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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지'들

◐ 김혜진의 인권이야기 ◑

나의 '동지'들


그의 나이 이제 50세이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젊음을 다 바쳐 일했던 방송사에서
파견법에 의해 해고되고 나서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투쟁의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뿐인 삶이었다. 열심히 투쟁했건만, 조합원들인 동료와 후배가  파견법에 의해 2년마
다 무기력하게 해고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조합원들을 만나러 KBS에 들어가는 것도 저
지당한 채 매맞고 부러져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어야했던 고통, 그 자리에 절규
하며 그가 있다. 마치  돈키호테처럼 두드려도 꿈쩍 않는  천하의 악법 파견법을 없애기
위해 그는 혼자라도 돌진한다.

또 한 동지가 있다. 직업훈련원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단지  빽이 없어서 바로 그
회사의 사내하청으로 들어간 노동자다. 오로지 노조 만들어서 투쟁하겠다는 결심으로 엄
청난 차별과 멸시를 견뎌왔던 동지다. 꿈에 그리던 노조를 만들었지만 SK의 탄압으로 모
두 집단 탈퇴하자, 단 세  명의 동지들과 함께 투쟁을 이끌어왔다.  동지들끼리도 가끔은
잘 안 맞고, 흔들리기도 많이 흔들렸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투쟁 과정에서 쓰러져 수술도
받았다. 그러나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면서 2년 6개월을 넘어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3
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정규직으로 복직시키라는 판결을 받아내고서  이제 끝까지 비정규
직 운동의 씨앗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또 있다. 517일이 넘는 투쟁  중에 동료를 죽음의 길로 떠나보내고,  한겨울 노숙농성 중
추위 때문에 쓰러져 언어장애가 된 동지를 부둥켜안고, 집안이 파탄 나 괴로워하는 동지
들의 가슴 쓰린 사연을 가슴에 묻고 또 시작하려는 동지가 있다. 실망도 많이 하고, 때려
치울까도 몇 번 생각했다. 그러나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그래도 우리가 살길은
다시 노동조합을 만들고 새롭게 투쟁하는 길밖에 없지  않냐며 그 길을 다시 가려 한다.
분통이 터질 만큼 무시당하면서 살았고, 그 분을  삭이다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되었을 때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그 투쟁도 분통터지는  과정이고, 삶을 파탄나게 하고, 인간을 무
기력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것을 '고통'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족
하다.

이 외에도 정말 많다. 투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던  한진면세점 동지들,
아직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교사 동지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지만 젊은이들
보다도 더 치열하게 삶을 열어가는 건설운송  동지들, 하나하나 거명하기에도 벅찰 만큼
많은 동지들. 매번 분노에 타오르면서도 동지들에게 넉넉할 줄 알았던 많은 동지들, 동지
들…

그런데 무엇이 이 동지들을 전선에 서도록 만들었나? 이 동지들이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
서? 결코 그렇지 않다. 어떤 때는 비열하고, 어떤 때는 단순하고, 어떤 때는 흔들리고, 어
떤 때는 과격하고, 어떤 때는 너무 타협적인, 평범한 노동자 그 자체이다. 그런데도 무엇
이 이 노동자들을 고통 속에서 일으켜 세우는가? '희망'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다. 난 '희
망'이 이 동지들을 세우는 동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희망을  갖기에는 너무나 절망적
인 상황을 많이 거쳐왔다. 그렇다면 뭔가? 그것은 인간다움을 향한 열망이다. 설령 더 이
상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지라도, 시지프스처럼  개인의 의지와 투쟁만으로는 도저히 극
복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다 할지라도 그에 굴복하지 않는 것, 길들여지기보다는 차라
리 고통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정신,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
아있는 것이기도 하다.

난 이 동지들 앞에서 굉장히 작아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때로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커서 짓눌리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무지하게 노
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 동지들과 함께 인간다움의 길을 택한  이상, 고통을 스스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 나는 낙관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이 길이 패배를 향하는 길일 수도 있다
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령 이 길이 패배하는 길일지라도  가겠다. 나의 '동지'들이 그렇게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진 씨는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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