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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1-8 자비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러 해야할 일은 다음과 같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고 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며, 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 만한 비열한 행동을 결코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약하거나 강하거나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짧은 것이건 중간치건, 굵은 것이건 가는 것이건, 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하여서도 안 된다. 남을 곯려 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된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 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선한 경지라 부른다.

  

온갖 빗나간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계율을 지키고 지혜를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은 다시는 인간의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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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헛되다

1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다.

2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3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4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5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가삐 가고

6남쪽으로 불어 갔다 북쪽으로 돌아 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 온다.

7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 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 가서 다시 흘러 내리는 것을.

8세상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9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10"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말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11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을.

 

전도서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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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기고> 이스라엘 점령 40주년 팔레스타인을 가다(2)

 

 

28일 일요일 동예루살렘의 거리는 어두웠다. 동예루살렘의 아랍인 지역 건물들은 40여 년 전 그 모습 그대로다. 이스라엘이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외국인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묵고 있는 크리스마스 호텔에도 투숙하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이 호텔은 점심과 저녁에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음식점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무표정한 얼굴에는 점령지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듯 했다.
  
  아침 식사 후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구 도시로 향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 코스로에 반드시 포함되는 곳이. 구 도시는 아랍인들이 비잔틴 제국을 격퇴한 7세기 이후 1967년까지 아랍 무슬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토착 팔레스타인인들을 대거 추방하고 유대교 성지(통곡의 벽)를 위한 광장을 만들었다.
  
  따라서 현재 이 지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인들도 팔레스타인인들도 구 도시를 포함한 동예루살렘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스라엘은 구 도시를 둘러싸는 벽의 일부(알 아크사 모스크의 서쪽 벽, 혹은 통곡의 벽)가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벽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건설된 가장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이 벽에 기대어 기도를 하고 있었고, 이 벽 앞의 광장에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 필자와 이야기를 나눈 이스라엘 군인과 함께 ⓒ프레시안

  동예루살렘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견일치'
  
  쉬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탈 라비브(Tal Raviv)에게 말을 걸었다. 앳된 얼굴의 그는 20살이고 아버지가 45년 전에 인도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이라고 했다. 필자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 묻자 "나는 극단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등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권리가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인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에서 남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3년, 여자는 2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이라고 밝힌 모세 나츠바(Moshe Nachva)는 자신은 영적이고 종교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 방법에 대해 "모든 해결책은 신으로부터 나온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전으로 퇴각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랍인들이 현재 이스라엘 국가 영역까지 달라고 주장한다. 아랍인들의 사고는 닫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스라엘이 쥐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그는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영국에서 온 유대인 대학생 데이비드 킴체(David Kimche)와 그의 어머니도 "이스라엘인들이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에 대한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열린 사고를 한다. 봐라! 여기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오지 않느냐? 이스라엘은 모든 종교인들에 대해서 관용적인 정책을 취하고,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한 여성이 다가왔다. 그는 1985년 호주에서 이주한 이스라엘인 수산(Susan. R)이고 직업은 여행 안내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필자가 이스라엘 군인이나 전통 복장을 한 이스라엘인들과만 이야기하는 것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는지 자기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첫 마디로 "나는 이스라엘인이지만,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모든 분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의 정책으로부터 비롯된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너무 고통스럽게 지낸다. 현재 이들은 하루에 2달러 이하로 생계를 유지한다. 파타와 하마스가 내전을 하는 것도 이스라엘 탓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이스라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힘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가 '그럼 당신은 팔레스타인 편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분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서안과 가자 전 지역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되돌려주고 1967년 이전의 경계로 이스라엘이 완전히 철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동예루살렘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되돌려 주어야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는 "그렇지는 않다. 동예루살렘 문제는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 매우 공정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밝힌 수산조차도 동예루살렘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가장 진보적이며 이스라엘의 정책에 비판적인 이스라엘인들조차 동예루살렘만큼은 이스라엘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즉 동 예루살렘 주권에 관한 한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열 정책
  
  그날 저녁 전임 팔레스타인 무프티(팔레스타인 종교 최고지도자)이며 예루살렘 구 도시에 위치한 알아크사 모스크(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교의 3대 성지)의 이맘이었던 이크라마 사브리(Dr. Ekrima Sabri)가 예루살렘 올리브산에 위치한 그의 집으로 필자를 초대했다. 그의 가족들이 모두 모였고, 우리나라의 보통 집 분위기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의 부인 나일라와 며느리 수아는 나와 가족들을 위해서 직접 팔레스타인 전통 음식들을 만들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음식과 과일들을 싸주기도 했다. 이러한 손님에 대한 환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전통이다.
  
▲ 필자가 이크라마 사브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


  이크라마 사브리는 이번 달에 무프티 직에서 물러났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임명한 팔레스타인 종교 최고지도자였고 파타가 주도했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위해 일했다. 그러나 2007년 1월 팔레스타인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가 무프티와 알아크사 모스크의 이맘을 무함마드 후세인(Mohammed Hussein)으로 교체시켰다. 그가 파타와 하마스의 분쟁에서 파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게 교체의 이유였다. 사실 그는 개인적으로 2006년 1월 의회 선거에서 하마스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최고 종교지도자로서 심각한 분쟁 와중에서 어느 한 파벌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크라마 사브리는 나에게 신문 자료를 보여주며 "지난주부터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 도시 아랍 지역,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30m도 못 미치는 지역에 유대 교회당인 시나고그를 짓기 위해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을 부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구 도시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루살렘 출신이며, 하마스 정당에 속한 의회 의원들인 무함마드 아부 티르(Muhamed Abu Tir), 칼리드 아라페(Khaled Arafe), 무함마드 투타(Muhamed Tutah), 무함마드 아톤(Muhamed Aton) 등이 2006년 6월 6일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됐다.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예루살렘 영주권을 포기하면 출옥시키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파타 출신의 의회 의원들에게는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주권을 공고히 하고, 친 이스라엘적인 팔레스타인 인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 정책을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집권당인 하마스를 약화시키고 파타를 강화시키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전 상태로 몰아가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이크라마 사브리는 "현재 내전 상태가 고통스럽다. 오늘 가자에서 파타 대원들이 하마스 대원들을 납치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나블루스에서는 하마스 대원들이 파타 대원을 납치했다. 통합정부가 하루 빨리 구성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의 인자하던 표정은 필자와 이야기하는 내내 어두웠다.
  
  그는 라말라 근처에 집을 갖고 있지만,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기 위해 600달러의 월세를 지불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살지 않으면 거주권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예외 없이 거주권 박탈이라는 이스라엘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생활해나가고 있다.

 

홍미정/프레시안 기획위원,한국외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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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검문소가 관대해진 이유는?

이스라엘 검문소가 관대해진 이유는?

<기고> 이스라엘 점령 40주년 팔레스타인을 가다

팔레스타인 전문가인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프레시안 기획위원)가 팔레스타인 땅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돌아보며 글을 보내왔다. 지난 25일로 이슬람 정치군사조직인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한 지 1주년이 된 팔레스타인에서는 지난 해 하반기부터 구 집권세력(파타)과 하마스의 갈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두 세력은 연립정부 구성을 논의하는 와중에도 물리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 25일 밤 서안지구의 한 파타 무장 단체는 팔레스타인 주재 캐나다 대표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파타의 공격으로 파손된 대표부 건물을 돌아 본 홍 교수는 팔레스타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파타 출신인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파타와 하마스의 갈등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는 여러 요인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홍 교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와 이동을 제한하고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 팔레스타인 사태의 본질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 40주년이 된 2007년 겨울,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의 라말라ㆍ라블루스에서 본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인지 홍 교수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26일 금요일 이른 아침 예루살렘의 거리는 한산했다. 라말라를 거쳐 나블루스까지 가서 알 나자 공립대학 정치학 교수인 사타르 카셈을 만날 계획이었다. 18번 미니버스를 타고 동예루살렘 구 도시 근처에서 라말라 중심부까지 가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예루살렘과 라말라를 가르는 갈란디아 검문소는 양편으로 8미터 높이의 전자 감시탑이 보강된 분리장벽에 연결되어 있었고,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버스는 이스라엘군의 검색 없이 검문소를 통과했다. 도보로 검문소를 통과해서 라말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1990년대 검문소가 생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갈란디아 검문소에서는 예외 없이 모두 내려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고, 이스라엘 군인들의 검문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3개월 전 파타와 하마스 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부터 검문소 상황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압바스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협력하고 있다"
  
  라말라의 중심 거리에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진들 대신 대형 광고 현수막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압바스의 대형 사진 현수막들은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야세르 아라파트 전 수반의 사진과 함께 라말라 거리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이유를 물었더니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더 이상 압바스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압바스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협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파타 무장단체의 공격이 있었던 팔레스타인 주재 캐나다 대표부 건물을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프레시안

  무장한 팔레스타인 경찰들과 마주쳤다(1990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으로 팔레스타인에는 군인이 없고,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만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주재 캐나다 대표부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건물의 현관문과 창문, 감시 카메라, 주차된 자동차 등이 파손돼 있었다. 25일 밤 파타 무장 단체가 이 건물을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호주 대표부 건물도 공격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호주 대표부로 가 확인한 결과 건물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경찰도 없었다. 무장단체의 공격 시도가 있었지만, 근처 팔레스타인 경찰들의 제지로 무산됐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루깝 커피숍에 도착했다. 칼리드 나집, 무함마드 자카리아(시인. <프레시안>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필자 중 한 사람-편집자)를 포함한 몇몇 팔레스타인 친구들을 만났다.
  
  지난 겨울까지 해마다 만났던, 항상 웃는 얼굴로 필자를 대해 주었던 무사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주 집에서 이스라엘군에 체포됐다고 한다. 지난해 1월 25일 의회 선거 당일 그의 초등학생 아들은 커피숍 앞에서 하마스 지지 전단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무사는 하마스 지지자였다. 현재 가족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그 누구도 무사가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른다.
  
  공식적으로 첫 번째 재판이 시작되는 향후 20일 이후에나 그의 소재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칼리드는 이러한 일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이라면서, 자신도 이유없이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9일 동안 감옥에 있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 필자가 칼리드 나집, 무함마드 자카리아 등과 대화하는 장면 ⓒ프레시안

  "1990년대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공식 인정했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만 더욱 강화되었다. 또 지난 1990년대의 오슬로 협상안과 2003년의 '로드맵'이 의미하는 '팔레스타인의 최종 지위'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함마드 자카리아는 팔레스타인 정부가 힘이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이렇게 잘라 말했다.
  
  검문소 통과가 쉬워진 이유는?
  
  사타르 카셈 교수와 나블루스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 총총히 루깝 커피숍을 나왔다. 검문소 통과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필자가 타고 있던 택시를 나블루스 입구 검문소까지 그대로 통과시켰다. 라말라에서 나블루스에 이르는 도로에 블록을 쌓아 만들었던 임시 검문소들은 거의 제거되었다. 점령지 내부 도로에 설치했던 통행 장애물이 일부 사라진 것이다. 라말라에서 나블루스 입구까지는 30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낮 12시경 필자는 나블루스 입구 검문소도 아무런 제지 없이 도보로 통과했고, 줄을 선 다른 사람들도 없었다. 휴일인 금요일 예배 시간인 탓에 이동하는 주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3년 전 필자는 이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 맞을 뻔했고, 2년 전에는 이스라엘군의 제지로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고 라말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마스 선거 승리 직후였던 지난해에는 라말라에서 북쪽으로 통하는 모든 검문소가 닫혀 있어 나블루스행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 사타르 카셈 나자대학 정치학 교수와 필자 ⓒ프레시안

  나블루스에 있는 사타르 교수의 집에 도착했다. 검문소 상황이 완화된 이유를 묻자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싸우느라고 너무 바빠서 이스라엘에 저항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블루스에서 라말라로 나갈 때의 검문소 상황은 예전과 똑 같다"라고 답했다.
  
  파타가 라말라의 캐나다 대표부 건물을 왜 공격했는지도 물었다. 그는 "하마스는 단일 조직으로 잘 조직되어 있어 중앙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파타는 서안에 6개 단체, 가자에 3개 단체 등 여러 무장 파벌로 나뉘어 있어 중앙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나블루스에서 활동하는 몇몇 갱단도 파타 소속이다. 파타 출신 압바스 수반조차 모든 무장 파벌을 통제할 수 없다. 중앙 통제에서 벗어난 파벌들이 주로 외국인들을 공격하고 납치하는 행위를 한다. 그러나 하마스는 외국인들을 납치하고 공격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동 방향에 따라 이중적인 검문소 정책
  
  그러나 라말라로 돌아오는 오후 나블루스 검문소에는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통과가 거의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외국인인 탓에 다행히 쉽게 통과했다.
  
  라말라에 도착하자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예루살렘행 미니버스에 다시 올랐고, 갈란디아 검문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검문소는 라말라로 들어갔던 아침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60세 이하의 외국인들과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도보로 전자 감시 장치 검색대가 설치된 검문소를 한 사람씩 통과해야만 했다. 심지어 서너 살로 보이는 어린이 두 명이 창문 안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자신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이라는 것을 창문에 매달려 10여 분 이상 설명해야만 했다.
  
▲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이스라엘 검문소의 모습 ⓒ프레시안


  미니버스에 탄 승객들은 16명 정도였다. 이들 중 60세 이상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검색대를 모두 통과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 금요일 저녁 이동 인구가 별로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이 덜 걸린 것이다. 결국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데는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아침 보다 1시간 10분이 더 걸린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검문소 정책은 주민들의 이동 방향에 따라 완전히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예루살렘에서 서안 내부로 들어가는 것과, 서안 깊숙한 지역으로부터 밖으로, 특히 예루살렘으로 나오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통제는 전혀 달랐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검문소 정책은 점령지 내부, 특히 서안 깊숙한 지역으로의 이주를 유도하면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인구를 줄이려는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은 실은 1967년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점령 이후 계속됐고, 1990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이후 더 강화되어 온 것이었다.

 

 홍미정/프레시안 기획위원,한국외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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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무엇을 먹을때,, '꿀꺽'삼키던데...소화가 되나요?

 

Q. 뱀은.. 무엇을 먹을때,, '꿀꺽'삼키던데...소화가 되나요?

 

 

A. 뱀의 식사는 불규칙하고 뜨문뜨문하다. 자기 몸무게의 40%짜리 먹이를 먹은 살모사는 몇달씩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버틴다. 먹이와 소화액이 닿는 부위의 세포가 끊임없이 죽고 재생되는 항온동물과 달리 뱀의 소화기관은 모처럼의 식사가 있기 전까지 작동을 중단한다. 컴퓨터가 돌아가지 않는 동안 절전모드로 바뀌는 것과 같다.

극단적인 에너지 절약은 장기의 축소에서 절정에 이른다. 비단뱀의 간, 콩팥, 심장의 크기는 위장이 비어 있을 때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러다가 먹이가 들어오면 이들 장기는 순식간에 커진다. 먹이를 삼킨 비단뱀의 창자 무게가 하룻밤새 2~3배로 늘어났다는 보고도 있다.

1년을 몇 차례의 식사로 때우는 비단뱀은 에너지를 쓸 때와 아낄 때를 안다. 먹이를 소화시키기 시작했을 때 비단뱀의 산소 소비량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경주마 수준이다. 산소 소비량은 평소의 36배로 뛰어오른다. 이런 상태는 며칠씩 계속된다.

소화를 서두르는 이유의 하나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이다. 주변 온도가 떨어지면 소화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만일 먹이가 소화되지 않고 부패하기 시작하면 뱀은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먹이를 먹은 뒤 햇볕을 쪼이거나 똬리를 틀어 몸을 데운다. 온도가 떨어지면 아예 먹이를 먹지 않거나 삼킨 먹이를 토해내기도 한다.


-비단뱀의 창자와 소화 기능

굶주린 비단뱀은 계속 굶주린 채로 지낼 수 있지만, 먹이가 주어지면 항상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최신호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능력은 특별한 에너지 소비 없이 크기를 2배로 늘일 수 있는 창자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일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이는 뱀의 소화에 관해서 현재 지배적인 주장인 "pay before pumping" 이론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다. "pay before pumping" 이론에 따르면 먹이를 소화시켜서 영양분을 흡수하기(pumping) 위해서는 이미 저장된 에너지(pay)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규칙적으로 먹이를 먹는 대부분의 동물처럼 비단뱀은 먹이를 먹지 않는 동안에는 소화 기능을 정지시킨다.

그러나, 독일 Friendrich-Schiller University의 마티아스 스타크와 캐슬린 비스 연구팀은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과정 없이 소화 기관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과정이다. 대신에 뱀은 창자 안쪽에 유동적인 세포층을 가지고 있다고 연구팀은 말한다. 굶주린 경우에는 이 세포들의 주변부위가 서로 엉켜 있으며 매우 조밀하게 모여 있다. 먹이를 먹은 후에는 세포들이 성장하고 단일층으로 재배열되어 영양분을 흡수하기에 충분히 넓은 면적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크기의 변화는 주변 혈관에서 나오는 용액을 이용하여 변할 것이라고 연구팀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포가 생기지 않고 창자의 무게가 증가하는 것은 먹이를 먹은 후에 세포에서 관찰되는 지방 입자들에 의한 것으로 연구팀은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양분이 흡수될 때까지 새로운 세포의 생성이 지연되기 때문에 새로운 세포들은 소화 과정에서 파괴된 세포들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뱀의 창자는 굶주린 동안에는 휴면 상태로 있으면서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pay before pumping" 이론을 주장한 미시시피 대학교의 스테펀 세코는 이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먹이를 준 후에 세포 분화 속도가 크게 증가한 것을 관찰하였다고 세코는 말한다. 그러나, 장의 무게 변화를 차지하는 주요 원인은 각 세포의 크기 증가라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또한, 먹이를 준 후에 장 세포에 지방 함량이 증가하였다는 사실도 동의하였지만, 이번에 발표된 것처럼 지방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는 지금까지 관찰하지 못 하였다고 세코는 말한다. 지방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뱀에게 많은 먹이를 주는 경우에는 뱀이 죽는다는 사실은 뱀 연구가나 동물 애호가에게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세코는 지적한다. 이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세코는 말한다. - (
kimjs@bioneer.kaist.ac.kr)

출처 : http://www.knower.net/ss/ep/epe03.html, http://www.kordic.re.kr/~trend/Content450/biology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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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205&eid=1Qf9tPWxm4ZWTN3yDIx4o2HyWp6UDgGN&qb=uewgvNLI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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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다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대표 윤 가브리엘, 변진옥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올해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의젓한 어른으로 자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HIV/AIDS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20여 년 전 무관심과 무지의 수준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11월 6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발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 및 감염인 인권증진에 관한 법률안’은 감염인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 최초의 문제제기이다. 법안 개정 과정에 참여한 윤가브리엘 나누리+ 대표와 공동행동의 변진옥 씨는 “감염인의 인권 증진만이 HIV/AIDS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아래 에이즈 예방법)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윤 가브리엘(아래 엘) :
에이즈 예방법은 1987년도에 제정됐다. 전염병 예방법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는데, 지금 보면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법이다. 격리조항까지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에이즈는 공포의 병, 죽음의 병이었기 때문에 법안도 그러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후 5번의 개정을 거쳐서 격리조항처럼 상식을 벗어난 것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치료지시(*)와 같은 강제 처분 조항이 여전히 남아있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조직된 것은 그간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들이 내용상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서인가.
변진옥(아래 옥) :
5차례의 개정과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까지 개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최초의 에이즈 예방법이 생겼을 때의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그 틀이 변하지 않은 이유는 법 개정 과정에서 감염인 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 전에 감염인 단체들의 의견서를 받기도 했으나, 법안에 반영된 것은 없었다. 정부가 주도해서 조항 몇 개만 바꾸는 식으로는 예방을 달성하기는커녕,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해 그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번 개정 국면에 개입하기로 했다.

인권이 있는 곳에 예방이 있다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을 목표로 이번에 전면개정안을 제출했다. 인권증진이 예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엘 :
현재 우리 사회는 내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감염인들은 대개 가족에게까지 자신의 감염사실을 숨긴다. 혼자만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이 크다. 아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이런 생활이 계속될 경우 무슨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뭐랄까, 그 사람은 굉장히 비관적인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누구도 예상을 할 수가 없다. 감염인 관련 사고가 그래서 발생한다. 감염인이 술집에서 일했다, 성관계를 했다는 등의 사건들 말이다.
만약 이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말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래? 그것 치료 잘 받으면 오래 산다더라.” 이런 식으로 격려해주면 그들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당장 나 자신과 감염 사실을 숨기고 사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나는 친구들에게 알렸고, 그들은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활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염사실을 말 못한 친구들은 내가 봐도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렇게 극단으로 내몰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감염인이 당당하게 자신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 즉 인권증진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옥 : 전염병 역학에 따르면, 어떤 병이든 전파를 막으려면 4가지 요소에 대한 부분적 혹은 전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병원체(pathogen)’다. HIV를 박멸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HIV를 없앨 수 없다면 예방 백신을 개발해 ‘비감염인(host․숙주)’의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으나, 백신이 없는 상황이다.
남은 것은 ‘벡터(vector)’와 ‘사회적 환경(environment)’이다. 벡터란 병원체를 운반하는 과정을 잘라내는 방법을 일컫는다. 성관계에서 콘돔 사용, 혈액의 안전관리 등이 그 대책이다. 그런데 성행위는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처럼 국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왜냐면 성관계는 둘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감이지 예방행위가 아니다. 강제로 콘돔을 사용하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에이즈를 정말로 예방하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치명적인 결점이 되어, 한 사람의 인권을 위협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감염인 스스로 예방행위를 하고, 비감염인이 안전할 수 있다. 벌칙조항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내 에이즈 감염인구가 이를 방증한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의 억압적인 패러다임으로는 결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없다.

활동가들만의 논리가 아닐까. 비감염인이 감염인과 함께 지내는 것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옥 :
감염인의 권리가 비감염인의 생명권을 위협한다고 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반응은 명백하게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HIV는 일상적인 접촉으로 절대 전파되지 않는다. 성관계에서도 콘돔이라는 수단이 있다. 이것은 감염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비감염인의 생명권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감염인의 인권증진이 어째서 비감염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히려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면 비감염인의 인권은 한층 더 보호받을 수 있다. 장애인이 편하게 탈 수 있는 버스는 비장애인도 편하게 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감염인이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다면 비감염인은 훨씬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감염인이 병원에서 치료거부를 당하는 이유는 병원이 소독을 잘 안 해서이다. 소독이 잘된다면 비감염인은 HIV뿐만 아니라 무수한 미생물로부터 가장 강력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감염인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비감염인이야말로 정말 잘 사는 사회이다.

허울뿐인 익명검사와 노동권 보장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에 대해 평가해 달라.
옥 :
몇 가지 용어 정리가 있었다. ‘감염자’를 ‘감염인’으로 바꾸었다든지. 또 익명검사 조항을 신설했다. 질병관리본부의 HIV/AIDS 관리지침에서 권장사항으로 익명검사를 두었는데 이제 법으로 규정을 한 것이다. 직장에서의 차별 금지도 명시했다. 국제적인 여론과 감염인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정부도 감염인 인권이 실효성 없이 과도하게 탄압받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법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옥 :
익명검사를 법률로 끌어올린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검사만 익명으로 하면 뭐하나. 보고는 모두 실명으로 한다. 정부가 익명검사를 도입한 이유는 검사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대하기 위해서다. 분명 검사는 예방과 감염인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감염인 색출이 목적이 아니라, 공중보건을 위한다면 익명검사와 익명보고를 연동해야 한다. 어찌 보면, 검사의 익명․실명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감염인을 실명으로 관리하는 상황이다. 이를 간과한 익명검사의 법제화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직장에서 차별 금지를 선언하는 것 역시 좋다. 근로기준법에 있는 내용을 에이즈 예방법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하지만, 이 역시 핵심을 못 집었다. 실제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감염인도 있지만, 제 발로 직장을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익명보고를 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감염인이다.’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예방뿐만 아니라 감염인 지원을 위해서라도 실명 보고는 필요하지 않나.
옥 :
보고과정에서 감염인의 신원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감염인의 정보가 필요한 이유는 의료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어느 지역에서 감염률이 얼마만큼 증가하고 있는지 확인해서 의료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쓸 뿐이다. 이 과정에서 감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역학조사서에는 주소, 주민등록번호뿐만 아니라 ‘당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있다. 실명 노출의 부작용이 심대한 상황에서 감염인에 대한 정보 수집은 사례조사(*)에만 그쳐야 한다. 게다가 실명보고는 예방에 도움이 전혀 안된다. 익명으로 보고하지 않으면 누가 익명검사만 믿고 검사를 하겠는가. 감염인들이 심리적 안정을 누리게끔 익명보고를 해야 한다.
감염인 지원을 위해 실명이 필요하다지만, 감염인 정보 보고 체계와 지원 체계는 서로 분리되어있다. 보고체계에서 얻어진 정보로 감염인에 대한 약값과 치료비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질병관리본부에 집적된 정보로 감염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감염인이 시군구의 사회복지과에 따로 신고를 해야 국민기초생활지원법으로 치료비 지원을 받는다. 물론 지원과정에서는 실명이 필요하고, 그것까지 반대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로 실명을 비롯한 감염인의 정보가 불필요하게 집적되는 것을 반대한다.

감염인들은 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가. 질병의 유․무로 인한 차별 금지를 법이 보장한다면 감염인이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엘 : 감염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HIV에 대한 편견이 많은 상황에서 감염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 약을 두세 번 먹는데, 직장에 다니면 보통 화장실에 가서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많은가. 그 호기심 때문에 감염인들은 고통받는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약 상자를 받아도, 에이즈 치료제라고 쓰여 있으면 상자를 버리고 약병만 가지고 간다. 감염인은 에이즈에 이 정도로 민감하다. 그러니 직장에서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자기 발로 나오는 수밖에 없다.
옥 : 감염인들은 자신의 HIV 감염사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때문에 직장 내에서 HIV 감염 사실이 알려지게 하는 직장검진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HIV 검진을 일률적으로 받게 하거나, 그 내용이 고용주에게 보고되는 일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 것들이 감염인을 노동권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노동권을 지켜달라는 선언만으로는 감염인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없다.

편견과 통제의 정점, 전파매개행위금지

공동행동의 전면개정안은 기존의 법안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안과 어떻게 다른가.
엘 :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 폐지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감염인을 악의적인 전파자로 규정하는 현행 에이즈 예방법의 핵심이 바로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이다.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성행위를 하면 처벌한다는데, 사실 예방은 감염인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비감염인도 같이 해야 한다. 감염인한테만 예방을 강조하는 것도 일종의 억압이다. 왜 예방을 감염인만 해야 하나. 감염인이 항상 콘돔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 비감염인이 예방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감염인에게만 예방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감염인을 단지 ‘퍼뜨리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독소조항이다. 의도적으로 남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했다면 형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굳이 감염인의 삶을 억압하는 조항을 남겨둬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실제로 전파매개행위를 하더라도, 당사자만 알지 다른 누가 알겠는가? 보건소 직원이 성행위 하는 것까지 쫓아다니면서 관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다.
옥 : 또 한 가지 특징은 학교, 직장, 병원에서의 에이즈 교육을 명문화한 점이다. 감염인에게는 특히 의료인과의 상담이 중요하다. 감염인이 질병 때문에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의료인이다. 그래서 의료인이 차별적인 태도를 보일 때, 감염인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아는 사람이 저 정도인데, 보통사람들은 어떨까 싶은 거다. 때문에 의료 인력들이 끊임없이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내용을 감염인에게 잘 알려줘야 한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자신의 건강과 예방을 위해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할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등 감염인에게 필요한 지식이 많다. 이는 비감염인도 받아야 할 교육이다.
엘 : 감염인은 수혈하면 안 된다는 교육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감염인 됐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소리만 듣는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보건소장은 나에게 함부로 성관계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했다. 어떤 정보를 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라는 말 뿐이었다.
옥 : 감염인이 앞으로 모든 에이즈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기존의 ‘후천성면역결핍증 정책위원회’와 달리, 감염인의 참여를 의무화한 ‘후천성면역결핍증 대책위원회’를 설립을 법에 담았다.

법은 인간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존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는데 전면 개정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옥 :
사실 이 질문은 에이즈 예방법을 현행 전염병 예방법에 통합시키는 게 어떠냐는 취지로 많이 한다. 에이즈가 다른 질환과 특별할 것이 없다는 호의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전염병 예방법이 급성이면서 불특정다수에 전염되는 전염병들, 예를 들어 장티푸스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법이라 에이즈처럼 만성적인 질환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행 전염병 예방법 역시 문제점이 많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또한, 감염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은 아직도 특별한 보호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차원에서 폐지 의견이 공동행동 내에서 더 많았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위헌소송도 곧 할 예정이다.

법이 사회적으로 만연된 차별과 편견을 일소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실제로 감염인의 삶을 옥죄는 것은 법이 아니라 비감염인들의 시선 아닌가. 법 개정 운동이 효과가 있을까.
엘 :
법이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 못 한다. 왜냐하면, 감염인은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3개월에 한 번씩 면담을 해야 한다. 만약 연락이 끊기면, 보건소 담당자가 집으로, 때로는 직장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알아서 찾아온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감염인은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옥 : 법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한꺼번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법은 국가가 그 대상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헌법을 왜 만드는가? 우리 생활을 구체적으로 규율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헌법은 인간에 대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국가에 요구할 뿐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에이즈 예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1985년에 우리나라에 첫 번째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외국에서 에이즈라는 병이 생겼는데, 무서운 병이라더라.’라는 추상적인 두려움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1987년에 에이즈 예방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그 두려움이 구체화되었다. 잘못 만들어진 법이 특정대상을 적시하면서 사회는 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에이즈 예방법은 감염인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틀이다. 국가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법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 틀이 바뀌지 않는다면 차별과 편견을 없애자는 말이 선언에 불과해진다. 법 개정 운동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행동이 제출한 법안의 전망은 어떠한가.
옥 :
미리 어떤 타협점을 둔다는 점에서 말하기가 곤란하다.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개정안이 문제가 많고 여전히 그 기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 법안을 통해서 보여줄 것이다. 당연히 법안의 통과가 목표다.

다른 나라의 에이즈 관련법을 소개해 달라.
옥 :
사실 외국에서 에이즈만을 따로 규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만과 필리핀 정도다. 일본은 몇 년 전에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폐지하고 이를 감염증예방법에 편입하면서, 에이즈에 대해서는 실명보고를 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필리핀 법은 법 자체가 국제가이드라고 볼 정도로 매우 선진적이다. 그 외에 미국 같은 나라는 여러 법률에 관련사항을 분산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주마다 정책이 조금 다르다. 우리와 법체계가 다른 서구는 보건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 국가적 전략 차원에서 에이즈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 가이드를 많이 참고해 감염인들의 리더십을 중요시한다.

그러한 법과 정책이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는가.
옥 :
꼭 법률의 효과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구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태국은 실명보고체계를 익명보고로 전환한 후, 감염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 의도가 인권을 보장하려고 한 것이든 아니든 그러한 장치들이 실제로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감염인들의 커뮤니티도 많이 활성화되어서, 다른 환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알린다

약값과 치료비 지원 때문에 어떤 감염인들은 한국 정부의 에이즈 정책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이러한 대(對)정부 활동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엘 :
맞는 말이긴 하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에 관리 규정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치료비 지원, 쉼터 운영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그래서 감염인 중에는 이런 활동 하면 우리가 괜히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것이냐고 말한다. 또 에이즈 예방법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온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보건소의 관리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행동을 할 때 감염인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권리에 대해 깨우치게 하는 일이 좀 힘이 든다.

7월 4일 공동행동 발족 이후 반년 동안 법 개정 운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밝힌다면.
엘 :
입원을 하는 바람에, 공동행동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동행동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우리의 목표는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에이즈 예방법에 대해 제대로 알려서 차후에라도 법 폐지 운동을 할 때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1987년에 이 법이 제정됐지만 그간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2002년에 나누리+가 처음으로 정부 관리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를 열면서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또 에이즈라는 주제가 선정적일 수도 있어 쉽게 눈길을 끌지만,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금방 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대중적으로 알리는 일이 힘이 들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공동행동은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점을 정말 많이 알렸다.
옥 : 그 이전에 나누리+에서 활동할 때는 그냥 추상적으로 ‘감염인들과 함께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감염인들과 같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니, 그들이 실제로 겪는 일들, 고민을 많이 알게 되었다. 관계가 확장되면서 내 활동의 목표가 더 구체화 되었다. 우리가 믿어왔던 바와 마찬가지로, 또 대다수의 질병이 그러하듯이 에이즈는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개인의 고통에만 머물러도 안 된다. 사회 전체의 책임과 고통이 되어야 한다. 에이즈를 통해 나는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얻었듯이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감염인들 모두 더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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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하루 10시간씩 축구공 만들어 보실래요?&quot;

  "하루 10시간씩 축구공 만들어 보실래요?"
  [아시아 인권 투어] <3> 아시아의 아이들, 그리고 아동노동
 
  2006-06-01 오전 12:07:51

 

6월 9일의 독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세계의 축구팬들이 들끓고 있다. 이 열기 속에서 6월 12일이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세계 아동노동 반대의 날(World Day Against Child Labour)'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에 따르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린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100만 명의 아동이 빈곤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또한 십 수만 원을 호가하는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파키스탄·인도 등지의 아동들은 축구공 하나당 100~200원을 받으며 고사리 손을 혹사당해야 했고 때로는 유독물질에 눈이 멀기도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 FIFA-유니세프 공동캠페인의 구호는 '어린이와 평화를 위해 다함께(Unite for Children, Unite for Peace)'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월드컵 기간에도 멈추지 않을 아시아 지역 아동노동의 실상을 돌아보자.
  
  아동노동은 '값 싸고 스스로 저항할 수 없는, 힘 없는 노동'
  
  아동노동은 푼돈으로 부릴 수 있는 '값 싼 노동'이자 노동조합 등을 조직해 협상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고립된 노동'이며 보호자 없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워 착취가 용이한 '힘없는 노동'으로 여겨진다. 전 세계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아동의 숫자는 2억46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의 아동들이다. 게다가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는 아동의 숫자는 6200만 명에 달해 전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많다.
  

▲ 전세계에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2억6400만의 아동들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 아이들이다. 이들을 고된 노동으로 몰고 간 1차적 이유는 빈곤이다. ⓒEPA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빈곤은 아동을 노동에 몰아넣는 가장 큰 요인이며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에는 당장 오늘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인 지역이 많아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 노동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의무교육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기도 하고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국제프로그램(IPEC)'은 빈곤만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 불안한 정치상황 등도 아동 노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부계 중심의 가족에서, 또 어른을 잘 모시고 형제자매를 위하는 것이 의무로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밥벌이를 해서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더구나 여자 아이들은 가부장적인 전통 하에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결혼과 동시에 가족을 떠난다고 여겨지는 여자아이들은 결혼 이전에 가사노동을 하거나 남자형제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돕는 것이 가족구성원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여겨져 노동으로 내몰리기 쉬운 것이다. 이는 최근까지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던 일이다.
  
  아동노동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갑작스런 가난'이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정치적 분쟁과 자연재해,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성인 노동자들 역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부상, 사망하는 사태가 빈번하다. 사회안전망 역시 취약하여 이러한 위기를 겪은 가정들은 쉽게 무너지고 최소한의 보호막도 잃은 아이들은 쉽게 불법적이고 위험한 노동에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성인 노동시장의 차별 또한 그들의 아이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하고 있다. 네팔, 태국, 파키스탄의 세 가지 아동노동 사례를 통해 이러한 현주소를 돌아보자.
  
  축구공 꿰매는 아이들 - 파키스탄 씨알콧
  
  축구공은 가죽 조각을 손바느질로 이어 붙이는 수작업을 통해 완성된다. 그동안 축구공 생산은 경제논리에 따라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아동노동을 착취해 악명이 높았다. 비난 여론이 일자 1999년 FIFA는 강요되거나 구속된 노동 혹은 아동 노동으로 생산된 축구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식 생산현장이 아닌 중간상인을 통한 생산은 통제하기가 어려워 여전히 많은 아동들이 축구공을 꿰매고 있다.
  
  파키스탄의 씨알콧은 대표적인 축구공 생산지역으로 파키스탄 축구공 생산의 무려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브랜드만도 전 세계 50여 개에 이른다. 수 만 명으로 추정되는 씨알콧의 아동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8~9시간을 일하고 있고 그 중 30%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가난하기도 하거니와 교육의 질도 낮아 아이들을 무리해서 학교를 보내기 보다는 기술을 배우게 하는 것이 낫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씨알콧 지역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서구 사회의 압력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단체들도 아동노동 근절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시기에도 여전히 씨알콧 지역의 아동착취 축구공 생산은 악명을 떨쳤다. ILO나 유니세프와 같은 국제연합(UN) 기관들과 국제 언론, '아동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세계행진(Global March)'과 같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섰고 '축구공 프로젝트'를 실시해 '바느질을 멈추고 학교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축구공을 생산하는 아이들을 극한 빈곤으로부터 탈출시켜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여전히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동들이 많지만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씨알콧은 대안을 찾아나가고 있다.
  
  집안의 어린 노예 - 네팔 카트만두
  
  '입주 아동노동(domestic child labour)', 통칭 '남의집살이'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가려진 노동이지만 전 세계 아동노동의 약 6~7%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의 경우, 이러한 입주 아동노동은 도시의 부유한 가정을 중심으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입주 가사노동을 하는 아동은 요리·청소·설거지 그리고 아이보기 등의 일을 하는데 IPEC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2001년에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절반 이상이 부모님에 의해 팔려가다시피 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입을 줄이기 위해 결혼을 하면 '남의 집 사람'이 될 여자아이들을 입주노동으로 보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보내져 노동하는 아이들의 18%는 문맹이고 또 다른 10%는 거의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다른 부유한 가정으로 보내지는 노동의 경우, 다른 아동노동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극단적인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형태의 노동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조사 결과 입주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아동의 97% 이상이 UN아동권리협약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노동(worst form of child labour)' 수준이었던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통 새벽 5시에 기상해서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아무런 금전적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급여를 받는 경우에도 40% 이상이 부모가 그 돈을 전부 가져간다.
  
  이들은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과중한 노동과 열악한 처우,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과 정신적인 피폐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성적 착취와 폭력에 쉽게 노출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아동들은 고용기간 동안 마음대로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아 사실상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마약을 운반하는 아동들 - 태국 방콕
  
  강제노역이나 아동 성매매 등과 함께 최악의 아동노동으로 꼽히는 것 중의 하나가 마약 거래다. 이같은 마약 운반에 동원되는 아이들의 대다수는 도시빈민가에서 자라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해 기술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주로 이미 마약거래에 연루된 친구를 통해 이 '사업'에 빠져들게 된다. 아동을 마약거래과정에 이용하는 것이 더욱 심각하고 위험한 까닭은 이들이 이를 통해 마약에 노출·중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2년 '아동노동에 대한 통계정보와 모니터링 프로그램(SIMPOC)'과 IPEC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마약과 연관된 14~17세 사이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 결과, 98%의 아이들이 가족의 빈곤으로 인해서 학교교육을 계속 받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그리고 응답한 아이들의 절반 가량이 이미 마약 중독 상태에 있어서 자신의 약을 사거나 얻기 위해서 마약 거래를 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연구진의 참여관찰 결과 사실상 대부분(98%)의 아이들이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대부분은 하루 10시간 이상 고객을 찾으며 지역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가족 전체가 마약 거래에 손을 대어 빠져나올 수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솜차이(가명/SIMPOC 면접조사 케이스)는 이러한 현실의 전형을 보여준다. 도시 빈민가에서 자란 솜차이는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고 14살에 처음으로 마약에 손을 댔다. 마약 중독자이자 중간상이 된 솜차이는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술을 먹거나 자신을 위한 마약을 샀다. 솜차이는 14살 때 마약소지죄로 체포, 같은 해에 약물남용으로 체포, 15세, 16세에 각각 마약소지죄로 다시 체포됐다. 건강하게 성장하고 교육받을 아동으로서의 권리는 솜차이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성장과 개발의 논리를 넘어서…아동인권 인식 성장으로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각 나라별 사례를 들어 설명했지만 이같은 아동노동은 특정 국가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축구공 산업의 아동노동의 경우 씨알콧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전역, 인도,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서도 만연한 일이다. 입주 아동 노동의 경우에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중국 등지에서 그 심각성이 지적되고 있으며 마약 거래에 연루된 아동들의 경우는 태국을 포함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 가난한 부모를 만나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해 어린 시절부터 노동으로 내몰린 아이들이 빈곤을 벗어날 길은 없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EPA

  경제적으로 뒤쳐진 나라가 아동의 권리를 상대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시아 지역의 아동노동 착취의 현실을 해결하는 데에는 경제적 성장과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동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인권과 평등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그러한 바탕 위에서 나오는 정책과 대안이 문제 해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 경제논리, 가부장적이거나 성인 중심의 권위적인 전통적 악습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 아동이 건강한 성인으로서 성장하고 교육받을 권리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작동할 때, 이 비극을 끝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인권 침해라는 지금까지의 현실을 아이들의 미래에서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가난해 교육받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해 다시 빈곤해지고, 부모가 빈곤하여 다시 어린 자식이 학교가 아니라 위험한 노동현장으로 내몰려야 하는 이 빈곤과 무지의 악순환의 고리는 그 어떤 노력이 요구되더라도 반드시 끊어져야 할 대목이다.
  
※ 아동노동 관련 사이트들
  
  
ILO : www.ilo.org
  SIMPOC : www.ilo.org/public/english/standards/ipec/simpoc
  UNICEF : www.unicef.org
  Global March : www.globalmarch.org
  World Vision : www.wvi.org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60531140812&s_menu=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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