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다시! 62회 – 마음의 근력 키우기

 

 

 

1

 

결국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만을 보존할 것이고, 자신이 이해하는 것만을 사랑할 것이며, 자신이 배운 것만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세네갈의 생태학자인 바바 디움이라는 분이 했다는 말입니다.

생태학자가 했다는 말이니 거창해 보이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면 아주 단순한 말입니다.

뭔가에 대해서 알아야 이해를 할 것이고, 이해를 하다보면 안쓰럽거나 애틋한 마음도 생길 것이고, 그렇게 마음이 동하다보면 그와 함께하고 싶어지는 거겠죠.

복잡하고 미묘해 보이는 세상살이도 길게 보면 이런 단순한 원리로 움직여지더군요.

 

지금 저는 마음을 써야할 것도, 함께하고 싶은 것도, 듣고 보고 배워야할 것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고, 필요한 것은 배워서 익히려고 노력하고, 조그만 것이라도 주위에 나누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안으로 숨어드려는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게 깨질 수 있는 얇은 유리그릇 같은 지금의 이 평온함이 그래야 오래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10년 넘게 읽는 라디오를 진행해도 세상과의 접촉은 아주 미비한 것처럼

저의 이런 노력은 폭염 속에 뿌려놓은 물줄기처럼 아주 쉽게 증발해버리고 있지만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이어가보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어들기 때문에 급속한 노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젊어지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천천히 늙어가기 위한 운동처럼 욕심내지 말고 꾸준히 해나가야겠습니다.

 

 

2

 

저는 성격이 소심하고 예민한 편입니다.

그래서 자잘한 문제들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죠.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 속에 하우스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잘한 문제들에 더 예민하게 감정을 소모하게 됩니다.

 

“감귤들이 많이 안 달려서 내년에 수확이 걱정이네.”

“이맘때면 골치를 썩혀야하는 병충해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하우스 공사가 예정보다 많이 늦어지는데, 혹시 태풍이 왔을 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이래저래 자잘하게 손 볼 것이 많아서 돈 들어갈 일이 걱정이네.”

“텃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 장마가 지나면 좀 나아질까?”

 

한 발 물러서고 보면 정말 별거 아닌 문제들이지만

예민하고 소심하게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으면

제 마음을 휘저으면서 분탕질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렇게 감정의 포로가 돼서 쩔쩔매고 있는 저를 발견하면

어깨를 토닥이면서 한마디씩 툭툭 던져줍니다.

 

“내년 수확을 지금부터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자.”

“농땡이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평소처럼 해오던 일을 하면 되지 않겠어?”

“자연재해를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잖아. 재해보험 들어놨으니 앞서가는 걱정은 잠시 넣어둬.”

“돈 들어갈 일이 많아지면 다른 씀씀이를 줄이면 되지 않겠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잖아.”

“텃밭농사가 조금 흉작이지만 그 상황에서도 주위에 나눠먹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이래저래 문제가 생겼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해결방법들이 다 있으니까 혼자 끙끙거릴 필요없어.”

 

소심하고 예민한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발 물러서서 여유롭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으니

틈이 날 때마다 열심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의 근력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3

 

“있잖아, 사실 죽음이라는 게 엄청나게 큰 결심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냥, 아 이제 죽어볼까?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죽어볼까 하는 거야. 배고프면 자연스럽게 밥 먹듯이.”

 

어느 날 뜬금없이 아는 사람에게서 이런 문자가 온다면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까요?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보고 나서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낼 것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큰 결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살아가는 것도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 거야. 배고프면 자연스럽게 밥 먹듯이 살아있으면 그냥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도 있잖아. 너무 꼰대같은 뻔한 소리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문자를 보낸 상대가 이태원 참사 생존자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꼰대스러운 답장조차 보내지 못한 채 문자를 씹고 있다가

그의 주변인에게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한번 가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얘기를 건넨 채

불편한 마음만 붙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버겁기 때문입니다.

 

“응 초롱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지금처럼 이야기해줘.”

 

제가 한 발 뒤로 빼고 움츠려 있는 사이 그의 친구는 이렇게 짧은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답장에 제 마음이 더 울컥해져버렸습니다.

저는 아직 멀었네요.

 

(이 이야기는 김초롱씨가 쓴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에서 빌려왔습니다.)

 

 

 

(David Darling의 ‘Bach's Persi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