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분류 전체보기'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8/22  詩 -꽃피는 시절
  2. 2009/08/22  詩 - 슬픈공복
  3. 2009/04/19  판단하지 말라 - 안소니 드 멜로 신부

꽃피는 시절

- 이성복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8/22 17:35 2009/08/22 17:35
─ tag 

                 슬픈 공복

  

                                                                   정진규

 

 

 

 

거기 늘 있던 강물들이 비로소 흐르는 게 보인다 흐르니까 아득하다 춥다 오한이 든다

 

나보다 앞서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슬픈 내 역마살이 오슬오슬 소름으로 돋는다

 

찬 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숫대들, 휑하니 뚫린 밭고랑이 보이고 호미 한 자루 고꾸라져 있다

 

누가 던져두고 떠나버린 낚싯대 하나 홀로 잠겨 있는 방죽으로 간다 허리 꺾인 갈대들 물 속 맨발이 시리다

 

 11월이 오고 있는 겨울 초입엔 배고픈 채로 나를 한참 견디는 슬픈 공복의 저녁이 오래 저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8/22 17:30 2009/08/22 17:30
─ tag 
판단하지 말라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 ―마태오복음 7. 1


  당신의 사랑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행위가 남을 섬기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은 술 취한 사람의 엉뚱한 망상이 아닙니다. 누구를 섬길 때 당신은 그를 돕고 지원하고 위로하고 아픔을 덜어주지요. 그 사람 내면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을 발견할 때 당신은 그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창조합니다.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에게 끌리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들 하나하나를, 전에 그들한테서 받은 인상이나 지식 따위 모두 지워버리고, 처음 보는 것처럼 그렇게 보십시오. 그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을 배제하고 새롭게 보세요. 익숙함이 상대방에 대하여 지루하게 하고 맥 빠지게 하고 눈멀게 하니까요. 당신은 신선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상대한테서 끊임없이 새로움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그를 사랑할 수가 없는 거예요.

  같은 실험을 이번에는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해보십시오. 먼저, 그들에게 있는 싫은 점을 관찰하세요.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편견을 갖지 말고 그들의 결함이 어떤 것인지 연구해보십시오. 이 말은 쉽게 교만하다, 게으르다, 이기적이다, 고집스럽다 따위 찌지를 사용하지 말라는 겁니다. 찌지를 사용하는 것은 정신적인 게으름이에요. 사람에게 찌지를 붙이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독특한 점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해볼 만한 일이지요.

 

  그 결함들을 임상적으로(clinically) 연구해야 합니다. 객관성을 확실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당신이 결함이라고 보는 것들이 전혀 결함이 아니고, 당신이 어떤 경험이나 편견 때문에 좋지 않게 보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십시오. 그런데도 역시 결함으로 보이거든, 그 결함이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지난날의 상황 또는 잘못된 생각과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무엇보다도 그것이 앙심이나 나쁜 의도가 아니라 깨치지 못한 데서 온 결과임을 이해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 당신의 태도는 사랑과 용서로 바뀔 것입니다. 관찰하고 지켜보고 이해하는 것이 곧 용서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그 사람의 결함을 연구했거든 이번에는 당신이 그를 싫어하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그의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보십시오. 이 작업을 하면서 당신한테 일어나는 태도나 느낌의 변화를 관찰하세요. 그를 싫어하는 마음이 당신 눈을 가려 그것들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니까요.

 

  이제 당신이 함께 살면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눈길을 돌려, 이런 방식으로 볼 때 그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를 관찰하십시오. 이렇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자체가 그들을 섬기는 어떤 행위보다도 사랑스런 선물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당신이 그들을 변화시킬 때, 당신 마음 안에서 그들을 창조할 때, 그리하여 그들과 당신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때, 그때 그들은 실제로 변화될 것입니다.

  끝으로, 같은 선물을 이번에는 당신 자신에게 주십시오. 남들에게 그럴 수 있었으니까 별로 어렵지 않을 거예요. 같은 과정을 밟으십시오. 어떤 결함도, 어떤 노이로제도, 심판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남을 심판하지 않았으니, 당신도 심판받지 않는 것에 깜짝 놀랄 거예요. 당신의 결함들이 설명되고 연구되고 분석되어 마침내 사랑과 용서를 가져다주는 깊은 이해에 닿게 되면,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하게 사랑하는 태도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있는 당신을 기쁨으로 발견할 것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19 09:01 2009/04/19 09:01
─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