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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기업으로부터 쌀과 콩을 되찾아 오다"

corinalis님의 [[디디의인권이야기] 선택할 권리, 공유할 권리] 에 관련된 글.

 

[그린아시아2006] 인도의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을 보다

 

 1997년부터 인도에서는 농민들의 자살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지난 8월 공식 통계를 내고 지난 5년간 마하라슈트라와 안드라 프라데시, 케랄라, 카르나타카 등 4개 주에서 자살한 농민은 36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농민단체와 NGO들은 최대 1만8000명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핵 물리학자이자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1997년은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인도의 종자회사들을 사들이고 이종종자와 유전자 조작 종자를 팔기 시작한 해"였다며 1992년 농업시장 개방과 함께 인도에 밀려들어온 다국적 기업들이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반다나 시바가 이끌고 있는 '나브다냐(Navdanya)'는 몬산토 등 다국적 종자기업의 특허 전략과 종자 획일화에 맞서 유기농 방식으로 종다양성의 확산을 추구하는 일종의 '전통농업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는 NGO다. 여성환경연대의 이안소영, 이주은진, 윤이현희 간사와 함께 지난 8월 19일부터 9일간 나브다냐의 씨앗은행과 농장, 유기농 직판장 등을 방문했다.
  
  농민들을 죽음로 몰아넣은 몬산토의 'Bt 면화'
  
  나브다냐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몬산토가 생산하는 변형 종자에 대한 '유전학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8월 19일 인도 뉴델리에 있는 나브다냐 본부에서 만난 프리야(Preya) 간사도 한국에서 찾아온 낯선 방문객들에게 이를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다.
  

▲ 나브다냐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는 프리야 씨(왼쪽). ⓒ환경재단


  몬산토가 인도 농민들에게 판매한 유전자 조작 종자의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유전자 변형 Bt 면화'다. 해충이 잘 꼬이는 면화가 스스로 천연 살충제인 'Bt 독소'를 만들도록 조작한 것이다. Bt 독소는 토양 박테리아의 하나인 Bacillus Thruigniensis(Bt)에 의해 천연적으로 생산되는 물질이다. 몬산토는 이러한 Bt 유전자를 면화에 이식해서 식물이 스스로 벌레를 죽이도록 만든 것이다.
  
  몬산토는 이 면화를 심으면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다고 선전했다. 몬산토는 벌레 그림 옆에 "기르는 면화에 이런 벌레가 있나요? 걱정 마세요.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팜플렛을 뿌렸다. 이 선전에 넘어간 농민들은 빚을 내 면화 재배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검은콩, 하우스콩, 녹두, 참깨 등 이들이 재배하던 다양한 농작물들이 사라졌다.
  
  면화재배를 시작할 때 농민들은 성공의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Bt면화의 문제는 금방 드러났다. 오랜 시간 Bt 독소에 노출된 해충이 점차 독소에 대한 내성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몬산토가 Bt면화를 팔기 시작할 때부터 몇몇 과학자 단체에서 머지않아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들은 Bt 작물 재배가 확대되면 2-5년 내에 특정 해충에 대한 Bt 살충능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고, 이 예측은 그대로 맞아들었다. 면화에는 여전히 해충이 꼬여들었고 농민들은 Bt면화를 기르면서 예전보다 더 많은 농약을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새로운 면화 종자가 도입된 안드라 프라데쉬 주의 와랑갈 지역과 펀잡 주의 바틴다 지역에서 자살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농민들은 면화를 재배하면서 떠안게 된 빚을 감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농부에서 농부에게"
  
  몬산토의 유전자 조작 작물은 인도의 농업에 두 가지 문제를 안겼다. 하나는 인도의 종자회사들을 사들인 다국적 기업들에게 인도의 농업이 근본적으로 종속되어 버린 것이고, 또 하나는 이들이 제공한 유전자 조작 작물들로 인해 인도의 식품 안전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그 때문에 나브다냐의 활동도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브다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인도의 전통적인 농업방식에 주목했다. 씨앗 은행을 만들어 사라져가는 다양한 종자를 보존하고 보다 발전된 유기농업을 보급해 식품 안전을 보장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다. 뉴델리에서 기차로 네 시간 가량 떨어진 우타란찰 주의 데라둔 시 남부에 있는 나브다냐 씨앗은행과 농장이 그런 곳이다. 나브다냐는 각 지역에 이와 같은 씨앗 은행을 건설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13개 자치주에 34개의 씨앗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 씨앗은행과 농장이 있는 나브다냐 데라둔 지부의 모습. ⓒ환경재단


  데라둔의 씨앗은행과 농장은 그 공간 자체로 '농업의 이상향'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붉은 빛이 나는 이 지방의 흙으로 지어진 연구소, 도서관, 사무실, 숙소 등의 분위기가 그렇고 이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곡식과 과일들로 식사를 하는 이들의 건강한 모습이 그렇다. 또 데라둔 중심가에서 두 시간 가량 떨어져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밤이면 반딧불이와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있지만 이곳은 나브다냐의 활동을 보고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이들로 늘 북적거린다. 8월 21일 우리 일행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데라둔의 농장은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찾아온 10여 명의 NGO 활동가들과 북유럽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나브다냐의 데라둔 씨앗은행에서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쿱딥 시바(Kupdip Shiva) 씨는 "현재 데라둔의 씨앗 은행에는 400가지 종류의 쌀과 60가지의 밀, 20가지의 콩, 7가지의 유채, 그외 15가지의 잡곡을 보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국에 있는 나브다냐 씨앗은행을 모두 합하면 나브다냐는 1200가지 종류의 쌀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데라둔 씨앗은행에 있는 400가지 종류의 쌀은 모두 재배되고 있는 중이다.
  

▲ 왼쪽 : 데라둔 씨앗은행이 각종 씨앗을 보존하고 있는 모습. 가운데 : 항생제로 쓰이는 커리. 비자 데비의 설명에 따르면 다리 아플 때 바르면 낫는다고 하다. 오른쪽 : 락쉬가 통에서 보관하고 있는 붉은 쌀을 꺼내 보여줬다. ⓒ환경재단


  씨앗은행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쿤딥 시바 씨는 "농민들은 씨앗은행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의 씨앗을 가지고 가서 한해 농사를 지은 후 수확할 때 가져간 씨앗의 1.25 배를 돌려준다"고 설명했다. 이는 "Seed to Seed, Farmers to Farmer" (씨앗에서 씨앗으로, 농부에서 농부에게)라는 씨앗 자주권의 정신을 잘 구현한 방식이기도 하다.
  

▲ 데라둔의 씨앗 은행과 농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쿤딥 시바 씨. ⓒ환경재단


  또 나브다냐는 씨앗은행과 함께하는 농민들에게 전통적인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짓도록 하고 그 작물의 판매도 책임진다. 쿱딥 시바 씨는 "나브다냐는 직접 이들 농가에 가서 수매하고 유기농 직판장을 통해 내다팔고 있다"며 "농민들은 나브다냐와 거래했을 경우 통상 시장에서 거래했을 때보다 20% 정도 이득을 본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브다냐의 씨앗은행은 농민들의 호응이 매우 높다. 데라둔 씨앗은행에만 5000명의 농민이 거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브다냐가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쿱딥 시바 씨는 "소비자가를 일반 식품보다 조금 높게 책정하고 있다"면서 안전한 유기농 식품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높은 가격을 매겨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멀리보면 유기농업이 훨씬 경제적입니다"
  
  인도에서는 농사일을 여성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데라둔의 씨앗은행에서도 봄, 여름에는 각종 쌀과 밀, 야채를 재배하고 가을에는 씨앗을 분류하는 여성들을 여럿 만날수 있었다. 그중 올해 62세를 맞는 비자 데비(Bija Devi)는 데라둔의 농장이 생길 때부터 일해 온 최고참이다. 이곳에서는 '비자 이모'라는 뜻의 '비자 안띠'로 불린다.
  
  비자 데비는 25년 전 쯤에 인도에 화학비료가 들어온 것으로 기억했다. 그는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다"면서 "화학비료를 쓸 때는 밭일을 할 때 손이나 발가락 등이 많이 상하지만 지금처럼 비료로 소똥을 사용할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결혼 후 데라둔에서 소 먹일 풀을 기르면서 '유리야'라는 일종의 생장촉진제를 썼다"면서 "그 비료를 쓰면 어제 1m였던 풀들이 하룻밤새 3m로 자라 있었고 너도나도 이 비료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이 풀을 소에게 먹이면 그 우유에도 '유리야'가 들어가고 그 우유를 마시는 우리 몸에도 들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데라둔의 씨앗은행에서 가장 오래 일해온 비자 데비. ⓒ환경재단


  이곳에서는 퇴비는 물론 살충제도 직접 유기농 방식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농장의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락쉬(Laxwi)는 직접 천연 액체 살충제를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일단 소똥과 흙을 섞고 그 위에 짚을 얹는다. 이어 위에 걸려 있는 통에서 계속 물이 흘러나오게 하면 밑에 있는 퇴비가 발효되면서 그 아래 살충제로 쓸 수 있는 맑은 액체가 고이게 되는데 벌레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데라둔의 농업방식은 단순히 전통 방식을 답습한 것만은 아니다. 데라둔의 농장에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전통 농업기술을 합쳐 친환경적이고도 효율적인 농업기술을 연구하는 '흙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카담 싱(Kadam Singh) 박사는 여러 농부들로부터 각지의 흙을 수집해 성분을 분석하는 한편 각 토질에 맞는 비료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카담 싱 박사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유기농업이 더욱 경제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작할 때는 유기농업이 어려울 수 있지만 화학비료를 쓰게 되면 갈수록 땅의 지력이 떨어져 비료의 양을 점점 늘려나가야 하지만 유기농 방식으로 하면 지력을 계속 높여 비료를 줄여나갈 수 있다"며 "멀리보면 유기농이 훨씬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이제 유기혁명(Organic Revolution)의 시대"
  
  나브다냐는 20세기에 화학비료와 종자 개량을 통해 생산량의 무한한 증대를 추구했던 녹색혁명은 이제 그 효용성을 다했다고 본다. 녹색혁명으로 인류의 빈곤과 기아가 해결된 측면도 있지만 이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기아는 더욱 심각해졌으며 종자의 다양성과 생태계를 파괴했다. 나브다냐는 이제 종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친환경적이며 생산적인 유기농업을 하는 '유기혁명(Organic Revolution)'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혁명은 농촌만의 변화로 되는 일은 아니다. 당연히 이 곡식과 야채, 과일을 소비하는 도시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나브다냐는 도시에 유기농 직판장과 슬로 푸드 카페를 만들어 농민들이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콩과 밀, 녹두 등을 판매한다.
  

▲ 뉴델리 '딜리 하트' 안에 있는 나브다냐의 유기농 직판장. ⓒ환경재단


  23일 우리는 뉴델리의 '딜리 하트(Dili Haat)'안에 있는 유기농 매장을 방문했다. '딜리 하트'는 인도의 동대문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각지의 특산물과 싸고 품질 좋은 상품으로 유명하다.
  
  뉴 델리에는 총 세 개의 나브다냐 직판장이 있는데 딜리 하트의 유기농 직판장이 델리에 생긴 첫번째 가게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쌀과 밀, 우리의 콩에 가까운 달(dals), 기장 등 곡식들과 식용기름, 천연감미료, 쿠키, 잼 등을 살 수 있다.
  
  다른 두 매장은 국립 동물원 주유소와 아살람 촉(Asharam Chowk)에 있다. 점원에 따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유기농 생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HPCL(Hindustan Petroleum Copoaration)과 파트너십 관계를 맺었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농민의 반FTA 투쟁에 인도 농민도 함께하고 싶다"
  
  뉴 델리에 딱 하나밖에 없는 슬로 푸드 카페는 대중적인 카페라기 보다 슬로 푸드 운동을 하는 홍보처의 역할이 더 큰 듯 했다. 우리가 이곳에 들렀을 때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지만 점원은 하루에 열 명 가량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슬로푸드 카페에서 우리 일행은 우연히도 동료와 회의차 이곳에 들른, '나브다냐'의 중심인물 반다나 시바를 만났다. 지난 19일 뉴델리의 나브다냐 본부를 들렀을 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해 아쉬워하던 차였다.
  

▲ 뉴델리의 슬로푸드 카페에서 반다나 시바를 만났다. ⓒ환경재단


  반다나 시바에게 나브다냐의 활동이 이렇게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우리가 몬산토와 같은 거대 기업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연대를 통해 쌀을, 콩을, 유채를 되찾아 왔고 앞으로 우리가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반다나 시바에게 한미 FTA로 인해 시장 개방의 위기에 놓인 한국 농업의 상황을 전했다. 반다나 시바는 "한국 농민에게는 싸울 수 있는 힘이 있지 않느냐, 지난번 한국 농민들이 홍콩에서 벌인 WTO 반대 시위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격려했다.
  
  이어 "인도는 시장을 개방하고 나서 되찾아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했지만 아직 한국에는 시간이 있다"며 "한국 농민들의 한미 FTA 반대 투쟁에 인도의 농민들도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농업이 농민의 손을 떠나 다국적 기업에 넘어갔을 때 인도에 닥친 위기는 심각한 것이었다. 한미 FTA 협상이 진행 중인 한국에서 농업은 어느새 경제 발전을 위해 당연히 도태되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정부는 쌀 시장은 개방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한국의 식량 자급도는 30%에 못미치는 실정이다. 단지 모두가 외면하고 있을 뿐 한국에서도 농민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인도와 한국의 농촌의 현실이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채은하/기자

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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