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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어제 탈가정을 하고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던 청소년이 친구와 있던 중에 자신이 살던 집 앞에서 친권자(부모 등)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탈가정과 탈학교. 우리 사회는 거기에 '위험'이란 딱지를 붙인다. 숨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살 자유를 외쳐봐야 (구조를 읽지 않는 한) 혀를 차며 개탄해야 할 일탈일 뿐이다. 잠깐의 평온한 삶이 '허용되지' 않는 삶이다.
 
허용되지 않는 삶. 그 이야기를 듣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불법'체류자를 끌고가던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이 사회에서 '허가받지' 못한 삶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다쳐도 무허가의 삶이란 이유로 쫓겨날 것을 두려워해 상처입은 채 병원에서 도망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불법일 수 없다. 불법 사람은 없다.
 
스쳐지나가던 한 장면이 더 있다. 몇일 전 차를 타고 가다 무심결에 스쳤봤던 노랑 바탕에 '성소수자 허용하는 학생인권조례 반대'라는 현수막을 봤다. 허용이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각자 삶의 선택권에 대해서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당신에겐 우리의 삶을 허락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어디 청소년, 이주민, 성소수자만이 그러겠는가. 노조를 하겠다는 사람, 철거민, 장애인 모두 이 사회에서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 그래, 자본과 권력이 있다면 다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찌질찌질 한 시궁창에 산다. 그래도 삶의 어느 작은 한 부분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어제 낮에 황망하게 겪었던 그 이들에게 뭐라 위로를 할까 하다가 입만 달싹거리다, 이런 글을 끄적이게 된다. 그냥 송경동씨의 시 '무허가' 를 붙인다. 이제 이 시의 의미를 아주 조금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어제 탈가정을 하고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던 청소년이 친구와 있던 중에 자신이 살던 집 앞에서 친권자(부모 등)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탈가정과 탈학교. 우리 사회는 거기에 '위험'이란 딱지를 붙인다. 숨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살 자유를 외쳐봐야 (구조를 읽지 않는 한) 혀를 차며 개탄해야 할 일탈일 뿐이다. 잠깐의 평온한 삶이 '허용되지' 않는 삶이다.
 
허용되지 않는 삶. 그 이야기를 듣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불법'체류자를 끌고가던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이 사회에서 '허가받지' 못한 삶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다쳐도 무허가의 삶이란 이유로 쫓겨날 것을 두려워해 상처입은 채 병원에서 도망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불법일 수 없다. 불법 사람은 없다.
 
스쳐지나가던 한 장면이 더 있다. 몇일 전 차를 타고 가다 무심결에 스쳤봤던 노랑 바탕에 '성소수자 허용하는 학생인권조례 반대'라는 현수막을 봤다. 허용이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각자 삶의 선택권에 대해서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당신에겐 우리의 삶을 허락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어디 청소년, 이주민, 성소수자만이 그러겠는가. 노조를 하겠다는 사람, 철거민, 장애인 모두 이 사회에서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 그래, 자본과 권력이 있다면 다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찌질찌질 한 시궁창에 산다. 그래도 삶의 어느 작은 한 부분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어제 낮에 황망하게 겪었던 그 이들에게 뭐라 위로를 할까 하다가 입만 달싹거리다, 이런 글을 끄적이게 된다. 그냥 송경동씨의 시 '무허가' 를 붙인다. 이제 이 시의 의미를 아주 조금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어제 탈가정을 하고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던 청소년이 친구와 있던 중에 자신이 살던 집 앞에서 친권자(부모 등)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탈가정과 탈학교. 우리 사회는 거기에 '위험'이란 딱지를 붙인다. 숨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살 자유를 외쳐봐야 (구조를 읽지 않는 한) 혀를 차며 개탄해야 할 일탈일 뿐이다. 잠깐의 평온한 삶이 '허용되지' 않는 삶이다.
 
허용되지 않는 삶. 그 이야기를 듣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불법'체류자를 끌고가던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이 사회에서 '허가받지' 못한 삶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다쳐도 무허가의 삶이란 이유로 쫓겨날 것을 두려워해 상처입은 채 병원에서 도망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불법일 수 없다. 불법 사람은 없다.
 
스쳐지나가던 한 장면이 더 있다. 몇일 전 차를 타고 가다 무심결에 스쳤봤던 노랑 바탕에 '성소수자 허용하는 학생인권조례 반대'라는 현수막을 봤다. 허용이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각자 삶의 선택권에 대해서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당신에겐 우리의 삶을 허락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어디 청소년, 이주민, 성소수자만이 그러겠는가. 노조를 하겠다는 사람, 철거민, 장애인 모두 이 사회에서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 그래, 자본과 권력이 있다면 다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찌질찌질 한 시궁창에 산다. 그래도 삶의 어느 작은 한 부분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어제 낮에 황망하게 겪었던 그 이들에게 뭐라 위로를 할까 하다가 입만 달싹거리다, 이런 글을 끄적이게 된다. 그냥 송경동씨의 시 '무허가' 를 붙인다. 이제 이 시의 의미를 아주 조금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어제 탈가정을 하고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던 청소년이 친구와 있던 중에 자신이 살던 집 앞에서 친권자(부모 등)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탈가정과 탈학교. 우리 사회는 거기에 '위험'이란 딱지를 붙인다. 숨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살 자유를 외쳐봐야 (구조를 읽지 않는 한) 혀를 차며 개탄해야 할 일탈일 뿐이다. 잠깐의 평온한 삶이 '허용되지' 않는 삶이다.
 
허용되지 않는 삶. 그 이야기를 듣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불법'체류자를 끌고가던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이 사회에서 '허가받지' 못한 삶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다쳐도 무허가의 삶이란 이유로 쫓겨날 것을 두려워해 상처입은 채 병원에서 도망치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불법일 수 없다. 불법 사람은 없다.
 
스쳐지나가던 한 장면이 더 있다. 몇일 전 차를 타고 가다 무심결에 스쳤봤던 노랑 바탕에 '성소수자 허용하는 학생인권조례 반대'라는 현수막을 봤다. 허용이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각자 삶의 선택권에 대해서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당신에겐 우리의 삶을 허락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어디 청소년, 이주민, 성소수자만이 그러겠는가. 노조를 하겠다는 사람, 철거민, 장애인 모두 이 사회에서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 그래, 자본과 권력이 있다면 다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찌질찌질 한 시궁창에 산다. 그래도 삶의 어느 작은 한 부분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어제 낮에 황망하게 겪었던 그 이들에게 뭐라 위로를 할까 하다가 입만 달싹거리다, 이런 글을 끄적이게 된다. 그냥 송경동씨의 시 '무허가' 를 붙인다. 이제 이 시의 의미를 아주 조금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어제 탈가정을 하고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던 청소년이 친구와 있던 중에 자신이 살던 집 앞에서 친권자(부모 등)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탈가정과 탈학교. 우리 사회는 거기에 '위험'이란 딱지를 붙인다. 숨막히는 공간에서 벗어나 살 자유를 외쳐봐야 (구조를 읽지 않는 한) 혀를 차며 개탄해야 할 일탈일 뿐이다. 탈가정-탈학교의 삶은 잠깐의 평온함도 '허용되지' 않는 삶이다.
 
허용되지 않는 삶. 그 이야기를 듣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불법'체류자를 머리채를 붙잡아 끌고가던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스쳐지나가던 한 장면이 더 있다. 몇일 전 차를 타고 가다 무심결에 스쳤봤던 노랑 바탕에 '성소수자 허용하는 학생인권조례 반대'라는 현수막을 봤다. 
 
허용이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각자 삶의 선택권에 대해서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당신에겐 우리의 삶을 허락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아 그래, 자본과 권력이 있다면 다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찌질 찌질 한 시궁창에 산다. 노조를 하겠다는 사람, 철거민, 장애인 모두 허락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삶의 어느 작은 한 부분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어제 낮에 황망한 일을 겪었던 그 이들에게 뭐라 위로를 할까 입만 달싹거리다 이런 글을 끄적이게 된다. 그냥 송경동씨의 시 '무허가' 를 붙인다. 이제서야 이 시를 아주 조금이나마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무허가
송경동 
용산4가 철거민 참사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카메라 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텐트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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