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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과 북쪽은 60년간을 다른 아이디올로지 아래에서 살았는데 그 60년간의 긴 시간 안에 몇가지 중요한 단어들이 있다. 미국, 콜드워, 소비엣 유니온의 붕괴, 박정희 독재정권, 준타공화국, 홍수, 가뭄,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 단어들중 박정희 독재정권과 준타 공화국은 1987년 민주항쟁, 1989년 이후로 노태우의 직선투표제 체택을 기점으로, 표면적인 역사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가 남쪽 사회에 들어섰다. 그 후로의 큰 기점은 김영삼의 세계화정책으로 남쪽 경제를 자유무역을 위해 열어버림으로써 경제 시스템이 큰 변화를 겪게 됨가 동시에 아이엠에프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태를 자초하였다. 그 이후에 금도 팔고 달러도 팔고 해서 엄청 빠른 시일 안에 빚을 갚았지만, 이것은 박정희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저축하는것을 미덕으로 아는 국민들의 희생정신에 의해서 생길 수 있었던 일이라 하겠다. 또 한가지, 국가의 잘못된 교육에 세뇌된 국민들의 잘못된 민족주의와 애국정신에 의한 일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김대중, 노무현, 그들은 좌파가 아닌 어줍지 않은 reformists. 그 예로는 김대중이 미국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피하게 된 일과, 이후 그의 선거기간에 우파당과 손을 잡고 당선되었던것이 있겠다. 물론, 김영삼이 먼저 김대중에게 배신을 때리고 그와 같은 일을 했던 일이 있어서 였겠지만. 노무현 역시 지금 전 세계를 뒤 흔들고 있는, 쿠바빼고,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슴 활짝 펴고 두손으로 끌어 안았던 사람이다. 지금 남쪽 사회에 큰 변화가 있는것은 아니다. 수순을 밟아 온거고 이명박이 크게 그 전 대통령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다. 단지,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지 않았던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60년의 시간동안 남쪽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다. 변하지 않은것이라면 노예의식, 노동자들에 대한 핍박, 잘못된 민족주의와 애국정신, 필요없는곳에 존재하는 유교사상, 군대문화,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충성맹세 (이것은 교육이 크게 한몫을 한다).
좀 다르게 말하자면, 남쪽사회가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지켰다면 어땠을까? 우선, 미국이 남쪽땅에 자기들의 군부대를 주둔시키게 하지 않았을것이고, 우리 남쪽땅에 쇠기둥을 박고 분단선을 지들 마음대로 긋게 하는일은 추어도 목숨걸고 막았을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라고 여기는 유교사상은 본래 한반도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였고 그것은 유교가 팽배하던 시절에도 인간관계로 맺어진 노비-관료 사이에 주의상황에 따라 서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평등한 인간다움이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유교때문에 사람들이 체면을 너무 차려서 자신들이 원하는것이 유교인지 자기 자신의 의지인지 헤깔려하고 껄끄러워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오늘의 사회에서도 존재하니 이것은 진정 현사회의 큰 문제중 하나라고 할수 있겠다.
‘홍익인간’ 이라는 말이 있다. 쌩구라일지도 모르는 한국사회의 단일민족주의의 주춧돌인 단군의 사상인데, 단군을 신같이 대접하기에 앞써 (이것 역시도 유교사상이다), 우리는 이 말을 가슴에 세겨야 할것이다. 그래야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지 이말이 우리 돌아가는 세상에 딱 들어맞기 때문일것이다. 거꾸로 된 생각이지만, ‘홍익인간’으로 사는 일은 단지 국적으로나 민족정신으로 제한된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아주 평등하게 사람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는 자연을 보호하는일,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절약하는일, 자원을 아끼는일로 부터 시작할수 있다. 여기서 부터 시작하면, 자동차를 타지 않는일, 농사를 짓는일, 자전거를 타는일, 군대를 거부하는일,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는일등이 이차적으로 나올수 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나라를 이끌때 식민지주의를 반대하고 fascism을 몰아낼수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큰 싸움을 벌일수 있는것이다.
나는 이번 여름 6월 22일부터 7월 24일까지 칠레에서 머물렀다.
칠레는 현재 신자유주의에 의해 빈부의 차이가 극에 달한 나라중에 하나인데, 그 유래는 결정적으로 1973년에 일어났던 쿠데타 군사정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70년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Salvador Allende) 가 unidad popular 선거운동의 리더로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1973년 군대장 어구스토 피노쉐 (augusto pinochet) 가 미국의 리차드 닉슨과 핸리 키싱어의 자금과 CSI의 도움으로 인해 그의 생명이 불안정한 상태로 몰렸고, 칠레 국민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운명을 달리했는데.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시간, 칠레에서는 많은것이 바뀌었다.
1990년대에 독재자 피노쉐가 그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소히 좌파라고 불리우는 미쉘 베췔렛 (michelle Bachelet) 이 나라의 대통령자리에 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는데, 군대정권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살해당했고, 고문당했으며, 많은 정치난민들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고 길거리로 내몰렸는데, 그 악독한 충격을 내가 만난 한 칠레 친구는 말하길: 버스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모두 정자세로 앞만을 바라보고 목적지까지 갔다는 것이다.
이 기간의 중요성은 군사독재정치 아래에서 부익부 빈익빈과 물질의 세계화, 그리고 네오리버랄리즘이 이 나라에서 이루워졌다는 점이다.
그로인해, 칠레에 노동자들은 3중 4중으로 착취당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됬다. 나라 외부에서부터 (네오리버랄리즘)으로 인해 오는 착취, 나라 안에서부터 오는 착취 (군사정부의 부패, 기업들의 인간착취). 이런 사실은 제 3세계의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오는 하나의 성향이지만
군사정부 안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썩어들어간 부패는 아직도 군인들이나 경찰들, 그리고 정치인들 사이에서 부의 공유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들은 살찌고, 노동자들과 실직자들은 말라만 가고 있는데
1990년 뉴스나 정치는 정권이 다시 사회주의자 리더로 넘어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어줍지 않은 신기루를 사람들의 눈에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 좌파 대통령은 교육을 상품으로 팔아버리고 (피노쉐에 의해 첫번째 시행), 학교들의 시장경쟁으로 인해 학생들은 학비를 내지못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다니더라도 창문이 없는 교실안에서 선생님들이 학교기업주에 의해 일년에 3, 4명씩 교체되는 학교 안다니니만 못하는 상태이다.
학생들은 일부 아옌대주의자들과 힘을합쳐 경찰들을 싸우고 좌파교수들에게 교육정책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듣는등 이 나라의 학교시스템보기를 걸레보듯이 취급하고 있는 상태이다.
베첼렛, 이 좌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돈으로 넘어간 그들과 별 다를것 없는 공산주의당의 당원들과 함께 아닌척 아닌척 나라를 팔아넘기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반대하는 일부 radical party들은 잠수를 타고 아트이벤트를 통해 자신들의 포부를 밝히는것을 중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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