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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모든게 딱 적당하다고 느끼는 순간, 예컨대 깃털같은 바람결이나, 공기의 녹녹한 서늘함이나, 살결에 닿는 기체의 끈적함이나, 신은 신발이 딱딱하게 바닥에 닿는 느낌이나, 어깨에 멘 가방의 무게와 안에서 덜그덕거리는 소지품들,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전봇대의 따뜻한 조도나,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린 아기 볼따구 같은 봄꽃들이나, 배추 속같이 뽀얀 달빛이나, 느릿느릿 집으로 향하는 노인들이나, 지지배배대는 꼬마들이나, 컹컹거리며 산에서 짖는 강아지들이나, 쉰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자전거..이런 것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나타나고 저물어가는 풍경. 그런 풍경 안에 혼자 있자면, 행복하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그렇다. 주머니 안에서 곰실거리며 손을 꺼내 누군가와 손잡고 걷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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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물.

 

주말 아침. 기분좋게 산책을 나선 길가에는 간밤에 우악스럽게 속을 게워놓은 흔적들이 선연하다. 명도도 채도도 제각기인 빈대떡들이 쓰레기 봉투와 전봇대 구석에서 끈적하게 식어간다. 어제의 살아있던 이야기들은 죽은 흔적으로 남아 서서히 부패된다. 1차의 중국요리와, 2차의 골뱅이와 3차의 폭탄주와 4차의 포장마차 국수가 설명 못할 화학반응으로 혼연일체가 된채로.  거기에 입안의 침과 위액과 그밖의 장기 어딘가에 덕지덕지 붙어있었을 각종 침전물들까지 함께 한다. 실제 눈에 보이는 것들은 과학 다큐의 반쪽낸 신체만큼 선명하고, 기묘하지 않다. 그것은 어젯밤 누군가를 머리 꼭지까지 취하게 한 세상의 구질구질함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텍스트다. 보이는 것은 대량의 알코올과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기름진 음식이지만, 실제의 것은 꼭꼭 씹었던 웃음이나, 입안을 알싸하게 헹군 한숨이다. 고단한 회사생활과 부담스러운 회식자리의 스트레스고,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누군가의 눈물이고, 한껏 들떠서 필요이상으로 웃음을 남발한 과잉의 흔적이다. 넘쳐나는 감정들은 채 장기 속에 저장되지  못한 채 흘러넘친다. 저장시켜 둘 정도의 가치는 없으니, 버려지는 건 당연하다. 시름이 많은 사회일수록, 게워내야 할 것도 많은거겠지.

 거리에는 오늘도 콜콜하고 역한 냄새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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