다. 한마디로, 금자도 백선생도 같은 죄인일뿐이다. 백선생이 말하듯이,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는거예요, 사모님.”
 
“이금자는 어려서 큰 실수를 했고, 자기 목적을 위해 남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어릴적 자신이 원하던 영혼의 구혼을 끝내 얻지 못했다.” … “나는 그럼에도 그렇기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금자씨는 용서받지 못하지만, 사랑받을수 있었다. 비록 그녀가 더이상은 차가운 눈을 향해 순수하게 입을 벌리고 무죄스러움을 감미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둘러싸는 흰눈은 그 흰눈의 맛과 의미를 아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연대감을 줄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금자가 더이상은 자신을 돌릴수 없데도 그녀의 노력은 그녀를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를 그럼에도 사랑하게 할것이다.
이쯤에서 금자가 죽은 백선생의 얼굴에 총을 쏜이유가 나온다. 영혼의 구원을 갈구 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금자는 비논리적으로 이미 죽은 백선생의 얼굴에 총을 쏨으로써 구원이 될까 하는 어렴풋한 기대로 쏜것이다. 총을 쏘기 전이나 쏜 후나 그녀에게 변한것이 없다는것은 그녀의 행동을 통해 잘 나타나기도 한다.
“안녕,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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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자 HID, 조심하자 military-police state

HID, 특수임무수행자회, 미국이 약속한대로 일본이후에 한반도의 남쪽부분을 지배했을때, 북의 정보를 캐기위해 자신의 나라에 그대로 있던 특수임무수행집단을 그대로 한반도의 남쪽으로 들여오게된다. 그 후, 미국에 의해 들여온 이 단체는 엘리트들의 필요에 의해 씌여졌고, 없애고 다시 만들기를 1950, 1956, 그리고 1971년에 해제되었다. 영화 실미도, 혹은 1.21사태의 이야기였던 1968년 1월 21일의 사건도 이 역사에 포함된다.

 

문제는 이 집단이 어디에 쓰여지느냐 이다. 특수임무수행자회는 한 나라가 가질수 있는 단체중에 가장 이념적으로 군사적이게 설계되었고 나라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어 졌다고 할수 있다.

 

이 집단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권을 철저하게 묵살하고나서야만이 이 집단의 존재가 확고해진다는것이다. 모든 군대가 그렇듯이, 때리고 겁주고, 삶의 가치를 가장낮은곳으로 떨어뜨린후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쉽게 길들여질수 밖에 없는것이다. 스파르타의 군대문화가 어린아이들을 강간하고 강간하게 시키고 나서야 시작되는것처럼 군기관은 인권, 윤리, 도덕을 철저히 짓밟는 어떤것을 만들어내는것이다.

 

하지만 이 부대의 해제와 동시, 그리고 그 이후에 미국에서 건내준 엘리트들을 위한 개처럼 쓰여지는 이 부대는 지하로 들어가서 극비리에 진행되고 생성되게 되었다. 지금의 HID가 위에 말한것과 같은 역사를 대표하는 단체인데, 이 단체는 다른말로는 북으로 간첩활동을 하기위해 조련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겠지 북에 조련된 목적대로, 많이 죽기도 죽었겠고.

 

허나 더 큰 문제는 이 단체가 최근에 해온 일들이다.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 유족동지회와의 마찰, 촛불집회 참가자들과의 마찰, 그리고 진보신당에서의 마찰. 이 사건들은 큰의미를 갖는데,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엄청나게 위험한 이 사람들이 정부에 의해 방치되었고, 엘리트들에 의해 철저히 교육당한 그들의 생각은 쉽게 추측할수 있다.

 

엘리트 -> 정부 -> 군사정부 -> 친미 -> 친일 

 

그들은 2008년 이전으로는 대한민국 애국청년동지회, 그리고 2008년후로부터 특수임무수행자회로 한 시민단체로서 합법화 되었다. 이들은 더이상 대외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이 아니라, 대내에서 이들의 생각을 합법적으로 펼칠수 있는 합법자가 된것이다.

 

합법속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일들을 꿈꿀것일지 그건 너무도 뻔하다.

 

우린, 주의해야한다. 그리고 혁명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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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ora

왜 촛불이 졸 약해졌나?

사람들 좀 연행되서 약해졌나? 아닐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면 않되는데, 눈뜨고 코베일까 걱정이다.

시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어딜 쇠고기를 못쓸걸 들여와! 했는데 들어왔고, 이제 EU FTA에서 물도 개방되고 약도 개방되고 그러고있음과 동시에 미군주둔지가 더 넓어지고 군사비를 평소쓰던거에 더들이고 이런거에 다 눈뜨고 코베이듯이 당할꺼 같은데 상태를 보아하니 hegemony 점령 말기에 온거같에. hegemony는 저항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고 해도 위에 것들이 다 실행되고 나면, 빈부격차도 심해지고 사회복지국가를 지금 실현을 하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그냥 우습게 보일뿐, 그것도 머리 잘 쓴다는 책 좀 읽었다는 정치인들인데, 역시 정치인들은 바보가 많은건가보다.

 

지금이 기로인데, 언제나 지금이 기로인데. 왜 평화적인 싸움을 생각하는거지? 지금 목숨걸지 않으면 싫어하는 일들이 차곡차곡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는데.

지금 목숨 걸자

역사는 언제나 지금부터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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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주의

남쪽과 북쪽은 60년간을 다른 아이디올로지 아래에서 살았는데 60년간의 시간 안에 몇가지 중요한 단어들이 있다. 미국, 콜드워, 소비엣 유니온의 붕괴, 박정희 독재정권, 준타공화국, 홍수, 가뭄, 그리고 신자유주의. 단어들중 박정희 독재정권과 준타 공화국은 1987 민주항쟁, 1989 이후로 노태우의 직선투표제 체택을 기점으로, 표면적인 역사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가 남쪽 사회에 들어섰다. 후로의 기점은 김영삼의 세계화정책으로 남쪽 경제를 자유무역을 위해 열어버림으로써 경제 시스템이 변화를 겪게 됨가 동시에 아이엠에프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태를 자초하였다. 이후에 금도 팔고 달러도 팔고 해서 엄청 빠른 시일 안에 빚을 갚았지만, 이것은 박정희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저축하는것을 미덕으로 아는 국민들의 희생정신에 의해서 생길 있었던 일이라 하겠다. 한가지, 국가의 잘못된 교육에 세뇌된 국민들의 잘못된 민족주의와 애국정신에 의한 일이라 수도 있으리라. 김대중, 노무현, 그들은 좌파가 아닌 어줍지 않은 reformists. 예로는 김대중이 미국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피하게 일과, 이후 그의 선거기간에 우파당과 손을 잡고 당선되었던것이 있겠다. 물론, 김영삼이 먼저 김대중에게 배신을 때리고 그와 같은 일을 했던 일이 있어서 였겠지만. 노무현 역시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는, 쿠바빼고,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슴 활짝 펴고 두손으로 끌어 안았던 사람이다. 지금 남쪽 사회에 변화가 있는것은 아니다. 수순을 밟아 온거고 이명박이 크게 대통령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다. 단지,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지 않았던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있다. 60년의 시간동안 남쪽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변하지 않은것이라면 노예의식, 노동자들에 대한 핍박, 잘못된 민족주의와 애국정신, 필요없는곳에 존재하는 유교사상, 군대문화,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충성맹세 (이것은 교육이 크게 한몫을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남쪽사회가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지켰다면 어땠을까? 우선, 미국이 남쪽땅에 자기들의 군부대를 주둔시키게 하지 않았을것이고, 우리 남쪽땅에 쇠기둥을 박고 분단선을 지들 마음대로 긋게 하는일은 추어도 목숨걸고 막았을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라고 여기는 유교사상은 본래 한반도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였고 그것은 유교가 팽배하던 시절에도 인간관계로 맺어진 노비-관료 사이에 주의상황에 따라 서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평등한 인간다움이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유교때문에 사람들이 체면을 너무 차려서 자신들이 원하는것이 유교인지 자기 자신의 의지인지 헤깔려하고 껄끄러워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오늘의 사회에서도 존재하니 이것은 진정 현사회의 문제중 하나라고 할수 있겠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쌩구라일지도 모르는 한국사회의 단일민족주의의 주춧돌인 단군의 사상인데, 단군을 신같이 대접하기에 앞써 (이것 역시도 유교사상이다), 우리는 말을 가슴에 세겨야 할것이다. 그래야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지 이말이 우리 돌아가는 세상에 들어맞기 때문일것이다. 거꾸로 생각이지만, ‘홍익인간으로 사는 일은 단지 국적으로나 민족정신으로 제한된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아주 평등하게 사람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지금 시간에는 자연을 보호하는일,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절약하는일, 자원을 아끼는일로 부터 시작할수 있다. 여기서 부터 시작하면, 자동차를 타지 않는일, 농사를 짓는일, 자전거를 타는일, 군대를 거부하는일,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는일등이 이차적으로 나올수 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때 식민지주의를 반대하고 fascism 몰아낼수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싸움을 벌일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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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갈등인 일

좋은 사람도 만나봤지만 나쁜 사람도 만나봤는데

난 나쁜 사람들한테 신경이 더 쓰이는 편인것같다.

좋은 사람들이야 좋은대로 할수 있지만 나쁜 사람들은 불편하기 그지 없으니까

나쁜 사람중에는 고집이 쎈 사람이 많은것 같다. 내가 주관적하는 이야기니까, 난 고집 쌘 사람이랑은 잘 않되는것 같은것 같다. 그냥 불편한게

 

또 내 경험을 짚어보면 고집 쌘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많이들 머리 굴려가며, 혹은 아량좁게 남들의 행동에 간섭하고, 그들도 모르는세에 망쳐놓을때가 많은것 같다.

 

내가 만난 한 고집센 사람은 우두머리이고 싶어서 남들 관계를 자기가 일일이 조정하고, 서로간에 오간 이야기를 공유하지 않고 자기 필요한때에만 자기 필요한 시기에 풀어댐으로서 삶을 비지니스하듯이 흥정하며 지내는것을 보았고, 또 다른 비슷한 류의 사람은 자기가 알고있는것이 최고로 생각하고 그것과 관계없는 생각이나 정보는 간섭하고 판단내리고 규정내려서 깔고 뭉게도 상관없는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사이에 물을 흐려버리는 경우도 있드라.

 

이런 사람들을 대할때에는 난 참 열심히 대했었는데, 물론 그들도 그들이 받아보지 못했을 지극한 관심을 나에게서 받았을텐데, 그 과정에서 나는 지쳐가고 의기소침하기도 했었던듯 싶다.

 

이 두가지 나의 경험의 공통점은 이들과는 모르고 소통하고 살지 않아도 괜찮을것 같다는 믿음이 생긴다는것이다.

 

어쩜 사람한테 그런 믿음을 줄수 있을까? 남을 모르고 살았을까? 너무 자기 자신만 생각했을까?

 

이번 기회에 맺고 끊음을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나는 조금 아쉬워하겠지만 많이 아쉽지는 않다. 내가 준게 더 많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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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투데이

만약 육이오 전쟁이 지금 2008년도에 일어난다면, 당신들은 그당시 우리 어머니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랬던것 처럼 공산당 빨갱이 군사와 미국과 남한의 정신나간 군사들 사이에서 당신들의 자세를 어찌할지 어쩔줄 모르다가 외세의 아이디올로지에 의해 개죽음 당할것이다.

 

이렇게 아닐한 것이 현 남한 사람들의 자세인것이다.

 

그 이유는 앞으로 밝혀 나가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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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청년들은 역사를 잃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고 내가 어디로부터 나온 누구이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던적이 있던가?

 

난 누구다! 하고 말할수 있기를, 그 방법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기를 한 10년한거 같다.

 

난 외국에서 살고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이 나라에는 한국 사람들도 살고 있는데, 이 한국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체란 (내 나이또래에서 더욱 많이 보이는) 돈 많은 사람에겐 굽신거리고, 돈, 돈, 돈 하며 자신들의 생명이나 인생에 대한 고귀함을 잃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유행하는 옷을 사서입는데, 그 옷들은 잡지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헐리우드 스타들이 입는 옷들이다. 옷을 멋지게 입는일은 괜찮다. 모두가 자기 모습에 대해 기분이 좋고 싶어하니까.

 

하지만 내가 그들을 봤을때, 옷은 잡지에 나오는 아메리칸을 하고 있으나 그 자신들은 아메리칸이 아니라 참 어이없기 그지없다.

 

이곳 고등학교 생활에서 한국아이들에 대해 내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것은, 그들 자체에서도 정치인들 생활을 만들던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다워야 아이들다운것이 무엇인지 어른이 되어서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들다운것을 아이들일때 깨닿지 못하고 어른이되면, 그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졌을때 어떤 도움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것인지는 나를 우울하게 할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곳 한국산 고등학교 학생들은 입을 다물고 주위를 의식하는 일을 많이 하였는데, 나한테는 그것이 정치인들이 나는 모릅니다 하는것같이 보였다.

 

그 학생들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을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건데, 자기 가슴을 침묵으로 걸어잠구고 넓디 넓은 하늘을 껴안기는 너무도 힘들것같다.

아이들은 하늘을 가슴에 담을수 있어야 하지 않던가?

 

인간관계를 적대시하고, 이해관계를 따져가며, 돈으로부터 제약받은 어린이들의 마음은 갈곳이 없다.

 

이런 상태는 우연이 아닌데. 하늘을 가슴에 품을줄 아는 아이들을 대를 이어서 배출해 내는것은 그만큼 이 사람들의 삶이 절박하고 매말라있는것일꺼다.

 

왜? 이렇게 말라있는가?

 

이 해답은 역사에서 찾을수 있는데 그 역사를 남쪽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잃어가고 있다.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나는 나의 역사를 남한에서 배운것이 하나도 없다.

바다건너와서야 나의 정체성을 알기 시작했는데, 이것이야 말로 남한 사람들의 상태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키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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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정부수립일? 음모? - 한토마에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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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주년"

이 표현은 이 나라의 역사를 팔아먹는 것입니다.

 

이명박은 1919년 3.1 독립선언으로 대한민국이 법적으로 독립한 것을 부정하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하여 대한민국을 1948년 신생한 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 조선일보'건국대통령'인 이승만의 동상이 4.19혁명 때 국민들에 의해 철거된 뒤 48년째 방치되어 있는 것을 슬퍼하면서 복원을 주장했습니다. (2008.3.27.)

* 이후 조선일보는 건국 60주년 특집 릴레이기사 시리즈까지 실으면서 건국 60주년 분위기를 잡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 동아일보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일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을 크게 실었습니다. (2008.4.1.).

* 뉴라이트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는 기존 국사교과서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 청와대건국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 건국60주년 기념사업추진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 건국 60주년을 맞아 전국 지자체 합창단이 동시간대 합창을 준비하라고 했고

* 게다가 건국 60주년 기념 대사면을 한다고 합니다.

* 청소년들을 상대로 건국 60주년 기념 국토대장정 등을 실시해 청소년들을 세뇌하고 있습니다.

 

### 이러다가는 기어이 돌아오는 광복절엔

광복 63주년이 아닌 '건국 60주년'기념식을 하겠습니다.###

 

미국 독립기념일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 7월 4일입니까,

아니면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승인한 1783년 9월 3일입니까?

당연히 전자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도 우리에겐 일본의 강점이 "사실적"으로 종료된 날일 뿐,

우리의 법적, 당위적인 독립기념일도 당연히 1919년 3월 1일, 3.1절입니다.

이명박이 과거사를 잊자며 순국선열을 모욕했던 바로 그날,

3.1절이 대한민국의 시작입니다.

 

3.1운동 직후 4월 13일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선포하고

모든 문서에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결의한 선서문입니다.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이라고 날짜를 적고 있고,

 

 

이봉창 의사 또한 그러했습니다.

"대한민국 13년 12월 13일 선서인 이봉창" 이란 글씨가 보이십니까?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선포한 대일본선전포고문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외무부장관 조소앙, 대한민국 23년 12월 10일"

이라는 날짜가 선명합니다.

 

 

이명박 일당이 '건국'이라고 말하는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가 스스로 발행한 "대한민국 관보 제1호"입니다. 우측 상단과 우측 하단에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는 날짜가 보이십니까?

이승만정부도 "연호에관한법률"을 제정하여 공용연호를 단기로 정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30년"이란 연도표시를 관보에 했고,

 

 

이것은 1958년 이승만정부가 스스로 발행한 "정부수립 10주년 기념우표"입니다.

이승만 스스로도 1948년의 정부수립을 두고 "건국"이라는 표현을 감히 쓰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1963년 발행한 "정부수립 15주년 기념"스탬프를 찍은 관제엽서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자신이 유신독재를 자행하던 1978년에도 "정부수립 3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해 정부수립이 건국이 아님을 명백히 했습니다. 결코 '건국'이란 표현은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꾸린 것은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입니다.

 

"건국"이라는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한 세력이 '그들만의 국부' 이승만을 신격화하기 시작한 조중동을 위시한 수구세력입니다. 그러면서 '건국 60주년' 운운하는 말로 국민을 세뇌시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인 양 미국을 등에 업고 임시정부를 배제한 채 친일정권을 그대로 계승한 이승만정부의 수립을 역사적 사건으로 미화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8월 15일의 정부수립선포식이라는 요란한 기념식보다 차라리 더 중요한 것은 7월 17일의 헌법제정공포이고(헌법전문과 본문끝에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이란 명의가 쓰여있습니다. 대한민국이 8월 15일 건국되었다면 7월에 공포된 헌법에 적힌 "대한민국 국회의장"은 허깨비란 말입니까?), 사실 5천년 역사이래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것은 1919년 임시헌장의 공포로 이미 이루어졌던 일입니다. 한국역사상 민주공화정정부도 임시정부가 최초입니다.

 

건국, 건국기념일 운운하는 사람들은 정작 헌법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1948년 제정헌법 전문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1987년 현행헌법 전문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헌법은 제헌헌법이나 현행헌법이나, 헌법 제1조보다 앞서는 '전문'에서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되었음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인호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대한민국 시작이 1919년이라는 박성수 교수님의 주장에 대해 "임시정부 기준은 정신사적 의미일 뿐이다. 당시 우리나라가 자주적 역량이 있었나?" 라는 매국적인 반론을 하여 독립운동사를 폄훼했습니다.(한국일보 2008. 7. 15.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7/h2008071602421184330.htm )

 

이게 건국 운운하는 자들의 역사인식 수준입니다. 독립운동에 목숨과 정열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몰아내고 1948년 미국을 등에 업고 정권을 쥔 친일세력을 건국주체로 만들려는 욕심역사마저 팔아먹고 있습니다.

 

1948년의 정부수립도 물론 정당한 평가를 받을 일이지만 이를 두고 '건국'이라고 한다면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의 근본이념인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이고, 1948년 이전의 한반도는 적법하게 병합된 일본제국의 속령일 뿐이며, 임시정부는 한낱 테러집단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인물의 우상화를 위해 자기나라 역사를 팔아먹는 이 정부는 결국은 영토와 주권마저 팔아먹게 될 것입니다. 

 

올해, 서기 2008년, 단기 4341년은  제89주년 3.1절을 맞은 해로,

임시정부가 썼던 대한민국 연호를 쓴다면 올해는 "대한민국 90년"이 됩니다.

 

* 아고라에 대한민국 연호쓰기를 제안합니다. *

말머리에 [대한민국90년]을 달아주십시오.

건국 60주년이라는 매국적 표현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90년 8월 10일

 

 

 

* "건국60주년" 음모 반대서명 *

청원서명하러가기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6434

(삭제되었습니다. 몇 주전까지도 상당히 많은 인원이 서명했는데 왜 없어졌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다시 만들어보겠습니다.)

 

 

* '건국 60주년 기념', '건국절 제정' 망동 총력저지에 나섭시다. *

광우병 쇠고기를 참을지언정 왜곡된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광복절까지 열흘도 남지 않았습니다.

 

* 속보 하나 더 *

이명박 정부가 경복궁 옆에 '현대사박물관'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2008.8.6. 한겨레, <잊을만 하면 '광화문 플랜', 청와대-정부-서울시 '엇박자'>

 * 2008.8.6. 서울경제, 사설: <'현대사박물관' 졸속추진 안돼야>

 이 때문에 본래 근현대사박물관을 유치키로 했던 대전시가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명박이 현대사에 손을 대는 순간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갈지는 불 보듯이 뻔합니다.

무서운 음모는 단계별로 차곡차곡 추진 중에 있습니다.




 

* 믿었던 언론사들도 정부의 '건국 60주년'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

항의합시다.

 

* 조,중,동,문,매는 원래 그런 애들이니 제낍니다.

* YTN은 이미 이명박에게 접수되었으니 그렇다 칩시다.

 

* CTS(기독교TV)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란 자막을 화면 상단에 배치해 개신교인들에게 정부시책을 충실하게 주입하여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 KBS는 현재 '대한민국 60년- 역사가 움직인 순간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시리즈로 방영중입니다.

* KBS는 일일연속극 방송 전 등 시청률이 최고 높은 시간대에 '광복 63주년, 건국 60주년'이라는 제목의 정부광고를 내보내고 있으며

* MBC도 간간히 캠페인 화면 같은 곳에서 '대한민국 60년'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다행히 KBS와 MBC는 뉴스 등에서는 '건국 60주년'이란 표현은 거의 쓰지 않고 '정부수립 60주년'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의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함께 읽으실 관련기사 (링크연결)

경향신문 칼럼 <올해는 대한민국 90년, 정부수립 60주년> (2008.6.4.)

경향신문 기고 <대한민국 역사가 위태롭다> (2008.5.15.)

경향신문 기고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2008.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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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리버럴 과 군사정권에서 나온 칠레는 지금

나는 이번 여름 6월 22일부터 7월 24일까지 칠레에서 머물렀다.

 

칠레는 현재 신자유주의에 의해 빈부의 차이가 극에 달한 나라중에 하나인데, 그 유래는 결정적으로 1973년에 일어났던 쿠데타 군사정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70년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Salvador Allende) 가 unidad popular 선거운동의 리더로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1973년 군대장 어구스토 피노쉐 (augusto pinochet) 가 미국의 리차드 닉슨과 핸리 키싱어의 자금과 CSI의 도움으로 인해 그의 생명이 불안정한 상태로 몰렸고, 칠레 국민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운명을 달리했는데.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시간, 칠레에서는 많은것이 바뀌었다.

 

1990년대에 독재자 피노쉐가 그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소히 좌파라고 불리우는 미쉘 베췔렛 (michelle Bachelet) 이 나라의 대통령자리에 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는데, 군대정권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살해당했고, 고문당했으며, 많은 정치난민들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고 길거리로 내몰렸는데, 그 악독한 충격을 내가 만난 한 칠레 친구는 말하길: 버스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모두 정자세로 앞만을 바라보고 목적지까지 갔다는 것이다.  

 

이 기간의 중요성은 군사독재정치 아래에서 부익부 빈익빈과 물질의 세계화, 그리고 네오리버랄리즘이 이 나라에서 이루워졌다는 점이다.

 

그로인해, 칠레에 노동자들은 3중 4중으로 착취당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됬다. 나라 외부에서부터 (네오리버랄리즘)으로 인해 오는 착취, 나라 안에서부터 오는 착취 (군사정부의 부패, 기업들의 인간착취). 이런 사실은 제 3세계의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오는 하나의 성향이지만

 

군사정부 안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썩어들어간 부패는 아직도 군인들이나 경찰들, 그리고 정치인들 사이에서 부의 공유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들은 살찌고, 노동자들과 실직자들은 말라만 가고 있는데

 

1990년 뉴스나 정치는 정권이 다시 사회주의자 리더로 넘어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어줍지 않은 신기루를 사람들의 눈에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 좌파 대통령은 교육을 상품으로 팔아버리고 (피노쉐에 의해 첫번째 시행), 학교들의 시장경쟁으로 인해 학생들은 학비를 내지못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다니더라도 창문이 없는 교실안에서 선생님들이 학교기업주에 의해 일년에 3, 4명씩 교체되는 학교 안다니니만 못하는 상태이다.

 

학생들은 일부 아옌대주의자들과 힘을합쳐 경찰들을 싸우고 좌파교수들에게 교육정책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듣는등 이 나라의 학교시스템보기를 걸레보듯이 취급하고 있는 상태이다.

 

베첼렛, 이 좌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돈으로 넘어간 그들과 별 다를것 없는 공산주의당의 당원들과 함께 아닌척 아닌척 나라를 팔아넘기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반대하는 일부 radical party들은 잠수를 타고 아트이벤트를 통해 자신들의 포부를 밝히는것을 중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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