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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제를 가장한 상업주의의 화신

월드컵, 축제를 가장한 상업주의의 화신

2006월드컵이 독일사회에 미치는 영향들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열기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확실치 않다. 하지만 기업과 언론이 당시의 열기를 다시 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왜일까? 월드컵은 이제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월드컵은 엄청난 규모의 상업적 이해관계가 걸린 행사가 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응원의 주무대가 될 시청 앞 광장 이용의 '독점권'
을 KBS, SBS, 조선일보가 동참한 'SK 텔레콤 컨소시엄'에 팔아넘겼다. 붉은 악마의 티셔츠는 독점계약을 맺은 특정업체만이 만들어 팔 수 있다. 이를 두고 월드컵이 상업주의를 부추기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민족주의를 이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개최국인 독일의 사정은 어떨까? 아래의 글은 2006 월드컵이 독일사회에 미치는 정치·경제·사회적 영향을 짚어보고 있다. 필자는 '월드컵이 모두를 위한 축제'라는 표현은 현실을 덮는 수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월드컵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은 결국 거액을 투자한 다국적기업, 사회문제를 감추려는 정치가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월드컵이 독일과 세계인들을 '친구'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독일 현실과 정반대되는 말이며 오히려 월드컵 개최가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안보의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월드컵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주장도 정반대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는다.
  
  아래 글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World Socialist Web Site)에 실린 마리안느 아렌스의 글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원문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
http://www.wsws.org/articles/2006/may2006/cup-m31.shtml)에 실려 있다. <편집자>
  
  2006 독일월드컵- 수백억 유로의 사업
  
  월드컵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월드컵 마니아들의 유례없는 열기는 독일의 일상을 압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도심의 공공장소, 상점 진열대에서는 물론이고, TV 방송의 작은 프로그램, 신문의 작은 구석에서조차 월드컵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그러나 실제 월드컵은 광고와 상업주의의 축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다국적기업과 FIFA 사이를 오가는 자본
  
  월드컵은 수천억 유로의 이권이 결린 거대사업이다. TV 중계권료만 해도 10억 유로 이상이 오간다. 또한 4억 유로 이상이 광고권을 판매하는 데에서 창출된다. 이는 입장권 판매액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액수다.
  
  한때 대중들은 TV 중계 프로그램의 상업 광고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제 광고는 방송중계의 주목적이 되었다. 전 세계에 중계되는 경기를 통한 홍보효과를 아는 공식 후원업체들은 이제 이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월드컵 주관단체인 FIFA는 축구팬들이 20억 유로의 상품을 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비해 20% 증가된 액수다. 판매액의 15~20%는 FIFA 몫으로 돌아간다. FIFA는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상품판매에 대한 세금의 4.25%만을 부담한다. 15개의 공식 후원업체는 광고독점권을 따내기 위해 FIFA에 수백만 유로를 지불한다.
  
  FIFA는 '2006 월드컵 축구(Football World Cup 2006)'이라는 문구의 독점사용권을 따내기 위해 독일 연방법원에 찾아갔으나 허가되지 않았다. 쥐트도이체 차이퉁(Suddeutsche Zeitung)은 이 사건을 두고 마치 BMW사가 "차를 운전하세요"라는 문구를 독점하겠다는 경우와 똑같다며 비꼬았다.
  
  공식 스폰서업체는 아디다스, 코카콜라, 맥도날드, 야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엔호이저부시, 어바이어, 도이체 텔레콤, 컨티넨탈, 도시바, 필립스, 현대자동차, 마스터카드, 후지필름, 에미레이트 항공, 질레트다. 또한 독일 내의 6개의 프로모터사가 있다.
  
  FIFA는 공식 후원업체들에게 '2006 월드컵'이라는 문구사용에 대한 독점권만을 제공하는 게 아니다. 무료 입장권이나 VIP 관람석 이용권 제공은 물론이고 계약을 새롭게 체결할 때도 우선순위를 제공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의류와 축구공의 공식 지정업체인 아디다스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2014년 월드컵 후원과 관련해 이미 계약을 끝냈다. FIFA와 코카콜라의 계약 역시 25년간 유효하다.
  
  공식 후원업체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그 위력을 발휘한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시작된 경기장 명칭 사용권의 영향을 받은 독일의 축구 경기장들은 수익증대를 위해 경기장의 이름을 광고주에게 파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겔젠키르헨 아우프 샬케(Gelsenkirchen's Auf Schalke)라는 이름의 경기장은 벨트린스(Veltlins) 라는 맥주 상표로 이름을 바꿨으며 프랑크푸르터 발트슈타디온(Frankfurter Waldstandion)이라는 경기장은 현재 이지크레디트(easyCredit)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 상표들은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월드컵 기간에는 다시 경기장 이름을 프랑크푸르트(Frankfurt), 겔젠키르헨(Gelsenkirchen) 등으로 변경해야 한다.
  
  제대로 즐기기엔 너무 비싼 월드컵
  

▲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대형 축구공과 독일 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 프란츠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 ⓒ연합뉴스


  지역 축구팬들이 월드컵기간에 경기장에 갈 기회는 거의 없다. 시민들은 월드컵이 '모두가 참여하고 즐겨야 할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외치는 홍보물 세례를 받지만, 실제로 입장권을 사려면 엄청난 돈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을 통해서는 입장권 중 3분의 1만을 구매할 수 있다. 예약은 오래 전에 해야 하며 예약 시 상세한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입장권을 선물로 받았거나 제3자를 통해 구한 이들은 경기장 입구에서 거절당할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입장권의 재판매도 금지되었으나 수많은 항의가 있은 후에 허가됐다.
  
  주요 도시들은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위해 넓은 장소와 대형 스크린을 준비한다. 아디다스는 베를린 국회의사당 앞에 '미니 올림픽 경기장'을 개설해 1만 명의 관중들이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아디다스는 한때 주민들이 즐겨 공놀이를 하던 넓은 평지에 '축구세계'라고 이름 붙여진 4만 평방미터 규모의 거대한 축구공원을 지었다.
  
  9일 경기가 시작되는 뮌헨의 북부에는 3억4000만 유로를 들여 경기장을 신축했다. 알리안츠(Allianz)라 이름이 붙은 이 경기장은 '건방진(arrogance) 경기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친구가 되는 시간'이라고?"
  
  2006 독일월드컵의 공식 슬로건은 '친구가 되는 시간'이다. 이는 현재 독일의 현실과 극명히 대조되는 문구로서 외국인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다'는 몽상만을 심어줄 뿐이다.
  
  발칸 전쟁 때 독일로 이주한 외국인들, 아프리카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들은 구조적으로 불법이라는 이유로 계속 강제 이송되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후 프랑크푸르트나 함부르크, 뮌헨 경기장에서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새벽 3시에 경찰이 외국인등록사무소에서 나왔다며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 강제이송시키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설사 그 지역에서 20년을 살며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어른들은 일을 한다고 해도 이들은 쫓겨나기 마련이다. 정말 지금이 우리가 '친구 되는 시간'일까?
  
  한편으로 외국인처럼 보이는 이들을 폭행하는 극우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월드컵을 3주 앞두고 전 독일 정부대변인 우베 카르스텐 헤예(Uwe Karsten Heye)는 독일을 방문하는 흑인 관광객들에게 시내 중심가에 나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신나치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브란덴부르크 같은 중소도시에는 아예 가지 않는 게 좋다. 살아 돌아오기 힘들기 때문이다"고 경고했다.
  
  작년 한 해 극우주의자들의 범죄는 25% 증가했다. 최근 에디오피아 출신 독일인이 받은 공격은 몇몇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골치 아픈 문제는 모두 잊고 즐기자?
  
  정치인들은 헤예(Heye)의 주장에 격렬히 반대하며 자국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정치인들은 다가올 행사의 어두운 면을 감추려는 기색도 역력하다. 월드컵은 경기장 신축, 기반시설 개발 등을 동반한다. 시민들의 지갑은 텅텅 비어가지만 FIFA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큼의 개발과 공사에 투자되는 돈은 굴러들어온다. 이 때문에 월드컵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힘을 발휘한다.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현안들을 덮는 데에도 월드컵은 효과적이다. 사회양극화, 실업난, 건강보험 문제, 교육문제, 연금문제, 정보 스파이 문제 등 독일 사회 내의 수많은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독일의 정치엘리트들은 국가주의가 기세를 떨치기 바란다. 환호와 즐거움의 물결 속에서 그들을 압박하고 있는 사회현안들이 잊히길 바란다.
  
  어느 팀이 경기에서 이길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가운데, 국가의 빚은 점점 많아질 거란 점 하나만은 확실하다. 12개 경기장의 신축 및 재건축에 13억8000만 유로가 소요됐다. 또한 기반시설 건설과 안보유지 문제는 또다시 수십억 유로가 소요되게 만든다.
  
  또다른 중요한 사실은 평소에는 대중에게 널리 반대를 살 만하거나 진행되기 어려운 정책들이 월드컵을 이유로 속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특히 안보 문제가 그렇다. 월드컵기간 중 정부는 공공장소에 경찰과 군대를 배치할 예정이다. 이건 오히려 테러 위험을 느끼게 하는 공포심을 유발한다. 수백 개의 CCTV 카메라가 공공장소에 설치될 예정이고,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무장한 군대가 공중조기경보기(AWACS)와 함께 배치된다.
  
  한편 테러에 대비하여 5000명이 넘는 의학·핵·생물학·화학무기 전문가들이 독일에서 대기할 예정이다. 유럽 15개국에서 통과된 쉥엔(Schengen) 협약은 훌리건들이 독일에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보류됐다. 베를린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훌리건 전력이 있는 이들의 DNA 샘플을 채취하기로 했다.
  
  각 경기는 6000명의 경찰 및 주변을 감시하는 비행기와 함께 진행된다. 뮌헨에서 진행될 개막전에서는 경기장 주변 60km 이내에 FIFA가 고용한 2만 명의 사설 경비업체 직원이 배치된다. 이 모든 것은 국가비상사태를 대비한 예행연습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군중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 준비는 소홀한 상태다. 12개 경기장 중 4군데가 화재 예방조치, 탈출통로 등이 월드컵을 개최하기에 부적절하다거나 미비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월드컵은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 경기장과 기반시설 건설은 마감기한에 맞추기 위해 하루 10~12시간의 강행군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개인 보안업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토, 일요일 근무는 이제 보통이고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엄격한 제한을 받았던 상점 개점시간이 연장됐다.
  
  월드컵은 "극도의 비상사태" 속으로 모든 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축제가 끝난 뒤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돈은 부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월드컵이 다가올수록, 매우 값비싸고 세심하게 연출된 미디어행사가 펼쳐질 것이 예상된다. 비록 많은 수의 사람들이 경기 시청을 즐기지만, 이 '메가톤급 행사'는 의심과 회의, 그리고 불신도 함께 유발하고 있다.
  
  베를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시민 2명 중 1명만이 월드컵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든다.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호텔들은 아직도 빈 방이 많다. FIFA의 마케팅회사인 WCAS사가 사전예약한 대부분의 방이 남아 있는 상태다. 베를린에는 4월 현재 5000~8000개에 달하는 방이 미예약 상태로 남아 있다. 올해 초 FIFA에서 계획했던 개막식은 입장권이 적게 팔려 취소됐다.
  
  5월 중순, 월드컵 마스코트인 '골레오(Goleo Ⅵ)'를 만들었던 장난감회사 니치(Nici)가 파산했다. 이미 위기였던 상태에서 이 회사는 이 사업에 500만 유로를 투자했지만, 팬들은 인형에 관심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자된 사업들은, 몇몇 경기를 제외한 채 대부분 대중적 외면에 직면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 예로 뮌헨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독일전통맥주인 바이스비어(Weissbier)도, 프랑크푸르트의 전통 사과술도 판매가 금지된다. 축구팬들은 후원업체의 상품인 코카콜라와 버드와이저만을 마실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을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약속한 것처럼 월드컵이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게 명백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월드컵으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단 몇 주의 고용에 국할될 뿐이며 급료를 받는 일도 매우 한정돼 있다. 경기장 내에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은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월드컵 스폰서 중 하나인 도이체 텔레콤은 3만 개의 일자리를 월드컵이 끝나는 다음 달에 없애기로 했다.
  
  월드컵은 오고 또 간다. 그리고 수백만 유로는 부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그 값을 치르는 동안 이득을 보는 것은 몇몇 대중매체와 스폰서, 호텔, 카지노, 고급 레스토랑의 업자들일 것이다.

  (번역=강이현)

 

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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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들이 인도를 파괴하고 있다

corinalis님의 ["다국적기업으로부터 쌀과 콩을 되찾아 오다"] 에 관련된 글.

 

다국적 기업들이 인도를 파괴하고 있다

[그린아시아2006]인도의 세계화 저항운동을 찾아서

얼마전 인도산 콜라에서 고농도의 농약 잔여물이 검출돼 전세계에 논란을 일으켰다. '농약 콜라' 파문은 지난 8월 초 뉴델리의 과학환경센터가 인도 12개 주에서 판매되는 코카콜라와 펩시의 57개 샘플 성분을 분석해 농약 잔여물이 정부 기준치 보다 24배 높게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케랄라주는 콜라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시켰고, 일부 주는 판매만 금지시켰지만 지난 22일 케랄라주 고등법원이 코카콜라와 펩시가 음료수 생산과 판매를 재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 '농약 콜라' 논란은 인도인들에게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인도인들은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자본의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대전충남 '생명의 숲' 유지현 간사,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백경원 간사, 대전시민환경연구소 최유정 연구원이 인도를 다녀왔다. 이들은 인도에서 한국의 미래일지도 모를 '세계화의 암울한 그늘'과 이에 맞서는 이들의 싸움을 살펴봤다. 유지현 씨가 그 소감을 정리해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지난해 모 TV 프로그램을 통해 다국적기업에 저항하는 인도농민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후에도 종종 인도의 '농약 콜라' 파문이나 자살하는 농민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를 듣게 됐다. 이 모든 것을 누가 지배하는 것인가. 이들의 일상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는 세계화는 어떤 모습인가.
  
  세계화가 인도의 '마실거리'에 저지른 일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자이푸르(Jaipur)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칼라데라(kaladera) 마을이다. 이곳에 인도의 코카콜라 보틀링 공장이 있다. 자이푸르 시내에서 칼라데라 마을을 향해 외곽지역으로 벗어나자 곳곳에 코카콜라, 펩시 홍보벽화들이 눈에 띈다. 도로 표지판이 아닌 코카콜라 공장 이정표를 따라 칼라데라 마을을 찾아갔다.
  

▲ 왼쪽 : 인도의 길거리에서는 어디서나 콜라 홍보벽화를 볼 수 있다. 오른쪽: 노점상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음료수. ⓒ환경재단


  경비가 삼엄한 코카콜라 보틀링공장에 도착해 둘러보니 공장을 둘러싼 담이 꽤 높다. 공장 주위에는 곳곳에 오염된 폐수의 흔적이 있고 하수구에는 시꺼멓게 물이 말라 있다. 공장 앞쪽으로도 큰 논이 앞에 있지만 풀 한포기 찾아 볼 수 없고 메말라 있을 뿐이다. 마을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공장을 지나 마을 쪽으로 향했다.
  

▲ 코카콜라 공장 앞 하수구의 모습 ⓒ환경재단


  한적한 시골마을을 찾은 외국인이 신기했던지 여기저기서 마을주민들이 다가왔다. 우리는 그들의 삶 속에 코카콜라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물어보았지만, 아쉽게도 언어의 장벽으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인도의 시골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려고 마을 음료가게에서 코카콜라를 찾았지만 코카콜라는 없었다.
  
  코카콜라 공장이 있는 마을에서 코카콜라는 팔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단지 돈 때문이다. 부유층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로 나가면 코카콜라, 펩시, 미네랄워터는 언제 어디서나 쉽게, 돈만 있으면 마실 수 있는 음료이지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물도 콜라도 돈 있는 사람만 마실 수 있는 특권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코카콜라 공장으로 인해 물도 자유로이 마실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상태다. 물론 도시의 부유층들은 극빈층의 물 문제에 관심조차 없다. 때문에 정작 코카콜라 공장 주변의 지역민들은 콜라와 무관한 삶을 살아간다는 역설이 생겨났다.
  
  "당신은 코카콜라가 아닌 농부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바라나시에서는 최근까지도 계속 코카콜라에 반대하는 단식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라나시에서 20km 떨어진 메디간지(Mehdiganj)에 코카콜라 보틀링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후, 이 지역은 공장에서 배출되는 각종 이물질로 인한 공해, 물 부족 문제와 건강문제로 고통 받고 있었다.
  
  이 투쟁을 진행하는 록 샤미티(Lok Samiti)와 아샤 포 에듀케이션(Asha for education, 아샤) 두 단체를 만나기 위해 메디간지(Medhiganj)를 찾았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초록색 교복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시는 록 샤미티 활동가 찬드리카(36). 이 분은 놀랍게도 이 지역 활동가가 아니라 남부 뱅갈로르에서 4개월 전에 이곳 바라나시로 활동을 도와주기 위해 잠시 올라온 분이었다.
  

▲ 왼쪽 : 록 샤미티에서 만든 펩시-코크 반대 스티커, 오른쪽 : 펩시, 코크 반대운동 달력. ⓒ환경재단


  록 샤미티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위해 활동하고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조직이다. 전국적으로 주요 활동가가 1000여 명에 이르고 참여를 희망하는 이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어 인도 내에서 이른바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2003년도에 코카콜라 공장이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코카콜라, 펩시 반대운동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활동이 되었다.
  

▲ '아샤 포 에듀케이션'의 교육 현장 ⓒ환경재단


  아샤는 록 샤미티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간디의 사상을 기리며 199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아샤는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통해 사회 경제적 변화를 만드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들은 교육이 사회 경제적 변화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 하에 교육운동에 집중해서 활동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동을 해야 하고 이 지역에서도 사리(인도 전통옷)를 만드는 작업에 많은 아이들이 저임금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아샤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모임으로서 보다 많은 지역민들을 설득해 참여시키고 있으며 세가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무엇을 마실 것인가?
  
  인도에는 길거리에서 과일주스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코카콜라, 펩시가 들어오고 점차 이들 기업이 음료시장을 장악하게 되면서 지역주민들이 과일주스를 마시는 대신 코카콜라를 선택하게 됐다. 자연히 주민들이 직접 만든 음료는 줄어들게 되었다.
  
  코카콜라 공장이 처음 설립될 때에는 지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기아나 환경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물이 부족해지고 오염되어 식수가 고갈되었고 농사도 짓기 어려워졌다. 지역민에게 제공하기로 한 일자리는 병 청소, 병 수거 등의 저임금 작업일 뿐이었고 대부분의 코카콜라 생산에는 훨씬 더 낮은 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외부지역의 노동자들을 부려 노동 착취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공장 설립 이후 하수처리 없이 폐수를 방출해 농장 지역의 지하수에서 화학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폐수를 방출할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공간마저도 부족해지자 2004년부터 지역 주민 몰래 마을로 다시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역주민과 록 샤미티가 연대해 코카콜라 반대운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 마다간지 곳곳의 개천들은 오염이 심각한 상태다. ⓒ환경재단


  2004년 9월 처음 방문 시위를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도 단식투쟁 및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역민의 요구에 부응할 생각도,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하는 계획도 없는 이들에게는 '소 귀에 경 읽기'에 그치고 있다. 이들은 또 기차역 중간지점에서 시민들에게 물을 제공하며 코카콜라 반대운동을 하 는 등 시민들에게 코카콜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세계화가 인도의 '공기'에 저지른 일
  
  바라나시를 떠나 10시간 기차이동 후 도착한 곳은 마디아프라데시주 보팔. 보팔은 유독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해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은 도시다.
  
  '보팔 참사'는 1984년 12월 3일 새벽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유니언 카바이드(Union Carbide) 사의 공장 저장탱크에서 유독가스인 메틸 이소시안염(M.I.C:Methyl Isocyanate)가스 40여 톤이 누출돼 3500명이 사망하고 60만 명이 부상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였다. 그래서 보팔 시 곳곳에서는 공동묘지가 자주 보이는데 이곳들은 모두 보팔 사고의 피해자들이 묻힌 곳이라고 한다.
  

▲ 왼쪽 : 보팔 참사를 표현한 벽화 오른쪽 : 보팔 시민의 시위 현장 ⓒ환경재단


  이 사고로 피해를 입은 보팔시민들은 유니언 카바이드사를 상대로 30억 달러의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유니언 카바이드는 89년 4억70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형사책임을 끝까지 회피했다.
  
  삼바브나 트러스트(Sambhavna Trust)는 보팔참사 유가족의 권리 찾기, 의료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다행히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후원이 오고 있고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찾아 오는 편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사무실 한편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자원활동가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주신 활동가 Satinath sarangi(60)는 사고 이후에도 가스에 노출된 50만 명 가운데 2만 명이 가스노출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12만 명이 실명과 호흡곤란과 위장장애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 이상으로 인한 중병을 앓고 있는 이도 많고 유전자 돌연변이도 출현하고 있다.
  

▲ 지역주민의 요구가 쓰여 있는 벽화 ⓒ 환경재단


  사고가 발생한 공장 주변의 주민들은 지금도 오염된 물은 마시고 있으며, 현장에는 위험천만한 산업 쓰레기가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채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2001년에 유니언 카바이드사를 인수한 다우케미컬에 대해 정화작업을 요구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위험천만한 공장이 왜 이곳에 세워진 것일까. 미국, 유럽 등의 선진 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환경적으로 유해한 위험산업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다국적기업들은 엄격한 안전관리시설과 공해방지시설 등의 규제를 피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윤에 굶주린 자들 때문에 힘없는 약소국들만 피해를 보고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인도의 세계화 정책
  
  보팔을 떠나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델리. 델리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빈부격차가 큰 인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게 볼 수 있다. 길거리 아무 곳에서 누워 자는 노숙자, 비오는 날인데도 자그마한 몸집으로 싸이클릭샤를 힘겹게 끌고 가는 릭샤왈라가 있는가 하면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대저택에서 큰 개를 몰고 산책하는 부유해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띈다. 인도사회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20년째 인도에서 살고 있는 델리대학교 동아시아학 김도영 교수를 만났다.
  

▲ 델리대 동아시아학 김도영 교수. ⓒ 환경재단


  인도 정부의 세계화 정책은 어떠한가? 김 교수는 "힌두 우파가 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겉보기에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이 '인디아 샤이닝(India Shining)' 정책은 소수의 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갔고 대다수 농민들은 박탈감에 시달리며 기아와 자살은 계속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정부가 야당이던 시절 이러한 문제점을 고민하게 되었고 지금은 빈곤한 농민에 초점을 맞춘 의제를 제시하면서 국민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사실 빈부격차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인도를 하나로 묶는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느냐고도 덧붙였다.
  
  세계화에 강요되는 나 그리고 우리
  
  "우리 대부분은 우두커니 앉아서 불필요한 '개발'과 우리가 원하지 않은 상품에 의해서 지구 생태계가 산산 조각나는 것을, 생태계 종들이 유전자공학과 독물에 시달리고 삶터에서 쫓겨나는 것을, 전 세계 문화집단의 대다수가 뿌리를 뽑히고 궁핍해지고 노예로 전략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우리 대부분은 우두커니 앉아서 효과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새로운 규제를 꿈꾸기만 한다." - 피터 몬테규 -
  

▲칼라데라 마을주민과 함께. ⓒ 환경재단


  최근 한국에는 한미 FTA 협상을 놓고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세계화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도의 여러 도시를 찾아다니면서 본 모습들이 어쩌면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우리가 모르는 사이 겪고 있는 현재인지도.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 부의 권력이 독점되고, 계층 간의 불평등, 지역사회의 공동체 파괴 등 개인의 삶이 초국가적 차원의 질서에 의해 더욱 크게 영향을 받는 무서운 현실이 엄습하고 있다.
  
  97년 IMF외환위기 이후 대대적 개방의 결과는 심각한 양극화와 일자리 상실이라는 엄청난 고통들이 우리 곁에 다가왔던 것을 기억한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우리 모두의 노력들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유지현/대전충남 생명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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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다국적기업으로부터 쌀과 콩을 되찾아 오다&quot;

corinalis님의 [[디디의인권이야기] 선택할 권리, 공유할 권리] 에 관련된 글.

 

[그린아시아2006] 인도의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을 보다

 

 1997년부터 인도에서는 농민들의 자살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8월 공식 통계를 내고 지난 5년간 마하라슈트라와 안드라 프라데시, 케랄라, 카르나타카 등 4개 주에서 자살한 농민은 36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농민단체와 NGO들은 최대 1만8000명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핵 물리학자이자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1997년은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인도의 종자회사들을 사들이고 이종종자와 유전자 조작 종자를 팔기 시작한 해"였다며 1992년 농업시장 개방과 함께 인도에 밀려들어온 다국적 기업들이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반다나 시바가 이끌고 있는 '나브다냐(Navdanya)'는 몬산토 등 다국적 종자기업의 특허 전략과 종자 획일화에 맞서 유기농 방식으로 종다양성의 확산을 추구하는 일종의 '전통농업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는 NGO다. 여성환경연대의 이안소영, 이주은진, 윤이현희 간사와 함께 지난 8월 19일부터 9일간 나브다냐의 씨앗은행과 농장, 유기농 직판장 등을 방문했다.
  
  농민들을 죽음로 몰아넣은 몬산토의 'Bt 면화'
  
  나브다냐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몬산토가 생산하는 변형 종자에 대한 '유전학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8월 19일 인도 뉴델리에 있는 나브다냐 본부에서 만난 프리야(Preya) 간사도 한국에서 찾아온 낯선 방문객들에게 이를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다.
  

▲ 나브다냐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는 프리야 씨(왼쪽). ⓒ환경재단


  몬산토가 인도 농민들에게 판매한 유전자 조작 종자의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유전자 변형 Bt 면화'다. 해충이 잘 꼬이는 면화가 스스로 천연 살충제인 'Bt 독소'를 만들도록 조작한 것이다. Bt 독소는 토양 박테리아의 하나인 Bacillus Thruigniensis(Bt)에 의해 천연적으로 생산되는 물질이다. 몬산토는 이러한 Bt 유전자를 면화에 이식해서 식물이 스스로 벌레를 죽이도록 만든 것이다.
  
  몬산토는 이 면화를 심으면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다고 선전했다. 몬산토는 벌레 그림 옆에 "기르는 면화에 이런 벌레가 있나요? 걱정 마세요.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팜플렛을 뿌렸다. 이 선전에 넘어간 농민들은 빚을 내 면화 재배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검은콩, 하우스콩, 녹두, 참깨 등 이들이 재배하던 다양한 농작물들이 사라졌다.
  
  면화재배를 시작할 때 농민들은 성공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Bt면화의 문제는 금방 드러났다. 오랜 시간 Bt 독소에 노출된 해충이 점차 독소에 대한 내성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몬산토가 Bt면화를 팔기 시작할 때부터 몇몇 과학자 단체에서 머지않아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들은 Bt 작물 재배가 확대되면 2-5년 내에 특정 해충에 대한 Bt 살충능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고, 이 예측은 그대로 맞아들었다. 면화에는 여전히 해충이 꼬여들었고 농민들은 Bt면화를 기르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농약을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새로운 면화 종자가 도입된 안드라 프라데쉬 주의 와랑갈 지역과 펀잡 주의 바틴다 지역에서 자살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농민들은 면화를 재배하면서 떠안게 된 빚을 감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농부에서 농부에게"
  
  몬산토의 유전자 조작 작물은 인도의 농업에 두 가지 문제를 안겼다. 하나는 인도의 종자회사들을 사들인 다국적 기업들에게 인도의 농업이 근본적으로 종속되어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이들이 제공한 유전자 조작 작물들로 인해 인도의 식품 안전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그 때문에 나브다냐의 활동도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브다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인도의 전통적인 농업방식에 주목했다. 씨앗 은행을 만들어 사라져가는 다양한 종자를 보존하고 보다 발전된 유기농업을 보급해 식품 안전을 보장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다. 뉴델리에서 기차로 네 시간 가량 떨어진 우타란찰 주의 데라둔 시 남부에 있는 나브다냐 씨앗은행과 농장이 그런 곳이다. 나브다냐는 각 지역에 이와 같은 씨앗 은행을 건설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13개 자치주에 34개의 씨앗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 씨앗은행과 농장이 있는 나브다냐 데라둔 지부의 모습. ⓒ환경재단


  데라둔의 씨앗은행과 농장은 그 공간 자체로 '농업의 이상향'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붉은 빛이 나는 이 지방의 흙으로 지어진 연구소, 도서관, 사무실, 숙소 등의 분위기가 그렇고 이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곡식과 과일들로 식사를 하는 이들의 건강한 모습이 그렇다. 또 데라둔 중심가에서 두 시간 가량 떨어져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밤이면 반딧불이와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있지만 이곳은 나브다냐의 활동을 보고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이들로 늘 북적거린다. 8월 21일 우리 일행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데라둔의 농장은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찾아온 10여 명의 NGO 활동가들과 북유럽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나브다냐의 데라둔 씨앗은행에서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쿱딥 시바(Kupdip Shiva) 씨는 "현재 데라둔의 씨앗 은행에는 400가지 종류의 쌀과 60가지의 밀, 20가지의 콩, 7가지의 유채, 그외 15가지의 잡곡을 보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국에 있는 나브다냐 씨앗은행을 모두 합하면 나브다냐는 1200가지 종류의 쌀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데라둔 씨앗은행에 있는 400가지 종류의 쌀은 모두 재배되고 있는 중이다.
  

▲ 왼쪽 : 데라둔 씨앗은행이 각종 씨앗을 보존하고 있는 모습. 가운데 : 항생제로 쓰이는 커리. 비자 데비의 설명에 따르면 다리 아플 때 바르면 낫는다고 하다. 오른쪽 : 락쉬가 통에서 보관하고 있는 붉은 쌀을 꺼내 보여줬다. ⓒ환경재단


  씨앗은행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쿤딥 시바 씨는 "농민들은 씨앗은행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의 씨앗을 가지고 가서 한해 농사를 지은 후 수확할 때 가져간 씨앗의 1.25 배를 돌려준다"고 설명했다. 이는 "Seed to Seed, Farmers to Farmer" (씨앗에서 씨앗으로, 농부에서 농부에게)라는 씨앗 자주권의 정신을 잘 구현한 방식이기도 하다.
  

▲ 데라둔의 씨앗 은행과 농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쿤딥 시바 씨. ⓒ환경재단


  또 나브다냐는 씨앗은행과 함께하는 농민들에게 전통적인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짓도록 하고 그 작물의 판매도 책임진다. 쿱딥 시바 씨는 "나브다냐는 직접 이들 농가에 가서 수매하고 유기농 직판장을 통해 내다팔고 있다"며 "농민들은 나브다냐와 거래했을 경우 통상 시장에서 거래했을 때보다 20% 정도 이득을 본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브다냐의 씨앗은행은 농민들의 호응이 매우 높다. 데라둔 씨앗은행에만 5000명의 농민이 거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브다냐가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쿱딥 시바 씨는 "소비자가를 일반 식품보다 조금 높게 책정하고 있다"면서 안전한 유기농 식품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높은 가격을 매겨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멀리보면 유기농업이 훨씬 경제적입니다"
  
  인도에서는 농사일을 여성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데라둔의 씨앗은행에서도 봄, 여름에는 각종 쌀과 밀, 야채를 재배하고 가을에는 씨앗을 분류하는 여성들을 여럿 만날수 있었다. 그중 올해 62세를 맞는 비자 데비(Bija Devi)는 데라둔의 농장이 생길 때부터 일해 온 최고참이다. 이곳에서는 '비자 이모'라는 뜻의 '비자 안띠'로 불린다.
  
  비자 데비는 25년 전 쯤에 인도에 화학비료가 들어온 것으로 기억했다. 그는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다"면서 "화학비료를 쓸 때는 밭일을 할 때 손이나 발가락 등이 많이 상하지만 지금처럼 비료로 소똥을 사용할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결혼 후 데라둔에서 소 먹일 풀을 기르면서 '유리야'라는 일종의 생장촉진제를 썼다"면서 "그 비료를 쓰면 어제 1m였던 풀들이 하룻밤새 3m로 자라 있었고 너도나도 이 비료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이 풀을 소에게 먹이면 그 우유에도 '유리야'가 들어가고 그 우유를 마시는 우리 몸에도 들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데라둔의 씨앗은행에서 가장 오래 일해온 비자 데비. ⓒ환경재단


  이곳에서는 퇴비는 물론 살충제도 직접 유기농 방식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농장의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락쉬(Laxwi)는 직접 천연 액체 살충제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일단 소똥과 흙을 섞고 그 위에 짚을 얹는다. 이어 위에 걸려 있는 통에서 계속 물이 흘러나오게 하면 밑에 있는 퇴비가 발효되면서 그 아래 살충제로 쓸 수 있는 맑은 액체가 고이게 되는데 벌레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데라둔의 농업방식은 단순히 전통 방식을 답습한 것만은 아니다. 데라둔의 농장에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전통 농업기술을 합쳐 친환경적이고도 효율적인 농업기술을 연구하는 '흙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카담 싱(Kadam Singh) 박사는 여러 농부들로부터 각지의 흙을 수집해 성분을 분석하는 한편 각 토질에 맞는 비료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카담 싱 박사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유기농업이 더욱 경제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작할 때는 유기농업이 어려울 수 있지만 화학비료를 쓰게 되면 갈수록 땅의 지력이 떨어져 비료의 양을 점점 늘려나가야 하지만 유기농 방식으로 하면 지력을 계속 높여 비료를 줄여나갈 수 있다"며 "멀리보면 유기농이 훨씬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이제 유기혁명(Organic Revolution)의 시대"
  
  나브다냐는 20세기에 화학비료와 종자 개량을 통해 생산량의 무한한 증대를 추구했던 녹색혁명은 이제 그 효용성을 다했다고 본다. 녹색혁명으로 인류의 빈곤과 기아가 해결된 측면도 있지만 이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기아는 더욱 심각해졌으며 종자의 다양성과 생태계를 파괴했다. 나브다냐는 이제 종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친환경적이며 생산적인 유기농업을 하는 '유기혁명(Organic Revolution)'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혁명은 농촌만의 변화로 되는 일은 아니다. 당연히 이 곡식과 야채, 과일을 소비하는 도시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나브다냐는 도시에 유기농 직판장과 슬로 푸드 카페를 만들어 농민들이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콩과 밀, 녹두 등을 판매한다.
  

▲ 뉴델리 '딜리 하트' 안에 있는 나브다냐의 유기농 직판장. ⓒ환경재단


  23일 우리는 뉴델리의 '딜리 하트(Dili Haat)'안에 있는 유기농 매장을 방문했다. '딜리 하트'는 인도의 동대문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각지의 특산물과 싸고 품질 좋은 상품으로 유명하다.
  
  뉴 델리에는 총 세 개의 나브다냐 직판장이 있는데 딜리 하트의 유기농 직판장이 델리에 생긴 첫번째 가게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쌀과 밀, 우리의 콩에 가까운 달(dals), 기장 등 곡식들과 식용기름, 천연감미료, 쿠키, 잼 등을 살 수 있다.
  
  다른 두 매장은 국립 동물원 주유소와 아살람 촉(Asharam Chowk)에 있다. 점원에 따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유기농 생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HPCL(Hindustan Petroleum Copoaration)과 파트너십 관계를 맺었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농민의 반FTA 투쟁에 인도 농민도 함께하고 싶다"
  
  뉴 델리에 딱 하나밖에 없는 슬로 푸드 카페는 대중적인 카페라기 보다 슬로 푸드 운동을 하는 홍보처의 역할이 더 큰 듯 했다. 우리가 이곳에 들렀을 때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점원은 하루에 열 명 가량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슬로푸드 카페에서 우리 일행은 우연히도 동료와 회의차 이곳에 들른, '나브다냐'의 중심인물 반다나 시바를 만났다. 지난 19일 뉴델리의 나브다냐 본부를 들렀을 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해 아쉬워하던 차였다.
  

▲ 뉴델리의 슬로푸드 카페에서 반다나 시바를 만났다. ⓒ환경재단


  반다나 시바에게 나브다냐의 활동이 이렇게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우리가 몬산토와 같은 거대 기업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연대를 통해 쌀을, 콩을, 유채를 되찾아 왔고 앞으로 우리가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반다나 시바에게 한미 FTA로 인해 시장 개방의 위기에 놓인 한국 농업의 상황을 전했다. 반다나 시바는 "한국 농민에게는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지 않느냐, 지난번 한국 농민들이 홍콩에서 벌인 WTO 반대 시위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격려했다.
  
  이어 "인도는 시장을 개방하고 나서 되찾아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했지만 아직 한국에는 시간이 있다"며 "한국 농민들의 한미 FTA 반대 투쟁에 인도의 농민들도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농업이 농민의 손을 떠나 다국적 기업에 넘어갔을 때 인도에 닥친 위기는 심각한 것이었다. 한미 FTA 협상이 진행 중인 한국에서 농업은 어느새 경제 발전을 위해 당연히 도태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부는 쌀 시장은 개방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한국의 식량 자급도는 30%에 못미치는 실정이다. 단지 모두가 외면하고 있을 뿐 한국에서도 농민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인도와 한국의 농촌의 현실이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채은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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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인권이야기] 선택할 권리, 공유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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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시간이 흐를수록 비키의 상태는 악화되었고, 그 애는 아무데서나 넘어지기 시작했어요. 꼭 그 소들이 넘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아이는 계속 물었어요.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할머니?’ … 그녀는 결국 눈이 멀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어요. 침이나 음식물을 삼킬 수도 없고요. 이런 모습을 매일 본다는 것은 생지옥이에요.”

손녀를 광우병으로 잃은 한 할머니의 말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광우병 피해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광우병에 대한 피해를 증언하는 자리가 있었지요. 인간 광우병으로 사망한 조안나의 어머니도 이 자리에 참석했고요. 명랑하던 10대 소녀가 병에 걸린 뒤 먹지도, 걷지도,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어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광우병이 발생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철저한 대량산업시스템으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인재’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폐기 처리되어야 할 동물들의 뼈와 살, 뇌와 척수까지 초식동물인 소의 사료로 둔갑했고, 그걸 먹고 자란 소들의 몸 안에서는 괴-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니까요. 마치 엽기적인 상상력을 가진 만화가의 작품 같지 않나요? 텔레비전에서 보여준 미국의 소가 사육되는 환경과, 도축장의 풍경은 바로 생지옥 그것이었습니다. 어떤 생물이건 거기에서 미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사진설명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의 물꼬를 틀 한미 FTA<출처;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www.nofta.or.kr)>


“골라 먹을 자유가 있잖아”?

미국은 우리 정부에게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라고 성화고, 정부는 이를 수락했습니다. 제대로 된 검역 시스템조차 없는 상태에서 말이죠. 들여오자마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다시 논란이 불붙기는 했지만,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애당초 안전하다는 어떤 증거도 없는 먹거리를, 아니 위험의 징후로 가득한 저런 물건을 수입해서 시장에 내놓겠다니 말예요. 저들은 말합니다. “골라 먹을 자유가 있잖아”

‘골라먹을 자유’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얼마 전,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우리가 먹는 두부나 콩이 거의 예외 없이 유전자 조작 식품(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채식을 하는 친구들은 울분을 토했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 뭐 어떻다는 건지 전혀 모르는 저도 기분이 좋지는 않더라고요. 집에 가서 신문기사들을 검색 해보니, 콩 수입량의 77%가 유전자 조작 콩이더군요. 기사는 유전자 조작 콩을 먹인 쥐의 콩팥이 작아졌고, 사산율은 55.6%나 되더라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스크랩한 한 블로그 이용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싸더라도 콩도 국산 콩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두유도 즐겨 먹는데 거의 미국산이네요.” 흠…골라먹는 자유는 일단, 골라먹을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 같군요.

문제는 우리의 무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유전자 조작 식품이 대체 왜 나쁜 건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이 무지가 우리의 탓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자신들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확실히 밝혀야 할 과학자와 기업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말입니다. 유전자 조작 산업에 뛰어든 과학자들은 ‘입증된 위험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모양인데, 이건 유전자 조작 식품들의 안전함 역시 결코 입증된 적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동물의 뼈나 뇌수를 갈아먹였을 때 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소의 몸 안에서 어떤 괴-단백질이 합성될지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들은 나방의 유전자를 감자와 결합하고, 북극 민물송어의 유전자를 딸기와 결합하고 있습니다. 물고기와 토마토의 유전자를 결합시키고, 반딧불과 옥수수의 유전자를 결합시키는 초유의 만남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소비자는 대체 그런 작업들이 무얼 의미하는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대체 어떤 먹거리가 유전자 조작 식품을 함유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표시해주지 않습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해 가장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유전자 조작 작물이 포함된 가공품은 표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고 자란 동물들의 고기, 유제품, 계란 등에 대해서는 표시하지 않는다는군요. 그럼 대체 우리가 뭘 선택할 수 있다는 걸까요?

사진설명"유전자 조작 식품을 거부하라"
<출처; www.repeatfanzine.co.uk>


가장 무시무시한 음모

하지만 가장 무시무시한 음모는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현재 유전자 조작 식품 산업의 85%를 지배하는 건 5개 정도의 농화학기업이래요.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종자에서 식탁까지 식량 공급의 전 과정을 ‘통제’하기를 원한답니다. 기업들은 “다른 종에서 뽑은 유전자를 배아 세포에 넣어서 더 바람직한 특질이나 형질을 만든다”고 말합니다만, 과연 누구에게 바람직한 건지는 따져봐야겠지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전자 조작 식품 특허를 가진 다국적 기업 몬산토는 자사의 제초제인 ‘라운드 업’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 식품 종자들을 묶어서 함께 판매하고 있다더군요. 그들이 유전자를 조작하는 이유는 콩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네 제초제를 판매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식량생산은 과잉상태입니다. 가격 위축으로 인해 농민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태이지요. 당연히 조금이라도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작물과 종자를 선호하겠죠. 그런 선택이 이후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생각하진 못한 채 말입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사용하는 농업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다국적 기업에는 거대한 이익이 돌아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종자들은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농민들은 해마다 몬산토로부터 종자를 다시 사야한다는 겁니다. 전 세계의 농민들이 몇백 년 동안이나 종자를 개량하고 보관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는 종자의 특허권을 기업이 독점하겠다니, 대체 이게 말이 되나요?

현재 협상중인 미국과의 FTA는 농산물 개방을, 그리고 지적재산권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FTA를 체결한다면 우리는 결코 유전자 조작 식품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유전자 조작 식품이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세계는 이미 충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고 분배되느냐에 있지요. FTA, 혹은 다국적 기업이 원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말했듯이 종자에서 식탁까지 모든 과정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은 채 오히려 오랜 세월 인류가 습득해온 농업의 지혜를 독점하면서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잖아”

선택의 자유, 선택의 권리는 알 권리, 정보를 공유할 권리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FTA는 반드시 막아야 하며,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규정들이 너무나도 미비한 우리나라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도 지금 절실합니다. 대대로 전해져 온 자연의 지혜를 모두가 공유하고, 이 땅에서 안전하게 재배된 농산물을 마음 놓고 먹으며,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요.

◎ 이 글은 게릴라 뉴스 네트워크에서 제작한 「오염, 새로운 식량과학」이라는 짧은 영상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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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1-8 자비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화로운 경지에 이르러 해야할 일은 다음과 같다. 유능하고 정직하고, 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고 많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며, 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지혜로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욕심을 내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 만한 비열한 행동을 결코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약하거나 강하거나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짧은 것이건 중간치건, 굵은 것이건 가는 것이건, 또는 작은 것이건 큰 것이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살고 있는 것이나,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하여서도 안 된다. 남을 곯려 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된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 없는 자비심을 발하라.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무한한 자비를 행하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장애도 원한도 적의도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선한 경지라 부른다.

  

온갖 빗나간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계율을 지키고 지혜를 갖추어 모든 욕망에 대한 집착을 버린 사람은 다시는 인간의 모태에 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http://cafe.naver.com/cucou.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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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헛되다

1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다.

2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3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4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5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가삐 가고

6남쪽으로 불어 갔다 북쪽으로 돌아 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 온다.

7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 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 가서 다시 흘러 내리는 것을.

8세상만사 속절없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9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10"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말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11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을.

 

전도서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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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기고> 이스라엘 점령 40주년 팔레스타인을 가다(2)

 

 

28일 일요일 동예루살렘의 거리는 어두웠다. 동예루살렘의 아랍인 지역 건물들은 40여 년 전 그 모습 그대로다. 이스라엘이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외국인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묵고 있는 크리스마스 호텔에도 투숙하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이 호텔은 점심과 저녁에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음식점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무표정한 얼굴에는 점령지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듯 했다.
  
  아침 식사 후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구 도시로 향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 코스로에 반드시 포함되는 곳이. 구 도시는 아랍인들이 비잔틴 제국을 격퇴한 7세기 이후 1967년까지 아랍 무슬림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토착 팔레스타인인들을 대거 추방하고 유대교 성지(통곡의 벽)를 위한 광장을 만들었다.
  
  따라서 현재 이 지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인들도 팔레스타인인들도 구 도시를 포함한 동예루살렘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스라엘은 구 도시를 둘러싸는 벽의 일부(알 아크사 모스크의 서쪽 벽, 혹은 통곡의 벽)가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벽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건설된 가장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이 벽에 기대어 기도를 하고 있었고, 이 벽 앞의 광장에서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 필자와 이야기를 나눈 이스라엘 군인과 함께 ⓒ프레시안

  동예루살렘에 대한 유대인들의 '의견일치'
  
  쉬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탈 라비브(Tal Raviv)에게 말을 걸었다. 앳된 얼굴의 그는 20살이고 아버지가 45년 전에 인도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대인이라고 했다. 필자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 묻자 "나는 극단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등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권리가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인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에서 남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3년, 여자는 2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이라고 밝힌 모세 나츠바(Moshe Nachva)는 자신은 영적이고 종교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 방법에 대해 "모든 해결책은 신으로부터 나온다. 이스라엘은 1967년 이전으로 퇴각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아랍인들이 현재 이스라엘 국가 영역까지 달라고 주장한다. 아랍인들의 사고는 닫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이스라엘이 쥐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그는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영국에서 온 유대인 대학생 데이비드 킴체(David Kimche)와 그의 어머니도 "이스라엘인들이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에 대한 권리가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열린 사고를 한다. 봐라! 여기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오지 않느냐? 이스라엘은 모든 종교인들에 대해서 관용적인 정책을 취하고,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한 여성이 다가왔다. 그는 1985년 호주에서 이주한 이스라엘인 수산(Susan. R)이고 직업은 여행 안내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필자가 이스라엘 군인이나 전통 복장을 한 이스라엘인들과만 이야기하는 것이 답답했던 모양이었는지 자기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첫 마디로 "나는 이스라엘인이지만,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모든 분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의 정책으로부터 비롯된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너무 고통스럽게 지낸다. 현재 이들은 하루에 2달러 이하로 생계를 유지한다. 파타와 하마스가 내전을 하는 것도 이스라엘 탓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이스라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힘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가 '그럼 당신은 팔레스타인 편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분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서안과 가자 전 지역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되돌려주고 1967년 이전의 경계로 이스라엘이 완전히 철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동예루살렘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되돌려 주어야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는 "그렇지는 않다. 동예루살렘 문제는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 매우 공정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밝힌 수산조차도 동예루살렘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가장 진보적이며 이스라엘의 정책에 비판적인 이스라엘인들조차 동예루살렘만큼은 이스라엘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현실이다. 즉 동 예루살렘 주권에 관한 한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열 정책
  
  그날 저녁 전임 팔레스타인 무프티(팔레스타인 종교 최고지도자)이며 예루살렘 구 도시에 위치한 알아크사 모스크(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교의 3대 성지)의 이맘이었던 이크라마 사브리(Dr. Ekrima Sabri)가 예루살렘 올리브산에 위치한 그의 집으로 필자를 초대했다. 그의 가족들이 모두 모였고, 우리나라의 보통 집 분위기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의 부인 나일라와 며느리 수아는 나와 가족들을 위해서 직접 팔레스타인 전통 음식들을 만들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음식과 과일들을 싸주기도 했다. 이러한 손님에 대한 환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전통이다.
  
▲ 필자가 이크라마 사브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


  이크라마 사브리는 이번 달에 무프티 직에서 물러났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임명한 팔레스타인 종교 최고지도자였고 파타가 주도했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위해 일했다. 그러나 2007년 1월 팔레스타인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가 무프티와 알아크사 모스크의 이맘을 무함마드 후세인(Mohammed Hussein)으로 교체시켰다. 그가 파타와 하마스의 분쟁에서 파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게 교체의 이유였다. 사실 그는 개인적으로 2006년 1월 의회 선거에서 하마스에게 투표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최고 종교지도자로서 심각한 분쟁 와중에서 어느 한 파벌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크라마 사브리는 나에게 신문 자료를 보여주며 "지난주부터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 도시 아랍 지역,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30m도 못 미치는 지역에 유대 교회당인 시나고그를 짓기 위해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주택을 부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구 도시에 대한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예루살렘 출신이며, 하마스 정당에 속한 의회 의원들인 무함마드 아부 티르(Muhamed Abu Tir), 칼리드 아라페(Khaled Arafe), 무함마드 투타(Muhamed Tutah), 무함마드 아톤(Muhamed Aton) 등이 2006년 6월 6일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됐다.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예루살렘 영주권을 포기하면 출옥시키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파타 출신의 의회 의원들에게는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주권을 공고히 하고, 친 이스라엘적인 팔레스타인 인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데 정책을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집권당인 하마스를 약화시키고 파타를 강화시키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전 상태로 몰아가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이크라마 사브리는 "현재 내전 상태가 고통스럽다. 오늘 가자에서 파타 대원들이 하마스 대원들을 납치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나블루스에서는 하마스 대원들이 파타 대원을 납치했다. 통합정부가 하루 빨리 구성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의 인자하던 표정은 필자와 이야기하는 내내 어두웠다.
  
  그는 라말라 근처에 집을 갖고 있지만,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기 위해 600달러의 월세를 지불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살지 않으면 거주권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은 예외 없이 거주권 박탈이라는 이스라엘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생활해나가고 있다.

 

홍미정/프레시안 기획위원,한국외대 연구교수

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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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검문소가 관대해진 이유는?

이스라엘 검문소가 관대해진 이유는?

<기고> 이스라엘 점령 40주년 팔레스타인을 가다

팔레스타인 전문가인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프레시안 기획위원)가 팔레스타인 땅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돌아보며 글을 보내왔다. 지난 25일로 이슬람 정치군사조직인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한 지 1주년이 된 팔레스타인에서는 지난 해 하반기부터 구 집권세력(파타)과 하마스의 갈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두 세력은 연립정부 구성을 논의하는 와중에도 물리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 25일 밤 서안지구의 한 파타 무장 단체는 팔레스타인 주재 캐나다 대표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파타의 공격으로 파손된 대표부 건물을 돌아 본 홍 교수는 팔레스타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파타 출신인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파타와 하마스의 갈등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는 여러 요인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홍 교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와 이동을 제한하고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이 팔레스타인 사태의 본질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 40주년이 된 2007년 겨울,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의 라말라ㆍ라블루스에서 본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인지 홍 교수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26일 금요일 이른 아침 예루살렘의 거리는 한산했다. 라말라를 거쳐 나블루스까지 가서 알 나자 공립대학 정치학 교수인 사타르 카셈을 만날 계획이었다. 18번 미니버스를 타고 동예루살렘 구 도시 근처에서 라말라 중심부까지 가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예루살렘과 라말라를 가르는 갈란디아 검문소는 양편으로 8미터 높이의 전자 감시탑이 보강된 분리장벽에 연결되어 있었고,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버스는 이스라엘군의 검색 없이 검문소를 통과했다. 도보로 검문소를 통과해서 라말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1990년대 검문소가 생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갈란디아 검문소에서는 예외 없이 모두 내려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고, 이스라엘 군인들의 검문을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3개월 전 파타와 하마스 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부터 검문소 상황이 많이 편리해졌다고 한다.
  
  "압바스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협력하고 있다"
  
  라말라의 중심 거리에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진들 대신 대형 광고 현수막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압바스의 대형 사진 현수막들은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야세르 아라파트 전 수반의 사진과 함께 라말라 거리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이유를 물었더니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더 이상 압바스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압바스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협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파타 무장단체의 공격이 있었던 팔레스타인 주재 캐나다 대표부 건물을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프레시안

  무장한 팔레스타인 경찰들과 마주쳤다(1990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으로 팔레스타인에는 군인이 없고,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만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주재 캐나다 대표부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건물의 현관문과 창문, 감시 카메라, 주차된 자동차 등이 파손돼 있었다. 25일 밤 파타 무장 단체가 이 건물을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호주 대표부 건물도 공격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호주 대표부로 가 확인한 결과 건물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경찰도 없었다. 무장단체의 공격 시도가 있었지만, 근처 팔레스타인 경찰들의 제지로 무산됐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루깝 커피숍에 도착했다. 칼리드 나집, 무함마드 자카리아(시인. <프레시안>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필자 중 한 사람-편집자)를 포함한 몇몇 팔레스타인 친구들을 만났다.
  
  지난 겨울까지 해마다 만났던, 항상 웃는 얼굴로 필자를 대해 주었던 무사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주 집에서 이스라엘군에 체포됐다고 한다. 지난해 1월 25일 의회 선거 당일 그의 초등학생 아들은 커피숍 앞에서 하마스 지지 전단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무사는 하마스 지지자였다. 현재 가족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그 누구도 무사가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른다.
  
  공식적으로 첫 번째 재판이 시작되는 향후 20일 이후에나 그의 소재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칼리드는 이러한 일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이라면서, 자신도 이유없이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9일 동안 감옥에 있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 필자가 칼리드 나집, 무함마드 자카리아 등과 대화하는 장면 ⓒ프레시안

  "1990년대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아라파트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공식 인정했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의 협상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만 더욱 강화되었다. 또 지난 1990년대의 오슬로 협상안과 2003년의 '로드맵'이 의미하는 '팔레스타인의 최종 지위'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함마드 자카리아는 팔레스타인 정부가 힘이 없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이렇게 잘라 말했다.
  
  검문소 통과가 쉬워진 이유는?
  
  사타르 카셈 교수와 나블루스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 총총히 루깝 커피숍을 나왔다. 검문소 통과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필자가 타고 있던 택시를 나블루스 입구 검문소까지 그대로 통과시켰다. 라말라에서 나블루스에 이르는 도로에 블록을 쌓아 만들었던 임시 검문소들은 거의 제거되었다. 점령지 내부 도로에 설치했던 통행 장애물이 일부 사라진 것이다. 라말라에서 나블루스 입구까지는 30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낮 12시경 필자는 나블루스 입구 검문소도 아무런 제지 없이 도보로 통과했고, 줄을 선 다른 사람들도 없었다. 휴일인 금요일 예배 시간인 탓에 이동하는 주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3년 전 필자는 이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 맞을 뻔했고, 2년 전에는 이스라엘군의 제지로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고 라말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마스 선거 승리 직후였던 지난해에는 라말라에서 북쪽으로 통하는 모든 검문소가 닫혀 있어 나블루스행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 사타르 카셈 나자대학 정치학 교수와 필자 ⓒ프레시안

  나블루스에 있는 사타르 교수의 집에 도착했다. 검문소 상황이 완화된 이유를 묻자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서로 싸우느라고 너무 바빠서 이스라엘에 저항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블루스에서 라말라로 나갈 때의 검문소 상황은 예전과 똑 같다"라고 답했다.
  
  파타가 라말라의 캐나다 대표부 건물을 왜 공격했는지도 물었다. 그는 "하마스는 단일 조직으로 잘 조직되어 있어 중앙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파타는 서안에 6개 단체, 가자에 3개 단체 등 여러 무장 파벌로 나뉘어 있어 중앙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나블루스에서 활동하는 몇몇 갱단도 파타 소속이다. 파타 출신 압바스 수반조차 모든 무장 파벌을 통제할 수 없다. 중앙 통제에서 벗어난 파벌들이 주로 외국인들을 공격하고 납치하는 행위를 한다. 그러나 하마스는 외국인들을 납치하고 공격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동 방향에 따라 이중적인 검문소 정책
  
  그러나 라말라로 돌아오는 오후 나블루스 검문소에는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통과가 거의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필자는 외국인인 탓에 다행히 쉽게 통과했다.
  
  라말라에 도착하자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예루살렘행 미니버스에 다시 올랐고, 갈란디아 검문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검문소는 라말라로 들어갔던 아침 상황과는 전혀 달랐다. 60세 이하의 외국인들과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도보로 전자 감시 장치 검색대가 설치된 검문소를 한 사람씩 통과해야만 했다. 심지어 서너 살로 보이는 어린이 두 명이 창문 안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자신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이라는 것을 창문에 매달려 10여 분 이상 설명해야만 했다.
  
▲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이스라엘 검문소의 모습 ⓒ프레시안


  미니버스에 탄 승객들은 16명 정도였다. 이들 중 60세 이상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검색대를 모두 통과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 금요일 저녁 이동 인구가 별로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이 덜 걸린 것이다. 결국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데는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아침 보다 1시간 10분이 더 걸린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검문소 정책은 주민들의 이동 방향에 따라 완전히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 예루살렘에서 서안 내부로 들어가는 것과, 서안 깊숙한 지역으로부터 밖으로, 특히 예루살렘으로 나오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통제는 전혀 달랐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검문소 정책은 점령지 내부, 특히 서안 깊숙한 지역으로의 이주를 유도하면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인구를 줄이려는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은 실은 1967년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점령 이후 계속됐고, 1990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이후 더 강화되어 온 것이었다.

 

 홍미정/프레시안 기획위원,한국외대 연구교수

 

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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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무엇을 먹을때,, '꿀꺽'삼키던데...소화가 되나요?

 

Q. 뱀은.. 무엇을 먹을때,, '꿀꺽'삼키던데...소화가 되나요?

 

 

A. 뱀의 식사는 불규칙하고 뜨문뜨문하다. 자기 몸무게의 40%짜리 먹이를 먹은 살모사는 몇달씩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버틴다. 먹이와 소화액이 닿는 부위의 세포가 끊임없이 죽고 재생되는 항온동물과 달리 뱀의 소화기관은 모처럼의 식사가 있기 전까지 작동을 중단한다. 컴퓨터가 돌아가지 않는 동안 절전모드로 바뀌는 것과 같다.

극단적인 에너지 절약은 장기의 축소에서 절정에 이른다. 비단뱀의 간, 콩팥, 심장의 크기는 위장이 비어 있을 때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러다가 먹이가 들어오면 이들 장기는 순식간에 커진다. 먹이를 삼킨 비단뱀의 창자 무게가 하룻밤새 2~3배로 늘어났다는 보고도 있다.

1년을 몇 차례의 식사로 때우는 비단뱀은 에너지를 쓸 때와 아낄 때를 안다. 먹이를 소화시키기 시작했을 때 비단뱀의 산소 소비량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경주마 수준이다. 산소 소비량은 평소의 36배로 뛰어오른다. 이런 상태는 며칠씩 계속된다.

소화를 서두르는 이유의 하나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이다. 주변 온도가 떨어지면 소화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만일 먹이가 소화되지 않고 부패하기 시작하면 뱀은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먹이를 먹은 뒤 햇볕을 쪼이거나 똬리를 틀어 몸을 데운다. 온도가 떨어지면 아예 먹이를 먹지 않거나 삼킨 먹이를 토해내기도 한다.


-비단뱀의 창자와 소화 기능

굶주린 비단뱀은 계속 굶주린 채로 지낼 수 있지만, 먹이가 주어지면 항상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최신호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능력은 특별한 에너지 소비 없이 크기를 2배로 늘일 수 있는 창자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일 이러한 주장이 옳다면 이는 뱀의 소화에 관해서 현재 지배적인 주장인 "pay before pumping" 이론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다. "pay before pumping" 이론에 따르면 먹이를 소화시켜서 영양분을 흡수하기(pumping) 위해서는 이미 저장된 에너지(pay)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규칙적으로 먹이를 먹는 대부분의 동물처럼 비단뱀은 먹이를 먹지 않는 동안에는 소화 기능을 정지시킨다.

그러나, 독일 Friendrich-Schiller University의 마티아스 스타크와 캐슬린 비스 연구팀은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과정 없이 소화 기관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과정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과정이다. 대신에 뱀은 창자 안쪽에 유동적인 세포층을 가지고 있다고 연구팀은 말한다. 굶주린 경우에는 이 세포들의 주변부위가 서로 엉켜 있으며 매우 조밀하게 모여 있다. 먹이를 먹은 후에는 세포들이 성장하고 단일층으로 재배열되어 영양분을 흡수하기에 충분히 넓은 면적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크기의 변화는 주변 혈관에서 나오는 용액을 이용하여 변할 것이라고 연구팀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포가 생기지 않고 창자의 무게가 증가하는 것은 먹이를 먹은 후에 세포에서 관찰되는 지방 입자들에 의한 것으로 연구팀은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양분이 흡수될 때까지 새로운 세포의 생성이 지연되기 때문에 새로운 세포들은 소화 과정에서 파괴된 세포들을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뱀의 창자는 굶주린 동안에는 휴면 상태로 있으면서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pay before pumping" 이론을 주장한 미시시피 대학교의 스테펀 세코는 이 주장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먹이를 준 후에 세포 분화 속도가 크게 증가한 것을 관찰하였다고 세코는 말한다. 그러나, 장의 무게 변화를 차지하는 주요 원인은 각 세포의 크기 증가라는 사실에 동의하였다.

또한, 먹이를 준 후에 장 세포에 지방 함량이 증가하였다는 사실도 동의하였지만, 이번에 발표된 것처럼 지방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는 지금까지 관찰하지 못 하였다고 세코는 말한다. 지방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뱀에게 많은 먹이를 주는 경우에는 뱀이 죽는다는 사실은 뱀 연구가나 동물 애호가에게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세코는 지적한다. 이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세코는 말한다. - (
kimjs@bioneer.kaist.ac.kr)

출처 : http://www.knower.net/ss/ep/epe03.html, http://www.kordic.re.kr/~trend/Content450/biology07.html

 

http://www.odaha.com/Images/LittlePrince/boa.gif (picture)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11&dir_id=110205&eid=1Qf9tPWxm4ZWTN3yDIx4o2HyWp6UDgGN&qb=uewgvNLI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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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다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대표 윤 가브리엘, 변진옥

홍지은 / 네트워커   idiot@jinbo.net
올해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의젓한 어른으로 자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HIV/AIDS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20여 년 전 무관심과 무지의 수준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11월 6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발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 및 감염인 인권증진에 관한 법률안’은 감염인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 최초의 문제제기이다. 법안 개정 과정에 참여한 윤가브리엘 나누리+ 대표와 공동행동의 변진옥 씨는 “감염인의 인권 증진만이 HIV/AIDS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아래 에이즈 예방법)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윤 가브리엘(아래 엘) :
에이즈 예방법은 1987년도에 제정됐다. 전염병 예방법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는데, 지금 보면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법이다. 격리조항까지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에이즈는 공포의 병, 죽음의 병이었기 때문에 법안도 그러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후 5번의 개정을 거쳐서 격리조항처럼 상식을 벗어난 것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치료지시(*)와 같은 강제 처분 조항이 여전히 남아있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조직된 것은 그간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들이 내용상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서인가.
변진옥(아래 옥) :
5차례의 개정과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까지 개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최초의 에이즈 예방법이 생겼을 때의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그 틀이 변하지 않은 이유는 법 개정 과정에서 감염인 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 전에 감염인 단체들의 의견서를 받기도 했으나, 법안에 반영된 것은 없었다. 정부가 주도해서 조항 몇 개만 바꾸는 식으로는 예방을 달성하기는커녕,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해 그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번 개정 국면에 개입하기로 했다.

인권이 있는 곳에 예방이 있다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을 목표로 이번에 전면개정안을 제출했다. 인권증진이 예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엘 :
현재 우리 사회는 내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감염인들은 대개 가족에게까지 자신의 감염사실을 숨긴다. 혼자만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이 크다. 아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이런 생활이 계속될 경우 무슨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뭐랄까, 그 사람은 굉장히 비관적인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누구도 예상을 할 수가 없다. 감염인 관련 사고가 그래서 발생한다. 감염인이 술집에서 일했다, 성관계를 했다는 등의 사건들 말이다.
만약 이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말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래? 그것 치료 잘 받으면 오래 산다더라.” 이런 식으로 격려해주면 그들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당장 나 자신과 감염 사실을 숨기고 사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나는 친구들에게 알렸고, 그들은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활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염사실을 말 못한 친구들은 내가 봐도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렇게 극단으로 내몰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감염인이 당당하게 자신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 즉 인권증진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옥 : 전염병 역학에 따르면, 어떤 병이든 전파를 막으려면 4가지 요소에 대한 부분적 혹은 전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병원체(pathogen)’다. HIV를 박멸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HIV를 없앨 수 없다면 예방 백신을 개발해 ‘비감염인(host․숙주)’의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으나, 백신이 없는 상황이다.
남은 것은 ‘벡터(vector)’와 ‘사회적 환경(environment)’이다. 벡터란 병원체를 운반하는 과정을 잘라내는 방법을 일컫는다. 성관계에서 콘돔 사용, 혈액의 안전관리 등이 그 대책이다. 그런데 성행위는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처럼 국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왜냐면 성관계는 둘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감이지 예방행위가 아니다. 강제로 콘돔을 사용하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에이즈를 정말로 예방하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치명적인 결점이 되어, 한 사람의 인권을 위협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감염인 스스로 예방행위를 하고, 비감염인이 안전할 수 있다. 벌칙조항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내 에이즈 감염인구가 이를 방증한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의 억압적인 패러다임으로는 결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없다.

활동가들만의 논리가 아닐까. 비감염인이 감염인과 함께 지내는 것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옥 :
감염인의 권리가 비감염인의 생명권을 위협한다고 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반응은 명백하게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HIV는 일상적인 접촉으로 절대 전파되지 않는다. 성관계에서도 콘돔이라는 수단이 있다. 이것은 감염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비감염인의 생명권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감염인의 인권증진이 어째서 비감염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히려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면 비감염인의 인권은 한층 더 보호받을 수 있다. 장애인이 편하게 탈 수 있는 버스는 비장애인도 편하게 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감염인이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다면 비감염인은 훨씬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감염인이 병원에서 치료거부를 당하는 이유는 병원이 소독을 잘 안 해서이다. 소독이 잘된다면 비감염인은 HIV뿐만 아니라 무수한 미생물로부터 가장 강력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감염인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비감염인이야말로 정말 잘 사는 사회이다.

허울뿐인 익명검사와 노동권 보장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에 대해 평가해 달라.
옥 :
몇 가지 용어 정리가 있었다. ‘감염자’를 ‘감염인’으로 바꾸었다든지. 또 익명검사 조항을 신설했다. 질병관리본부의 HIV/AIDS 관리지침에서 권장사항으로 익명검사를 두었는데 이제 법으로 규정을 한 것이다. 직장에서의 차별 금지도 명시했다. 국제적인 여론과 감염인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정부도 감염인 인권이 실효성 없이 과도하게 탄압받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법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옥 :
익명검사를 법률로 끌어올린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검사만 익명으로 하면 뭐하나. 보고는 모두 실명으로 한다. 정부가 익명검사를 도입한 이유는 검사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대하기 위해서다. 분명 검사는 예방과 감염인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감염인 색출이 목적이 아니라, 공중보건을 위한다면 익명검사와 익명보고를 연동해야 한다. 어찌 보면, 검사의 익명․실명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감염인을 실명으로 관리하는 상황이다. 이를 간과한 익명검사의 법제화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직장에서 차별 금지를 선언하는 것 역시 좋다. 근로기준법에 있는 내용을 에이즈 예방법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하지만, 이 역시 핵심을 못 집었다. 실제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감염인도 있지만, 제 발로 직장을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익명보고를 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감염인이다.’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예방뿐만 아니라 감염인 지원을 위해서라도 실명 보고는 필요하지 않나.
옥 :
보고과정에서 감염인의 신원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감염인의 정보가 필요한 이유는 의료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어느 지역에서 감염률이 얼마만큼 증가하고 있는지 확인해서 의료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쓸 뿐이다. 이 과정에서 감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역학조사서에는 주소, 주민등록번호뿐만 아니라 ‘당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있다. 실명 노출의 부작용이 심대한 상황에서 감염인에 대한 정보 수집은 사례조사(*)에만 그쳐야 한다. 게다가 실명보고는 예방에 도움이 전혀 안된다. 익명으로 보고하지 않으면 누가 익명검사만 믿고 검사를 하겠는가. 감염인들이 심리적 안정을 누리게끔 익명보고를 해야 한다.
감염인 지원을 위해 실명이 필요하다지만, 감염인 정보 보고 체계와 지원 체계는 서로 분리되어있다. 보고체계에서 얻어진 정보로 감염인에 대한 약값과 치료비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질병관리본부에 집적된 정보로 감염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감염인이 시군구의 사회복지과에 따로 신고를 해야 국민기초생활지원법으로 치료비 지원을 받는다. 물론 지원과정에서는 실명이 필요하고, 그것까지 반대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로 실명을 비롯한 감염인의 정보가 불필요하게 집적되는 것을 반대한다.

감염인들은 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가. 질병의 유․무로 인한 차별 금지를 법이 보장한다면 감염인이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엘 : 감염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HIV에 대한 편견이 많은 상황에서 감염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 약을 두세 번 먹는데, 직장에 다니면 보통 화장실에 가서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많은가. 그 호기심 때문에 감염인들은 고통받는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약 상자를 받아도, 에이즈 치료제라고 쓰여 있으면 상자를 버리고 약병만 가지고 간다. 감염인은 에이즈에 이 정도로 민감하다. 그러니 직장에서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자기 발로 나오는 수밖에 없다.
옥 : 감염인들은 자신의 HIV 감염사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때문에 직장 내에서 HIV 감염 사실이 알려지게 하는 직장검진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HIV 검진을 일률적으로 받게 하거나, 그 내용이 고용주에게 보고되는 일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 것들이 감염인을 노동권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노동권을 지켜달라는 선언만으로는 감염인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없다.

편견과 통제의 정점, 전파매개행위금지

공동행동의 전면개정안은 기존의 법안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안과 어떻게 다른가.
엘 :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 폐지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감염인을 악의적인 전파자로 규정하는 현행 에이즈 예방법의 핵심이 바로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이다.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성행위를 하면 처벌한다는데, 사실 예방은 감염인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비감염인도 같이 해야 한다. 감염인한테만 예방을 강조하는 것도 일종의 억압이다. 왜 예방을 감염인만 해야 하나. 감염인이 항상 콘돔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 비감염인이 예방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감염인에게만 예방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감염인을 단지 ‘퍼뜨리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독소조항이다. 의도적으로 남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했다면 형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굳이 감염인의 삶을 억압하는 조항을 남겨둬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실제로 전파매개행위를 하더라도, 당사자만 알지 다른 누가 알겠는가? 보건소 직원이 성행위 하는 것까지 쫓아다니면서 관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다.
옥 : 또 한 가지 특징은 학교, 직장, 병원에서의 에이즈 교육을 명문화한 점이다. 감염인에게는 특히 의료인과의 상담이 중요하다. 감염인이 질병 때문에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의료인이다. 그래서 의료인이 차별적인 태도를 보일 때, 감염인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아는 사람이 저 정도인데, 보통사람들은 어떨까 싶은 거다. 때문에 의료 인력들이 끊임없이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내용을 감염인에게 잘 알려줘야 한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자신의 건강과 예방을 위해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할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등 감염인에게 필요한 지식이 많다. 이는 비감염인도 받아야 할 교육이다.
엘 : 감염인은 수혈하면 안 된다는 교육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감염인 됐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소리만 듣는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보건소장은 나에게 함부로 성관계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했다. 어떤 정보를 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라는 말 뿐이었다.
옥 : 감염인이 앞으로 모든 에이즈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기존의 ‘후천성면역결핍증 정책위원회’와 달리, 감염인의 참여를 의무화한 ‘후천성면역결핍증 대책위원회’를 설립을 법에 담았다.

법은 인간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존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는데 전면 개정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옥 :
사실 이 질문은 에이즈 예방법을 현행 전염병 예방법에 통합시키는 게 어떠냐는 취지로 많이 한다. 에이즈가 다른 질환과 특별할 것이 없다는 호의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전염병 예방법이 급성이면서 불특정다수에 전염되는 전염병들, 예를 들어 장티푸스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법이라 에이즈처럼 만성적인 질환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행 전염병 예방법 역시 문제점이 많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또한, 감염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은 아직도 특별한 보호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차원에서 폐지 의견이 공동행동 내에서 더 많았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위헌소송도 곧 할 예정이다.

법이 사회적으로 만연된 차별과 편견을 일소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실제로 감염인의 삶을 옥죄는 것은 법이 아니라 비감염인들의 시선 아닌가. 법 개정 운동이 효과가 있을까.
엘 :
법이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 못 한다. 왜냐하면, 감염인은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3개월에 한 번씩 면담을 해야 한다. 만약 연락이 끊기면, 보건소 담당자가 집으로, 때로는 직장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알아서 찾아온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감염인은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옥 : 법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한꺼번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법은 국가가 그 대상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헌법을 왜 만드는가? 우리 생활을 구체적으로 규율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헌법은 인간에 대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국가에 요구할 뿐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에이즈 예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1985년에 우리나라에 첫 번째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외국에서 에이즈라는 병이 생겼는데, 무서운 병이라더라.’라는 추상적인 두려움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1987년에 에이즈 예방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그 두려움이 구체화되었다. 잘못 만들어진 법이 특정대상을 적시하면서 사회는 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에이즈 예방법은 감염인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틀이다. 국가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법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 틀이 바뀌지 않는다면 차별과 편견을 없애자는 말이 선언에 불과해진다. 법 개정 운동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행동이 제출한 법안의 전망은 어떠한가.
옥 :
미리 어떤 타협점을 둔다는 점에서 말하기가 곤란하다.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개정안이 문제가 많고 여전히 그 기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 법안을 통해서 보여줄 것이다. 당연히 법안의 통과가 목표다.

다른 나라의 에이즈 관련법을 소개해 달라.
옥 :
사실 외국에서 에이즈만을 따로 규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만과 필리핀 정도다. 일본은 몇 년 전에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폐지하고 이를 감염증예방법에 편입하면서, 에이즈에 대해서는 실명보고를 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필리핀 법은 법 자체가 국제가이드라고 볼 정도로 매우 선진적이다. 그 외에 미국 같은 나라는 여러 법률에 관련사항을 분산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주마다 정책이 조금 다르다. 우리와 법체계가 다른 서구는 보건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 국가적 전략 차원에서 에이즈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 가이드를 많이 참고해 감염인들의 리더십을 중요시한다.

그러한 법과 정책이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는가.
옥 :
꼭 법률의 효과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구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태국은 실명보고체계를 익명보고로 전환한 후, 감염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 의도가 인권을 보장하려고 한 것이든 아니든 그러한 장치들이 실제로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감염인들의 커뮤니티도 많이 활성화되어서, 다른 환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알린다

약값과 치료비 지원 때문에 어떤 감염인들은 한국 정부의 에이즈 정책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이러한 대(對)정부 활동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엘 :
맞는 말이긴 하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에 관리 규정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치료비 지원, 쉼터 운영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그래서 감염인 중에는 이런 활동 하면 우리가 괜히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것이냐고 말한다. 또 에이즈 예방법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온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보건소의 관리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행동을 할 때 감염인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권리에 대해 깨우치게 하는 일이 좀 힘이 든다.

7월 4일 공동행동 발족 이후 반년 동안 법 개정 운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밝힌다면.
엘 :
입원을 하는 바람에, 공동행동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동행동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우리의 목표는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에이즈 예방법에 대해 제대로 알려서 차후에라도 법 폐지 운동을 할 때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1987년에 이 법이 제정됐지만 그간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2002년에 나누리+가 처음으로 정부 관리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를 열면서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또 에이즈라는 주제가 선정적일 수도 있어 쉽게 눈길을 끌지만,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금방 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대중적으로 알리는 일이 힘이 들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공동행동은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점을 정말 많이 알렸다.
옥 : 그 이전에 나누리+에서 활동할 때는 그냥 추상적으로 ‘감염인들과 함께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감염인들과 같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니, 그들이 실제로 겪는 일들, 고민을 많이 알게 되었다. 관계가 확장되면서 내 활동의 목표가 더 구체화 되었다. 우리가 믿어왔던 바와 마찬가지로, 또 대다수의 질병이 그러하듯이 에이즈는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개인의 고통에만 머물러도 안 된다. 사회 전체의 책임과 고통이 되어야 한다. 에이즈를 통해 나는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얻었듯이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감염인들 모두 더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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