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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돌릴 틈도 없이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데, 문틈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드는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기가 힘들어서 영화를 보러갔다.
요즘 개봉하고 있는 영화 중에 ‘부러진 화살’은 봤기 때문에 딱히 끌리는 것은 없었지만, 최근에 ‘범죄와의 전쟁’이 잘나간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보기로 했다.
그저 시간 때우기에 적당한 영화이기를 바라면서...
영화가 시작하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조직폭력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기사화했던 당시 사진이 다큐멘터리처럼 짧게 펼쳐졌다.
이외로 뭔가 진지한 사회적 메시지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는 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시작했다.
정말 공들여서 당시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다.
연기 잘 하기로 소문난 최민식과 하정우를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연들의 연기마저도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조폭을 중심으로 한 비리 공무원과 관료들의 모습들도 약간 과장된 듯 하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가 살아있었다.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캐릭터들이 얽히고설켜서 재미가 있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비정한 세상의 모습을 제대로 축약해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도 좋았다.
2시간이 조금 넘는 런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영화였다.
일부 엑스트라들의 인형 같은 어색한 연기와 너무 어설픈 액션 연기들이 옥의 티이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찾을만한 영화임에는 분명했다.
작품성 높은 영화도 아니면서도 너무 상업성에만 치우지지 않은 대중의 기호를 만족시키기에 적당한 영화였다.
익숙하지 않은 감독의 개봉영화였는데, 영화가 많이 익숙했다.
조폭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의리를 저버리는 비열한 모습을 복고적인 분위기 속에 보여주는 ‘친구’ ‘비열한 거리’ ‘말죽거리 잔혹사’ ‘짝패’ 같은 영화들이 무수하게 떠올랐다.
거기에 더해서 더러운 권력관계로 지배되는 세상을 살아있는 캐릭터들로 보여줬던 ‘부당거래’ ‘도가니’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도 떠올랐다.
좀 무리해서 생각해보면, 온갖 더러운 짓을 다 하면서도 가부장적 권위를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독립영화인 ‘계몽영화’나 ‘파수꾼’도 떠올랐다.
이렇게 무수한 영화에서 보였던 익숙한 모습들을 하나씩 지워보니 남는 게 없었다.
어차피 상업영화인데, 상업영화의 공식들을 적당하게 잘 버무려서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해주면 되는 거다.
또 하나의 익숙함은 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었다.
나 같은 40대 남자들에게는 그때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머리스타일에서부터 복장, 세트, 액세서리까지 정말 공을 들여서 재연했다.
촬영 방식도 마치 빛바랜 사진을 보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질 수 있게 신경 썼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노래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80년대를 살았던 찐한 남자들의 감성을 살려내려는 선곡이 역력했다.
프로의 세계에서 적당함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친구’처럼 감상적 분위기와 똥폼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기에는 너무 식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부당거래’처럼 현실의 부당한 모습을 캐릭터들의 힘만으로 풀어가는 것도 류승완의 아류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효자동이발사’나 ‘그때 그 사람들’처럼 역사적 권력의 문제를 진지하게만 다루는 것도 재미없다.
그렇다고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처럼 악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의 모습을 까발리는 것도 줏대 없이 유행을 쫓아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오를 잡으면서도 너무 진지하지 않고 역사와 사회의 무게에 짓눌리지도 않아야 했다.
결국, 영화가 시작할 때 보여줬던 독재정권들의 조폭소탕이라는 빛바랜 사진들에서 한 발도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노태우 대통령 각하께서 대단한 결의로 진행한 범죄와의 전쟁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독재정권이 깡패소탕을 명분으로 사회기강을 잡고 공권력을 강화해서 저항세력들을 억압하려는 통치전략이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주제가 되서는 안 된다.
권력을 둘러싼 암투의 핵심에는 타락한 독재정권이 있고, 그를 재생산하는 정치권력과 재벌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고, 그에 기생하는 부패한 공무원과 깡패들이 말단에 있다는 점도 깡패들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서 살짝만 보여줘야 한다.
세상을 주무르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는 풍만한 가슴을 살짝 보여주면서 좆이나 꼴리게 하면 되는 존재라는 점을 페미니스트들이 문제제기 하지 않을 수준에서 눈요기로 처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빛바랜 사진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했다.
역시 프로의 세계에서는 적당함의 미학이 중요하다!
추운 날씨에도 나를 포함해서 10여 명의 관객이 영화를 봤다.
관객의 대부분은 20대에서 40대의 남성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전국적으로 벌써 백만 명이 넘게 봤다고 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남성들이 이 영화를 볼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본 남성들이여,
적당히 가오 잡고 다니시라!
1
설 연휴가 지났습니다.
무척 추운 연휴였습니다.
어떻게들 지내셨을까요?
지금 추위가 마지막 추위는 아니겠지만
추위 뒤에 비치는 햇살이 한결 따뜻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겨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가 봅니다.
오늘은 따뜻한 노래로 방송을 시작합니다.
조경수가 부릅니다. ‘행복이란’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사랑이 중한 것도 이제는 알았어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이 생명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하리
이 목숨 다 바쳐서 영원히 사랑하리
이별만은 말아줘요 내 곁에 있어줘요
당신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
2
작년 설을 앞두고 제가 아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픈 데도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40대의 가장이 그냥 가 버린 것입니다.
해고자 생활 10년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멀리 있다는 이유를 변명 삼아 무덤에 한 번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 번 쯤 그를 생각해야 될 것 같은데...
편지라도 쓰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예전에 썼던 편지를 다시 읽어봅니다.
올 겨울은 어느 해보다 참 따뜻하게 시작하더니 중반을 넘어서면서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입춘이 지나고 갑자기 봄을 기약하는 날씨로 변하더니 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비 오는 교도소는 좀 처량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운동을 할 수 없어서 30분의 달콤한 시간을 빼앗아 버리고, 추적거리는 날씨가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어버려서 더 처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살포시 듭니다.
유난히 겨울이 길게 느껴지고 봄이 멀어 보이는 그곳에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세요?”라는 질문이 사치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잠시나마 마음의 사치를 즐기시라고 질문을 드립니다.
박현정 동지, 마음에 봄의 기운이 전해지십니까?
제 마음에 사치스럽게 다가온 봄의 기운을 전해드립니다.
집 컴퓨터에 ‘김해교도소 500번 박현정’이라는 메모지를 한 달이 넘게 붙여놓고 있습니다. 매일 그 메모를 보면서 “편지를 써야지”하면서도 지금까지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쁜 것도 있었지만, 쉽게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2001년 7.5총파업을 철회했던 현대자동차 집행부 현장조직의 간사였던 제 마음 속에는 효성 동지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너무 크게 있어서 아직도 효성 동지들 앞에서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리고 너무 경악스럽게 구속된 박현정 동지와 효성 동지들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제가 갖고 있는 이 마음의 빚과 안타까움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저에게는 그게 흔들리지 않고 활동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출소하고 나서 병 요양으로 쉬고 난 후 1년 반 만에 복귀한 울산에서 처음 참여한 집회가 효성 동지들의 순회투쟁이었습니다. 언양공장과 울산공장으로 이어진 짧은 투쟁에 결합하면서 정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복직과 노조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가운데 3년을 넘게 해고자 생활을 하면서도 굳건히 싸우고 있는 동지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효성 동지들을 보면서 “투쟁은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당당히 버티어 서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확인했습니다.
아마 제가 노동운동을 하는 한 평생 가슴에 갖고 있어야 할 마음의 빚과 효성 동지들을 보면서 느꼈던 투쟁의 힘을 다시 꺼내서 보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오늘도 투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효성 동지들만큼 간절하지는 않겠지만, 박현정 동지가 출소할 때까지 제 컴퓨터 앞에 붙여놓은 메모지를 떼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제 마음 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그 메모지를 보는 순간만큼은 박현정 동지를 생각하면서 간절히 소원을 빌겠습니다.
박현정 동지!
아프지 마세요.
2005년 2월 15일
부산에서 성민
박현정, 들려요?
그곳에서도 편할 리야 없겠지만, 가끔 내 생각도 해줘요.
그래야 박현정 잊어 먹지 않지.
미안한데, 길게 말하지 못하겠네...
노래 하나 들려줄게요.
잘 지내요.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지 혼자 남았다고 느껴질 땐
추억을 생각하라 그랬지 누구나 외로운 거라 하면서
그리고 이런 말도 했었지 지난날이 자꾸 떠오르면
애쓰며 잊으려 하지 말랬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단 한 번 스쳐간 얼굴이지만 내 마음 흔들리는 갈대처럼
순간을 영원으로 생각했다면 이렇게 간직하진 못했겠지
정녕 난 잊지않으리 순간에서 영원까지
언제나 간직하리라 아름다운 그대모습
단 한 번 스쳐간 얼굴이지만 내 마음 흔들리는 갈대처럼
순간을 영원으로 생각했다면 이렇게 간직하진 못했겠지
정녕 난 잊지않으리 순간에서 영원까지
언제나 간직하리라 아름다운 그대모습
당신은 내게 들려주었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오로지 주려고만 하랬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3
제주에 있는 한 단체에서 ‘제주지역 개발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한다고 해서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제주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기 때문에 강연회에는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강사는 50대로 보이는 제주대학교 교수였는데, 오랫동안 재야운동을 해왔는지 20여 년 전 투쟁에서 분신한 열사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그동안 제주에서 진행된 개발정책들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음모적으로 진행됐는지를 성토하고,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계속됐던 문제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아주 시원하고 힘 있는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을 하는데 제가 용기를 내서 질문을 했습니다.
“강의 중에 로컬 거버넌슨가 뭔가 하는 걸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해왔던 방식하고 뭐가 다르죠?”라는 내용이었는데, 좀 어눌하고 버벅거리는 말투에 비속어까지 섞어 가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놀던 물이 워낙 그런 곳이어서 그런 식의 말투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질문을 들은 교수가 답변을 하는데, 마치 대학 1학년 학생에게 기본 개념을 가르치듯이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꼭지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설명해달라고 한 게 아니라 ‘로컬 거버넌스’라는 개념의 구체적인 상이 뭐냐는 질문이었는데,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더 화나는 건 비속어까지 써가면서 어눌하게 물어보는 저 같은 사람을 대하는 그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죠?”라고 추가 질문을 계속 했지요. 하지만 그 교수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고 구체적인 상에 대한 대답을 못했습니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거의 마지막에 어떤 분이 “개발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은 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분은 아주 세련되고 일목요연하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제가 했던 질문과 크게 다른 질문을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진지하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비슷한 질문을 하더라도 뭔가 있어보이게 질문해야 제대로 대우를 해주지,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었습니다. 나~참!
진보의 가치는 아래로부터의 가치이고 평등의 가치입니다. 대중들이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고 잘못된 현실을 바꿔나가는 것이 진보의 가치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보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비속어까지 쓰는 무식한 놈에게는 서슴없이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중과 눈높이를 같이 하면서 대중 속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 진보는 아무리 비타협적인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지식인의 사기일 뿐입니다.
생활 속에서 무수히 경험하는 무시와 외면과 소외에 대해서는 “맷집을 키운다고 생각하자”면서 가슴 속에 꾹꾹 묻어둡니다. 그게 저처럼 허접한 것들이 살아가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모인 사람들마저 그런 태도로 저를 대한다면 그곳에서도 참아야 합니까? 아니면 대놓고 막 싸워야 합니까?
4
대가리를 치면 꼬리로 일어서고
꼬리를 치면 대가리로 일어서고
가운데를 한가운데를 치면
대가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일어서고
뭐 이따위 것이 있어
그래 나는 이따위 것이다
만만해야 죽는 시늉을 하고 살아야
밥술이라도 뜨고 사는 세상에서
나는 그래 이따위 것이다
김남주 시인의 솔연(率然)이라는 시입니다.
제목이 무슨 뜻일까 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중국의 고전에 나오는 어떤 뱀이라고 합니다. 어떤 큰 산에 사는 전설 속의 큰 뱀인데, 시에 나오는 것처럼 용맹스럽게 싸우기 때문에 절대지지 않는 불사의 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전설의 뱀보다는 김남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이따위 것’이 더 좋습니다. 저 같은 놈들에게 “기죽지 말고 살아!”라고 얘기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 김남주 시인의 시를 전해드립니다.
5
김현진씨, 안녕하세요.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데 이렇게 아는 척 하려니까 약간 쑥스럽습니다. 히히히
현진씨가 쓴 ‘뜨겁게 안녕’이라는 책을 읽고 얘기를 하고 싶어서 혼자 주절거려봅니다.
일종의 팬레터이기는 한데, 본인이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군요.
책을 보다가 중간에 기륭전자 농성장 얘기가 나오기에 귀가 쫑긋 해졌는데, 그때 현진씨를 봤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매일 같이 촛불을 들기 위해서 무거운 발걸음을 했던 그곳에서 동조단식단의 한 사람으로 인사를 하는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프레시안인가 어딘가 기고를 하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소개와 함께 짧은 연대의 뜻을 얘기했던 것 같은데... 그때 인상은,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하면, 까도녀(까칠한 도시 여자)라고나 할까요. 약간은 도도하고 약간은 세련된 모습으로 뭔가 연대의 뜻을 얘기했던 것 같은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 숨 막히는 농성장의 분위기와는 약간 어울리는 않는 대도시 인텔리의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솔직히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왠지 제목이 끌렸고, 책 소개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사고는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역시 제 선입관처럼 까도녀의 얘기이기는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제 삶과 비슷했는지...
현진씨가 살았던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 어디쯤인가 하는 동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후암동과 청파동에서 살았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현진씨가 발버둥 치면서 살았던 왕십리는 1994년 총선에 출마한 노동자후보 선대본에서 동책이 돼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곳입니다. 그 가팔랐던 약수동 산동네는, 대학 시절 가끔 술 먹고 잠을 자기 위해 찾아갔던, 베니어판으로 나뉘어진 누군가의 자취방이 있던 동네였고요. 그 넓은 서울에서도 현진씨나 저처럼 별 볼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은 거기서 거기였군요.
현진씨의 애정이 듬뿍 담긴 왕십리 얘기를 들으면서 아주 잠시 살았던 길음동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에 떨어져서 처음으로 집을 나와 서울 생활을 할 때 잠시 길음동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 버스를 타고 점집들이 잔득 늘어선 미아리고개를 넘어 길음동에서 내리면 밤 11시가 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취방으로 가려면 길음시장을 지나야 하는데, 그 시간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가게들에서는 먹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애써 그쪽을 보지 않고 땅만 보면서 자취방 근처로 와서는 5백 원짜리 컵라면 하나를 삽니다. 재래식 화장실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방에 들어가 커피보드에 물을 끓여서 컵라면을 먹습니다. 가끔 술 생각이 나면 과감하게 천 원짜리 캡틴큐 한 병을 사다가 먹기도 하고요.
그때가 1988년이었습니다. 아마 현진씨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겠죠? 그렇게 시작한 제 20대의 삶은 10여 년 후에 현진씨가 살았던 20대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없이 살아야하는 구질구질한 것들의 삶은 이렇게 세월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꼭 같습니다.
술로 청춘을 지탱해야 했던 그 삶도 꼭 같고, 나름대로 순수함과 따뜻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 마음도 꼭 같고, 빌어먹을 세상을 향해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객기도 똑 같고,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열정도 똑 같았습니다.
그 후 울산으로 내려가서 혁명을 꿈꾸는 30대를 살았지만, 하수구가 막혀 구정물이 넘친 방을 청소해야 하는 삶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술 때문에 몸은 조금씩 망가져 가고 있었지만, 제 삶에서 술을 멀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혼자 사는 가난한 노총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정하거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저는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혁명을 꿈꾸고 있었거든요.
이제 저는 나이 사십을 넘겨 몸과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채 아름다운 섬 제주에 내려와 있습니다. 역시 구질구질한 삶은 계속되고 있지요. 현진씨가 술을 먹고 불렀던 “한다면 한다 죽었다 깨도 약속은 지킨다”라는 노래를 이제 더는 부르지 않습니다. 이곳저곳 상처만 남은 패잔병이 돼서 버려진 가난한 중년의 아저씨일 뿐이지요.
까도녀 현진씨도 촌놈 성민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끼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제목을 왜 ‘뜨겁게 안녕’이라고 했을까를 생각해봤습니다.
뜨거웠던 만큼 힘들었던 20대의 삶에 안녕을 얘기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진씨가 맞이하는 30대의 삶은, 20대의 구질구질함에서는 조금 벋어나고 뜨거움에서는 좀 더 가까운 삶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진심으로 그러길 바랍니다.
삶의 구질구질함이 끈질기게 따라 붙더라도 지켜서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고
너무도 차가운 세상 속에서 가슴 속의 뜨거움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고
정말 힘들어서 일어나기 어려울 때 옆에 누군가의 손이 있기를 바랍니다.
현진씨에게 인생 선배랍시고 뭔가 훈수 두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얘기 들려주어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고마움의 표시로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원곡도 좋은데, 원곡보다는 ‘나는 가수다’에서 자우림이 불렀던 세련된 버전이 더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해서 자우림 버전으로 들려드리겠습니다.
또 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보내드리리
아프게 마음 새긴 그 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웃으면서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또 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기어이 떠난다면 보내 드리리
아프게 마음 새긴 그 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울음이 나도
웃으면서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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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송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방송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공개합니다.
‘밀레니엄’이라는 영화가 스웨덴과 미국에서 만들어져서 동시에 개봉한다고 해서 호기심이 가기는 했다. 그렇다고 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그런데 도서관에 갔더니 밀레니엄 3부작이 있네. 호기심에 영화로 나온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빌렸다. 4백 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을 두 권이나 읽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분량이었지만,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어버리지...’하는 생각에 편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와~ 그 두꺼운 책 두 권을 사흘 만에 읽어버렸다.
읽는 사람이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써나가는 글쓰기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잘난 척 막 멋을 부리지도 않으면서도 적당히 멋을 부리고, 지적유희로 치닫지도 않으면서도 지적이고, 가볍게 상황을 그리면서도 진지하고, 너무 무겁다 싶으면 가볍게 빠져나와 버리고...
스릴러라는 장르는 단서를 찾아가면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나가는 재미에 있다. 하지만 퍼즐 맞추기가 너무 쉬우면 애들 장난 같아서 심심하고, 너무 복잡하면 읽다가 포기해버린다. 또 하나씩 퍼즐을 맞춰나가는 재미에 빠져들다가 막판에 남은 1~2개를 어거지로 짜 맞추면서 끝나는 허무한 소설도 많았다. 그런데 ‘밀레니엄’은 복잡한 문제를 아주 쉽게 얘기해 나가는 능력에 환호성이 저절로 나오고,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 결론에 박수를 보내고, 끝났다 싶은데도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에 혼이 빠져버렸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무질서하게 범죄가 저질러지는 세상에서 단서를 하나씩 맞춰가면서 범인을 찾아내고 질서를 회복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한 백인우월주의나 계급적 편견들을 보라! 아니며 반대로 사회나 역사에 대한 것들을 빼버리고 완전히 지적게임으로만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밀레니엄’은 그런 경향들과 완전히 반대에 서있다. 스웨덴이라는 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것도 복지국가와 이국적인 겨울나라의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 파시즘과 거대 재벌과 가부장적 폭력이라는 문제를 과감하게 꺼내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맞서 싸운다.
작가로서의 글쓰기 능력과 기자 출신으로서의 전문적 역량과 양심적 지식인으로서의 철학까지 골고루 갖추 ‘밀레니엄’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스릴러 소설 중에 최고였다.
원작이 너무 좋으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원작의 감동을 갉아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 ‘밀레니엄’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소설 자체가 아주 영화적인 내용인데다가 영화적 요소들이 의식적으로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어떤 느낌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솔직히 스웨덴판을 보고 싶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분위기를 영상으로 느끼고 싶었던 점도 있었고, 몇 년 전 봤던 ‘렛미인’처럼 철학도 없이 폼만 잡는 할리우드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스웨덴판을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고, 할리우드판이라도 흥행이 별로 안 되는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다행이다. 다행히 영화가 막을 내리기 전날 할리우드판 ‘밀레니엄’을 볼 수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혼을 빼놓은 오프닝은 정말 좋았다. 007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오프닝 형식과 비슷했는데, 마치 ‘블랙스완’의 첫 장면처럼 강렬했다. 그리고 영화는 소설에 충실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마치 소설을 스틸사진처럼 보는 것 같았다.
신선한 출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기자정신으로 충만했던 ‘미카엘’은 근육질의 007이 무게 잡고 나오면서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더니, 특이한 외모 속에 상처받은 영혼의 소유자인 ‘리스베트’는 영혼 없는 특이함만을 내뿜었다. 분명히 소설 속에서 나온 캐릭터들인데 영화 속에 들어와서는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복잡한 얘기 구조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고, 파시즘이나 재벌이나 가부장적 폭력이니 하는 것도 무거움을 벋어버리고, 얘기의 연과성이나 인물들의 심리변화 같은 신경 쓰이는 것들도 훌훌 털어버리고, 관객들을 향해서 “따라 올 테면 따라 와봐!”라는 식으로 스피디하게만 달려갔다. 물론 폼 잡는 건 잊지 않고!
원작은 읽지 않은 사람은 스틸사진처럼만 이어지는 얘기를 따라가기가 정말 어려웠다. 스릴러를 표방하면서도 지적 게임을 포기한 스릴러는 더 이상 스릴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007이나 본시리즈처럼 추격과 액션이 막 벌어지는 액션영화로 장르를 바꾼 것도 아니었다. 아니면 좀 지루하더라도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 씨름하는 리얼리즘 영화는 더더욱 아니었다. 영화 ‘300’처럼 캐릭터와 스타일로만 승부했다기에는 캐릭터들이 너무 허무하다. 두 시간 반 정도 되는 꽤 긴 영화였지만 아주 심하게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역시 뛰어난 원작을 영화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감독이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서 이런 작품이 나온 것이라면 조금 이해는 된다. 거의 모든 요소가 아주 뛰어나게 어우러져 있는 소설을, 감독의 이름을 걸고 새롭게 포장하다보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겠지...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철학의 빈곤이었다.
그들이 파해치려고 했던 사건의 핵심인 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애써 버려버린다면, 주인공들의 상처받은 영혼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모호하게 행동하게 되고, 현실감을 잃어버린 캐릭터들은 공중에서 붕붕 떠다니기만 할 뿐 스타일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간디 작살”이라고 주장하는 안명미가 훨씬 재미있다.
이런 식으로 작가주의적 냄새만을 풍기다가 원작을 망친 경우는 많다. 박광수가 ‘이재수의 난’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그랬고, 임상수가 ‘오래된 정원’에서 그랬고, 헐리우드판 ‘렛미인’도 그랬다.
원작을 각색한 것은 아니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셔터 아일랜드’는 ‘밀레니엄’과 정반대에 서 있는 영화다. 어떤 섬에서 발생한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 섬으로 간 이들이 사건을 파해쳐가면서 그를 둘러싼 거대한 사회 역사적 진실과 싸우게 된다는 방식이 비슷한 영화였다. ‘밀레니엄’보다 더 작위적인 조건을 만들어놓고 영화를 풀어간 ‘셔터 아일랜드’는 갇힌 섬 속에서 매카시즘과 당당하게 맞서 싸웠다. 물론 음향효과를 비롯한 예술적 완성도도 훨씬 돋보였고, 스릴러적 요소도 ‘밀레니엄’보다 더 강했다. 결국 철학의 문제였다.
‘밀레니엄’을 보고 나서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앞으로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같은 걸 하면 웬만하면 보지 말자.
둘째, 영화도 시작하기 전에 광고로 진을 빼놓은 CGV나 롯데시네마는 웬만해서는 가지 말자.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3회)
1
요즘 학교폭력 때문에 여기저기서 난리가 아닙니다.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라고들 걱정하면서 각종 대책들을 내놓는데...
저는 학교를 떠난 지도 워낙 오래되기도 하고, 학부모도 아니고, 학교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옛날 제가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때도 노는 애들 중심으로 그런 문제가 있기는 했는데...
걔네들만 조심해서 지내면 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고...
한두 번 맞아본 적은 있는데, 그것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같은 반 친구를 때렸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때였습니다.
제가 공부를 조금 하기는 했지만 아주 뛰어난 성적을 낼 정도는 아니었고, 집안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성격도 약간 소심한 면이 있어서 튀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게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죠.
그때 가까운 친척 중에 다른 중학교 교감선생님을 하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세배하러 다니던 할아버지였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모님이 신경 좀 써달라고 부탁을 했나보더라고요. 학기 초에 반이 배정되면 할아버지가 담임을 확인하고 전화를 한 통 했었나 봐요. 그런데 3학년 때 담임이 그 전화 약발이 좀 먹혔는지 학기 초에 저를 대하는 게 좀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학급 임원 선거를 하게 됐는데, 서로 잘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힘이 작용해서 얼떨결에 제가 부반장으로 뽑혔습니다. 분단장이나 도서부장 같은 건 해본 적이 있지만, 부반장이 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같은 반 친구의 뺨을 때리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일로 그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기억을 못하는 걸 보면 별다른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문제는 그 친구가 언어장애가 있는 장애인이었고, 집안도 가난하고, 친구들도 별로 없는 아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는 ‘왕따’라기 보다는 ‘좀 만만한 상대’라고 할까요. 아무튼 부반장인 나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유로 그 친구의 뺨을 때렸고, 그 친구는 멍한 얼굴로 아무 말도 못한 채 나를 바라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때렸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입니다.
지금도 가끔 그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소심하고 잘 나서지도 못하던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이유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저한테 권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사회에서 비교적 고위층인 교감선생님이 가까운 친척으로 있었고, 그 영향으로 담임이 나를 각별하게 대했고, 그 힘으로 부반장이라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저는 그 권력의 힘을 느끼고 있었고, 어느 순간 만만한 상대를 향해 그 힘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결국 폭력은 권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때 느꼈던 것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로 권력 근처에 다가가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폭력의 유혹에 휘말리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무시무시했던 학교폭력은 선생들이 저지르는 폭력이었습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온 힘을 다해서 몽둥이질을 했던 국어선생
수업하는데 방해된다고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던 수학선생
기분 나쁘다고 과감하게 발로 아구짱을 날리던 윤리선생
학교 외곽에 떨어져 있어서 폭력에 더 자유로웠던 음악과 미술선생
수업의 대부분을 기합과 폭력으로 채웠던 교련선생
아버지의 실업과 가정폭력으로 엄청난 방황을 하던 제자를 애써 모른 척 했던 담임선생
그런 개새끼 같은 선생들을 추켜세우며 몰아붙였던 관료 새끼들
그런 개새끼 같은 선생들을 믿고 설쳐댔던 선도부 똥개들
그런 개새끼 같은 선생들을 스승으로 받드는 역겨운 세상이
가장 끔찍한 학교폭력이었습니다.
저도 잠시 그 권력과 폭력의 말단에서 쾌감을 느껴봤던 것이고요.
음지에서 벌어지는 폭력보다 몇 배는 강하고 살벌하게 자행되는 양지의 폭력을 얘기하지 않는 학교폭력은 사기입니다. 폭력의 가해자들이 어떻게 폭력을 정화할 수 있습니까?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 중에 혹시 전교조 선생님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20여 년 전에 참교육을 외치면서 전교조를 만들고 오랜 투쟁을 해 오신 전교조 선생님들만은 다르겠지요? 전교조 선생님들만은 그런 개새끼들과 맞서서 싸우고 있겠지요?
20여 년 전 전교조 선생님들이 만들어서 보급했던 노래를 하나 듣겠습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툭툭 때리지 좀 마세요
무슨 칠판지우갠가- 뭐-
이건 하면 안 돼 저것도 하면 안 돼
그저 뭐든지 안 돼 밖에 모르시나봐
주물럭 주물럭 대지도 마세요
내가 빨랫감인가요- 뭐-
축 쳐져 빨래줄에 널린 내 모양이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으~ 아침마다 골병 제조기를 타고서 학교에 가보세요
조금만 늦었다가는 벌로 변소 청소
누군 지각을 하고 싶어서 하나요
참 내 들들 볶아대지 마세요
제발 가만히 좀 놔둬봐요- 네?
어렸을 때 생각을 조금만 해보시면 우리 심정 알잖아요
캄캄한 굴속에 들어가는 기분을 아세요- 네?
그 캄캄한 굴속에 들어가기보다도 더 싫은 시험은 왜 있을까
시험보고 매 맞고 통지표 받고
통지표 받고 또 매 맞고
어떻게 해야 만이 어른이 빨리 되서 회초리를 안 맞을까
2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여기저기서 열성적으로 나서는데, 그 중에서 제일 웃기는 분들 중에 하나가 경찰들입니다. 이 분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요란하게 나타났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게 특징인데, 가끔 웃기는 일들을 많이 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도 합니다. 이 분들 직업이 개그맨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그맨들이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몇 년 전에는 강한 대통령의 의지를 믿고 강한 경찰의 힘을 보여주려고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용산에서 철거민들을 태워 죽이고, 평택에서는 노동자들을 확실하게 작살낸 적이 있지요. 조금 과하다는 평이 있어서 수위 조절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정말 용맹하다고 착각을 했나 봐요. 그래서 경찰 오야지는 공사장 함바집 드나들고, 아랫것들은 강남 룸살롱 드나들다가 걸려 버렸내요. 에고~ 에고~
그렇게 개쪽 다 팔고 나서 다시 가오 잡아보려고 조폭들과의 전쟁을 선포하더라고요. 정말 요란했지요. 20년 쯤 전에 노태우 대통령 각하께서 국민들이 편안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던 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써 먹는 걸 보면 경찰 아저씨들 상상력이 좀 모자라긴 해요. 그런데 상상력만 딸리는 게 아니라 힘도 딸렸던지 조폭들이랑 제대로 맞짱 떠보지도 못한 채 중국 어부들이랑 맞짱 뜨다가 또 개쪽 팔았거든요.
그래도 어떻게든 체면을 살려야했던 경찰 아저씨들이 드디어 만만한 상대를 찾았나 봐요. 자기들 수준에는 중삐리나 고삐리들이 딱이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열심히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중삐리(고삐리)와 경찰 아저씨들의 진검승부에서 누가 이길지 정말 흥미롭습니다.
아~참! 중간에 조금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죠. 나라가 발칵 뒤집힌 사건 하나를 조사해서 발표를 했는데 ‘어떤 한 놈이 술김에 그냥 해 본 일이다’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너무 어의없어 하니까 경찰 오야지가 나와서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라면서 자기 부하랑 기자들 앞에서 싸웠다지요? 어쩌면 그렇게 용감한 행동들을 진지하게 하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경찰 아저씨들 보다 더 웃기는 건 영감님들인데 이 분들은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거든요.
혹시 ‘부당거래’라는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이 있으면 이 영화 추천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시고 그냥 그 영화나 보세요.
무서워서 이 분들 얘기는 더 하지 않겠습니다.
DJ DOC가 부릅니다. ‘포졸이’
새가 날아든다
왠갖 짭새가 날아든다
새 중에는 씨방새
날지 못하는 새 짭새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우리나라 경제
좆같은 짭새와 오늘 내가 문제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짭(짭)짭(짭)짭(짭) 짭새가 문제
이번엔 짭새 얘기해볼게
짭새가 우리 민중의 지팡이 흥~ 좆까라가라
난 알아, 나라 우리나라 정말 좋은 나라
무시무시한 정말 살벌한 조폭 형님들과 짭새들과 형님 동생하며 뒤를 봐준다며?
그런지도 꽤 오래됐다며?
단속 뜰 때 미리미리 연락해 그 댓가로 또 돈을 받는다며?
모두 손을 잡어 우리나라 말아 먹어 그러지 말어라
찔러 찔러 너네들의 비리가 옥황상제 할아버지 똥침을 찔러
하네 하네 너네 쫌 하네 넘어가네 가네 가네 저기 아가씨 가네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우리나라 경제
좆같은 짭새와 오늘 내가 문제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짭(짭)짭(짭)짭(짭) 짭새가 문제
나 어렸을 때 쌈 좀 했을 때
누가 옆에서 까불면 못 참았을 때
때려 달라고 막 아구 시리다고 깐죽대던 좆만한 새끼와 한판 떳다가
주민 신고 들어가 빽차 뜨고 짭새 뜨고 나는 달리고
나는 조서꾸미고 그 새낀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아 빽 좀 있는 집 자식이었나보지
빽이 좀 많은 집 자식이었나보지
내가 지금 무슨 얘기하는지 알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그 새끼 전화 한 통화에 너네 짭새 얼굴 싹 바뀌고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 없고 빽 없는 내가 죄!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우리나라 경제
좆같은 짭새와 오늘내가 문제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짭(짭)짭(짭)짭(짭) 짭새가 문제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너네 짭새들의 좆같은 총소리에
난 깜짝 화들짝 놀라 이게 뭔 소리야?
포졸이 또 사고치는 소리야.
빵빵 여기 빵 저기 빵 빵야
(오우) 졸라 무섭다 야아.. (오우) 니네 이제 총까지 쏴? (오우~) 영화 졸라 많이 봤나봐 어?
근데 사람 봐가며 쏴야지 아무나 쏘면 클나 안되지
인간 사냥을 하시나? 아 니네 서바이블 게임하냐? 어?
병아리 잡는데도 기를 쓰지. 니네 짭새 합리화 책임회피
그럼 또 부모 눈에 피눈물이 반성이 필요한 우리 포졸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헛고생만 하다가 드디어 잡았지
이게 몇 년 만인지 (아무튼 잡은 건 축하해)
그러면 그렇지 괜히 짭새가 아니지
고생에 대한 목소리가 원래 그런 족속들인가 (아무튼)
위쪽의 지팡이가 휘두른 지팡이에 무너져버린 진실의 뚜껑이여
새가 날아든다
왠갖 짭새가 날아든다
새중에는 씨방새
날지 못하는 새 짭새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문제야 문제 우리나라 경제
좆같은 짭새와 오늘내가 문제
새가 날아든다 짭새가 날아든다
짭(짭)짭(짭)짭(짭) 짭새가 문제
어떻게 좀 후련합니까?
내친 김에 ‘삐걱 삐걱’까지 들어갑니다.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삐걱
매일 밤 9시가 되면 난 뉴스를 봐요
코미디도 아닌 것이 정말 웃겨요
정치하는 아저씨들 맨날 싸워요
한 명 두 명 싸우다가 결국 개판이 돼요
내 강아지 개 이름은 망치예요
그럴 땐 망치 얼굴 쳐다보기 민망해져요
누구 잘 하는 건지 난 모르겠어요
내 눈에는 모두다 똑같에 보여요
그렇게 싸우고 또 화해를 해요
완전히 우리를 가지고 놀아요
또 지키지도 못할 약속 정말 잘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말 뿐이었죠
이젠 바꿔야해 우리가 바꿔야 해요
누가 바꿔줘요 하며 기다리면 안되요
힘없는 사람은 맨날 당하고만 살아요
이렇게 삐걱대며 세상은 돌아가요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 (어지러운 세상)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 (어지러운 세상)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은
힘없는 사람들 돌봐주지 않아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 (세상)
있는 놈은 항상 있지
없는 놈은 항상 없지
어떻게 바꿔볼 수가 없지
도저히 우리 힘으론 안돼지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빽 없어도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착하게만 살기도 힘든 세상이에요
착하게 살긴 아픔이 너무 많아요
내가 잘못 알았나요
그렇다면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잘못된 게 너무 많아요
그걸 보고 있는 내 가슴은 찢어져요
우리나라 민주국가 맞나요
만약 이런 말도 못한다면 아무 말도 못한다면
그런 나라 민주국가 아녜요 난 콩사탕이 싫어요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 (어지러운 세상)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 (어지러운 세상)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은
힘없는 사람들 돌봐주지 않아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 (세상)
몇 십억이 애들 껌값인가요
그중에 백 만원만 우리 줄 생각 없나요 흥~
돈 없는 우린 이게 뭔가요
대리만족 이라도 하란 건가요
우리생각 한 번 이라도 해봤나요
해봤다는 게 요모양 요꼴인가요 흥~
아저씨들 등 따시고 배부르죠
아저씨들 우리나라 사람 맞나요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삐걱 삐걱
3
광고 하나 전하겠습니다.
강정마을의 평화를 노래하는 '신짜꽃밴'이 드디어 정식 데뷔 음반을 만듭니다.
해군기지를 몰아내기 위해 만든 신나는 노래 열 곡 정도가 첫 음반에 실릴 예정입니다. 널리 알려주세요.
신짜꽃밴 1집 음반 수록 예정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트로
다까
미친 해군
아름다운 바다
막아 막아 막아
해군기지 완전 찬성
버스를 타고
모기
바다가 그리운 돌고래
일강정 등등등
그리고 신짜꽃밴 공식 후원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음반 제작비를 모으고 있습니다.
신나고 짜릿한 음반을 만드는데 힘을 모아주세요 :)
감사합니다!
농협 356-0581-0362-63 (예금주 : 황현진-신짜꽃밴)
읽는 라디오에도 광고가 들어온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ㅋㅋㅋ
그 누구도 참여하지 않는 허접한 방송에 광고가 들어 올리는 없겠지요. 씨~익
그냥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겁니다.
이 광고는 저한테 의뢰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위 글을 쓰신 분이랑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입니다.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벌이는 분들의 카페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글일 뿐입니다.
‘신짜꽃밴’이라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모르고
이분들의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도 모르고
해군기지 반대투쟁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음반을 만드는 작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하나로 음반제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이유 하나면 이분들의 작업을 알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돈 봉투 때문에 여기저기서 난리지요. 그걸 보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참 단순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이 움직이면, 그 돈을 몸이 따라가고, 돈과 몸이 하나가 되면 마음이 뒤를 이어가서 충성을 맹세합니다.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아주 충실하게 살아가는 분들이지요.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사람도 없이 허접하게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허접한 것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잘난 것들이 사는 세상과는 다른가 봅니다. 어떤 사람이 진짜라고 생각되면, 그 진짜를 위해서 뭔가를 진짜로 하고 싶어지는 겁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움직이게 되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돈을 쓰게 되는 겁니다.
얘기를 하다보니까 약간 거창해졌는데, 별로 거창한 얘기는 아닙니다.
강정마을에 들어서려는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그 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 ‘신짜꽃밴’의 활동을 지지하고, 뭔가 작은 힘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만 원 정도 후원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후원금이 어떻게 모여서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겠고, 음반 제작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도 모르겠고, 후원금을 보냈다고 해서 나중에 음반을 받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어떤 일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마음을 전해보는 거죠.
가볍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만원의 돈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4
얼마 전에 후배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전화도 안 되고 도통 소식도 없이 어찌 지낸데요? 연락줘요 핸드폰 분실인감
010-XXXX-XXXX
전화꼭해요!!
메일을 보고나서 막 바로 그 후배에게 전화를 했고, 통화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만 확인했을 뿐이니까요.
저한테 메일을 개인적인 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제 막내 동생이 유일하고, 아주 가끔 구속되신 분들이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주시는 게 세상에서 저한테 내밀어주는 손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아주 짧은 메일 하나가 오래간만에 전해졌고, 저는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설날 오전에 PC방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느라 모두가 바쁠 것 같은 그 시간에 PC방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애들만이 아니라 저 같은 어른들도 많더군요.
그들이 게임을 하던 중간에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메일을 열어봤을 때
“어떻게 지내냐? 살아있기는 하지?”라는 내용이 들어있다면
그들의 설날도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요?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 장’을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땐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 마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내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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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송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방송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공개합니다.
20년쯤 전에 대한극장에서 ‘남부군’을 본 적이 있었다.
단관상영관이던 시절 꽤 큰 대한극장이 가득 찼고,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지금까지 무수한 영화를 봤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그렇게 사람들이 박수를 친 경우는 ‘남부군’이 유일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또 대한극장에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봤다.
조금 어둡고 무거운 영화여서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뭔가를 빨아들이는 영화의 힘은 아직도 느껴진다. 20년 가까이 지난 영화의 줄거리와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몇 년 전에 대학교수가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쏴서 난리가 난 사건이 tv에 보도됐을 때는 “또라이 하나가 난리를 쳤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사그라지고 나서 어느 인터넷언론에서 석궁사건의 진실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서 “이 아저씨 정말 꼴통이네...”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재작년에 구속된 양심수들에게 책을 보내기 위해서 양심수 현황을 봤더니 석궁사건의 김명호라는 사람이 만기를 앞둔 채 수감돼 있었다. 그 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책을 보내드리면서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혼자서 중얼거려봤다.
몇 년 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던 중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박훈 변호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깔끔한 양복 차림의 변호사와 횟집에 가서 술을 한 잔 하면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나도 성질이 더러운 편이고 다혈질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서 웬만한 사람들은 적응이 되는데, 박훈의 다혈질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마초 스타일의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사십을 넘긴 변호사로 살아온 그의 얘기는 숨소리 하나까지 진짜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 뿐 아니라, 서로 배짱만 맞으면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정지영 감독이 석궁사건의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만으로도 관심이 가는 영화였다.
“이런 영화가 제주도에서 개봉할까?”라면서 반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씨네 아일랜드’라는 영화단체를 통해 시사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호!” 환호성을 치면서 신청을 했고, 오래간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그리 크지 않은 상영관이기는 했지만, 주최 측에서도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계단에 앉아서 보는 사람도 있었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쏘는 장면부터 시작한 영화는 이런저런 군더더기 없이 초스피드로 재판과정을 향해 달려갔고, 초점을 2심 재판에 맞춰서 물고 늘어졌다.
영상미를 비롯한 예술적 완성도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작위적인 설정이 없지는 않았지만 상업적 고려를 별로 하지도 않았다. 왜곡된 석궁사건과 말도 안 되는 억지로 일관한 재판과정만을 얘기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법정을 무대로 한 영화를 많이 봤었지만, ‘부러진 화살’처럼 법정에서의 촬영 비율이 높은 영화는 보지 못했다. 법정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법정 그 자체의 권력관계를 까발리고 있는 것이었다. 진실이 가려지고 정의가 심판받는 법정이 아니라 법이 개무시되면서 판사의 오만과 독단만이 힘을 발휘하는 법정의 현실을 알몸 그대로 보여줬다.
보수주의자인 김명호 교수는 “법이 법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진보주의자인 박훈 변호사는 “사람들이 한참 피 흘리고 싸운 뒤에 그 결과로 정리되는 법은 쓰레기다”라면서 티격태격 하면서 현실의 권력에 도전한다. 하지만 현실의 권력인 판사는 근엄한 표정으로 그의 힘을 발휘하다가 살며시 웃음을 보이면서 “이게 법치국가야!”라고 얘기하듯이 판결을 내린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영화가 무거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웬걸! 웃고 박수치면서 정말 재미있게 영화를 봤다.
억지스러운 상황이나 가벼운 말장난으로 웃음을 만들려고 하는 코미디 영화들과 달리 상황 자체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역시, 현실이 최고의 코미디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유쾌하게 얘기를 풀어가면서도 현실을 가볍게 다루지는 않았다. ‘숨 막히는 현실일수록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서로간의 신뢰로 현실에 맞설 수 있다’는 다소 고전적인 저항영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유쾌함과 비장함을 잘 버무려서 멋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감독의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화였다.
정지영 감독이 ‘도가니’를 의식하면서 ‘부러진 화살’을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두 영화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점이 많았다.
끔찍한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처벌하기 위해 정의의 심판을 바라며 법에 호소해보지만, 법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악의 현실만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두 영화 모두 바로 몇 년 전에서 일어난 실화에 충실한 영화라는 점이다.
‘도가니’는 끔찍하고 비열한 짓거리가 당당하게 벌어지는 사건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다뤘다면, ‘부러진 화살’은 말도 안 되는 권력의 횡포에 당당하게 맞서는 주인공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도가니’에서는 주인공인 공유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부러진 화살’에서는 주인공인 안성기가 크게 부각된다.
현실의 악마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도가니’에서는 주연보다 조연인 학교 선생들이 더 강하게 돋보였지만, 저항의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부러진 화살’에서는 선한 주연과 대비되는 악한 판사들이 조롱거리로만 보여졌다.
영화보다 더 끔찍한 현실 앞에서 ‘도가니’는 매우 조심스럽고 낮은 자세로 현실의 얘기를 전하려 했다면, 현실 그 자체를 고발하면서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려고 했던 ‘부러진 화살’에서 리얼하게 재연되는 영화 속 현실은 유쾌하게 각색돼 있었다.
‘도가니’를 보고 나서는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꼈지만, ‘부러진 화살’을 보고 나서는 김명호 교수와 박훈 변호사에 대한 애정을 느껴졌다.
1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언론에서는 흑룡 해라고 하면서 온통 희망과 기대로 떡칠을 하고 있지만, 무덤덤하게 또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아주 우울하게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설레임과 무덤덤과 우울함 가운데 어디쯤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나요?
무덤덤과 우울함의 중간쯤에서 맞이한 새해 첫 방송에서는 제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우울증과 불면증에 대한 얘기입니다.
희망과 기대 속에 새해를 시작하시는 분들은 이 방송을 끝까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우울해지거든요.
무덤덤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덤덤하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우울하게 새해의 달력을 쳐다보고 있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지 않을래요?
김윤아의 노래로 새해 첫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내게도 이름이 있었다한들
이미 잊은 지 오래인 노래
아아아
부서진 멜로디만
입가에 남아 울고 있네.
검푸른 저 숲 속에도
새들은 날아들고
아아아
아아아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내게도 이름이 있었다한들
이미 잊은 지 오래인 노래
아아아
부서진 멜로디만
입가에 남아 울고 있네.
붉게 멍울 진 마음에는
일상도 꿈도 투명하여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 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2
2007년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10여 년간 활동했던 울산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막내 동생이 있는 경기도 일산으로 갔습니다.
“맨땅에 헤딩 한 번 해보지...”라는 마음으로 진짜로 맨땅에 헤딩을 해봤더니 머리만 작살났습니다.
20대와 같은 열정만으로 세상을 대하기에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턱대고 세상에 나서기에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미친 듯이 판치는 세상은 생각보다 더 차갑고 잔인하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조심스럽게 아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다 제 코가 석자였습니다.
울산과 대공장을 배경으로 내가 어깨에 힘을 주며 서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먹어주었는데, 아무런 배경도 없이 혼자 고개를 쳐들고 있어봤지만 제대로 쳐다봐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진보와 연대와 혁명의 가치는 냉혹한 생존의 현실 앞에서 너무 허약하더군요.
만날 사람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게 됐습니다.
TV 보고, 컴퓨터 하고, 낮잠 자고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밤에도 역시 TV 보고, 컴퓨터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정을 넘기면서부터는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먹기 시작합니다.
낮잠 때문에 밤에 더 잠을 자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낮에는 지하철 종점여행을 하면서 4~5시간을 보내보지만, 역시 밤에는 잠이 오지 않습니다.
무기력해지는 내 모습에 한숨이 나오고, 비정한 사람들의 모습에 배신감도 느끼고, 냉혹한 세상의 현실에 숨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먹는 술의 양은 점점 늘어서 1.5ℓ짜리 페트병 맥주 세 통은 먹어야 겨우 잠이 듭니다.
매일 술을 사러가는 것도 눈치 보여서 술을 사러가는 슈퍼를 2~3일마다 바꿔서 돌아다닙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야동에 푹 빠져서 밤을 보냅니다.
새벽 1~2시면 잠들던 것이 점점 늦어져서 5~6시가 되어서 해가 밝아 와야 겨우 잠드는 일이 많아집니다.
위가 탈이 나서 헛구역질을 자주 하고, 기침이 잦아지면서 폐에도 이상신호를 보내고, 장에도 탈이 났는지 설사가 잦아지고, 증상이 느껴지지 않는 간은 과부하에 허덕이리라 상상합니다.
정신도 점점 망가져가서 야동 없이는 시간을 보낼 수가 없고, 거리를 다니는 많은 여자들이 발정 난 암캐처럼 보입니다.
심각해지는 내 자신을 느끼지만, 잠 못 드는 밤을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3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오랜 기간 고통을 견디다가 참지 못해서 그런 결정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살을 생각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더군요.
2~3달의 고통만으로 충분하더라고요.
세 가지 조건만 있으면 됩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무기력한 자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
자살사이트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죽어야 고통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자주 했습니다.
멀리 가서 죽으려고 하다보면 마음이 변해서 돌아오지 않을까?
지하철에 달려들면 아프지 않을까?
약을 먹으면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하던데...
목을 매달거나 물에 빠져서 죽을 때까지 견디는 건 자신 없는데...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높은 데는 올라갈 수도 없고...
정말 웃기는 얘기지만, 그런 어이없는 걱정들을 많이 했습니다.
문득문득 “어떻게 죽을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술을 먹고 누워 있으면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죽으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유서에 남기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한 마디는 그렇게 수없이 흘린 눈물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 내가 죽었다면 나는 몇 달의 고통을 끝낼 수 있겠지만, 내 죽음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들은 몇 십 년을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잔인한 짓이지요!
결국, 그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 저는 자살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 같이 죽을 사람을 찾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 근엄한 표정으로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면 그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싶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의지가 약해서 죽는 게 아니라, 그 두려움과 슬픔을 가슴에 품고 용기를 내서 죽는 것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다가 죽지 못한 사람들은 흔하게 하는 말처럼 ‘죽지 못해 사는 것’일 뿐입니다.
노래 하나 더 듣겠습니다.
윤심덕이 부릅니다. ‘사의 찬미’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에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4
몸과 정신을 망가트리는 술과 야동 말고 삶을 견디게 하는 다른 것들이 필요했습니다.
돈이 들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저와 같이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즐겼던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특별할 것도 별로 없고, 취향이 맞지 않으면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지역에 한정된 정보이기는 합니다.
가장 쉽게 위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음악을 많이 듣는 겁니다.
P2P사이트에 들어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무진장 다운 받고, MP3플레이어 같은 걸 끼고 사는 것이지요.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이런 기능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죠.
그날그날 기분에 맞춰 듣고 싶은 노래들을 골라서 가까운 곳을 거닐어 보는 겁니다.
제가 살던 일산에는 커다란 호수공원이 있어서 한 바퀴 도는데 1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2시간 정도는 몸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집니다.
그렇게 음악을 듣다보면 가사와 멜로디에 깊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냥 흘려듣는 음악들과 달리 영혼의 위안을 느끼게 합니다.
또 하나는 책에 빠져 보는 겁니다.
요즘은 공공도서관들이 곳곳에 있어서 책을 빌려는 것이 쉬운 편입니다.
시설이 괜찮은 도서관에서는 편하게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지하철 종점여행 같은 걸로 시간을 때울 때도 멍하니 있는 것보다 책에 빠져 있으면 시간이 잘 갑니다.
지식을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읽는 책은 대화하듯이 편한 책들이 좋더군요.
물론, 책이 재미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몇 년간 제가 읽었던 책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모아놓은 곳이 있습니다.
이곳(http://blog.aladin.co.kr/771153103)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보세요.
웬만한 것은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을 겁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비교적 값싸고 좋은 방법입니다.
서울 같은 경우는 일반 멀티플렉스 상영관만이 아니라 예술영화전용관들도 많기 때문에 조금만 발품을 팔면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감동적이고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2~3일 정도는 마음이 여유로워지더라고요.
인터넷을 뒤져보면 돈 들이지 않고 좋은 영화들을 즐길 수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제가 가장 애용했던 곳은 영상자료원입니다.
서울의 북서쪽 끝인 상암에 있고,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면서 가야하는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2~3편의 영화를 상영합니다. 극장 시설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고요.
독립영화나 고전영화, 외국의 다양한 영화들을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는 좋은 공연을 보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습니다.
요즘은 웬만한 지역마다 공연시설들이 들어서서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가격이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즐겼던 것은 EBS에서 하는 ‘스페이스 공감’이었습니다.
EBS가 서울의 남동쪽 끝인 매봉역 근처에 있어서 일산에서는 조금 멀기는 했지만, 150여 명 정도가 들어가는 아담하고 시설 좋은 공연장에서 수준 높은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주중에는 매일 무료로 공연이 진행되는데, 경쟁률이 놓아서 몇 번 신청을 해야 당첨이 됩니다.
유명한 가수의 공연은 당첨 확률이 떨어지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나 연주자의 공연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2장의 표를 주기 때문에 누군가와 같이 가서 봐도 되고, 혼자서 가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한 번 당첨되고 나서는 얼마 동안 당첨에서 제외되기는 하지만, 3~4개월 후에 다시 시도하면 좋은 공연을 또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영혼에 위안을 주면서 버틸 수 있기는 했지만
암환자에게 진통제를 아무리 투여해도 잠시 고통을 잊게 만들 뿐인 것처럼
고통을 안겨주는 삶이 변하지 않는 한 문화생활이라는 것도 진통제일 뿐이기는 했습니다.
5
그렇게 일산에서 2년을 버텼습니다.
울산을 떠날 때 손에 들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전세금도 다 까먹고
몸과 정신은 심각한 상태로 나빠지고 있는데
재기를 위한 몸부림을 확실하게 짓밟아 버리는 일도 일어나서
더 이상 비털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왔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행복했습니다.
편안한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아름다운 자연을 호흡하면서 여유를 찾고
귀여운 조카들의 웃음을 보면서 오래간만에 웃어보기도 하면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과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천국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소일거리 한다는 생각에 밭일을 도우려다가 가치관의 차이로 부모님과 사소한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고
가부장 질서가 강하게 남아 있는 촌 동네는 위축된 나를 더 위축되게 만들고
아주 작은 공공도서관과 시내에 있는 멀티블랙스 영화관을 빼고는 문화생활을 즐길 거리도 별로 없고
불편한 시외버스를 타고 종점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결국, 혼자서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보거나, 잠을 자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보낸 기간이 또 3년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일산에 있을 때는 뭔가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끔찍해서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까...”를 고민했었는데
제주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면서 소설이라는 것도 써보고...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싶어서 유일한 자산인 책들을 나눠주기도 해보고...
블로그를 통해서 이런 저런 글들도 올려보고...
그렇게 3년 동안 아주 천천히 내 자신을 쓰다듬었습니다.
아직도 답답함으로 꽉 찬 가슴을 비울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숨을 쉴 수는 있습니다.
이상은의 ‘바다여’를 듣고 얘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바다여 바다여
작디작은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오랜 옛날 한 청년이 배를 타고 흘러흘러
작은 섬, 남쪽의 나라에 와서 살았다네
그 바다에 지금 그대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은 가장 빛나는 파란 보석
바다여 바다여
크디크던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작디작은 내 꿈도 이젠
그대의 앞에선 반짝반짝 별 하나 되네
세상을 바꾸려고도 해보았고 사람들도 도와주며
세상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기 싫어 떠났다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죽어서 더욱 큰 꿈으로 자라나
고운 열매와 붉은 꽃이
우... 세상을 바꿀 수 없는 건 알고 있겠지
우... 새벽 4시의 편의점에서 우는 그대여
우... 그대의 사랑으로 세상은 1mm 쯤
우... 아름다워졌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바다여 바다여
크디크던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작디작은 내 꿈도 이젠
그대의 앞에선 반짝반짝 별 하나 되네
친구여 친구여
우리가 녹아버린 시간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 녹았을 뿐
이름 모를 꽃과 새들이 있는 먼 먼 남쪽
그는 또렷한 눈매의 별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네
6
우울증이 대인기피증으로 바뀌고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하던 것이 새벽마다 잠에서 깨는 것으로 바뀐 것이
지난 5년 동안 변해온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조심 살아가는 이곳에도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나아졌다가 심해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 없이 방에 틀어박혀 있는 아들과 달리
어머니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밭일과 집안일에 미친 듯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약을 먹고 잠드시는 어머니는 아들이 화장실 다녀오는 소리에 12시쯤에 살며시 깨고
약 없이 12시 넘어 잠드는 아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난 어머니의 집안일 소리에 깨어납니다.
서로가 미안해하는 걸 알기 때문에 깨어나서도 그대로 누워있습니다.
아들은 날카로워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해서 조심조심합니다.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버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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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방송에서 영화 ‘로제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로제타에게 제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뢰나 친밀함도 없는 로제타가 단지 스무 살쯤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대뜸 반말을 해버렸습니다.
누군가 처음 보는 사람이 나보다 스무 살 쯤 많아 보인다는 이유로 대뜸 반말을 하면 엄청 기분 나빠하면서 말입니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렇게 삶 속의 작은 권력 하나씩을 쌓아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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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송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방송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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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켜면 채널이 무진장 있습니다. 얼마 전에 종합편성채널까지 개국을 해서 취향대로 골라볼 거리는 더 다양해졌다고 하는데, 막상 볼만한 거는 정말 없습니다. 그렇게 재미없는 것들을 만들어서 무수히 쏟아내는 능력을 보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tv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리고 나서 꺼버립니다. 그리고 라디오를 켭니다. 라디오 채널도 많아서 여기저기 돌려봅니다. 다행히 괜찮은 음악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듣다보면 tv보다는 여유로워집니다. 하지만 진행자들끼리만 히히거리면서 농담을 주고받거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상적인 멘트로만 일관하는 프로그램이 곧 실증이 납니다.
인터넷에도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많은 방송들이 널려 있습니다. 너무 많아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으면 어떤 방송이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소문을 통해서든 웹서핑을 통해서든 재미있는 방송을 찾게 되면 즐겨찾기를 해두고 자주 듣게 됩니다. 그 자유로움과 깊이에 금방 빠져버려서 광팬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유로운 인터넷 방송도 잘난 사람들의 재능이나 기술을 자랑하는 공간 이상은 아니더라고요.
저는 돈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고, 세상에서 먹어주는 명성도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나이 사십을 넘겨서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한심한 노총각입니다. 한마디로 허접한 인간이죠. 인터넷도 안 되는 집에는 15년 정도는 된 낡은 노트북이 하나 있는데, 저한테는 tv, 라디오와 함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이 낡은 도구를 갖고, 자판을 빨리 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을 사용해서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이 허접한 사람도 진행할 수 있는 라디오를 생각해봤고, 오늘 첫 방송을 시도해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의 역사적인 첫 방송을 자축하는 노래를 하나 듣겠습니다.
롤러코스터의 ‘힘을 내요 미스터 김’
오늘도 많이 바쁜 가요
또 자꾸 짜증이 나나 봐요
벌써 몇 번째 한숨 쉬고
끊었던 담배 다시 피우 나요
거울을 봐요 충혈 된 두 눈에 언제나 용모단정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등만 대면 잠이 와요
이름을 말해 봐요 미스터 김
당신이 꿈꾸던 삶은 어디에
하고 싶었던 일 뭔가요
아직도 늦지 않았어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멋있게 행복하게 사는 거죠-
어어우 어어~ 어어우 어어~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번쩍이는 검은 구두
무표정한 얼굴 뒤에는 무슨 생각 하나요
이름을 말해 봐요 미스터 김
당신이 꿈꾸던 삶은 어디에
기죽지 말아요
어깨를 쫙 펴고 당당히 맞서요
이제부터라도 신나게 맘대로 멋지게 사는 거죠
하고 싶었던 일 뭔가요
아직도 늦지 않았어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멋있게 힘을 내요 미스터 김
2
며칠 전 엄청 추운 날이었습니다.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채 재미없는 tv를 보면서 하루를 게기고 있었죠.
오후 늦게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신 부모님이 목욕을 하러 간다기에 나도 따라나섰습니다.
목욕하고 싶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무 길어버린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사는 촌 동네는 목욕이나 이발을 하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마침 이날 동생이 데리러 온다고 해서 끼어서 나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부모님과 동생과 조카는 목욕을 하러가고
저는 동생 동네를 두리번거리면서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커다란 간판의 미용실이 보여서 들어갔습니다.
아파트단지라서 그런지 내부도 깔끔하더군요.
제가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이 머리를 깎고 있어서 저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조금 있으려니까 어떤 여자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첫 눈에도 우아하고 도도해 보이는 그 여자가 들어오자 다른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던 주인이 잠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미용사가 안쪽에서 나오더니 나보다 뒤에 온 그 여자의 아이를 의자에 앉히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제가 먼저 왔는데요”라고 한 마디 했더니, 그제야 주인이 저를 보면서 “조금 있다 제가 해드릴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가슴 속에서 ‘욱’하고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나가서 다른 미용실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추운 날씨에 미용실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도 귀찮고
그렇게 성질부려봐야 나만 더 짜증날 거 같아서
‘이런 일 처음도 아닌데...’라면서 마음을 식혔습니다.
금방 마음은 진정됐고, 내 앞에 머리를 깎던 사람이 끝나서 제가 의자에 앉았습니다.
주인은 아주 숙달된 솜씨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기다리던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 만에 머리를 깎고 나서 거울을 보니 아주 깔끔해보였습니다.
‘가격이 비싸면 어떡하나’ 하고 잠시 걱정했는데, 8천 원이면 비싼 편도 아니어서 좋았습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부모님과 동생과 조카가 목욕을 마치고 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근처 갈빗집으로 향했습니다.
조카가 “삼촌, 손 잡아줘”라고 해서 환하게 웃으면서 조카의 손을 잡았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갈빗집에 가서는 양념갈비와 홍어를 시키고 맥주도 한 잔 했습니다.
매일 꾸역꾸역 집어넣는 밥이 아니라 꼭꼭 씹어 먹는 갈비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술이 얼마나 달았는지...
세상 사람들이 다 우습게 대하는 삼촌에게서 고기를 받아먹는 조카가 얼마나 귀여운지...
잘못했다가는 주책없이 울 뻔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성민이 오늘 갈비에 맥주 한 잔 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밤에 혼자서 술을 먹고 있을 사람들...
술로도 잠이 오지 않아서 야동을 보면서 밤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행복한 순간에 왜 하필 그런 사람들이...
오늘도 그런 분들이 많겠지요?
혼자서 술을 먹고 있을 분들, 야동 보면서 딸딸이 치고 있는 분들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자우림의 ‘그래, 제길!’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해놓은 것 없이
가진 것 하나 없이
그럭저럭 되는대로
그런 하루 하루
나도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나도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뜻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믿는 사람 없이
진짜 사랑 한 번 없이
그럭저럭 되는대로 그런 하루 하루
나도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나도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뜻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맘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3
영화 얘기 하나 할까요?
제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제 막내 동생이 영화 쪽 일을 하기 때문에 가끔 동생이 저를 위해서 영화를 보내줍니다.
그렇게 봤던 영화 중에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몇 편 있었습니다.
벨기에 출신 형제 감독인데요, 저도 동생이 구워준 영화를 보면서 이런 감독이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감독이더군요.
원래 다큐멘터리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극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찍어서 영화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사회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를 다루는 데, 너무 사실적이어서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그중에 ‘로제타’라는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배경과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 얘기를 따라가기가 좀 어렵습니다.
프랑스 어딘 쯤인 거 같은데, 10대 후반인지 20대 초반인지 잘 모르지만 한 여자가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 됩니다.
수습 기간이 끝났다는 게 해고의 이유죠.
그래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데 그게 쉽나요.
그 여자의 이름이 로제타입니다.
로제타가 사는 동네는 어느 외각 공터에 트레일러들로 집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동네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허가 판자촌 정도 될까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사십대로 보이는 엄마는 심한 알콜중독자입니다.
어딘가에서 구해온 헌 옷을 수선해서 파는 일로 살아가는데, 술 먹을 돈이 없으면 주변 남자들에게 몸을 내주고는 술을 얻어먹습니다.
일자리는 구하지 못하고, 엄마가 수선한 옷은 헐값에 떨이로 처리하고, 알 수 없는 병으로 배는 엄청 아픈데, 엄마는 맥주 하나만 먹게 해달라고 조르고, 창틈으로는 찬바람이 들어와서 휴지로 막고는 드라이어로 아픈 배 위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구질구질한 삶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데 어느 길거리 와플판매대에 있는 남자아이가 로제타에게 관심을 보여서 일자리를 소개해줍니다.
자기 사장이 한 사람을 해고 했는데 그 자리에 로제타를 소개한 거죠.
누군가가 쫓겨나야 그 자리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게 그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로제타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 아이는 트레일러가 아닌 건물에 살지만, 그 건물은 로제타가 살아가는 트레일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살아가는 그도 중학교 때는 마루운동 선수였고, 지금은 드럼을 배우면서 꿈이라는 걸 갖고 있습니다.
술을 먹기 위해 몸을 파는 엄마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로제타는 “엄마는 술 하고 그 짓 밖에 모르냐”면서 엄마를 알콜중독자 치료소 같은 곳으로 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곳이 끔찍하게 싫었던지 도망을 가려고 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로제타는 “갔다 오면 중고 재봉틀이라도 사줄께”라고 달래보지만 엄마는 “나 정말 거기 가기 싫어”라고 할 뿐입니다.
엄마가 밀치는 바람에 진흙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로제타를 두고 엄마는 어디론가 도망쳐 버립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제타가 또 해고됩니다.
이유는 사장의 아들이 방학 동안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에 로제타가 하던 일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일자리를 찾아서 돌아다녀야 하는데 배는 수시로 아프기만 합니다.
그런 로제타를 보고 로제타의 일자리를 소개해줬던 남자가 ‘자신이 와플을 몰래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로제타는 밤에 몰래하는 부업 말고 진짜 직업을 원한다면서 거절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사장을 찾아가 그 남자 아이의 행동을 꼬질러서 쫓아내고는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남자가 퇴근하는 로제타를 쫓아가서 “왜 그랬어?”라고 물으니 로제타는 망설임 없이 “일이 필요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비열하게 일자리를 차지해서 집으로 돌아 왔는데, 엄마가 술이 떡이 돼서는 집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던 로제타는 공중전화로 가서 사장에게 전화를 겁니다.
“로제타예요. 저 이제부터 일하러 가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짧게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서 다시 트레일러로 돌아옵니다.
달걀 하나를 삶아서 먹고는 아픈 배를 쓸면서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깁니다.
그때 가스가 떨어져서 무거운 가스통을 들고는 관리인에게 가서 가스를 사 옵니다.
더 무거워진 가스통을 킹킹거리면서 들고 오는데, 로제타 때문에 잘린 남자가 시끄러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로제타 주위를 빙빙 돕니다.
애써 무표정하게 걸어가던 로제타가 가스통을 떨어뜨리고 배를 만지며 쓰러져서 울고 맙니다.
꾹꾹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고마는 로제타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로제타의 소원은 “보통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직업이 있고 친구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로제타에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너랑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 살고 있고, 나이도 니 엄마 또래이지만,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게 소원이거든.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그렇게라도 울 수 있는 니가 부럽더라. 세상에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4
저한테 편지 두 통이 왔습니다.
물론, 제 쪼대로 아무렇게나 해보는 이 방송을 위해서 보내온 편지는 아니지만 소개해 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답장 한 번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두 해가 지나고 년말이 다되어서야 글을 올립니다.
편지를 꼭 한번쯤은 해야하겠다고 마음을 갖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지나다보니 그만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래전 책을 보내주셨을 때 답장을 꼭 해야겠다며 스크랩을 할려고 빼놓았던 신문지 하단 한 귀퉁이에 주소를 옮겨 적어놓고는 깜빡 읽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저께 우연히 그때 그 신문을 뒤척이다가 주소를 발견하고는 정말.. 정말...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급히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염려 덕분에 이곳에 있는 저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요즘 들어 싸늘한 기온에 점점 추운 겨울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합니다. 주소를 보니 집이 제도주이시네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때 한 번 가보고는 그 뒤로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못가 보았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TV 프로 1박2일을 통해 제주도의 멋진 경치와.. 올래길, 해수욕장, 폭포 등등을 보았지요. 혹시라도 제가 출소 후 제주도에 갈 일이 생긴다면 한 번 찾아 뵈었으면 해요.... ^ ^
어느 새 용산참사가 발생한지도 3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2012년 여름쯤은 아마도 특사가 있어 출소하지 않겠어요? 새로운 대통령을 야당쪽에서 출마해 당선되는 날 저희의 억울함과 말도 안되는 재판부의 판결을 뒤엎기 위해 재심 청구를 하고 무죄임을 밝혀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야 불에 타 죽은 동지들의 한을 풀어주지요. 그리고 억울하게 지금도 감옥 안에서 구속 수감된 많은 동지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옵니다. 세월 앞에 모든 것들은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가봅니다.
저는 공주교도소로 이감되어 장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지루함을 잊기 위해 출력을 했더니 그래서 시간이 잘 흘러 가는 것 같네요. 얼마 있으면 년말 크리스마스네요. 성민씨는 하나님을 믿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옛날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지냈던 일이 많이 생각납니다. 송년회와 신정... 곧이어 구정이 있지요. 이맘 때 쯤되면 시골에 계시는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합니다.
제 고향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이라고 합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던 곳은 서울 용산이구요. 지금은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 둘만 살고 있어요. 딸아이는 벌써 사춘기가 되어 아빠인 저로서는 많이 걱정이 됩니다.
뒤늦게 결혼을 하여 아직 아이가 어려요. 그래도 후회는 않아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한 번도 빠짐없이 면회를 오고 있어요. 아내와 어린 딸아이에게는 미안함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요. 이제 조금만 고생하면 좋은 날이 있지 않겠어요.
성민씨도 힘내세요. 환절기에 감기조심 하시고 건강하세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공주에서 재호 드림
안녕하세요.
담장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쌓다보니 또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 넘어온 따뜻한 마음 많이 감사했습니다.
사극 대사처럼 우라질 놈의 세상, 국익만 있고 국민은 없는 세상을 담이 높아 보지도 듣지도 못해 아무 생각 없이 밥만 축내며 어제 같은 오늘을 덧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운동장 구석에는 이름 모를 잡초가 지치지도 않고 초록을 지키고 있습니다.
삭풍이라도 몰아쳐야 필부의 가슴이 다시금 뜨거워질텐데 말입니다.
평화의 땅 제주도 옹이처럼 굳어있는 뉴스와 웃음을 준 소식들이 교차하는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신혼여행도 못시켜준 아내랑 함께 말입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불쑥 찾아가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금년 한해는 잘 보내셨나요. 아쉬움보다 작은 성취들의 기쁨 주는 일상이였으리라 믿습니다.
壬辰 새해에는 조금 더 자주 웃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카와 그 수족들, 천박하고 파렴치한 이 땅 자본들까지 정리해고 시킬 생각하니 생기가 돌기도 합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해고시키는 세상도 반드시 올거라 믿습니다.
내일부터는 공장을 포위하는 투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한진에서 불어오는 동남풍을 들불로 만들어야 할텐데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응원 많이 해 주세요.
오지 않을 행운 따윈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하고 고맙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며 공장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뜻 하시는 일 모두 무탈하게 성취하는 멋진 한 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1. 12. 6
화성옥에서 한상균 書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나 같은 놈을 생각해주는 사람은 전과자들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짝 웃어봤습니다.
이번 연말에 구속된 분들에게 책을 한 권씩 보내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책도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속상했었는데
두 통의 편지를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전국 여기저기에 있는 교도소의 담장 안으로 제 목소리가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직접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워낙 노래를 못 하기 때문에
음정과 박자가 개판이겠지만
제 성의라고 생각해서 들어주세요.
음.... 음....
지...
지...
흐~음!
지난 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음...
지난 밤 꿈속에서 온종일 비 내리더니
창밖에 키 작은 목련꽃이 하얗게 봄을 피웠네
무심코 바라보다
빙그레 웃음 흘리다
문득 가슴 저미게 불러봤소
창살 아래 사랑아
그대와 함께 있기에 내 삶은 더욱 의미가 있고
그대와 함께 걷기에 우리 갈 길이 뚜렷해지네
사무치는 그리움 따라 밤새도록 비바람 불더니
창밖에 키 작은 목련꽃이 하얗게 봄을 피웠네
5
이제 첫 방송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게 뭐야!”라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음...”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뭐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이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저처럼 허접한 사람이 혼자서 주절거려보는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는
잘난 사람들만 나대는 게 아니라
개나 소나 허접한 것들도
한번쯤은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싶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도 하루를 그냥 버틴 사람들...
술로 밤을 견디는 사람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
답답함으로 꽉 찬 가슴에 다시 답답함을 구겨 넣는 사람들...
이런 사람이 한 분이라도 오셔서 제 손을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연주음악을 하나 들으면서 첫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읽는 라디오이기 때문에 가사가 없는 연주음악을 들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악기 하나를 생각해 보세요.
피아노여도 되고, 바이올린이나 트럼펫도 상관없고, 전자기타나 드럼도 괜찮습니다.
그 악기 하나로 여러분이 혼자서 연주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저는 그 연주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잔잔한 바다 위에 요트가 하나 떠있습니다.
겨울치고는 따듯한 날이라서 참 좋습니다.
맑고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속에
하얀 돛을 단 갈색 요트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너무 편안하고 아름답습니다.
저기 수평선 쪽을 보세요. 뭔가 움직이고 있어요.
돌고래일까요?
가까이 가보죠.
앗!
아~ 사람이었군요.
혼자서 수영하고 있는 거겠죠.
이렇게 맑은 날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아무래도 겨울바다라서 조금 쌀쌀하네요.
저기 보세요!
갈매기 한 쌍이 날아가고 있어요.
사랑하는 연인 갈매기인가 봐요.
너무 사랑스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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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송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방송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공개합니다.
1
설을 앞두고 울산에서 부고가 전해졌다.
해고자 생활 10년을 버티면서 복직의 끈을 놓지 않고 싸워왔던 그는
나이 오십도 되지 않아서
자살도 사고도 아닌 병으로 죽고 말았다.
‘질긴 놈이 먼저 죽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멍해졌다.
당장 울산으로 가야하는데 망설여졌다.
내가 상처를 줬던 사람들
만나서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든 사람들이
죽은 이보다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망설이다가
망설이고만 있는 시간이 더 힘들어서 울산으로 향했다.
무수한 이들과 악수를 하면서도 긴장했다.
웃으면서 술을 먹으면서도 긴장했다.
그렇게 긴장 속에 밤은 깊어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떠난 영안실에서
죽은 이의 웃는 사진 앞에서 3백배를 했다.
풀린 다리를 지탱하기 어려워 자리에 누우니 긴장도 풀렸다.
조금 떨어진 옆에 모르는 여자가 자고 있었다.
그의 손을 만지려고 내 손을 뻗다가 들켜 버렸다.
새벽 일찍 영안실을 빠져나와서 제주도로 도망쳐버렸다.
지친 몸과 자괴감 속에 아무 생각 없이 설을 보내고 누워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몇 년 전 내 심장에 칼을 꽂았던 이의 술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서 화를 내고 말았다.
통제되지 않는 채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내 자신이 무섭고
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추어 딱지를 때내는 게 무서워서
휴대폰을 해지해버렸다.
세상을 향해 남아 있던 또 하나의 문을 닫아버렸다.
2
고통스럽게 혼자서 발버둥 치던 지난 몇 년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소설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내 상처를 쓰다듬고
내가 상처 줬던 이들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쓴 글을 통해서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나만큼 힘들게 버티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을 안아주고 싶어졌다.
내 글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책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을 했다.
무작정 출판사로 메일을 보내서 책을 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6개월 동안 무수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진보적인 출판사는 거의 다 시도해봤고
문학 관련 출판사도 여러 군데 시도해봤지만
단 한 군데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출판시장의 현실을 조금은 알게 됐다.
권력화 된 거대 출판사들은 그들의 카르텔 외부의 시도는 단호히 거부했다.
중소 규모 출판사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들의 영역만을 관리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진보의 가치는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일 뿐이었다.
대중의 자발성과 창조성에 대한 찬양은
전문가들의 입과 글로 나왔을 때 상품이 될 수 있지만
나처럼 허접한 이들이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냉혹하게 거부됐다.
대중민주주의니
다중지성이니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니
이런 것들은
버려져서 배고픈 개들에게 주면
영양가는 없지만 달콤해서 잘 먹을 거다.
3
벌어 놓은 돈도 없이
갑자기 고향에 내려와서
몇 년 동안 빈둥거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
워낙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어서
웬만한 것은 그냥 견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동생과 매제도 은근히 나를 우습게 대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기대고 있는 곳이 가족이라서
참고 지내다가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서 즐거운 자리를 가지던 날
술기운에 성질을 한 번 부려버렸다.
그 효과는 막 바로 나타났다.
부모님을 빼고는 웬만해서 나와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명절에는 모두가 모여서 밥을 같이 먹지만 술은 사라졌다.
이제,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이 술을 먹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4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투쟁 소식을 자주 듣게 된다.
그렇게 전해지는 소식을 통해 마음으로만 그 투쟁을 지지하는 가운데
긴장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해졌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강정마을로 찾아갔다.
아는 사람도 없는 그곳에 불쑥 찾아가서 뭐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투쟁과 긴장감 속에 지쳐있는 그들 앞에서
들쑥날쑥 하는 내 자신을 붙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중의 고통을 호흡하면서 차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행동은 거침없었다.
결국
제주지역 활동가들에게는 ‘육지에서 놀아봤다고 잘난 척 하는 놈’으로
타지역 활동가들에게는 ‘텃새부리는 섬 놈’으로 찍혀서
튕겨 나와 버렸다.
이후에도 해군기지 반대투쟁은 계속 되고 있고
나는 집회나 참석하면서 그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5
하루에도 몇 번 씩 깊은 호흡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속에서도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있었다.
나보다 더 힘들게 높은 담장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책을 보내기 시작하고
그들의 따뜻한 편지를 받아들고 몇 번을 다시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세상에는 이런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책이 점점 줄어들어서
2~3권씩 보내던 것을 1권으로 줄여야 했고
그것도 힘들어져서
미결수는 포기하고 기결수에게만 보내야 했다.
그 마저도 힘들어져서
블로그에 글을 올려서 도와달라고 호소해봤다.
2011년을 마무리 하는 연말에
그들에게 작은 책 한 권씩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결국 보내지 못했다.
나에게 책이 많이 있을 때
그 책을 나눠주겠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줬지만
그 책이 다 떨어져서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와중에 하나 둘씩 출소하는 이들도 생겼다.
그렇게 출소한 이들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세상살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는 걸 알지만...
6
내가 몸부림치면 칠수록
세상은 점점 촘촘하게 나를 죄어 온다.
2011년이 끝나가고 있다.
그렇게 나이는 한 살 더 많아졌고
몸무게는 10kg쯤 빠졌고
영혼은 0.1g쯤 증발해버렸다.
잘가라, 2011년
한 해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요즘
투쟁도 서툴렀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서툴렀고, 재판도 서툴렀고, 구속된 이후의 생활도 서툴렀던 사람들이 몇 년째 담장 안의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땅을 밝을 수 있는 하루 1시간의 운동시간 속에서 그들은 늦가을의 정취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요?
얼굴도 모르고, 성격도 모르고, 개인사도 모르고, 고민도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 상상만 해봅니다.
그들의 투쟁이 잊혀져가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너무 외롭고 지쳐서 지난 투쟁을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밖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답답한 소식들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앞으로도 많이 남아 있는 수형기간을 헤아리면서 한숨 짖고 있지는 않겠지...
고립된 생활이 오래 이어져서 모든 게 귀찮아 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괜히 내 기분이 우울해져서
애써 좋은 생각으로 바꿔보기도 합니다.
가족들과 동지들이 손을 붙잡고 있어서 그렇게 외롭지는 않을거야...
다른 이들의 얘기 속에서 그들의 투쟁이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겠지...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아는 나이들이니만큼 길게 심호흡하면서 하루하루 잘 버티고 있겠지...
그 생활도 적응되면 나름대로 바쁘고 하루하루 시간이 잘 가는데...
혼자서 나쁜 생각도 하고, 좋은 생각도 해보다가
나만의 결론을 내립니다.
“어쩌겠어, 버텨야지.”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구속된 사람들 뿐이겠습니까만은...
내 조건에서 눈에 들어온 사람들이 그들이었고
가끔 책을 보내다보니 마음이 움직여버려서
손을 놓기가 싫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잊어가는 속에서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런 책을 보내도 되는지 매번 고민되기도 하고,
낼름 낼름 책만 받아들고 ‘고맙다’는 인사 한 번 없는 이들이 가끔 서운하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계속 책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출소할 때까지 계속 책을 보내기로 다짐합니다.
한 해의 끝을 바라보는 늦가을에 읽으면 좋을만한 책들을 생각해봤습니다.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요헨의 선택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몽실언니
습지생태보고서
새로 만난 하느님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쥐를 잡자
하늘을 듣는다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창가의 토토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아메리카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전까지 악을 쓰다
제가 돈이 없어서 그런데
혹시 이 책들을 갖고 있으시면서
구속된 이들에게 전해주실 생각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씨~익~
보내주실 곳 :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번지 김성민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합니다. 정식 화가로 불리지는 않지만, 주위에서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그림에 꽤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주십니다. 그런 게 좋아서 개인적으로 그린 그림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지요.
어렸을 때는 특별히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쯤에 그림대회에 나가게 됐는데, 뭘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서 옆에서 그리고 있는 친구의 그림을 따라서 그렸더니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히히, 좀 웃기는 얘기죠? 상을 받고 나니까 저한테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신 아버지가 다섯 권짜리 회화전집과 물감과 스케치북 같은 것들을 사주셨습니다. 당시 저희 집 형편에서는 그 정도도 큰 마음 먹고 하신 거였거든요.
익히 예상하시겠지만, 그런 그림 실력과 그 정도의 투자로 제 그림 실력이 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잠시 그림 그리는 것에 열중해봤지만, 곧 재미가 없어져버려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림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술시간에 대한 기억은 생생합니다.
당시 고등학교 선생들이 대부분 그렇기는 했지만, 미술선생이 유별나게 폭력적이었습니다. 준비물이 하나라도 빠지거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는 매질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미술시간만 되면 모두가 수용소에 끌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즈음에 저희 집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았거든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실직을 하셔서 엄청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옥 같았죠. 그런 상황에서 미술선생이 그림 그리기 숙제로 자기가 사는 집을 그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고 마당에 나와서 우리 집을 바라보고 있는데, 도저히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가슴 속에는 온통 답답함과 무서움뿐인데,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우리 집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그래도 매 맞는 것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려서 다음날 미술시간에 내놓았습니다. 미술선생이 몽둥이로 제 머리통을 치면서 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야, 내가 추상화를 그리는데, 니 그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게 니네 집이냐?”
매를 맡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매를 맡는 게 나았을 뻔 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림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전부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그림에 대한 선천적 능력도 없고,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닌 셈이지요.
그러다가 20대 후반쯤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조금 웃기는 얘기지만, 유행을 탄 측면이 있습니다. 그때 회사생활도 적응되고, 경제적으로도 조금 여유도 있고,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 자유로운 독신이었거든요. 제 주위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보면 주식들도 많이 하고, 차를 사서 여행 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맛집 찾는 모임도 많았고, 패러글라이딩이나 스킨스쿠버 같은 고급 레저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하는 때였어요.
그런 유행 속에서 나도 뭔가 멋스러운 취미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회사동료의 소개로 미술학원을 다니게 됐습니다. 왜 미술학원을 선택했는지는 저도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동료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유화를 가르친다는 그 학원을 소개해줬던 점도 있고, 남들이 유행처럼 하는 것들과 조금은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몸을 쓰는 것보다는 뭔가 생각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암튼 그런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특별한 고민 없이 미술학원을 다녔습니다.
그 학원이 미대 가기 위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시학원이 아니라 직장인과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라서 프로그램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가까운 야외로 나가서 풍경화도 그리고, 서로가 모델이 돼서 인물화도 그리고, 각자의 소중한 물건을 갖고 와서 정물화도 그리고, 좋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나서 그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들이 재미있어서 열심히 학원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1년이 조금 안되게 학원을 다녔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시간이 되면 가까운 야외로 나가거나 동네 주변에서 그림 그리고 하는 재미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나중에 나이 들면 내가 돌아다니면서 그림 그림들을 모아 전시회 같은 걸 하면 멋있겠다는 생각도 가끔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세상사는 게 자기 뜻대로만 되지는 않잖아요. 점점 회사 일도 바빠지고, 나이 삼십을 넘기면서 이런 저런 고민과 걱정들도 늘어나면서 그림 그리는 일이 조금씩 시들해졌습니다. 결혼을 생각하면서 사귀던 사람하고 헤어지면서 많이 방황도 했고, 객기로 새로운 도전을 해본다는 마음에 옮긴 직장에서 적응을 못해서 1년 정도 허송세월도 보내고, 자격증 준비한다고 학원도 2~3군데 다니다가 그만두기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어느 순간 30대 중반이 돼 버린 거예요. 눈 앞에 나이 사십이 보인다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별달리 이룬 것도 없고, 모아 놓은 것도 없는데,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 중년이 되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 거죠.
정신 바짝 차리고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그게 쉽나요. 나중에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옛날 회사 동료나 학교 친구들도 찾아다니면서 부탁을 해봤는데, 형편없는 자리만 겨우 몇 개 나오는 거예요. 정말 비참하데요.
그런 기간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니까 비참한 걸 넘어서 숨이 막혀오기 시작해요. 그래서 친구가 소개해 준 회사에 경력도 아니고 신입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로 들어갔죠. 자존심 다 버리고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어정쩡한 위치에서 나이 어린 상사들 눈치 보면서 일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6개월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장사를 같이 해보자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건 정말 자신이 없었어요. 돈 버리고 친구 버리는 지름길이 동업이라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중간 중간 노가다도 나가고 그랬는데,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만 해오던 내가 노가다를 꾸준히 하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나중에는 공공근로도 나가서 할아버지들 하고 같이 일도 해보고, 아주머니들 하고 같이 도배 보조도 해보고 그랬어요. 그런 일 자체가 어려운 건 없었는데, 안정적인 일이 아니라는 게 제일 힘들었죠. 몇 달 하다 마니까.
그렇게 점점 나이는 들어 사십이 되어 가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그때 아는 형이 자기 회사에 와서 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이것저것 생각하고 자시고 할 처지가 아니잖아요. ‘고맙습니다’ 하고 열심히 다녔는데, 회사에는 금방 적응되고, 혼자 사는 삶이라서 생활도 쉽게 안정이 되더라고요. 외롭다는 것 빼고는 몇 년 동안 괜찮았어요.
휴~우~, 인생이 편한 일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전세 살던 집주인이 부도로 집을 날렸는데 전세금을 반 밖에 못 받는 거예요. 황당해서 미치겠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빚까지 남겨주셨더라고요. 장래 치르고, 빚 청산하고, 어머니 소일거리 마련한다고 이것저것 하다보니까 남아 있는 전세금도 다 없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도 혼자 사니까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월세로 옮겨서 버티는데, 회사 운영하던 형이 사고로 죽고 나서 회사는 얼마 후에 문 닫고, 어머니가 일 하다가 다쳐서 또 목돈 들어가고, 술 먹고 가다가 싸움 붙어서 합의금 들어가고... 이런 일이 연달아 일어나니까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그때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고백을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그러고 나서 옛날 회사 사람들이랑 술 먹다가 성추행해서 고발당하고... 완전히 망가져갔던 거예요.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장례 치르고 나서 고향 집에 있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고향에 내려왔어요. 더 망가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내려와서 벌써 5년이네요. 그동안 그냥 혼자서 지냈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힘들어서 일부러 만나지 않다보니까 이제는 거의 연락도 없어요. 3명 정도 가끔 연락하는 정도죠. 나 같은 놈 누가 기억이라도 하겠어요?
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농사를 조금 짓는데, 이것도 정성을 들여서 하지는 않습니다. 무슨 의욕이 있어야 농사도 정성껏 하지요. 그래도 소일거리 삼아 할 일이 있다는 게 좋기는 하더라고요.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 tv 보면서 지냅니다. 그렇게 5년을 지내다보니까 버틴다는 게 뭔지를 알겠더라고요.
비울 수 없는 쓰리기통에 쓰레기를 계속 집어넣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처음에는 그냥 쓰레기를 마구 집어넣잖아요. 금방 쓰레기통이 차면 쓰레기통을 가볍게 칩니다. 그러면 공간이 생겨요. 그래도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곧 차오르면 손으로 눌러서 넣지요. 그러다가 또 차면 발로 눌러서 또 넣고, 그러다 또 차면 신발을 신고 꽉꽉 누르면 공간이 또 생기지요.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또 쌓이는 쓰레기 때문에 더 이상 공간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지면 화가 나서 쓰레기통을 발로 뻥 차버립니다. 그러면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쓰레기들이 주변에 쏟아지지요. 잠시 그렇게 쓰레기를 바라보고 있다가 화가 삭혀지면 할 수 없이 다시 쓰레기를 정리해서 담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류별로 크기별로 정리해서 다시 담으면 또 공간이 생겨요. 그때부터는 쓰레기를 종류별로 크기별로 분류해서 잘 포개면서 넣게 되죠.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서 또 쓰레기가 차거든요. 그러면 쓰레기통을 다시 비워서 쓰레기들을 새롭게 정리해서 넣습니다. 신기하게도 공간이 또 생겨요. 하하하.
답답함으로 꽉 차 버린 마음속에 더 이상 답답함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은데 들어갈 자리가 계속 생기더라고요.
이곳에 내려와서 1년 정도 지났을 쯤에 창고를 정리하다 보니까 옛날 그림도구들이 있더라고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그렸던 그림들도 몇 개 나오고요. 그것들을 보니까 기분이 묘 했어요. 길지 않은 삶이지만 그림 그리러 다니던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었거든요. 눈물이 나와서 그냥 막 울어버렸습니다. 한 시간 정도 그렇게 울고 나니까 몸이 힘들어서 더 울지 못하겠더라고요. 답답한 게 조금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나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기 것에서부터 최근에 부모님이 사용하시던 물건까지 하나하나를 정성껏 그리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원 없이 울어봤던 때였어요.
그렇게 몇 달을 그림을 그리면서 울다보니까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저한테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거울을 보면서 제 모습을 그리기도 하고, 옛날 사진들을 보면서 어릴 적 제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위로했죠. 이런저런 잘못도 많이 했지만 착하게 살아온 놈이라고...
그렇게 1년쯤 집안에서 그림을 그리다보니까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동네 주변을 돌면서 마을의 구석구석을 그렸어요. 무너진 담장도 그리고, 사람이 살지 않아 허름해진 집도 그리고, 뒷산에 있는 묘지도 그리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그리고... 제 상태가 그래서 그런지 그런 것들에만 눈이 가더라고요. 그렇지만 어둡고 슬프게만 그리지 않으려고, 주위에 꽃이나 하늘이나 도랑 같은 것을 같이 그려 넣기도 하고, 될 수 있으면 밝은 색으로 그리려고 했죠.
저를 그리는 것 빼고는 사람 그림은 그리지 않았는데, 가끔 옆집 할머니를 그려드렸어요. 늙고 가난한 할머니가 혼자서 외롭게 지내시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림을 그려서 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가끔 할머니 모습을 그려서 드리기도 합니다. 할머니 모습을 그릴 때는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편안해요. 그래서 할머니 그림을 제일 좋아하게 됐죠.
한 번은 아는 형이 많이 아파서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고생만 하다가 병든 몸으로 외롭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답답해지는 거예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그림을 하나 갖다 드렸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그 그림을 천장에 붙여 놓았더라고요. 누워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거기 붙여 놔야 자주 볼 수 있다면서... 그때 제 그림이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 후로도 혼자서 지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외로움을 느낄 때 술을 먹는 대신 그림을 그리게 된 게 달라진 점이죠. 쫙 찬 쓰레기통에 또 하나의 쓰레기를 밀어 넣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만큼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게 책으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저도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그런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오니까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에 대해서 알아보게 됐어요.
출판 쪽으로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무식하게 밀어붙여 봤어요. 먼저 제 그림들을 그림파일로 만들어서 주제별로 정리하고, 조잡하지만 간단히 편집을 해서 책 모양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인터넷을 뒤져서 그림에 대한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의 메일을 모았죠. 그중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고, 무명화가의 그림도 출판할만한 곳에 메일을 보냈어요.
문의 드립니다.
저는 공식 등단이라는 이런 과정을 통해 화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해본 적도 없고
미술 관련한 단체나 사람들과 어울려 본 적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입니다만...
지난 몇 년간 그림이라는 것을 그려봤습니다.
별 볼일 없는 이런 사람이 그린 그림도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해서 문의 드립니다.
한 번 보시고 답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너무 잘난 척 보이지도 않고, 너무 자신감 없어 보이지도 않으려고 고민 고민 해서 그림 파일과 같이 보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다는 생각에 시도해본 거죠. 그런데 메일을 보내고 바로 다음날 답신이 왔어요. 원고를 받았는데, 미술관련 담당부서가 따로 있으니 그쪽으로 다시 보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긍정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씹지 않고 답변을 해주는 걸 보니 왠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해당부서로 메일을 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렸어요.
그때 정말 많은 상상을 해봤습니다. 책이 나오면 누구누구에게 보낼까 하면서 리스트도 만들어보고, 책에 들어갈 약력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도 하고, 이 책이 알려져서 인터뷰가 들어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도 해보고, 책이 잘 팔려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연락을 해오면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지 하는 꿈같은 상황도 그려봤습니다. 히히, 우습죠? 제가 생각해도 우습기는 한데, 나도 다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는 자체가 좋았어요.
그렇게 보름 정도, 초조하면서도 약간은 들뜬 상태로 지냈지만, 출판사에서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승낙인지 거절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다른 출판사로 다시 메일을 보냈습니다. 또 다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보름을 보냈지만 그쪽에서도 답장이 없더군요. 세 번째로 다른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지만 역시 답변이 없었습니다.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죠. 나름대로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하는 곳들을 선택해서 메일을 보냈는데, 다섯 번째 만에 한 출판사에서 답변이 왔습니다.
소중한 원고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현재 저희 편집부에서는 투고 원고를 검토/진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매년 초 공지되는 한민족미술대전 수상작과 수상작가의 후속작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기회가 되면 한민족미술대전을 통해 다시 뵙길 바랍니다. (매년 3월 말까지 접수 받아, 5월 말에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띵 했죠. 나 같은 놈이 넘볼 곳이 아니라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오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미술 관련한 출판사는 모두 문을 두드려본다는 생각에 1주일에 한 번씩 이런 저런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죠. 그렇게 석 달 동안 열군데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봤지만, 유명한 출판사들은 벽이 높다는 것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은 출판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죠. 큰 출판사들은 이름이나 인맥으로 관리되겠지만, 작은 출판사들은 그림 그 자체로 평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제 그림을 제대로 살펴보기만 하면 가능성을 알아보는 인재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출판사 중에 미술에 대한 책을 내는 곳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 중에 미술에 대한 책을 낸 적이 있는 곳들을 골라 5군데 정도 메일을 보냈더니, 고미술을 전문으로 한다거나, 교양서만 출판할 뿐 미술 작품을 출판하지는 않는다고 하는 등의 이유로 거절당했죠.
그러다 보니까 제가 좀 우스워졌어요. 거창한 계획 없이 무작정 시도해본 일인데, 혼자서 꿈만 부풀리다가 현실의 벽을 느껴버린 꼴이 된 것이거든요. 책을 낸다는 게 미대 나와서 유명한 사람 밑에 들어가거나, 엄청난 경쟁을 이기고 미술대회에서 입상하거나, 빵빵한 조직에 가입한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더라고요.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좀 화가 나더라고요. 제 그림을 보면서 나름대로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허접한 사람들은 책 하나 내는 걸 꿈꿀 수도 없다는 것 때문에... 그럴 때마다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을 들으면서 화를 눌렀습니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난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미술에 대한 출판사들을 다 찾아보았어요. 그리고 크든 작든 다 메일을 보냈죠. 역시나 대부분 답장이 없었고, 답장이 오더라도 검토해서 연락을 주겠다는 등의 형식적인 것뿐이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파일로 접수받지 않으니 원본 그림을 보내달라는 곳도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림에 대한 책들도 많이 보게 됐는데, 고호에 대한 책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서 이름도 알고 있고, 그가 그린 그림도 몇 개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가 살아온 과정이나 그림들을 보게 되니까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울기도 했어요.
고호가 살아서 외로움과 가난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사람들이 그가 죽어서 그의 그림이 재평가 받기 시작하니까 영웅으로 대접해주었잖아요. 그게 무슨 소용이죠? 정작 고호는 고통스럽게 죽었는데... 그리고 고호의 그림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 다 가져가 버렸잖아요. 또 고호에 대한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고호를 칭찬하는 사람들은 고호처럼 외롭고 고통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기라도 할까요? 그냥 고호의 이름만 팔아먹고 있는 거잖아요!
잠시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고호처럼 위대한 화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고호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화가 난다는 얘기예요. 한번쯤 저처럼 허접한 사람의 그림도 들여다 봐 주면 안 되나요?
6개월 넘게 현실의 벽을 느끼면서 출판사들을 찾아서 메일을 보내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대학교수가 쓴 책을 보게 됐는데 눈이 확 뜨였어요. 그림은 특권층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제가 그동안 느꼈던 현실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얘기여서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그 교수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니까 시민운동도 하고 예술에 대한 책도 몇 권 냈더라고요. 그리고 그 책을 내놓은 출판사도 미술만이 아니라 여러 예술에 대한 책이나 사회문제들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낸 출판사였어요. 처음에는 그 교수에게 연락을 해서 도와달라고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그건 서로가 난처해질 것 같아서, 그 책을 낸 출판사로 메일을 보냈어요. 그동안 실망했던 출판사들이랑은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컸는데, 바로 다음날 ‘검토하는데 1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니까 기다려 달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그런 답장을 받고나니까 더 들뜨게 되더라고요. ‘역시 진보적인 곳이라서 다르긴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다시 책을 보낼 사람들 이름도 적어보고, 책에 들어갈 머리말도 적어보고 하면서 진짜로 만들어질 책을 마음속에서 준비했죠.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5일 만에 답장이 왔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소중한 원고를 저희 출판사에 보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태어날 때부터 '화가'로 태어나는 사람이 하늘 아래 누가 있을까요.
특히나 요즘은 저마다 자신만의 재능이 특별화되고 있고 또 내공도 만만치 않은 터라, 그림의 스펙트럼이 보다 넓고 깊어진 듯합니다.
우선 선생님의 그림을 향한 노력과 열정에 깊은 응원과 감사를 전합니다.
꼼꼼하고 치밀한 묘사와 섬세한 표현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죄송하게도 저희와는 성격이 맞지 않는 듯합니다.
저희 출판사는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주로 출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그림 또한 누구라도 감상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성인 독자층을 타깃으로 했을 때 더 잘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그림은 일반 성인층을 대상으로 한 출판사들에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죄송한 소식을 전해드려 고개 숙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잔득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거절당하는 내용이라서 실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제 그림을 제대로 살펴봐주고 평가를 해줬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쓰레기통에 다시 쓰레기 하나를 집어넣는 심정으로 ‘거위의 꿈’을 들으면서 술을 한 잔 했습니다.
그 후로는 그 교수의 다른 책들을 냈던 출판사들을 찾아서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쪽의 진보적 출판사들은 최소한 제 그림을 살펴보기는 한다는 사실에 기대를 걸었죠. 예술에 대한 전문출판사가 아니더라도 열린 마음과 눈을 갖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찾아보니까 ‘민중미술’ ‘대중참여예술’ ‘시민문화’ 같은 책들을 내는 출판사들이 많더라고요. ‘내 그림이 오히려 그런 쪽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내가 유명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그림이라는 걸 이해할거야!’ ‘내 그림이 알려지면 이런 운동을 하는 사람들하고 같이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곳들에도 메일을 보냈습니다. 만만치 않은 현실을 느끼면서 실망을 하면서도 뭔가 새로운 기대를 다시 하게 되고 하는 과정이었죠. 그러면서 제 자신을 많이 다독거렸어요.
이런 출판사들은 미술전문 출판사들보다 답장은 잘 보내주더라고요. 어떤 곳은 ‘그림이 좋아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미술 쪽은 경험이 없어서 출판하기 어렵다’고 미안함 마음이 느껴지는 답장을 보내오기도 하고, 어떤 곳은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관계로 미술 작품을 검토하고 편집할 식견을 가진 편집자가 없다’면서 돌려서 거절하기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원고를 살펴봤지만 출판사 성격과 맞지 않는다’면서 딱 잘라 버리는 곳도 있고, 특별한 이유 설명 없이 거절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출판사만 20군데 넘게 메일을 보냈을 겁니다.
미술전문 출판사보다는 이런 진보적인 출판사들이 숫자도 훨씬 많아서 한 군데라도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교수가 거창하게 대중참여예술을 얘기하는 책은 낼 수 있지만, 저처럼 허접한 사람이 그린 그림은 책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거잖아요. 결국 진보적인 출판사라고 해도 거창한 글이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어렵다는 사실만 확인했죠.
잠시 기대 속에 부풀었던 꿈이 깨지니까 또 큰 벽이 앞에 있는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벽은 넘을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만 들게 되는 거죠. 내가 왜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나중에는 인순이가 제 귀에 대고 ‘헛된 꿈은 독이야’라고 속삭이면서 비웃음을 짓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출판사들을 찾아서 메일을 보내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오기도 생기고, 특별히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한 명쯤 제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직접 그림을 보내달라고 했던 출판사에도 직접 그린 그림 하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이렇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 기대하고 실망하고 하면서 보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직접 그림을 보냈던 출판사에서 우편물이 왔습니다.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오기로 출판사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직접 등기우편이 오니까 다시 가슴이 설렜습니다. ‘너무 기대하지 말자’고 제 자신을 진정시켜봤지만, 한 번 뛰기 시작한 심장을 멈추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편물을 열었더니 제가 보냈던 그림이랑 인쇄물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정말 손이 떨리더라고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청솔출판부입니다.
청솔을 아껴주시고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먼저 답신이 무척 늦어진 점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투고되는 원고의 양이 많아 부득이하게 시간이 경과된 점 널리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그림을 저희 미술소위원회에서 검토하였습니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간결하고 쉬운 표현법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색상, 묘사 등에서 미술적 치밀함이 더 보완되면 좋겠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공들여 그린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본사에서 출간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저희와는 인연이 없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좋은 책으로 묶여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소중한 작품을 출간하지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귀한 그림을 외람된 짧은 서신으로 돌려드리게 되어 대단히 송구합니다.
선생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출판사에서 보내온 글을 편지봉투에 집어넣고는 돌려받은 그림을 들여다봤습니다. 지팡이를 집고 대문을 나서는 옆집 할머니가 저를 향해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림 속의 할머니 얼굴을 보면서 같이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그만 눈물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휴~우~, 나이 오십이 다 되가는데 뭐 하는 짓인가 싶어요.
이제 그만 포기할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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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티비 라디오도 싫증나던차에 요새 나는 꼼수다 땜에 팝캐스트 빠져있는데 읽는 라디오도 좋네요.슬쩍 들러서 읽고 사라지는 1인 인지라 댓글 하나로 때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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