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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3
    친절한 금자씨 문학적인 크리티시즘.
    가나니점 필립
  2. 2008/09/27
    홍익인간 주의
    가나니점 필립
  3. 2008/08/09
    네오리버럴 과 군사정권에서 나온 칠레는 지금
    가나니점 필립

친절한 금자씨 문학적인 크리티시즘.

 

금자, 감옥에서 1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영화는 그녀의 열렬히 종교적인 감옥안에서의 삶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전도사에 의해 스카웃되듯 종교에 연루된 그녀의 감옥밖에서의 첫번째 행동은 “why don’t you screw yourself.” (너나 잘하세요). 여기서 우리는 금자의 감옥안과 밖에서의 다른 행동에 의아함을 가지게 되며, 감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싶다는 의문을 품지 않을수 없다.
 
빵집에서 같이 일하게 될 소년이 묻는다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금자 대답한다. “그냥 금자씨.”
남파간첩으로 30년을 복역한 치매노인이 금자에게 말한다. “이 꽃을 너에게 준다. 동지에게는 원수가 있으니.”
간통죄.
마녀 – 죄수들간의 왕, 죄수들은 다 같은 죄수이다. 죄목이나 죄의 무게가 다를뿐 감옥안에서는 같은 죄인일뿐. 하지만 마녀가 존재하면서 죄수들간의 계급격차가 생기는것은 마녀로 인해 핍박받는 죄수들에게는 하나의 적대시 할 대상이다.
금자가 “마녀”의 이름을 이어받게되고 “마녀”가 완전히 다른 생활을 다수의 죄수들에게 제공하게 된다는것은 중요하다.
“자기 스타일이 많이 변했네, 왜이렇게 눈은 시뻘겋게 칠하고 다녀.” “친절해 보일까봐.” 금자는 자신이 친절하지 않다는걸 보여주려한다. 그래서 빨간 눈화장은 그녀가 말한대로 친절하게 보이지 않기 위한 수단인것이다. 비록 그것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녀는, 그녀의 죄수동료들에게 무관심한 태도에서도 나타나듯이, 남의 눈치볼 필요없이 그녀의 할일을 할 셈인거다. 그럼에도 모든 죄수들이 그녀에게 변했다고 말하는것은 그녀와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 큰 오해가 있다는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담당형사와 금자의 만남에 담당형사의 아내와 금자의 어린 빵집 동료는 지극히도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인다. “누구야?”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 하지만 대답에 따라 금방이라도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바꿀 태세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독하게도 전문적이고 사무적인 관계인 “형사”와 “살인용의자”. 실제로 당사자들은 너무도 차분하지만 그주위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붉히는것이, 이 장면에서 실제로 어떤일이 있었는지 더욱 잘 아는 금자와 형사를 주인공이라고 봤을때 주변인인 아내와 어린 빵집 동료는 어쩜 전문성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이해와 실천이 떨어지는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것은 아닌지…
금자의 범행증명 회상장면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악마 물러가라하며 예수를 찾고, 사진기자들은 백선생이 옆에서 승리의 스트라이크 사인을 금자에게 태연히 보내는 동안에도 금자 – 범인이 아닌 – 를 쉴세없이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다. 금자가 마네킹에 나비고름을 메며 당황하지만 우르르 터지는 플래시 발광 소리와 함께 기자의 전문성은 하루살이 마냥 사라진다.
“그러니까 유괴범이 유괴범의 아이를 유괴한거야.” -그러니까 노동자가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한거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착취된 노동자 부모들의 자본주의 안에서의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인해 아이들의 고난은 운명적인것이 되었다. 금자도 그랬지만 지금의 금자는 다르다. 직장에서 가불도 3개월씩치씩 자신의 전문성으로 꿀리지 않고 이루워 낸다.
아이는 엄마를 금자라고 부른다. 엄마일수 없고 금자일수 밖에 없는거다. 자신의 어린시절 무력함 속에서 생겼던 딸에게 볼품없고 분노섞이기만한 현실을 준것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찾은 가족안에서의 관계에서까지도 이어지는거다. 여기서, 나는 한국의 전쟁이후의 지난 근대역사를 떠올린다. 힘이 없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역사가 정해졌고 그로인해 근 60년간 우리는 변화를 꿈꾸기 힘든 부패의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는것에 큰 공통점을 찾았다 …
백선생의 직업 – 영어강사 – 프로페셔널리즘의 상실 – 흉내내기식의 껍데기 뿐인 우리사회의 부패를 보여줌
금자는 왜 벌써 죽어서 묻힌 차가운 백선생의 얼굴을 향해  총알을 두발 남긴후 총을 백선생과 함께 묻을까?
“생일축하합니다.” (happy birthday song) – “sorry, it felt like birthday.”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복수끝에 흘러나오는 생일 축하노래는 혼돈스럽고, 의아하다. 이런 아이러니 를 모두들 합창하며 되새긴다. 노래의 이유를 알건 알지 못하건 현재 그들의 상태가 행복하건 불행하건 빵집에 모인 하나의 인생의 주인공들은 반사적인 행동을 보일뿐 자신들의 모습이나 행동에 주체인지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의 비논리성을 더욱 확신시키는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배고픔에 케이크를 먹다가 계좌로 돈을 넣어주냐는 질문에서 “프랑스에서는 천사가 지나가는거래요.” 라며 뭐하나에도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고 이끌려 다니기만 하는 군중심리를 꼬집어 낸다. 감독은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행동과 비현실적인 행동을 나란히 배치하며 우리네 모습을 꼬집는다, 극중 금자의 얼굴에 나타나듯이.
복수후 금자는 벌건  눈화장을 지운다. 그리고 그녀의 발아래로 흐르는 원모의 구슬 (marble), 그녀는 약간은 뿌듯한 얼굴 표정을 보이며 그녀의 생각을 아직은 어린모습의 원모에게 이야기 해주려 한다. 하지만 금새 자란 원모는 그녀에게 제갈을 물리며 아무 이야기도 듣기 싫다는듯한 표정을 짓고는 사라진다. 그렇다, 원모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다. 그의 부모는 돈문제에 이혼문제 시달리는 삶을 계속하고 있고, 원모에게 사죄하지 않는다. 금자는 그녀가 사죄를 하는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긴 일이지만 이미 끝난일이다. 원모는 죽었고, 그때 원모가 죽게 놔두었던 패행의 사회는 그대로다. 이 영화속에서는 마녀이고, 천사인 금자조차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거다. 그리고, 그녀는 피해자에 의해 올바르게 괄시받아 지는것이다. 마치 세월이 지나고 청년이 기성세대가 되어도 사회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부패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는것처럼. 다시 말하자면 원모는 사회의 부패로 죽었지만 사회는 원모에게 사죄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변화는 없다. 한마디로, 금자도 백선생도 같은 죄인일뿐이다. 백선생이 말하듯이,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는거예요, 사모님.”
 
“이금자는 어려서 큰 실수를 했고, 자기 목적을 위해 남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어릴적 자신이 원하던 영혼의 구혼을 끝내 얻지 못했다.” … “나는 그럼에도 그렇기때문에 나는 금자씨를 좋아했다.”
금자씨는 용서받지 못하지만, 사랑받을수 있었다. 비록 그녀가 더이상은 차가운 눈을 향해 순수하게 입을 벌리고 무죄스러움을 감미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둘러싸는 흰눈은 그 흰눈의 맛과 의미를 아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연대감을 줄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금자가 더이상은 자신을 돌릴수 없데도 그녀의 노력은 그녀를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녀를 그럼에도 사랑하게 할것이다.
이쯤에서 금자가 죽은 백선생의 얼굴에 총을 쏜이유가 나온다. 영혼의 구원을 갈구 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금자는 비논리적으로 이미 죽은 백선생의 얼굴에 총을 쏨으로써 구원이 될까 하는 어렴풋한 기대로 쏜것이다. 총을 쏘기 전이나 쏜 후나 그녀에게 변한것이 없다는것은 그녀의 행동을 통해 잘 나타나기도 한다.
“안녕,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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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주의

남쪽과 북쪽은 60년간을 다른 아이디올로지 아래에서 살았는데 60년간의 시간 안에 몇가지 중요한 단어들이 있다. 미국, 콜드워, 소비엣 유니온의 붕괴, 박정희 독재정권, 준타공화국, 홍수, 가뭄, 그리고 신자유주의. 단어들중 박정희 독재정권과 준타 공화국은 1987 민주항쟁, 1989 이후로 노태우의 직선투표제 체택을 기점으로, 표면적인 역사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가 남쪽 사회에 들어섰다. 후로의 기점은 김영삼의 세계화정책으로 남쪽 경제를 자유무역을 위해 열어버림으로써 경제 시스템이 변화를 겪게 됨가 동시에 아이엠에프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상태를 자초하였다. 이후에 금도 팔고 달러도 팔고 해서 엄청 빠른 시일 안에 빚을 갚았지만, 이것은 박정희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저축하는것을 미덕으로 아는 국민들의 희생정신에 의해서 생길 있었던 일이라 하겠다. 한가지, 국가의 잘못된 교육에 세뇌된 국민들의 잘못된 민족주의와 애국정신에 의한 일이라 수도 있으리라. 김대중, 노무현, 그들은 좌파가 아닌 어줍지 않은 reformists. 예로는 김대중이 미국정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피하게 일과, 이후 그의 선거기간에 우파당과 손을 잡고 당선되었던것이 있겠다. 물론, 김영삼이 먼저 김대중에게 배신을 때리고 그와 같은 일을 했던 일이 있어서 였겠지만. 노무현 역시 지금 세계를 흔들고 있는, 쿠바빼고, 신자유주의에 대해 가슴 활짝 펴고 두손으로 끌어 안았던 사람이다. 지금 남쪽 사회에 변화가 있는것은 아니다. 수순을 밟아 온거고 이명박이 크게 대통령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다. 단지,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지 않았던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있다. 60년의 시간동안 남쪽이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변하지 않은것이라면 노예의식, 노동자들에 대한 핍박, 잘못된 민족주의와 애국정신, 필요없는곳에 존재하는 유교사상, 군대문화,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충성맹세 (이것은 교육이 크게 한몫을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남쪽사회가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지켰다면 어땠을까? 우선, 미국이 남쪽땅에 자기들의 군부대를 주둔시키게 하지 않았을것이고, 우리 남쪽땅에 쇠기둥을 박고 분단선을 지들 마음대로 긋게 하는일은 추어도 목숨걸고 막았을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라고 여기는 유교사상은 본래 한반도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였고 그것은 유교가 팽배하던 시절에도 인간관계로 맺어진 노비-관료 사이에 주의상황에 따라 서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평등한 인간다움이 있었다. 이것은 어쩌면, 유교때문에 사람들이 체면을 너무 차려서 자신들이 원하는것이 유교인지 자기 자신의 의지인지 헤깔려하고 껄끄러워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오늘의 사회에서도 존재하니 이것은 진정 현사회의 문제중 하나라고 할수 있겠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쌩구라일지도 모르는 한국사회의 단일민족주의의 주춧돌인 단군의 사상인데, 단군을 신같이 대접하기에 앞써 (이것 역시도 유교사상이다), 우리는 말을 가슴에 세겨야 할것이다. 그래야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지 이말이 우리 돌아가는 세상에 들어맞기 때문일것이다. 거꾸로 생각이지만, ‘홍익인간으로 사는 일은 단지 국적으로나 민족정신으로 제한된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아주 평등하게 사람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지금 시간에는 자연을 보호하는일,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절약하는일, 자원을 아끼는일로 부터 시작할수 있다. 여기서 부터 시작하면, 자동차를 타지 않는일, 농사를 짓는일, 자전거를 타는일, 군대를 거부하는일,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는일등이 이차적으로 나올수 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이끌때 식민지주의를 반대하고 fascism 몰아낼수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싸움을 벌일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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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리버럴 과 군사정권에서 나온 칠레는 지금

나는 이번 여름 6월 22일부터 7월 24일까지 칠레에서 머물렀다.

 

칠레는 현재 신자유주의에 의해 빈부의 차이가 극에 달한 나라중에 하나인데, 그 유래는 결정적으로 1973년에 일어났던 쿠데타 군사정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70년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Salvador Allende) 가 unidad popular 선거운동의 리더로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1973년 군대장 어구스토 피노쉐 (augusto pinochet) 가 미국의 리차드 닉슨과 핸리 키싱어의 자금과 CSI의 도움으로 인해 그의 생명이 불안정한 상태로 몰렸고, 칠레 국민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운명을 달리했는데.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지난 시간, 칠레에서는 많은것이 바뀌었다.

 

1990년대에 독재자 피노쉐가 그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소히 좌파라고 불리우는 미쉘 베췔렛 (michelle Bachelet) 이 나라의 대통령자리에 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는데, 군대정권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살해당했고, 고문당했으며, 많은 정치난민들을 쏟아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고 길거리로 내몰렸는데, 그 악독한 충격을 내가 만난 한 칠레 친구는 말하길: 버스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이야기조차 하지 않고 모두 정자세로 앞만을 바라보고 목적지까지 갔다는 것이다.  

 

이 기간의 중요성은 군사독재정치 아래에서 부익부 빈익빈과 물질의 세계화, 그리고 네오리버랄리즘이 이 나라에서 이루워졌다는 점이다.

 

그로인해, 칠레에 노동자들은 3중 4중으로 착취당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됬다. 나라 외부에서부터 (네오리버랄리즘)으로 인해 오는 착취, 나라 안에서부터 오는 착취 (군사정부의 부패, 기업들의 인간착취). 이런 사실은 제 3세계의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오는 하나의 성향이지만

 

군사정부 안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썩어들어간 부패는 아직도 군인들이나 경찰들, 그리고 정치인들 사이에서 부의 공유로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들은 살찌고, 노동자들과 실직자들은 말라만 가고 있는데

 

1990년 뉴스나 정치는 정권이 다시 사회주의자 리더로 넘어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어줍지 않은 신기루를 사람들의 눈에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 좌파 대통령은 교육을 상품으로 팔아버리고 (피노쉐에 의해 첫번째 시행), 학교들의 시장경쟁으로 인해 학생들은 학비를 내지못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다니더라도 창문이 없는 교실안에서 선생님들이 학교기업주에 의해 일년에 3, 4명씩 교체되는 학교 안다니니만 못하는 상태이다.

 

학생들은 일부 아옌대주의자들과 힘을합쳐 경찰들을 싸우고 좌파교수들에게 교육정책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듣는등 이 나라의 학교시스템보기를 걸레보듯이 취급하고 있는 상태이다.

 

베첼렛, 이 좌파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돈으로 넘어간 그들과 별 다를것 없는 공산주의당의 당원들과 함께 아닌척 아닌척 나라를 팔아넘기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반대하는 일부 radical party들은 잠수를 타고 아트이벤트를 통해 자신들의 포부를 밝히는것을 중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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