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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미국 : 노동자 정부를 위해 투쟁하는 혁명적 노동자 당을 위하여!

노동자 전위 910-912호까지 3회에 걸쳐 연재된 기사를 차례로 옮기도록 합니다. 유질들, 실업, 노동조합 파괴: 자본주의 미국 민주당과 결별하라! 노동자 정부를 위해 투쟁하는 혁명적 노동자 당을 위하여! Ⅰ "거리들은 텅 비어있다. 녹슨 바베큐들, 내다버린 가구, 잡초 밭으로 변한 맥빠진 집들과 마당들을 지나 쓰레기가 나뒹군다.... 흐릿해진 '판매' 광고판들이 버려 돌보아지지 않는 집들 앞에 서 있다. 대부분 자신들의 주택담보장기대출금을 갚지 못해 쫓겨난 주민들은 사라졌다." 이곳은 한때 클리브렌드 남동지역에 있던 주택단지였고 지금은 나라를 휩쓸고 있는 주택담보장기대출 위기에 의해 황폐화된 유령도시인 마운트 플레전트(Mount Pleasant)이다. 올해 60세로, 그녀 또한 자신이 30년 동안 살아왔던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는 몇 안되는 남아 있는 주민들 중의 하나인 사라 에반스(Sarah Evans)는 다름과 같이 선언했다: "나는 나의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악몽이 되었다"(Agence France-Presse, 1월 28일) 이러한 내쫓긴 집들, 황폐화된 공동체들과 폐허화된 가족들에 관한 장면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전대미문의 비율로 온 나라에서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 미국 전체 하우스 소유자들의 1% 이상이 강제퇴거의 위협을 받는, 혹은 은행이 그들의 집을 경매로 팔기 이해 준비하고 있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유질의 진행절차에 처했다. 강제 유질은 잔인한 국가 억압의 조항이다: 경찰이 집으로 들어와 가구와 다른 소유물들을 길거리로 내다 놓고 가족을 내쫓고 문을 걸어 잠근다. 많은 수가 흑인과 라틴계열인 시카고 남부와 디트로이트 광역시 지역에서는, 20 가구당 1가구가 유질 상태였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미시간 그리고 오하이오 지역들을 포함하는 다른 많은 지역들이 거의 비슷하게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도에서 개인적인 부가 주로 그들의 집에 투자되고 있는 빈민과 노동계급 가족들에게 엄청난 재앙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파괴적인 비합리성은 호황과 공황의 주기적 반복에 의해 두드러지게 되는데, 이번에는 미국의 주택산업에 집중되었다. 1990년대 중반의 주식시장 호황의 절정에서 야기되었던 경기후퇴에 뒤이어, 은행가들과 금융분석가들이 주택가격들은 계속해서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만하자, 광란상태가 된 투기 금융이 부동산에 달라붙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불가피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것처럼, 투기의 거품이 터졌다. 시장의 무정부성에 의해 야기되는 호황과 공황의 주기는 생산의 자본주의적 체제에 고유한 것이며, 이것은 150여 년 전에 칼 맑스에 의해 분석되었던 것이다. 이 체제는 공화당과 민주당(종종 노동 인민들에게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라는 이 나라에 있는 두개의 주요 정당들에 의해 유지되고 사수되고 있다. 우리는 이 잔혹하게 착취적인 체제에 맞서 노동계급과 모든 피억압 인민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이해관계들은 오로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질서의 파괴와 이윤이 아니라 인류의 필요를 위한 생산에 기초한 계획화되고 집산화된 경제를 건설하는 노동자 정부에 의한 그것의 대체에 의해서만 완전하게 현실화될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의 - 생산수단의 소유자들 - 부는 임금들을 낮게 유지하고 낮추는 노동에 대한 착취로부터 얻어진다.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에 대한 맑스주의적 이해의 핵심은 노동가치 이론이다. 하나의 규범으로서, 상품의 시장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일 동안에,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는 그가 받는 임금의 가치보다 더 크다. 그 차이가 이윤, 이자, 그리고 지대의 형식으로 잉여가치로서 자본가에 의해 전유되는 것이다. 지난 35년 동안, 부자들은 엄청나게 그들의 부를 늘려온 반면, 감독직에 있지 않는 사적 부문 노동자들의 평균 주당 실질임금은 떨어졌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노동 생산성(정부 자료에 따르면)은 81%까지 증가했다. 즉, 맑스가 착취율이라고 불렀던 것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착취율은 노동자의 임금에 의해 대표되는 부분에 대한 자본가들에 의해 전취되는 노동 생산의 부분의 비율이다. 노동으로부터 자본으로의 사회적 생산의 대규모 이동은 기업 아메리카가 생산능력을 확장하도록 고무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그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노동계급의 조건의 악화는 미국의 탈산업화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1979년 이후 상품 생산 부문에 고용된 노동력 비중이 거의 28%에서 16.6%(2005년)로 꾸준히 떨어졌다.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만, 3백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없어졌다. 자유주의 민주당과 개량주의 좌익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의 악화에 대한 책임을 부시 백악관의 경제 정책들에 지운다. 그러나, 19세기의 맑스는 자본Ⅰ에서 끊임없이 증가하는 생산의 집중과 노동 대중들의 비참함 모두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고유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이행의 과정의 모든 이점들을 찬탈하고 독점하는 자본의 실력자들의 끊임없는 감소와 함께, 빈곤, 억압, 노예화, 퇴행, 착취의 덩어리가 자란다; 그러나 이것과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 그 자체의 매카니즘에 의해 수적으로 언제나 증가하며, 규율 잡혀있고, 단결되어 있고 조직화된 노동계급의 반란 또한 자라난다. 자본의 독점은 독점과 함께, 그리고 독점 하에서 생겨나 번성해온 생산양식의 족쇄가 된다. 생산양식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자본주의의 외피와 함께는 양립할 수 없게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외피는 산산이 깨진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착취자들이 착취당한다." 착취자들에 대한 착취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지배를 위한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도하기 위한 혁명적 당의 건설이 필요하다. 금융위기가 깊어지다 현재의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몰기지 시장의 붕괴에 의해 촉발되었다. 서브 프라임 몰기지들은 저소득 가족들과 일부의 경우 과거에는 주택 소유 자격을 주지 않았던 갖가지 신용에 관련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대출이다. 은행들과 다른 금융 기관들은 낮은 초기 이자와 첫 지불액 면제, 그리고 원리금 상환 연기와 같은 조건을 내건 "유혹적인" 대출들을 제공함으로써 이들 가족들을 주택에 세들기 보다는 "구입" 쪽으로 유도했다. 더 높아진 재산세와 보험료와 함께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현재 이들 많은 가족들이, 위의 서브프라임 부문의 많은 가족들 또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월 지불액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180만이 넘는 서브프라임 몰기지들이 올해와 내년 더 높아진 이자율로 조정될 예정이다. 서브프라임 몰기지들과 같은 대출사기는 특히 흑인과 라틴, 그리고 다른 소수민족 공동체를 겨냥해왔다. 절반 이상의 흑인 대출자들이 이런 고위험, 고비용 대출들에 직면해있다. 심지어 고소득의 흑인들과 라틴 민족들조차 비(非)라틴 백인 대출자들에 비해 2-3배 더 많은 서브프라임 대출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전국 공동체 재투자 연합의 한 연구는 자신들이 지불해야 할 이자율에 관하여 브로커들로부터 듣는 흑인과 라틴 대출 지원자들이 백인의 절반이었음을 보여준다. 한 연구는 "현재의 유질 위기는 현대 미국 역사에서 유색인종 공동체와 개인들의 부의 가장 큰 손실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공정경제를 위한 연합, 유질:2008년 희망의 상태) 미국의 "서브프라임 혼란" - 경제신문들이 지금 이렇게 부른다 - 은 거의 모든 종류의 신용 시장들이 멈추어 섰던 지난 8월 이후 국제 금융 시장을 교란시켜왔다. 대규모 회사들이 회사채 발행으로 대출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발견했고, 은행들은 서로간의 대출을 거의 중단했다. 뉴욕 타임즈의 플로이드 노리스(2007년 8월 10일)는 이것을 "21세기판 예금인출 사태"라고 불렀다. 참으로, 지난 9월의 신용 위기가 긴 줄들의 노던 락 예금주들이 은행의 굴복을 재촉하면서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돈을 인출하기 위하여 소란을 피웠던 영국에서의 1세기만의 고전적인 은행에 대한 예금인출 사태를 야기했다. 미국과 유럽에 있는 중앙은행들은 금융시장들이 얼어붙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거대 은행들에 5000억 달러가 넘는 대출을 해주었다. 지난 9월 이후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미국 연방 준비위원회는 은행들이 부과하는 서로간의 하룻밤 대출에 대한 이자율을 5.25%에서 3%로 내렸다.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몰기지 담보 증권들이라는 잘못된 방식에 돈을 걸었던 금융 자본가들을 구제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 저널리스트 제임스 그랜트는 연방준비위원회의 정책에 대하여 "금융의 실패 없는 자본주의는 전혀 자본주의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의 한 종류이다"라고 날카롭게 논평했다.(뉴욕 타임즈, 2007년 8월 26일) 현재의 경제 위기로 들어가고 있는 또 다른 주요한 요인은 현재 실제로(물가인상을 감안하여) 역사상 최고치를 맴돌고 있는 하늘을 찌를 듯한 석유가격이다. 여기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적 독점들의 터무니없는 영업들을 동반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무정부성의 복합된 충격이다. 1990년대에 석유가격은 안정적으로 하락해서 1990년대 말에는 저점에 도달했다. 그 결과, 엑슨-모빌과 다른 영미 석유 카르텔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유정의 개발과 정유 시설의 능력을 확대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에는, 특히 현재까지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에는, 여전히 당장 추출이 가능한 충분한 양의 석유가 있다. 그러나 이 석유는 미국 제국주의의 고객과 연결되어 있는 엑슨-모빌 등, 사우디 왕조 그리고 다른 OPEC 석유 카르텔 국가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시장으로부터 철수해 있다. 동시에, 피비린내 나는 이라크 점령으로 분명하게 표현되는 불안정이 오일 가격 인상에 기여해왔다. 한편, 다른 세계 통화들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이번에는 은행들과 다른 금융 기관들의 투기적 구매의 물결을 부추기면서 석유 가격(석유가격은 달러로 책정된다) 인상에 일조 해왔다(AP, 3월 3일). 그 결과, 노동 대중들의 가족들은 비록 미국의 비축량이 상대적으로 높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난방연료와 휘발유 가격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이고, 대출 받는 것이 힘들거나 불가능함을 알게되는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게 되면서, 이제는 미국 경제가 불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 지난 9월 이자율 하락이 시작된 이후,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 500 주식의 가치가 약 9% 하락했다. 미국 -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지배력을 상실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생산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 에서의 경기 하락은 국제적으로, 특히 멕시코와 같은 반식민지적 나라들에 비참한 충격을 가해오고 있다. 불황을 저지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의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총 1000억 달러가 넘는 정부 지급금을 풀어서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투표했다. 소비를 보조하는 것을 통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을 제안함으로써, 부르주아지는 암묵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본(3권)에서 칼 맑스가 했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시인했다: "모든 실제 위기들의 궁극적인 원인은, 마치 단지 사회의 절대적인 소비력이 그것들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처럼, 빈곤과 대중들의 제한된 소비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추진력에 반대되는 것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를 착취하기 위한 노동자 정부를 위하여! 민주당 대통령 예비후보 바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이라크로부터 많은 (그러나 전부는 아닌) 군대를 철수시켜 재정적 과실을 만들어내겠다고 공약한다. 그들은 그 돈이 보건, 교육, 그리고 다른 서비스들에 쓰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냉소적인 거짓말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이다. 시장들, 천연자원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위한 자본주의-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쟁탈이 불가피하게 전쟁을 -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전쟁들(즉, 1, 2차 세계대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전쟁 - 향해가도록 강제한다. 이라크 침공에 대한 오바마의 초기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클린턴은 반복적으로 거금 수천 억 달러를 점령 살육전에 쏟아 붓는 것에 찬성투표 했다. 두 사람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했고, 이란에 대한 군사적 공격의 가능성을 감추지 않고 위협했다. "전쟁이 아니라 직업들과 교육을 위한 돈"이나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허황된 계획에 대한 주장들이 국제사회주의조직(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과 노동자 세계 당(Workers World Party)와 같은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제기된다. 이것은 단지 부르주아지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재정리하도록 납득시키고 압력을 행사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잔학한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의 필요에 복무할 수 있도록 개혁될 수 있다고 하는 자유주의적 환상만을 강화해줄 따름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불가피하게 전쟁, 인종적 억압과 착취를 수반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사수하는 것이다. 한 세대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율의 엄청난 증가는 수십 년간의 양보교섭, 2중 임금 체계[신입 노동자들에게 새로 설정된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구조-해석자의 첨가], 그리고 노동조합 관료들이 동의해준 비슷한 장치들에서 나타난다. 레닌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1916년)'에서 설명하였듯이,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대중 조직의 꼭대기에 앉아 있으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적의 이해관계에 대한 노동자들의 굴종을 보장하는데 기여하는 물질적으로 특권화된 사회계층을 - 노동 관료 - 키워왔다. 미국에서, 자본가 지배자들과의 이런 협조는 노동 관료들의 자신들이 그것의 한 부분이기도 한 민주당에 대한 압도적인 충성에서 예증된다. 공화당만큼이나 민주당도 자본가계급의, 자본가계급을 위한 당이다 - 차이는 공화당이 거리낌없이 공개적으로 노동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민주당은 그 결과들에 슬퍼하거나 스스로를 "노동자의 친구들"이라고 선언하면서 (공화당과)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친 자본주의 노동조합 관료들은 대개 대중 피켓팅, 공장 점거 그리고 2차 파업들(파업 상품에 대한 작업 거부)와 같은 1930년대 대규모 산업 노동조합을 건설했던 계급 투쟁의 방책들을 포기해왔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특히 대중적인 지지까지 확보했던 2005년의 뉴욕 시 대중교통 파업과 2003-4년 캘리포니아 남부의 수퍼마켓 노동자들의 파업과 같은 최근의 주요한 파업들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이해관계가 비타협적으로 반대인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라는 두 개의 결정적인 계급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새로운 노동조합 지도부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열한 계급 투쟁에서 다인종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위해 투쟁하는 그러한 지도부는 그러한 투쟁들을 흑인, 라틴 그리고 다른 피억압 소수민족들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방어하는 투쟁과 연결시킬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자 운동은 자신의 출신과 무관하게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기 위하여 비자가 있건 없건 모든 이주자들을 위한 완전한 시민권을 요구해야만 한다; KKK와 다른 인종주의적 테러주의자들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노동자와 흑인을 동원하기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일할 권리"에 관한 법들이 KKK 테러에 의해 저지 당해온 남부에서 [비조합원도 고용될 수 있도록-해석자의 주] 오픈샵을 조직하기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중심이 된 실천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같은 미국 제국주의의 군사적 약탈들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테러와의 전쟁" - 국내에서는 이주자, 흑인, 노동자에 대한 전쟁이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전쟁과 약탈을 위한 다목적의 구실 - 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강화된 국가적 억압에 맞서 투쟁할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들의 계급 투쟁적 지도부는 노동계급의 폭넓은 계층들의 현재 의식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그들의 일상적 투쟁으로부터 출발하여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강령으로 지도하는 일련의 이행의 요구들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들을 위한 투쟁에서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위한 투쟁은 반드시 실업과 "2중 임금" 계약들을 위한 사용주들의 노동조합 파괴공작에 맞서 투쟁하기 위하여 임금손실 없는 주당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 파업파괴자들에 맞서는 노동조합 방위대, 사용주들의 법들에 굴종하는 대신 파업들에서 승리하기 위한 대중적인 피켓팅과 공장점거를 포함해야 한다. 그러한 지도부를 조직하는 것은 모든 친 자본주의 노동 관료 세력들을 축출하기 위한 노동운동 내부에서의 정치투쟁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혁명과 노동자가 지배하는 노동자 국가의 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에 혁명적 지도부를 제공하기 위한 노동자 당을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지도했던 레닌과 트로츠키의 볼셰비키 당과 같은 - 위한 투쟁과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클린턴 시절의 경제와 그것의 자유주의적 옹호자들 오바마, 클린턴, 그리고 노동조합 관료들은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임 시절을 성공적인 경제 직무의 황금기로 묘사한다. 아마도 미국의 가장 널리 읽히는 자유주의적 경제전문가인 폴 크루그만은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의 찬란한 그림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경제는 호황이었고, 직업들은 넘쳐 났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있었다. 예산 적자가 기록적인 흑자들에 길을 내주었다.... 미래는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아 보였다"(위대한 해명: 신세기에 길을 잃기[2003]의 서문) 혜택을 덜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1990년대에 미국은 전에 없던 속도로 가속화된 광대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계속해서 경험했다. 1991년, 아버지 부시 하에서,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소득)은 노동자 평균의 113배였다. 2001년 클린턴이 아들 부시에게 백악관을 넘길 때, 최고경영자들의 평균은 노동자 평균의 449배 보다 많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매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실질 임금들이 1990년대 후반 호황의 시기 동안에 증가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미국 노동계급의 장기간의 비참함을 역전시키기에는 태부족이다. 9년간의 경제 확장 이후 2000년에 고등학교 학력을 가진 20대의 노동자들의 평균 년 실질 수입은 30년 전 그들의 부모들이 벌었던 것보다 16% 적었다.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역사적 패배가 - 소련과 중부와 동부 유럽 노동자 국가들의 반혁명적 파괴 - 1990년대 후반의 (단명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던) 결정적인 전환의 근원이었다. 1991-92년에 스탈린주의 관료적 지배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정치적으로 침식당해왔던 소련이 구 소비에트 블럭에서의 역사적으로 어떤 선진 산업 사회에서도 없었던 처참한 경제 붕괴와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타락을 촉발하면서 세계 제국주의의 압력들에 굴복했다. 1989년에서 1994년까지, 러시아의 남성 수명이 6년이나 줄어 57.6세로 떨어졌고,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거의 7백만이 많았다. 월 스트리트와 포츈 500대 기업들을 운영하는 자들은 "공산주의의 사망"을 의기양양하게 선포하면서 이제 자신들이 노동자들, 빈민들, 나이가 많은 사람들, 흑인과 라틴 공동체들에 혁명은 물론이거니와 심각한 사회적 격변에 대한 최소한의 위험도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계 유일의 초강국"의 주인으로서 미국의 지배계급은 여전히 전 세계적 수준에서 군사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군사비의 비중은 1992년 5% 근처에서 2000년 3%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3000억 달러라는 팬타곤의 예산은 모든 다른 나토 국가들의 군사비 지출 총액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동의 모든 국가들의 총액보다 많았다. 그러나 미국 노동 인민들을 위한 "평화로부터의 덤"은 없었다. 정확하게 반대다. 클린턴 재임 후반의 예산 잉여들은 국내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대폭 삭감, 특히 인구의 최빈곤 층들을 위한 혜택의 삭감에 의해 부분적으로 얻어진 것이었다. 1992년과 2000년 사이에 클린턴이 "우리가 복지로 알고 있는 복지"를 폐지한 것처럼, "소득보장"으로 명명된 프로그램들을(실업보험, 복지, 식량카드, 그리고 다른 빈곤 프로그램들) 위한 연방 정부 지출의 비중이 미국 GDP의 3% 이상에서 2.6%로 줄었다. 또한 (전체 국내 산출의 비중으로서) 교육, 운송, 과학 연구와 환경 보호를 위한 연방정부 지출도 또한 줄었다. 왜 클린턴주의 신민주당은 노동 인민들에게 혜택이 가는 광대한 폭의 사회 보장 프로그램들을 줄일 수 있었을까? 1970년대 후반의 지미 카터 구 민주당 행정부하에서 시작된 지난 15년여 동안의 조직 노동운동의 힘의 꾸준한 쇠퇴가 그 핵심이다. 1974-75년 급격한 세계 경제의 후퇴가 서유럽과 일본이라는 경쟁국들에 대한 미국 자본주의의 허약해진 지위를 드러내자, 미국 지배계급은 착취율을 강화함으로써 이윤율을 회복하려고 움직였다. 기업 경영자들은 친 자본주의 AFL-CIO 관료들에게 양보교섭과 새로이 고용되는 젊은 노동자들에게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2중 임금 체제를 요구했고 얻어냈다. 1981년 PATCO 항공 운항 통제사 노조의 파괴가 - 지미 카터 행정부에 의해 입안되고 로날드 레이건에 의해 이행되었던 - 부르주아지들이 노동운동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두었던 가의 전형이었다. 이번에는 레이건의 PATCO 파괴에 대한 노조 지도자들의 바싹 엎드린 항복이 노동운동을 제거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도발에 대한 노조 지도자들의 대응을 위한 모델이 되었던 파렴치행위의 상징이었다. 카터와 빌 클린턴의 취임식 사이의 16년 동안, 노동력의 노동조합 [지직-해석자이 첨가]화는 26%에서 18%로 감소하였다. 현재는 12%에 머물고 있으며, 사적 부문에서는 단지 7.5%에 머물 뿐이다. 미국 노동 계급의 탈노동조합화에 대한 책임은 "자본가계급의 노동자 부관"으로서 20세기 초 미국 사회주의자 다니엘 드 레옹에 의해 정확하게 묘사되었던 노동 관료의 패배주의적이고 배신적인 정책들에 있다. 배외주의적 보호주의에 반대하여!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을 위하여! 민주당 정치인들과 노동조합 관료들 모두가 밀어 부치는 배외주의적 보호주의를 위한 점증하는 요구들이 미국에서의 경제의 경기후퇴에 수반해왔다. 중국에 대한 무역 보호주의를 밀어부치면서 노동 지도자들은 반 공산주의를 애국적인 민족주의적 배외주의와 결합시킨다. 냉전 시대에, AFL-CIO 관료는 소련에 대항하는 미 제국주의의 가장 열광적인 지지자들 가운데 있었다. 오늘날, 이들 노동의 잘못된 지도자들은 "노동자의 권리"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적의에 찬 적대감을 중국 인민공화국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비록 처음부터 관료적으로 기형화된 것이기는 했어도, 중국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노동자 국가이다. 집산화된 경제의 건설로 귀결되었던 1949년 혁명으로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지배가 타도되었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노동계급을 위한 역사적인 성과를 의미한다. "시장개혁들"의 잠식에도 불구하고, 은행 시스템의 국가 소유를 포함하는 중국 경제의 핵심은 집산화된 채 남아 있다. 한편으로 미국이 불황으로 가고 있으며, 이것이 자본주의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주저앉힐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중국은 작년 11%라는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을 유지했다. 동시에, 미국에서의 근본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경기 후퇴는, 특히 이것이 무역 보호주의의 방책들에 의해 수반된다면, 중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와 같은 반 식민지적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은 국내적 목적들을 위하여 투자를 재조직함으로써 수출 수익에서의 급격한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를 역설하면서, 런던의 이코노미스트는 (1얼 5일자에서) "중국 경제는 수출들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 GDP의 40% 이상에 달하는 투자에 의해 추동된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전체 투자의 오직 7%만이 수출 생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베이징에 소재를 둔 연구 기관인 드라고노믹스의 한 연구를 인용한다. 미국과 다른 제국주의자들의 목적은 중국 노동자 국가를 파괴하고 중국 본토를 자본주의 이윤 생산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설탕가게로 만들기 위하여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복구하는 것이다. 국제 노동계급은 외부로부터의 제국주의 공격과 내부로부터의 반혁명에 맞서 중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군사적 방어를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동시에, 우리는 기생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스탈린주의 관료들을 타도하고 노동자 민주주의와 혁명적 국제주의에 기초한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 정치 혁명을 주장한다. 배외주의적 보호주의가 - 이번에는 주로 멕시코를 겨냥한 - 힐러리 클린턴과 바락 오바마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여 악담을 퍼부었고 캐나다와 멕시코와 조건들을 재협상 하겠다고 공약했던 오하이오에서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중심주제였다. 중서부 "구 공업지대"의 부분인 오하이오는 제조업 고용에서 수십 년 동안의 감소를 경험해왔다: 지난 7년 동안에만 20만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힐러리 클린턴(그녀는 과거에 남편의 NAFTA 조인을 지지했었다)과 바락 오바마는 오늘날 그들의 NAFTA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대 속에서, 반식민지 멕시코보다는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을 이 협정의 희생자로 묘사한다. 그들 쪽에서, AFL-CIO와 승리하기 위한 변화 노동조합 연맹들의 잘못된 지도자들은 미국의 일자리를 "도둑질"하고 있다고 다른 나라들의 노동자들을 비난하며,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미국 산업을 "보호함"으로써 미국 노동자들이 혜택을 볼 것이며 일자리가 미국으로부터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중단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이윤폭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할 것이며 - 국내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것을 통해서 그리고 혹은 자신들의 자본을 수출하는 것을 통해서, 그래서 노동비용이 더 싼 나라로 일자리를 옮기는 것을 통해서. 노동운동은 보호주의에 반대하여 미국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인, 그리고 다른 투쟁들을 전 세계 특히 멕시코와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의 노동자들의 투쟁들과 연결시키는 국제 노동자 단결을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국제적인 계획 경제를 수립하는 일련의 사회주의 혁명들을 통하여 국제 자본주의적 질서를 일소하는 것이다. 보호주의는 미국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독인데, 무엇보다도 그것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적들이라고 하는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는 한편으로 노동계급의 빈곤에 대한 책임이 자본가들과 그들의 체제에 있다는 사실을 덮어 가리는 것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1991년 NAFTA가 아버지 조지 부시의 공화당 대통령 재임 하에서 협상되고 있을 때, Grupo Espartaquista de Mexico, 스파르타시스트 동맹/미국, 그리고 캐나다의 트로츠키주의 동맹 - 국제 공산주의 동맹의 지부들 - 은 "양키 제국주의는 멕시코를 거대한 마퀼라도라[해석자의 미주], 혹은 노동조합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리고 자본을 위한 '자유'를 의미하는 자유무역지구로 만들기를 원한다"고 설명하는 "미국의 멕시코에 대한 '자유무역' 강탈을 중단시켜라"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동시에 우리는 "무역협정에 대한 주요한 반대는 공개적으로 인종주의적이고 보호주의적인 AFL-CIO 관료로부터 나왔는데, 이들은 배신자적으로 미국 노동자들에 대하여 그들의 멕시코와 캐나다의 계급 형제 자매들에 대항하는 편가르기를 한다"(노동자 전위 530호 1991년 7월 5일)는 것을 지적했다. 몇 년 후, NAFTA는 부시에 뒤이어 대통령이 된 민주당의 빌 클린턴에 의해 실행되었다. 참으로, 이 "자유 무역" 협정은 그의 국제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사항들이었다. 그때 이래로, 우리가 경고했던 바와 같이, NAFTA의 효과들은 멕시코의 노동자들, 농민들, 그리고 도시 빈민들에게는 처참한 것이었다. 멕시코 농업의 후진성과 미국의 농경기업과는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는 농민들이 있는 조건에서, NAFTA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의 처참한 상태를 야기해왔고, 한편으로 수백만이 생존하기 위해 미국이나 멕시코의 대도시들로 이주를 시도하며, 그곳에서 그들은 "비공식 경제"를 구성하는 거대한 [산업예비-해석자의 첨가]군에 합류한다. 노동자들은 NAFTA에 대한 반대로 조직되어야 한다 - 그러나 "성조기" 배외주의와 멕시코 트럭기사들이 미국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팀스터 관료들의 수년동안의 운동의 예와 같은 인종주의적인 일자리 지키기 보호주의에 기초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미국 지배자들이 한편으로 멕시코 농민들의 경제적 황폐화를 야기하면서, 멕시코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를 통해서 자신들의 이윤과 힘을 키우고 있는 "자유무역"을 통한 멕시코에 대한 강탈로서의 NAFTA에 반대한다. 노동자들은 이주자 권리를 위해서 투쟁해야만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부르주아지 지배자들은 이주자들에 대한 그들의 강공책을 강화해왔다. 추방들이 증가일로에 있으며, 한편으로 이민과 관세 집행국(I.C.E.)의 요원들이 가정들과 작업장들에서 잔혹한 반(反)이주 습격들을 수행해왔다. 작년 공화당 토론들에서 후보자들은 누가 가장 인종주의적이고 이주를 반대하는 고집통일 수 있는가를 두고 서로 경쟁했다. 민주당에 대해서 보면, 오바마와 클린던 모두 2006년 5월에 상원의 "포괄적인 이민 개혁 법령"에 찬성투표 했는데, 이 조항은 이주자의 비자를 그들의 고용주에게 묶어두고 이주자들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는 현대판 노예계약서인 "방문노동자"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었다. 오바마와 클린턴은 또한 2006년 9월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700 마일의 방벽 건설을 강제하는 "보안 방벽 법령"에 찬성투표했다. 노동 관료들은 반 이민 강공책에 반대하는 어떠한 진정한 투쟁도 수행하지 않았다. SL/U.S.와 Grupo Espartaquista de Mexico는 노동자 전위 867호(2006년 3월 31일)에 출판된 공동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주자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의 힘을 조직하는 대신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특히 자본가 민주당에 있는 그들의 소위 "친구들"에 호의를 베풀면서, 자본가들의 반이주 "개혁"들 중에서 하나 혹은 다른 하나를 환영한다. 자본가 이윤율의 제단에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희생시키는 이 계급협조의 정책은 노동 관료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지지와 미국 제국주의의 '민족적 이해들'과 노동자의 이해를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이 강령은 미국 노동운동이 1900년대 초 이후 어떤 때보다도 더 허약하게 남아있게 된 거듭된 패배로 귀결되었다." 팀스터뿐만 아니라 SEIU 서비스 노동자들 그리고 기타 이주자 비중이 큰 노동조합들을 포함하는 승리를 위한 변화는 소위 "방문 노동자" 프로그램을 증대시키기 위한 전망을 가지고 이주 "개혁" 법안을 추진해왔다. 승리를 위한 변화의 경쟁상대인 AFL-CIO 관료는 "방문 노동자" 프로그램 확대에 반대하는 한편으로, 이주자를 위한 시민권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며, 심지어 국경을 더욱 군사화하기 위한 계획에 대한 비난조차 하지 않는다. 미국 노동 계급의 핵심적이고 역동적인 구성부분이며 멕시코와 기타 지역 노동인민의 투쟁에 대한 살아있는 가교를 형성하고 있는 이주자를 방어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미국 노동운동을 위해 핵심적인 이해관계이다. 노스 캐롤라이나의 타힐에 있는 스미스필드 돼지고기 가공 공장을 조직하기 위한 음식과 상거래 노동자 연합[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의 수년간의 노력이 중요한 노동자 투쟁의 하나이다. 스미스필드 운영진은 흑인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전투적 이주 노동자들을 타겟으로하는 I.C.E.와 반복적으로 협조했다.("스미스 필드 공장: 반 노동조합 RICO 소송을 박살내라!" 노동자 전위 909호, 2월 29일) 노동운동은 이주 노동자들을 노동조합과 모든 이주자에 대한 완전한 시민권을 위한 투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투쟁해야만 한다. 이것은 노동계급 내부에 있는 반이주자 배외주의에 맞서는 투쟁에서 특별히 중요한 한편으로 이주자 출신 프롤레타리아트와 모든 노동자들은 이 나라에 사회적 억압의 시금석으로 남아 있는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흑인 해방! 케냐 출신의 아버지와 백인 미국인 어머니의 아들인 바락 오바마는 실제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도 있는 첫 번째 흑인 후보자이다. 오바마는 세계 무대에서의 신임을 일신하는 것을 포함하여, 미국 제국주의의 최고 집행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완벽하게 잘 갖추고 있다. 그의 선거운동의 중심 주제는 "피부색으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미국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오바마와 다른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신화와는 반대로, 흑인에 대한 억압은 여전히 미국 사회를 정의하는 중심적인 요소이다. 오바마에게 전국적인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그의 2004년 민주당 전국대회 연설 1년 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공포가 그것이 무엇이건 오바마의 "인종주의의 종결"이라는 거짓말을 (다시한번) 폭로했다. 우리가 "오바마 선거운동과 '인종주의의 종결' 신화"(노동자 전위 906호 1월 18일)에서 아래와 같이 썼듯이: "인종주의적 억압의 일상적 현실은 흑인들의 천문학적인 실업률과 낡아빠진 빈민촌의 주택들, 난무하는 경찰 테러. 대부분 '약물과의 전쟁'으로부터 발생한 거의 백만이 넘는 흑인 남성과 여성들의 지옥 같은 미국 감옥 수감, 지옥 같은 대도시 빈민 주거지역의 학교들과 고등교육으로부터 흑인 청년들의 축출에서 측정될 수 있다. 오바마는 이 모든 것들을 방관하면서, 자신이 작년 셀마에서 했던 연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민 인권 운동이 미국을 인종적 평등을 향한 '90%의 도정'까지 오게 했다고 외친다!" 자유주의적 인쇄매체들은 클린턴 재임시절의 1992년 거의 14%에서 2000년 11%를 약간 넘어서는 수준으로의 공식 정부 빈곤률 감소를 찬성하면서 지적한다. 그러나, 이 통계는 미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 수 천만 명을 헤아리는 - 경제 상태가 실제로는 이 기간 동안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참으로, 평균적인 빈민들은 이런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첫 해였던 1979년 이후 어떤 해보다도 1999년에 빈곤선 아래로 훨씬 더 떨어졌다. 주된 원인은 1996년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의회 지원을 얻은 클린턴 행정부에 의한 주요한 연방 복지 프로그램인 피부양 자녀들을 가진 가족들에 대한 보조의 삭제였다. 오바마는 그의 2006년 저서 희망의 대담함[The Audacity of Hope]에서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이 - 그리고 빌 클린턴 - 복지에 관하여 옳았다는 것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고 쓰면서 그런 정책을 옹호했다. 그 결과는 수백만의, 불균형적으로 흑인과 라틴계인, 미혼모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한 빈곤에 처했다는 것이다. 1964-74년의 기간에, 24%의 흑인 가정들이 너무도 가난하여 전국 소득 분배의 밑바닥 10% 속으로 떨어졌다. 1991-2000년 동안에는 39%의 흑인 가정들이 같은 카테고리에 처했다! 나라의 빈민가들의 황폐화를 심화시키면서, 클린턴은 흑인 인민들과 다른 소수민족들의 감옥 수감률을 로날드 레이건 재임기간의 비율을 초과하여 크게 증가시켰다. 특히 인종주의적인 "약물과의 전쟁"의 결과, 2001년 1월 클린턴이 백악관을 떠날 때에, 25세에서 29세 사이의 흑인 남성의 거의 10분의 1이 감옥에 있었다. 오늘날, 25세에서 29세 사이의 흑인 남성의 8분의 1을 포함하여 90만 명이 넘는 흑인 남성과 여성들이 감옥에 있다. 한 때 사장들이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고용되기 위한 "노동 예비군"을 공급했었던 빈민촌의 빈민들은 더 이상 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배계급에 의해 주요하게 버림 받아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략적 부문들에 통합되어 있는 흑인 노동자들은 조직 노동자의 중요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손에 자본주의적 착취와 인종주의적 억압의 족쇄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흑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여타 노동력보다 30% 이상 노동조합에 있고자 한다. 그들은 또한 운송노동자들과 같은, 공공 무문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흑인 노동자들이 혁명적 강령으로 획득된다면, 그들은 소외된 빈민 대중들의 분노를 다인종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힘과 융합하는 살아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며, 사회주의 아메리카를 위한 투쟁에서 전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많은 흑인 인민들에 대한 강제적인 억압과 인종차별은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기반이다. 동시에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노동자와 자본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계급 분리를 모호하게 하기 위하여 인종주의적 증오를 조장해왔으며 피부색깔을 이 나라에서의 핵심적인 분리선으로 만들어왔다. 흑인 해방의 길은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이 인종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박살내기 위한 투쟁 속에 있으며, 이것을 할 수 있는 힘은 다인종 노동계급에게 있다. 그러나 이 힘은 계급투쟁적 노동운동이 적극적으로 흑인 해방의 대의를 주창하고, 이주자와 모든 피억압 인민들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는다면 현실화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흑인 억압에 대한 자유주의적 개량주의자와 흑인 분리주의자들의 대응들 모두에 반대하여, 우리는 혁명적 국제주의의 강령에 우리의 흑인 해방을 위한 투쟁의 기초를 둔다. 모든 인종주의적 억압의 표현에 맞서 투쟁하고, 특히 다인종 노동운동의 사회적 힘을 발휘하게 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한편으로, 우리는 흑인 대중들의 완전한 평등은 노동계급이 인종주의적 자본가 지배자들의 손아귀로부터 경제를 떼어내서 사회주의적 기초에서 재조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오직 그 다음에야 비로소, 모두를 위한 제대로된 직업들, 주택, 보건 그리고 교육을 보유한 집산화된 경제의 기초 위에 있는 평등 사회주의 사회로의 흑인 인민들의 완전한 통합을 통하여 흑인 억압의 물질적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다인종 노동계급이 승리를 쟁취하는데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는 대중의 조직과 의식, 즉 혁명적 지도력에 달려있다. 다인종 노동계급을 권력으로 지도하고, 자본가계급을 착취하며, 집산화된 계획 경제를 수립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구인 국제 레닌주의-트로츠키주의 전위당의 건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해석자의 미주] 마퀼라도라 멕시코 식민지 시절 방앗간에서 옥수수를 빻을 때 절구통에 붙어 있는 옥수수 가루를 의미했던 말에서 유래한 말로 멕시코에서는 보세가공산업, 미국에서는 생산공유, 해외조합공장, 쌍둥이 공장이라는 의미로 쓰이며 줄여서 “마낄라”라고도 부른다. 멕시코의 마퀼라도라는 1965년 미국 남부 농업 지역에 고용되어 있던 멕시코 노동자들이 추방되면서 이들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멕시코의 북부지역에 설립된 경제특구로 여기에 입주한 외국 기업들은 관세가 면제되는 등의 혜택을 누렸다. 이 지역은 초기(60년대와 70년대)에는 성장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82년 외채 지급 유예로 멕시코는 수입 대체형 경제 시스템(폐쇄형)에서 개방형 시스템으로 정책변화를 이루게 되면서 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함께 “마낄라”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1980년에는 불과 620개의 공장만이 입주하였던 것이 1993년에는 그 수효가 2172개로 늘어났다. 고용인구도 1980년에 11만9천5백 명에 불과했으나 1993년에는 54만1천명으로 불어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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