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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정당, 만드신다고요?

우익 정당, 만드신다고요?

엉거주춤 한나라당에 분노한 우익보수단체들, 조직 탈바꿈 시도하며 정치세력화 준비하나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지난 10월4일 오후 한나라당 민원실과 대표실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나라 살리자는데 의원들은 코빼기도 안 비추나.” “한나라당이 여당이냐 야당이냐.” “이대로 친북 좌파에게 나라를 통째로 내어주자는 것이냐.”


△ 10월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수호 국민대회에서 성난 참석자들이 "김정일 타도"를 외치고 있다. 일부는 "한나라당은 좌파 정권 눈치 보는 기회주의 정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사진 / 류우종 기자)



서울광장 집회, 한나라당 참석 거의 없어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낸 이들은 이날 서울 시청앞 광장에 모인 우익 인사들이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반핵반김국민협의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 ‘국가보안법 수호 국민대회’로 1·2부를 나눠 진행한 이날 행사에는 대형 교회 신도들과 우익보수단체 회원들 10만여명(경찰 추산)이 모여들었다. 김정일과 노무현을 싸잡아 타도할 대상으로 지목한 이들은 한나라당을 향해서도 거침없는 불만을 쏟아냈다. 성난 군중의 여과 없는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집회를 주도한 서정갑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기회주의적 잡탕밥 정당 한나라당에서 더 이상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무엇이 골수 지지자였던 이들을 화나게 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인사들이 김용갑·박성범·김문수 의원 단 세명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신혜식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변인은 “국가보안법 수호에 총력 투쟁하겠다 했으면 아무리 국정감사 기간이라고 해도 개인 자격이나 성명으로라도 얼굴을 내밀었어야 했다”면서 “국민의 움직임을 외면하는 정당이 공당의 자격이 있나”라고 비판했다.

당장 집회 참석률을 문제 삼았지만 이들의 불만은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멀게는 정권을 두번이나 놓쳤고, 가까이는 국가보안법과 수도이전, 친일 과거사 청산, 대북 정책, 언론 정책 등에 대해 한나라당이 자신들 입맛에 맞는 ‘전투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특히 이날 집회에서 조용기 순복음교회 목사가 “군대가 울타리라면 국가보안법은 대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듯이, 우익보수 세력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부각된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박 대표가 “‘정부 참칭’ 조항 삭제와 이름 변경은 논의해볼수 있다”고 한발 물러선 것은 이들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10월7일 부산에서 열린 ‘9·9 원로 시국선언지지 궐기대회’에서 이동복 전 의원은 “지난 6월15일 6·15 4주년 기념행사에서 북한쪽 참가자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국방백서의 주적 언급을 삭제하라’는 부당한 요구를 서슴치 않았으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참석한 이 자리에서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없다”고 박 대표를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9·9 원로 시국선언에서 “친북·좌경·반미 세력의 대대적인 국회 진출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한나라당도 당내 좌경 세력과의 갈등으로 정체성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우익보수 세력이 한나라당에 불만을 가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우익정당 출현을 예비한 전국 세규합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들은 10월14일 대구에 이어, 제주·마산·진주·대전·춘천 등을 거쳐 10월 말 다시 서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할 예정이다.

신혜식 대변인은 “전국을 도는 이유는 보수세력의 역량과 규모를 타진하고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새로운 정당 출현 얘기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으므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예비 단계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신 대변인은 이어 “성급한 정당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있으므로 1년 정도 내부 비판과 정제 작업을 거치면, 정치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게 될지 시민사회 조직으로 이어갈지 윤곽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300여개 우익보수 단체가 참여한 반핵반김국민협의회는 ‘광범위한 자유진영 결집’을 위해 ‘반핵반김’이라는 표현을 국민운동본부나 국민협의회로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인권·반부패·환경·복지·여성 부문으로 조직을 세분화하는 중이다.


△ 박근혜 대표가 10월4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했다. (사진 / 한겨레 김정효 기자)

시끄러운 온라인… 박사모 제동 걸다

온라인상의 목소리는 훨씬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다. 우익보수 이데올로그를 자처하는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는 “애국 세력이 대체 야당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온 것 같다”고 선동하고 나섰다. 10월4일 집회장 한쪽에서 <월간조선>을 쌓아놓고 팔다 들어간 조 대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한나라당은 무생물 정당”이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그는 다음날에는 ‘한나라당의 배신 행위’라는 제목의 글에서 “친북 좌파의 눈치나 보면서 온순해 보이는 한국 주류층을 배신한 기생정당 한나라당은 수차례 결정적 장면에서 국민들을 속여왔다”면서 “반미 시위에 영합하고 천도에 찬성하고 KBS 시청료 분리징수 추진을 포기하고…”라고 조목조목 열거하며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일부 우익 네티즌 모임은 ‘박근혜 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고, 일부 네티즌은 ‘박 대표 용도폐기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온라인 모임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박사모)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박사모는 10월6일 전체 회원에게 ‘우익은 분열을 겁낼 줄 알아야 한다’는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들은 “박사모는 새로운 우익 정당의 출현을 얘기하는 이들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며 “두번의 선거에서 대권을 찾아오지 못한 원인을 우익들은 벌써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한나라당의 태도는 느긋하다. 실제 10월4일 당사에 항의 전화를 했던 사람들은 “국정감사 기간이라 의원님들은 다 국감장에 계신다”는 녹음된 것 같은 답변을 들어야 했다. 당 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보수세력 집회와 관련해 당 차원의 대응이나 지원을 논의한 일은 없다”면서 “민간 집회에 정당이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경찰의 과잉진압 규탄 광고가 난 10월7일에야 “정부가 대회 주모자를 조사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적법한 것인지, 촛불시위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이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선량한 국민을 탄압하면 안 된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우익보수 세력의 노골적인 행보가 실제 정치세력화로 이어질지,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한 엄포에 그칠지는 시각이 엇갈린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독자 정당을 추진할 만큼 선명한 정체성이나 헌신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시각이 강하다. 또 시대 흐름과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극우 전선’의 정치세력화는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이 강세이다. 이에 따라 일부 우익보수 인사들의 격앙된 태도는 정신심리적 용어로 쓰는 ‘매니플레이션’(조작)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가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듯이, 상대방(한나라당)의 반응을 유도해내기 위한 제스처라는 것이다.

느긋한 한나라당, 별다른 반응 안 보여

이정현 한나라당 상근부대변인은 “고전적 안보관과 대북관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지지 철회’ 목소리가 있다 해도 집권의 절박함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에 그렇게 (분열 상태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설령 일부 극우 인사들이 독자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과거 민국당의 실패에서 알 수 있듯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집회 주도자들은 박 대표와도 친분이 많은 분들이지만, 서로 역할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강경파들은 적극적으로 당 밖 우익보수 세력과 발맞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의원은 “초상이 나도 달려가는 게 정치인인데 나라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인 국민들을 외면하는 것은 독선이자 오만”이라고 당 지도부를 비판한 뒤, “지지자들의 뜻을 계속 담아내지 못하면 대안세력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우익보수 세력과 한나라당 지도부와 비주류가 저마다 다른 시각에서 ‘국민의 뜻’을 등에 업고 기싸움을 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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