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다시! 43회 – 너의 불안이 내 평온을 깨고 내면의 불안과 만날 때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 겨울은 예년보다 포근한 편이기는 하지만

비가 자주 내려서 흐린 하늘을 줄곧 바라봐야 합니다.

독일의 겨울이 흐린 날만 주구장창 이어져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는데

요즘 이곳의 겨울도 그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가득이나 하는 일도 없어서 방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하늘마저 온통 잿빛이니

몸과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요즘입니다.

 

그 무거움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어떤 노래 하나를 만났습니다.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는 모호한 노래인데

그냥 멍하니 듣고 있으면 제 마음 깊은 곳의 어떤 것을 자극해서

우울하고 몽롱한 제 자신을 깨우는 기분이었습니다.

남들에게 소개하기에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노래여서 조금 조심스럽지만

오늘 방송은 오롯이 저를 위한 음악선물로 진행해볼까 합니다.

오늘 들려드릴 첫 곡은 유라와 만동의 ‘요술수프’입니다.

 

 

 

 

2

 

제 마음은 통찰력이 깊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다정한 정을 나누는 시골사람들을 보면

카메라가 치워진 뒤의 이기적인 권력관계를 알아보고

연예인 앞에서 스스럼없는 인심을 보여주는 후덕한 사람들을 보면

권력에 기대에 어떻게 돋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봅니다.

 

제 마음은 단호합니다.

스치든 지나갔던 불쾌했던 경험을 기필코 끄집어내서

어떻게든 그 사람을 찾아내 응징할 방법을 궁리하고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큰 싸움으로 만들어내서 그 저주가 후세에 이를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제 마음은 극도로 세심합니다.

몸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도 놓치지 않고 알아채서

문제점을 찾아내어 고치며 변화하도록 계획을 세워낼 뿐 아니라

마음의 변화까지 놓치지 않고 살펴보며

앞으로 닥쳐올 파도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미리 방주를 쌓아놓기에 바쁩니다.

 

제 마음은 뿌리가 굳건합니다.

세상의 다양한 풍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거를 건 거르고 취할 건 취하면서 자기만의 자양분을 비축하려 노력하고

이러저런 조언을 가장하여 접근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외유내강의 자세로 그의 얘기를 흘려버리면서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외롭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의 언저리는 좁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외부의 충격에 허약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위해 노래를 선물합니다.

 

 

 

(유라의 ‘허영 깊은 분위기에 실오라기 같은 눈을 가진 자’)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루이 포랭의 ‘줄타기 곡예사’라는 그림입니다.

곡예사가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집중을 하지 않습니다.

저 곡예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많은 훈련 속에 다진 기술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울까요?

그들이 잘난 척 해봐야 자신의 발아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살며시 미소를 지을까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같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요?

밑에 있는 사람들이 뭘 하든 상관없이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데만 오롯이 집중하고 있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장루이 포랭의 ‘어부’라는 그림입니다.

‘줄타기 곡예사’보다 한결 편안해보이지만

공중에 떠 있는 판자 위에서 낚시하는 모습이 살짝 위험해보이기도 합니다.

외줄타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내공을 보여주는 걸까요?

단순한 낚시에서도 모험을 즐기려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걸까요?

삶이라는 게 편안함과 위태로움이 공존한다는 걸 얘기하고 싶은 걸까요?

 

 

 

(유라의 ‘목에게’)

 

 

4

 

아주 불편하고 불쾌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깨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

꿈에서 빠져나와 다행이다 싶었지만 마음 속에 잔상이 남아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잔잔한 음악을 들어보기도 하고

스님들의 깊이 있는 설법을 들어보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명상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아무 것도 듣지 않은 채 그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지만

마음 속 불쾌함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라와 만동의 ‘지느러미’)

 

그러다나 이 노래를 틀어놓고 몸과 마음을 노래에 맡겼습니다.

묘한 파장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거칠지만 사납지 않은 파도가 마음을 출렁이게 하더군요.

그렇게 마음이 출렁이게 얼마동안 놔뒀더니

몸과 마음을 노래가 감싸버렸습니다.

 

잠시 후 노래를 끄고

제 마음을 들여다봤더니

불편하고 불쾌했던 것들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