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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근대주의도 탈근대주의도 실은 다 일정 부분에서 한통속이라고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책이 나왔다. 비판은 실험실을 연구해 온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로부터 왔다.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기술학(STS), 과학사회학 분야에서는 현재 가장 영향력있는 학자라고 하는데 국내에는 최초로 소개되는 학자이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간 통섭, 분야간 통섭이 유행하는 시대에, '통섭'의 문제의식을 가장 급진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대는 '이분법'과 '분류'의 시대로 알려져왔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그렇게 믿고 있지만, '이분법'의 시대로 근대를 인식하는 것은 근대에 정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근대인은 어떤 존재들인지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 이 사람의 주장이다. 오히려 근대에는 정치, 사회, 문화, 자연 등 다양한 사회의 요소들이 교차하며 탄생하는 무수한 '하이브리드'적 존재들이 양산되었고,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 AIDS, 오존층 파괴, 핵 등도 '하이브리드'적 시각에서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해결의 가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분야의 가장 영향력있는 석학 브뤼노 라투르의 대표작!
철학, 인류학, 사회학, 기술과학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를 한국어로 최초로 만난다!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라투르 사상의 입문서!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를 넘어선 ‘비근대주의’의 정치생태학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이제 그것의 반생산적인 성격을 제거한 새로운 유형의 근대인을 추구하자!
과학과 기술, 정치와 정부, 언어와 의미론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의 흥미롭고 심층적인 탐구!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 ◎옮긴이 : 홍철기
◎출판일: 2009년 7월 15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08쪽 ◎정가: 25,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6-9 04300 / 978-89-6195-003-9(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20


1.『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출간의 의미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과학의 이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과학논쟁(science wars)'의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 이익이나 권력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회학적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자연적 사실은 사회나 문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과학적 '실재론(realism)'의 양 진영으로부터의 맹렬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자 사이의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협상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가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탈근대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보편적 합리성의 한계에 대한 폭로와 근대 계몽주의의 맹목성이 낳은 폭력에 대한 고발은 그 충격과 새로움이 완전히 퇴색되면서 전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저자가 보기에 탈근대주의가 처한 '막다른 골목'은 탈근대주의자들의 근대인들에 대한 지나친 불신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근대인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다. 그들이야말로 근대화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근대성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대인은 자신들의 탄생시점에서부터 이중의 존재였다. 근대인은 공식적인 표면적 층위에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고 그것이 자신들을 전근대인들과 구분시켜주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근대인들이나 전통주의자들도 바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근대인들은 실제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이 구분될 수 없게 뒤얽힌 비인간적 사물,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증식시키고 동원해 왔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태동기 잉글랜드에서 홉스와 보일로 하여금 그것의 정치적 파장과 과학적 효과 모두에 대해 한꺼번에 논쟁하게 만든 공기펌프로부터 현대의 오존층 파괴, AIDS, 유전자 변형식품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과학은 언제나 하이브리드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과학은 이제 이렇게 증식된 하이브리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사회와 과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무제한적인 증식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에도 대처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이브리드’의 이해가 바로 근대성 이해의 열쇠이다.

하이브리드란 어쩌면 마치 유태인 설화에 나오는 골렘(golem)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16세기 프라하의 한 랍비는 유태인들을 박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부터 인간의 형상을 한 골렘을 만들어낸다. 골렘은 랍비의 명령에 따라 박해자들에게 복수를 가하고 그들을 살해한다. 생명력이 없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골렘은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고 결국 살인과 복수가 아닌 사랑을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감정을 거부당했을 때 자신의 창조자인 랍비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기술과 사물, 즉 하이브리드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힌 우리 근대인이야말로 이 설화에서의 랍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근대인은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창조하면서도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이해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이브리드를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인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서 이제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근대성 없이도 지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몽주의를 모색하려 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근대인과 비근대인, 문명적 사고와 야생적 사고의 분할을 넘나드는 이미 오래된 인간의 실천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라투르의 사상

“『근대인』은 단순히 근대성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라투르는 ‘우리 근대인’이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이유가 근대인의 필연적인 딜레마인 ‘언행의 불일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인의 실제는 근대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론화했던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그리고 난해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근대인 자신의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옮긴이 후기」 중에서, 389쪽)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연결망에 대한 놀라움의 표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그와 같은 이해의 부재라는 인류학적 근원을 발견한다.”(「1장 위기」 중에서, 34쪽)

“누구도 근대인이었던 적은 없다. 근대성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근대 세계는 존재한 적도 없다. 과거완료시제의 용법은 여기서 중요한데 그것이 회고적인 감정의 문제이며 우리 역사를 다시 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우리는 더 이상 탈-탈-탈근대주의자의 무분별한 비행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훨씬 더 정교하고 더욱 비판적이며, ‘의심의 시대’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가 결코 근대의 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암시는 탈근대 사상가들을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지어 시작하지도 않은 시대를 뒤따라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2장 헌법」 중에서, 128쪽)

“근대적이라는 것은 이중의 모순을 말하는데, 하나는 ‘자연’과 ‘사회’의 두 헌법적 보장 사이의 모순이요, 다른 하나는 ‘정화’의 실천과 ‘매개’의 실천 사이의 모순이다”(「1장 위기」 중에서, 62쪽)

“우리는 우리의 설명을 객체 또는 주체(사회)로 알려진 두 순수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면 이들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인 중심적 실천 형태의 부분적이고 정화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설명도 사실상 ‘자연’과 ‘사회’를 얻게 되지만, 이는 출발점이 아닌 최종 결과로서 그럴 뿐이다. ‘자연’은 돌지만 주체(사회)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집합을 중심으로 돈다. ‘주체’도 돌지만 ‘자연’을 중심으로 돌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물들이 창출되는 집합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간왕국이 재현된다. 자연들과 사회들은 그것의 위성들에 불과하다”(「1장 위기」 중에서, 69쪽)

“근대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전근대인이 될 것인가―혹은 전근대인으로 퇴행하게 되는가? 우리는 반근대인으로 물러나야만 하는가? 보다 낳은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근대인이기를 지속해야 하겠지만 어떤 확신도 없이 탈근대의 중간지대twilight zone 안에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5장 재분배」 중에서, 329-330쪽)


3.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Mihalis Mentinis 1976~ )
프랑스 출신의 과학기술학자이며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파리광업대학과 런던경제대학, 그리고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파리정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관한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험실의 삶』(La vie laboratoire, 1979), 『미생물: 전쟁과 평화』(Les Microbes: Guerre et paix, 1984), 『과학의 실천』(La science en action, 1987),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1991), 『자연의 정치』(Politiques de la nature, 1999),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 1999),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Reassembling the Social, 2005) 등이 있다.

|옮긴이|
홍철기(Hong Chul-ki, 1976~ )
197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칼 슈미트와 조르지오 아감벤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박정희 시대의 헌법사상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차례

한국어판 서문

1장 위기
1.1 하이브리드들의 증식 17
1.2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다시 묶기 22
1.3 비판적 입장의 위기 29
1.4 1989년: 기적의 해 35
1.5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0

2장 헌법
2.1 근대성의 헌법 49
2.2 보일과 그의 사물들 55
2.3 홉스와 그의 주체들 62
2.4 실험실의 매개 67
2.5 비-인간의 증언 72
2.6 실험실과 리바이어던의 이중 구조물 77
2.7 과학적 표상과 정치적 대표 82
2.8 근대인에 대한 헌법의 보장 87
2.9 네 번째 보장: 소거된 신 94
2.10 근대적 비판의 힘 100
2.11 패배를 모르는 근대인 105
2.12근대성의헌법은무엇을밝히고무엇을애매하게하는가? 110
2.13 비판의 종식 119
2.1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126

3장 혁명
3.1 근대인: 성공의 희생자들 135
3.2 준대상이란 무엇인가? 140
3.3 메울 수 없는 간극 위로 펼쳐진 철학이론 150
3.4 모든 종말들의 종말 156
3.5 기호적 전환 165
3.6 누가 존재를 망각했는가? 170
3.7 과거의 시작 175
3.8 혁명의 기적 182
3.9 지나가는 과거의 종말 186
3.10 선별작업과 다중적인 시간들 192
3.11 코페르니쿠스적 반혁명 198
3.12 중간매체에서 매개자로 204
3.13 고발과 인과 관계 210
3.14 가변적 존재론들 217
3.15 4가지 근대적 수단의 연결 223

4장 상대주의
4.1 비대칭성을 종식시킬 방법 233
4.2 대칭성 원리의 일반화 240
4.3 두 번의 대분할과 그 수출입 체계 246
4.4 ‘열대’로부터의 인류학의 귀향 253
4.5 문화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61
4.6 규모에 따른 차이 268
4.7 아르키메데스의 쿠데타 273
4.8 절대적 상대주의와 상대적 상대주의 278
4.9 세계의 탈주술화와 관련된 사소한 실수들 284
4.10 더 넓은 연결망이라 해도 여전히 모든 점에서 국지적이다. 290
4.11 리바이어던은 연결망의 다발이다. 297
4.12 주변부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선호 302
4.13 과거의 범죄에 더하여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방법 308
4.14 무수한 초월성들 314

5장 재분배
5.1 불가능한 근대화 323
5.2 최종 검토 329
5.3 재분배된 인간주의 336
5.4 비근대적 헌법 343
5.5. 사물들의 의회 351

참고문헌

부록
용어해설 371
그림 차례 377
국제 번역판본 일람 378
라투르의 저작목록 381
옮긴이 후기 384
찾아보기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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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주년과 한국 사회운동의 전망




[『미네르바의 촛불』 출간기념토론회]

촛불1주년과 한국 사회 운동의 전망
- 『미네르바의 촛불』과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중심으로

촛불1주년을 맞이하여 토론회 개최, 도서 출간 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미네르바의 촛불』로 촛불 성격에 대한 논쟁도 열띠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과 논쟁을 사회 운동의 전망 속에서 다시금 고민하는 토론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순서
[발표1] 촛불성격을 둘러싼 논쟁의 쟁점들 / 루드 (<다중지성의 정원> 만사)
[발표2] 촛불과 주체: 촛불 그어진 주체 / 한보희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공저자)
[발표3] 촛불과 다중 / 조정환 (『미네르바의 촛불』 저자)
[자유토론]

일시 : 2009년 5월 23일 (토) 저녁 7시
장소 : 다중지성의정원 4층 402호
주최 : 다중넷
찾아오시는 길 : http://daziwon.ohpy.com/147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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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촛불 논쟁] &quot;자율적 주체의 봉기&quot; vs. &quot;중간계급의 '욕망 정치'&quot;

‘촛불’ “자율적 주체의 봉기” “중간계급의 ‘욕망 정치’”

조정환-이택광 온라인 논쟁
조 대표 “진행중인 승리” 이 교수 “실패한 행동”
저서 ‘미네르바의 촛불’ 계기 블로그로 4차례 공방

 
 
한겨레 이세영 기자
 
 
» 이택광 경희대 교수(왼쪽)과 조정환 갈무리 대표(오른쪽).
 
“촛불이라는 판타지 너머의 실재를 직시하라.” “촛불이 판타지라는 당신 생각이 판타지다.”

 

‘2008년 촛불’을 둘러싼 논쟁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도서출판 갈무리의 조정환 대표가 논쟁의 두 당사자다. 촛불의 성격을 각각 ‘욕망의 정치’(이택광)와 ‘자율적 봉기’(조정환)로 규정하는 이들의 견해는 촛불을 둘러싸고 형성된 진보적 담론 지형의 양 극단에 위치한다. 그만큼 이해와 공감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표면상 싸움을 ‘도발’한 것은 이 교수다.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블로그(http://wallflower.egloo.com)에 글을 올려 조 대표의 책 <미네르바의 촛불>에 대해 “정교한 분석이라기보다 (자율주의 정치이념의 우월성을 강변하는)정치 팸플릿의 느낌”을 풍긴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이틀 뒤인 7일 조 대표가 자기 블로그(http://blog.daum.net/nalsee)에서 이 교수의 비판을 “촛불을 유령이나 광기로 보는 조선일보의 시각과 다를 게 없다”고 반박했고, 이를 계기로 비판과 반비판이 꼬리를 물면서 일주일 새 네 차례의 날선 공방이 두 사람의 블로그를 오가며 펼쳐졌다.

 

12일 현재 논쟁의 초점은 이 교수가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의 도시경관 분석에서 빌려와 촛불 분석에 활용한 ‘환등상’(phantasmagoria·판타지) 개념이 본래의 현실비판적 함의를 담고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요컨대 베냐민이 근대 도시의 풍경을 ‘환등상’으로 묘사할 때는 ‘허상’이란 의미와 함께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동시대인의 ‘유토피아적 열망’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 교수는 단지 ‘허상’과 ‘환상’이란 의미로만 사용하고 있지 않느냐는 게 조 대표의 생각이다.

 

하지만 대립의 지점들은 이것 말고도 많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촛불 참여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조 대표는 촛불시민을 ‘내적인 차이를 유지하면서 적극적 소통을 추구하는 자율적 주체들’로 규정한다. 대중들의 능력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 교수는 이들에게서 괴담과 유사과학에 휘둘릴 수 있는 “일정한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본다. 이런 그의 시선에 포착된 촛불의 주역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우리도 부르주아가 누리는 쾌락에 동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중간계급과 이들의 아들딸”이다.

 

촛불의 ‘결과’에 대한 해석도 다르다.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세우고 혁명적 주체를 만들어낸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진술에서 드러나듯 이 교수에게 촛불은 사실상 실패한 “중간계급의 행동”이다. 그러나 조 대표가 볼 때 이런 이 교수의 관점은 눈앞의 성과물이 있느냐 없느냐로 성패를 따지는 ‘군사주의적 오류’에 빠져있다. 그에게 촛불은 참여자들이 ‘삶을 가꾸고 갱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행 중인 승리’다.

 

각자 의지하는 이론적 배경도 차이가 있다. 대중의 자율성과 자기해방 능력을 신뢰하는 조 대표의 논의가 네그리의 다중론과 집단지성론에 기반하고 있다면, 모든 정치·사회적 실천을 관통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욕망의 정치’에 주목하는 이 교수는 라캉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논쟁은 조 대표가 “틈 나는 대로 쟁점 주제들을 연재형식으로 다루고 최종적으로 그것들을 하나의 글로 묶거나 재서술하겠다”고 밝힌 데다, 이 교수 역시 “필요할 때마다 조 선생의 비판에 답변을 올리겠다”는 입장이어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전하는 블로거들 역시 두 사람의 게시글에 질문이나 훈수성 댓글을 달며 선전을 독려하고 있다.

이 논쟁에 대해 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는 “촛불에 대한 담론이 현상기술의 차원을 넘어 이론적 분석과 효과적 저항 전략을 모색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촛불이 놓여있던 정치·사회적 맥락이나 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경향들에 대한 고려 없이 촛불을 하나의 동질적인 현상으로 몰아가려는 획일성이 엿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조정환(53) 갈무리 대표는 대중의 혁명적 잠재력을 긍정하는 급진적 자율주의자다. 반면 이택광(41) 경희대 교수는 모든 권력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견유주의적 비평가다.

 

조 대표는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결성과 기관지 격인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하면서 민족문학론에 맞서는 노동해방문학론의 대표 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지명수배된 뒤 1999년말까지 이원영이란 필명으로 잠행하며 10여권의 번역서를 냈다. 수배 해제 뒤엔 네그리·하트의 자율주의를 현실에 적용하는 일에 매진하며 웹저널 <자율평론>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네그리의 <다중>을 번역했고 <아우또노미아> 등의 책을 썼다.

 

이 교수는 영국 워릭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셰필드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문화비평가다. 전공은 문화 연구와 문화 이론. 귀국 뒤 광운대를 거쳐 경희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들뢰즈의 극장에서 그것을 보다> <민족, 한국 문화의 숭고 대상> 등의 책을 썼으며, 지난해 5월부터 <미디어오늘>에 연재한 ‘이택광의 문화읽기’를 통해 영화·드라마·음악에서 정치·사회문제를 아우르는 전방위 비평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세영 기자

 

 


 

 

 

 

[미네르바의 촛불] 논쟁의 진행상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정환 님과 이택광 님이 주고 받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들과 그 사이사이마다 이 논쟁에 대해 다들 분들이 언급한 글들 목록입니다. 촛불이 무엇이고, 어떻게 보아야 하며, 우리들의 '실천'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글들입니다.

 

 

 

 

이택광(2009.05.05)  /  조정환의 촛불론  http://wallflower.egloos.com/1902259

 

조정환(2009.05.07)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1]폭동과 봉기  http://blog.daum.net/nalsee/16521637

 

이택광(2009.05.08)  /  조정환의 반비판에 대해  http://wallflower.egloos.com/1903202

 

조정환(2009.05.08)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2] 승리와 패배  http://blog.daum.net/nalsee/16521638

 

marishin(2009.05.08.)  /  '촛불 담론' 논쟁이 본격화하려나  http://blog.jinbo.net/marishin/?cid=13&pid=306

 

레프트21(2009.05.08)  /  촛불1년 평가논쟁  http://blog.naver.com/sin3748/150047269202

 

조정환(2009.05.09)  /  [미네르바의 촛불 논쟁: 간주곡] 벤야민의 '지금시간'과 구원으로서의 시간  http://blog.daum.net/nalsee/16521641

 

이택광(2009.05.10.)  /  논점이 무엇인가?  http://wallflower.egloos.com/1904092

 

이택광(2009.05.10.)  /  [반론1]촛불의 한계에 대한 지적  http://wallflower.egloos.com/1904221

 

조정환(2009.05.11)  /  [미네르바의 촛불 논쟁 : 보충자료] 책 머리에  http://blog.daum.net/nalsee/16521642

 

최원(2009.05.11)  /  촛불논쟁 시작?  http://blog.aladdin.co.kr/droitdecite/2834835 

 

조정환(2009.05.12)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3]환등상과 중간계급  http://blog.daum.net/nalsee/16521643

 

이택광(2009.05.12)  /  솔직한 고백  http://wallflower.egloos.com/tb/1904821

 

조정환(2009.05.12)  /  [이택광의 『미네르바의 촛불』 비판에 대한 반비판. 4]촛불은 무엇인가  http://blog.daum.net/nalsee/16521644

 

최원(2009.05.12)  /  촛불논쟁 관련해서-데모스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http://blog.aladdin.co.kr/droitdecite/2838075

 

이택광(2009.05.12)  /  최원씨의 포스팅에 대해  http://wallflower.egloos.com/1904982

 

이택광(2009.05.12)  /  흥행 실패?  http://wallflower.egloos.com/1905017

 

이택광(2009.05.13)  /  [반론2] "촛불은 다중이다"는 명제를 왜 증명해야하는가?  http://wallflower.egloos.com/1905234

 

조정환(2009.05.13)  /  [이택광 반비판. 5] 생산력, 제헌권력, 대도시, 다중  http://blog.daum.net/nalsee/16521646

 

최원(2009.05.13)  /  촛불논쟁관련-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봐라?  http://blog.aladdin.co.kr/droitdecite/2841329

 

이택광(2009.05.14)  /  뒤엠-콰인 명제  http://wallflower.egloos.com/tb/1905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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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둘러싼 담론폭격에 『미네르바의 촛불』로 맞서자!!!!!

5월 2일 1주년을 앞두고, 담론세계에서 촛불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촛불은 유령이었다, 중간계급의 표현일 뿐이었다, 광기였다....

좌우를 막론하고 최근 논의들 속에서 엘리트 지식인들에 의해 촛불은 그야말로 두 번 죽고 있다는 ㅠ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촛불집회에 줄기차게 참여하며 기록한 생생한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blog.daum.net/nalsee) 

냉소적, 환멸적 평가에 맞선 대항담론이 담긴 책을 소개합니다. '날아온 씨앗' 님의 책, {미네르바의 촛불}!!!!

열븐 함께 읽읍시당!!!!!!!!!!!!!!!!!!! (세미나 할 예정인데.. 관심있으신 분은 저 르듀에게 연락을!!!!!!!!!) (쪽지.. 핸펀..)

베스트 보내주세요!!!!!!!!!! (베스트 맞는가..)

 




미네르바 촛불


촛불은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촛불과 거리를 두려는 냉소주의적 촛불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
촛불 1주년 결산, 촛불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촛불 현장에 대한 치밀한 관찰 속에서 발로 쓴 촛불의 역사!
촛불은 승리한다! 억압, 냉소, 기만, 환멸에 대항하여 '미네르바의 촛불'로 맞서자!

◎지은이: 조정환
◎출판일: 2009년 4월 30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04쪽 ◎정가: 15,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3-8 04300 / 978-89-6195-003-9 (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19


1. 『미네르바의 촛불』 출간의 의미

일반적 의미

◎ 2008년 5월 2일부터 지난 1년 동안 수 백 만 사람들이 참여한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촛불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한다.
◎ 1970년대의 재야운동, 1980년대의 민중운동, 1990년대의 시민운동과 다른 2000년대 촛불운동의 고유한 특질이 무엇인지를 상세히 밝힌다.
◎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촛불의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촛불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주체성으로 정의한다.
촛불봉기의 새로움이 무엇이었던가를 맑스의 노동이론, 푸꼬의 삶권력론, 들뢰즈의 잠재력론, 네그리의 다중론을 통해 조명한다.
◎ 촛불 현장을 누비면서 얻은 생생한 생각들의 기록이며 그것에 기초한 치밀하고 진지한 이론적 성찰을 담고 있다.
◎ 촛불에 대한 여러 저작들 중에서 유일한 개인저작으로서 여러 문제를 아우르는 저자의 일관된 관점이 책 전체에 촛불의 역사와 향후 전망에 대한 통일된 방향성을 부여한다.

구체적 의미

◎ 촛불다중론의 관점에서 촛불을 유령으로 보는 보수와 진보 일각의 시각, 그리고 촛불이 중간계급의 행동이라는 사회학적 시각이 다중으로부터의 회피의 다른 양상에 불과한가를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 촛불이 파시즘이라는 시각에 맞서 촛불이야말로 파시즘과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입증한다.
◎ 이른바 ‘웹 2.0 시대’의 사건으로 불린 촛불봉기를 집단지성과 다중지성의 주체화로서 파악할 수 있는 정밀한 관점을 제공한다.
◎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우리 시대에 왜 촛불의 형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밝힌다.
비폭력과 폭력 사이에서 촛불운동의 내적 고뇌와 갈등의 사회구성적 근거를 규명한다.


2. 『미네르바의 촛불』에 나오는 촛불의 이야기들!

“촛불은 두 가지 차원을 갖는다. 하나는 사회정치적 차원이다. 2008년에 우리는 촛불이 낡은 사회의 닫힌 문을 밀면서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모습을 뚜렷이 목도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결정에, 일제고사에, 대운하에, 비정규직에, 뉴라이트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항의하며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들려졌던 촛불들, 이것이 사회정치적 차원의 촛불이다. 또 하나는 존재론적 차원이다. 사람들이 손에 촛불을 켜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을 때조차 존재론적 촛불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 켜져 있다. 언제나 삶을 인도하는 것은 촛불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은 이 존재론적 촛불, 영혼의 촛불을 가시화하고 사회화하는 행동이다.”(5쪽)
― 「책머리에」 중에서

“이 사회의 정치적 엘리뜨들이나 지적 엘리뜨들이 촛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촛불봉기가 시작된 지 1년을 맞아 촛불을 대상화하면서 내려지는 해석들이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경찰, 법정, 감옥을 잇는 국가의 물리적 폭력과 대면해야 했던 촛불은 이제 자신에 대한 정신적 환멸과 해석의 폭력 앞에 직면했다. 그 환멸의 시선과 해석적 단죄가 이른바 ‘진보’를 자임하는 엘리뜨들로부터 나올 때 촛불은 역사와 사회로부터 총체적으로 추방당하는 셈이다. (…) 촛불은 죽었으며 더 이상 촛불은 없을 지어다, 라는 심판이 전국가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것일까?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어떤 것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순간에조차도 그 승리는 결코 견고하지 못하며 시간 속에서 녹아내리는 운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촛불에 대한 지적 장례의식이 논란거리를 남기면서 쟁론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쟁점에 개입하여 촛불의 범죄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촛불에 대한 냉소나 환멸의 조성을 통해 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최근 발행된 책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에 실린 글들 일부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촛불의 환멸화에 대한 검토와 비판을 통해, 그리고 다른 일부의 글에 나타나는 촛불의 제헌능력pouvoir constituant 에 대한 긍정을 좀 더 분명한 것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촛불의 살아있는 힘과 그 능력을 다시 한 번 주장하려고 한다.”(17~18쪽)
― 「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중에서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2008년의 촛불봉기의 시간은 이 짧은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봉기대는 소라광장에서 시작하여 시청광장으로 이동했고 신세계, 퇴계로, 동대문으로 이동했으며 남대문, 명동, 종로, 대학로를 휩쓸었고 청와대로 가기 위해 청운동, 안국동을 점거했다. 이어 봉기대는 KBS, 한나라당사, 코엑스에서 촛불을 지폈으며 마침내 전국 곳곳에 뒤늦었으나 더 강렬한 촛불들이 켜지고 국경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생명의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벌떼들이 이곳저곳을 이동하듯이 지구상의 여기저기를 밝히며 촛불의 봉기蜂起는 지속되고 있다. 봉기란 글자 그대로 ‘벌떼들蜂의 일어남起’이 아닌가?”(88~89쪽)
―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중에서

“일국적 뉴라이트는 전 지구적 뉴라이트의 기능마디이다.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통해 FTA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쇠고기 수입재개는 한미FTA 4대 선결과제(쇠고기 수입재개, 약값 재평가제도 개정중단,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강화 방침취소, 스크린쿼터 146일에서 73일로 축소)의 일부이다. 4대 선결과제의 해결이란 먹고 치료하고 타고 보는 것에 설치된 안전망을 철거하라는 것이다. FTA는 광범한 민영화조치를 수반할 것인바,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는 6대 생필품(수도, 전기, 가스, 의료, 철도, 교육)의 민영화를 정권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고 있다. 촛불이 폭발한 지점은 바로 이 자본순환의 고리에서였다. 촛불은 생명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쇠고기를 기폭제로 하여 터져 나온 것이다.” (164쪽)
― 「뉴라이트 한국과 촛불」 중에서

“촛불은 5년의 수명을 갖는 문제가 아니다. 촛불은 전 지구적 평화를 갈망하는 삶정치적 성찰의 무기이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든 혁명적 불빛이다. 거대함을 욕망하지 않으면서 작은 그러나 무수한 것들의 의지를 모아 그려내는 근원적 혁명에 대한 갈망이다. 촛불은 몇 개월의 수명을 갖는 것도 아니며 몇 년의 수명을 갖는 것도 아니다. 촛불은 영원하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꺼질 수는 있지만 완전히 꺼질 수는 없다. 일시적 꺼짐은 촛불의 잠재화일 뿐이지 소멸이 아니다. 비가시화일 뿐이지 비실재화가 아니다. 생명이 영원한 만큼 촛불도 영원하다.”(357쪽)
― 「촛불의 쟁점들」 중에서


3. 지은이 소개

조정환(Joe Jeong Hwan, 1956~ )

지금은 댐 건설로 수몰된 경상남도 진양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에서 일제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고, 1980년대 초부터 <민중미학연구회>, <문학예술연구소>에서 민중미학을 공부하며 여러 대학에서 한국근대비평사를 강의했다. 1989년에 월간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하면서 문학운동의 주류였던 민족문학론에 맞서 ‘노동해방문학론’을 제창하여 당시 문학운동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 말, 국가보안법에 의한 전국지명수배령이 내려졌고 1990년에서 1999년말까지 그는 9년 여에 걸친 기나긴 수배생활에 들어갔다. 그러한 엄혹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이원영’이라는 필명으로 10여 권의 번역서를 펴내는 등 그의 연구와 사유의 과정은 중단 없이 지속되었고 이 ‘발견적 모색’의 긴 시간을 통해 그가 ‘자율주의로의 선회’라고 부르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1999년 12월 수배 해제 이후 그는 월간 『말』에 1년간 문화시평을 연재하면서 자율주의적 관점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제국 속에서 Within Empire, 제국에 대항하여 Against Empire, 제국을 넘어서 Beyond Empire’라는 의미의 ‘다중문화공간 왑 WAB’(지금의 다중네트워크센터) 을 통해 다중지성과의 접속을 이어 갔다. 그는 또 그 동안 발전시켜 온 현대사회와 사회운동, 그리고 문학 예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집약하기 위해 ‘조정환의 걸어가며 묻기’라는 연속 저작집을 내고 있다. 현재 다중네트워크(http://waam.net) 공동대표, 웹저널 『자율평론』(http://jayul.net) 상임만사,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대표, 다중지성의 정원(http://daziwon.net) 상임강사로 활동하면서 성공회대에서 탈근대사회이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저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 1989), 『노동해방문학의 논리』(노동문학사, 1990), 『지구 제국』(갈무리, 2002), 『21세기 스파르타쿠스』(갈무리, 2002),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갈무리, 2003),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 『제국기계 비판』(갈무리, 2005),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카이로스의 문학』(갈무리, 2006),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공저, 갈무리, 2007), 『레닌과 미래의 혁명』(공저, 그린비, 2008)

편역서 『오늘의 세계경제 : 위기와 전망』(C. 하먼, 갈무리, 1994),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A. 캘리니코스 외, 갈무리, 1995),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C. 하먼 외, 갈무리, 1995), 『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 1』(S. 볼로냐 외, 갈무리, 1997), 『자유의 새로운 공간』(A. 네그리 외, 갈무리, 2007)

번역서 『오늘날의 노동자계급』(A. 캘리니코스, 갈무리, 1994), 『디오니소스의 노동 1』(M. 하트 외, 갈무리, 1996), 『디오니소스의 노동 2』(M. 하트 외, 갈무리, 1997), 『사빠띠스따』(H. 클리버, 공역, 갈무리, 1998),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W. 본펠드 외, 갈무리, 1999),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J. 홀러웨이, 갈무리, 2002), 『무엇을 할 것인가』(W. 본펠드, 갈무리, 2004), 『들뢰즈 맑스주의』(N. 쏘번, 갈무리, 2005), 『다중』(A. 네그리 외, 공역, 세종서적, 2008)


4. 『미네르바의 촛불』의 차례

책머리에

1부 촛불의 논리, 윤리, 그리고 생리
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보수에서의 촛불유령론 19
진보에서의 촛불유령론 20
촛불 중간계급실체론 28
촛불 과잉아나키즘론 31
다중으로부터의 도피 35
제헌권력: 대중들, 민중, 천민, 그리고 다중 39
투쟁의 새로운 순환 속에서 운동과 정치 54
승리라는 문제 혹은 감각의 혁신을 위하여 65

파시즘에 대항하는 촛불
근대적 전체주의와 수용소 파시즘 71
탈근대적 전체주의와 삶권력의 파시즘 76
삶권력의 정치적 계급적 토대와 그 전략 78
탈근대 파시즘 속에서 삶정치의 가능성 80
한국에서의 파시즘의 운명: 이명박 대 촛불 81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머리글 87
촛불봉기의 발생조건 89
촛불봉기의 전개과정 93
권력의 대응 변화 106
촛불봉기의 특징과 새로움 107
집단지성과 봉기의 새로운 기술 123
촛불권력의 현재적 장애와 한계 128
촛불봉기의 쟁점과 새로운 과학 131
촛불봉기는 무엇을 바꾸고 있는가? 138
맺음말: 미래 운동의 새로운 로두스 141

금융위기와 촛불의 시간
미국발 금융위기와 국유화 145
자본주의 위기의 역사 속에서 서브프라임 위기 147
서브프라이머의 입장에서 본 금융위기 151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촛불 155

2부 촛불 현장에서: 기록과 성찰
뉴라이트 한국과 촛불
현대의 자본순환과 뉴라이트 161
뉴라이트 우파 정부의 성격: 순수자본독재 167
이명박 정부의 반혁명 170
뉴라이트 한국 20년 결산 173
무력 174
법 176
공안탄압 179
언론과 문화 182
화폐정치 185
테러 188
지배의 피라미드와 촛불 192

사회운동의 새로운 순환과 촛불
촛불의 발생계기: 삶정치적 복합문제로서의 광우병 197
노동의 재구성과 촛불 200
촛불과 욕구노동 204
촛불과 코뮤니즘 208
민민연과 애국촛불 212

촛불봉기의 주체성
다중의 형상들 221
문명, 시민, 시장과 촛불 244

촛불봉기의 특이성
중앙지성, 집단지성, 다중지성 247
다중지성의 미네르바 257
질서화와 (자기)조직화 262
삶정치와 그 무기들 279
계획으로서의 촛불과 욕망으로서의 촛불 292

촛불의 헤게모니와 민주주의의 전망
국가권력 293
촛불운동 297
민주주의 311

촛불의 쟁점들
촛불은 오합지졸인가? 329
폭력인가 비폭력인가? 331
다시 무기의 문제 345
민족주의라는 쟁점 347
금융자유화도 금융국유화도 아닌 다중의 공통되기와 자치 352
촛불은 일시적인 것인가 영원한 것인가? 356

3부 촛불테제
촛불테제 1: 금융위기와 촛불 테제
촛불테제 2: 이명박과 강인한 테제

촛불봉기 일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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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다중넷 제1차 월례발표토론회를 공지합니다.

안녕하세요? 다중넷에서는 구성원 만사들의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매월 월례발표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사회적으로 주요한 이슈나 사건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표명하는 한편, 그 성과를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며 토론하고자 합니다. 관심 있으신 여러분들은 많은 참여 바랍니다.
그 첫 번째로, 지난 1년 동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봉기’를 그 주제로 하여, 그 의미와 성격에 대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주제> 촛불: 유령인가 중간계급인가 다중인가?  

<발표>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일시>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

<장소> 다중네트워크 센터

<찾아오는 방법>
http://waam.net/bbs/view.php?id=hydra_intro&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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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도서!! {사빠띠스따의 진화}



사빠띠스따의 진화

치아빠스 봉기 15주년!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의 아이콘 사빠띠스따, 그들은 누구였는가?
신자유주의가 기울고 있는 지금 그들은 무엇을 혁신하고 있는가?
창조적 반란을 이해하기 위한 대담하고 새로운 접근법!

 



◎지은이: 미할리스 멘티니스  ◎옮김이 : 서창현  
◎출판일: 2009년 4월 19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48쪽  ◎정가: 19,8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2-1 04100 / 978-89-6195-003-9 (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18


1. 『사빠띠스따의 진화』 출간의 의미

미래의 정치철학을 제시한다.

『사빠띠스따의 진화』는 바디우의 ‘사건’, 상황주의자들의 ‘상황 창조’, 까스또리아디스의 ‘자율 기획’, 네그리의 ‘제헌권력’ 등의 개념들을 이용하면서도, 새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끼기 쉽고 드라마틱한 문체로 사빠띠스따가 미래의 정치와 정치학에 대해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 ‘자율 기획’ 개념과 ‘제헌권력’ 개념을 연결시켜 급진적 정치와 혁명적 기획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 작업틀을 발전시킨다. 그리고 ‘사건’ 개념과 ‘상황 창조’ 개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자기가치화’ 개념을 연결시켜 사빠띠스따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고 그들의 혁명적 주체성을 독특한 관점과 치밀한 분석으로 조망하여, 오늘날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미래의 정치철학을 구축하고 있다.

“최초의 탈근대 혁명”을 분석한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이행되는 1994년 1월 1일 치아빠스에서 봉기하며 세계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빠띠스따 지도자 부사령관 마르꼬스는 멕시코 정부와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전쟁을 선포했다. 혁명의 시대가 끝났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을 잡지 않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투쟁에서 돈키호떼의 광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한 사빠띠스따는 전 세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왔다. 또한 그들은 ‘걸어가며 묻기,’ ‘복종하는 명령’이라는 원주민의 원칙을 바탕으로 매우 독특한 탈근대 정치철학을 펼쳐왔다. 우리는 이들의 운동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최초의 탈근대 혁명.” 이것이 이들의 투쟁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빠띠스따, 그들은 누구인가?

1994년 1월 1일 치아빠스 반란 이후 사빠띠스따를 다양한 견지에서 고찰하고 여러 측면들에 초점을 맞춘 수많은 학문적․비학문적 작업이 이루어졌다. 정치 이론가들 및 분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 왔다. 사빠띠스따는 라틴아메리카 민족해방운동을 계승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정치(학)를 예고하는 것인가. 그들은 구조적인 불평등과 극심한 빈곤이 낳은 결과물인가, 아니면 동일성 정치의 표현인가. 그들은 혁명가들인가 개량주의자들인가. 포스트모던 게릴라들인가 아니면 무장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인가 등등. 『사빠띠스따의 진화』는 이러한 질문들의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치아빠스 봉기의 새로운 차원들을 탐구한다. 그리고 사빠띠스따 운동의 잠재성과 함축들을 미래를 향해 확장할 수 있게 우리를 인도한다.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의 아이콘 사빠띠스따

2009년은 치아빠스 반란이 일어난 지 15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2009년은 신자유주의 금융위기가 더욱더 심화되고 있는 시기이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인류의 존엄성을 옹호하며 신자유주의에 반대한 사빠띠스따의 운동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매해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에 반대하며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기치 아래 2001년 1월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시작되어 대륙별로 옮겨 다니며 행사를 진행하는 <세계사회포럼>은, 사빠띠스따의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인류를 옹호하기 위한 대륙간 회의’의 정신을 잇고 있다. 또한 위성전화, 인터넷 등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지구적인 연대와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오늘날 운동의 중요한 조직화 기술이다. 1999년 12월 시애틀 WTO 각료회의 반대 시위를 시작으로 2009년 4월 런던 G20 금융정상회의 동안 이뤄질 반세계화 시위는 인터넷을 통해 전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항의를 조직하며 사빠띠스따의 정신을 확장시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운동방식은 더욱더 발전되었고, 한국 사회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사용된 실시간 동영상중계, 핸드폰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교환 등을 통한 운동을 통해 그 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빠띠스따는 21세기 운동에 중요한 형식적 내용적 자원을 제공하며,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빠띠스따의 진화』는 이처럼 사빠띠스따 운동을 치밀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오늘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사빠띠스따의 새로운 정치철학적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


2. 『사빠띠스따의 진화』에 나오는 사빠띠스따의 역사와 이론들

“다음 이야기는 이제 잘 알려져 있다.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멕시코 사이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이행되는 1994년 1월 1일 새벽, 초칠Tzotzil, 첼딸Tzeltal, 또호라발Tojolabal, 소께Zoque, 촐Chol, 마암Ma'am 지역의 약 3천여 개의 원주민 게릴라 무리가 경무장을 하고 검은 스키마스크나 붉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남동 멕시코의 치아빠스 주의 몇몇 시들과 지구들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반란군들은 스스로를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하 EZLN 또는 사빠띠스따)으로 불렀으며,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수백 년에 걸친 억압과 착취,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현실의 죄악상, 그리고 모두를 이롭게 하는 토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대해 이야기했다.”(17~18쪽)
― 「서문」 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빠띠스따의 “망각에 맞서는 전쟁”의 전개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설명은 단순히 사건들을 뒤따라가면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독자들에게 이 운동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지금까지 전개된 이 운동의 궤적이 갖는 가장 중요한 측면들과 과정들을 파악하고 드러내는 것이다.”(35~36쪽)
― 「1장 사빠띠스따 연대기」 중에서

“까스또리아디스의 생각과 네그리의 정치 이론에 의존하면서 내가 이 장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급진적인 정치 운동들과 활동들의 출현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역사적인 작업틀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작업틀의 개발은 내가 혁명적 주체성들의 출현과 그것들의 급진적 사건들과의 횡단을 논의하고(4장), 사빠띠스따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수행하고(5장), 그리고 사빠띠스따 반란의 결과 원주민의 사회적 상상성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탐구하는 것(6장)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 「3장 자율 기획, 제헌권력 그리고 제국」 중에서

“글의 마지막 문장은 마르꼬스가 게릴라가 되기로 결정하도록 이끈 명령이다. 혁명적 삶을 위해 봉합된 삶을 포기하는 것, 소유하지 않는 삶, 네그리가 마키아벨리의 독해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는 바의 덕virtue 대 운fortune.(3장을 보라) 여기에서 마르꼬스가 자신이 두 번 태어났다―첫째, 자신의 삶에 파열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정글로 들어갔을 때, 둘째, 1994년 반란이 일어났을 때―고 주장하는 점에 주목하라. 달리 말해, 첫째의 마르꼬스는 결국 사빠띠스따 반란을 낳을 주어진 상황의 조건들을 탐색하는 사건 이전의 주체였다. 둘째의 마르꼬스는 집단적인 원주민 충실성 주체의 표현인 반란의 결과로서 나타난 주체와 다를 바가 없다. 마르꼬스와 여타의 EZLN 전사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빠띠스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곤경들은 개인적·집단적 변신을 삶의 급진적 변형을 위한 유일한 길로 만들었다.”(413쪽)
― 「결론」 중에서

3.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미할리스 멘티니스(Mihalis Mentinis 1976~ )
미할리스 멘티니스는 그리스 아테네의 하트퍼드셔 대학에서 사회심리와 정치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토론단의 일원이다. 급진적 정치와 혁명적 주체성들에 관한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마르꼬스에 대한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

|옮긴이|
서창현(Seo Chang Hyun 1966~ )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논문으로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연구」(석사)가 있고 역서로는 『있음에서 함으로』, 공역서로는 『서유럽 사회주의의 역사』, 『사빠띠스따』, 『비물질노동과 다중』, 『다중』 등이 있다.


4. 『사빠띠스따의 진화』의 차례

감사의 글
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사빠띠스따 연대기
초기의 연대들: EZLN의 전사  37
사빠띠스따 연대기: 1994~2001  49
“멍군” 말고 “장군!”  92

2장 사빠띠스따 봉기에 대한 이론들과 시각들
그람시주의적 접근  99
라클라우와 무페의 담론 이론  107
학문적인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접근법  119
비학문적인 급진적 좌파의 시각들  132
사빠띠스따 독해의 문제와 한계  142

3장 자율 기획, 제헌권력 그리고 제국
존재론적 테제들  167
자율의 상상성  171
급진적 상상성에서 제헌권력으로  178
계보학적 계기들: 자율의 재출현  184
제국: 세계질서  200

4장 사빠띠스따 봉기와 혁명적 주체성들
사건에의 충실성  214
사건과 제헌권력  220
그저 하나의 사건이 아닌  222
구축된 상황들  226
사빠띠스따―사건적 상황  229
충실성의 세 가지 주체들  243
미래의 사건을 향하여  257

5장 사빠띠스따를 비판적으로 읽기
혁명가들과 개량주의자들  269
사빠띠스따 민족주의  282
사빠띠스따와 국가  300
사빠띠스따와 전지구적 투쟁  308
자율의 블랙홀들  320

6장 원주민의 사회적 상상성과 사빠띠스따 가면들
원주민의 형이상학  341
언어와 현실  348
마야의 인식론  361
사빠띠스따 가면들  373

7장 결론
미래를 위한 함축들  393
전투적 주체성 이론을 향하여  408

주석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용어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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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시대, 58명의 시인들이 &quot;원초적 혁명시인&quot; 전태일을 기억한다!

 

 

 

 

완전에 가까운 결단

 

▶전태일 탄생 60주년 기념시집『완전에 가까운 결단』!
▶촛불의 시대, 58명의 시인들이 "원초적 혁명시인" 전태일을 기억한다!

 

 

◎엮은이: 조정환 백무산 맹문재
◎출판일: 2009년 3월 13일 ◎판형: 변형 국판(128×210)
◎쪽수: 156쪽 ◎정가: 7,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1-4 04810/ 978-89-86114-26-3 (세트)
◎도서분류 : 마이노리티시선30

 

1. 전태일 탄생 60주년 기념시집, 『완전에 가까운 결단』 소개

2008년은 수백만 명이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며 촛불을 거세게 든 역사적인 해이다. 우리는 청계광장, 시청광장, 광화문, 종로 거리를 넘쳐흘러 전국에 일렁였던 촛불의 물결을 경험했다. 격동의 2008년은 전태일 열사가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는 1948년 8월 26일에 태어났다.

 

『완전에 가까운 결단』은 1970년 11월 13일 분신으로 자신의 ‘노동해방’ 의지를 표현한 전태일 열사의 회갑을 맞이하여 58명의 노동시인들이 전태일 열사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쓴 시를 백무산, 조정환, 맹문재 세 사람이 엮어 발간한 시집이다. 시집제목은 전태일 열사 1970년 8월 9일 일기의 한 구절에서 가져 왔다.
시집에는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시들에서부터 오늘의 노동 현실과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시인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또한 2008년 가슴을 벅차게 했던 촛불 집회에 관한 시들도 담았다. 그리고 2006년 타계한 故 박영근 시인이 전태일의 삶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려고 창작했지만 죽음으로 인해 안타깝게 완성하지 못한 동화도 실었다.

 

2. 서문: 다시, 우리의 목소리여

실업, 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 도산, 폐업, 물가폭등……. 하루도 예외 없이 몰아치는 겨울바람 같은 뉴스들 앞에서 밥의 문제를 떠올린다. 제2의 아이엠에프(IMF)가 닥친 현실이기에 생존 자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경기를 부양한다고 내놓은 정부의 정책들이 뚜렷한 해결책이 안 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부는 어려움에 처한 민생들의 삶을 너무 안일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제작해 전국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배포했다는 영상물에서 4.19혁명을 4.19데모라고 깎아내린 데서 볼 수 있듯이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가담한 학생과 시민들을 경찰이 과잉 진압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인권을 유린하고 있었다.
이에 우리는 밥의 문제며 사회 정의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추운 겨울 속의 램프에 불과할지라도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그 푯대로 전태일의 정신을 삼았다.
특히 올해는 전태일 동지가 살아 있다면 회갑이 된다. 그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지만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을 성자와 같이 사랑했다. 그의 정신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한 우리의 삶과 시는 당당하리라.
다양한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시인들이 여기에 한마음으로 모였다. 한국 노동시의 목소리를 함께 내준 시인들께 감사드린다.
시집 제목은 전태일 동지가 1970년 8월 9일에 남긴 일기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2008년 12월
엮은이들이 소중한 시를 받아서 씀

 

3. 돌아보면 문득 그가 있다 ―‘원초적 혁명시인’을 기다리며

감성을 기록할 수 없는 역사는 얼마만큼 정확한 기록일까? 촛불의 해였다고 할 수 있는 2008년을 돌아보며 드는 생각이다. 2008년은 분명 집단감성이 사회 변화 활력의 중심에 놓였던 해였다. 그 가운데는 10대 여학생들이 있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많은 논자들은 모바일과 인터넷 세대가 가지는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의 현란함에 따른 겉보기 분석일뿐이다. 수단과 도구가 내용과 질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어떤 현상의 원인이기 이전에 다른 원인에 의한 결과물이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위 감성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이들 대로 자기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기성세대가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낡은 질서에 충격을 주고 그 흐름을 바꾼 사건들이 근래의 일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사건은 4.19를 들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4월 19일 전국적인 반독재 규탄시위로 발전되기 이전에 낡은 질서에 충격을 주면서 거리로 뛰쳐나온 이들은 10대 고등학생들이었다. 2.28 대구 학생의거, 3.15 마산 고등학생 시위가 대학생과 교수, 사회인들에게 크게 자극을 미치면서 사회혁명으로 번진 사건이었다. 3.1 만세운동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당시 여학교 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들이 사회 지도층과 농민들에게 파급적 영향을 미쳤다는 증언도 있다. 류관순 열사가 고문을 받고 죽은 나이가 16살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마민주항쟁과 광주민주항쟁도 그 직전에 일어난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무역 사건 등이 직간접 원인이었는데, 당시 엄혹한 독재 지배의 공포에 질려 있던 얼어붙은 기성 질서에 크게 균열을 가한 이들은 바로 10대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1987년 6.10 민주항쟁이 있기 전에는 어떤 전조가 있었는가? 6.10 항쟁에서 감성세대의 역할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외적인 사건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1980년대에는 시인들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절을 시의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맥락은 동일하다.
니체는 여성을 “전(前) 단계 서정시인이자, 원초적 서정시인”이라 하였는데, 곧 이들 세대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그래서 이들은 어쩌면 10대 소녀들로서가 아니라 ‘원초적 서정시인’으로 역사에 참여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을 바꾸어 말해 시인에게 화살을 돌리면 이렇게 된다. 시인은 시대를 예감하고 발언할 예언자적 지위를 부여받았으나, 시인들이 ‘사행성 오락’에 빠져 있는 사이에 ‘원초적 서정시인’들이 붉은 악마의 탈을 쓰고 권력과 기성 질서에 경멸과 조소의 운율과 리듬을 방출하면서, 초경(初經)의 우주적 예감과 생명 소용돌이에 대한 두려움과 격정으로부터 자신을 정화하는 춤과 노래를 들고 시대의 전면에 나선것이 아닌가? 한 시대가 그 시대의 몸에 맞는 이름과 정신을 부여받지 못하고 어둠과 혼돈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감성세대의 실천은 종종 비상구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 전태일은 누구인가? 투사인가? 열사인가? 그 어떤 수식도 그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어쩌면 그를 ‘전(前) 단계 혁명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온몸으로 시대를 예감하고 몸을 태워 시를 쓴 ‘원초적 혁명시인’이 아닐까?
그를 아직도 현재형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몸의 시(詩)로 예감한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 탄생 60주년 기념 시집에 함께해주신 시인들은 모두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살아오신 이 시대 소중한 시인들이다. 이들 시에서 ‘전(前) 단계’ 시대정신의 행간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백무산

 

4. 엮은이 소개

백무산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초심』, 『길 밖의 길』, 『거대한 일상』이 있다.

 

조정환
1956년 경남 진양 출생. 1989년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했다. 저서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 『노동해방문학의 논리』, 『아우또노미아』, 『제국기계 비판』, 『카이로스의 문학』,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공저), 번역서로 『들뢰즈 맑스주의』(N. 쏘번), 『다중』(A. 네그리, M. 하트)이 있다.

 

맹문재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가 있다.

 

5. 목차

다시, 우리의 목소리여
돌아보면 문득 그가 있다 백무산
 

박운식  논둑에 서서  15 

이상국  전군  17  
이소리  그 예쁜 여자  18 

홍일선  잊고 산 시간들이 많다  20
배창환  수경이 비명을 쓰다가  22 

김종인  사과나무 불꽃  25
권혁소  커피 아줌마  27     

김기홍  바위 위에 씨앗을 심는다  29
김명환  오십  32   

문창길  에어컨 수리기사 김종상씨  33
박두규  아니오, 아니어요  35   

박영희  울어라, 보일러  37
정원도  무장  39  

조진태  봄밤이 처연한 것은  41
공광규  대답해보세요  43    

최종천  작가수첩  45
김만수  타이어  47          

이규석  전봇대  48
강세환  텅 빈 12월의 은행나무  49      

정인화  많이 보고 싶다  51
서수찬  능소화, 최명아  53       

양문규  능소화 시절  55
정우영  갈담장  57       

최승익  묘비명  58
육봉수  후예들  59     

정세훈  밥은 촛불이고 촛불은 밥이다  60
표광소  별  62      

맹문재  시집  66
박형준  벽지  68       

성희직  전태일을 말한다  69
오인태  찡한 눈짓  71      

유용주  부끄러움에 대하여  73
정연수  카지노 불나방  76      

서정홍  술자리에서  78
이한주  오늘 하루만큼은  79         

황규관  변신  82
문영규  핵폭탄 투하 시 행동요령  84          

표성배  내 시는 나의 밥이다  87
박일환  둥지는 새들이나 트는 것이다  89      

이기와  걸인  91
김해자  경배  92     

유홍준  반달  93
이상호  날개  94     

정은호  노래  96
조혜영  가시  98        

손세실리아  통한다는 말  99
조성웅  선유도 가는 길  100                

김사이  하루  104
송유미  깡통 씨의 보리회향  106     

임성용  김말굽 씨의 가방 하나  108
김광선  단풍  109    

임희구  머리를 빡빡 민  111
장종의  새벽, LA 자바 시장에서  113      

오진엽  귀가  115
이맹물  죽음과 의무  117     

유현아  동대문역 3번 출구 찾기  119
이수호  이 위원장  121    

 

동화 박영근  전태일  125

참여 시인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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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개강!]88만원 세대, 불안정노동, 그리고 인지자본주의

 4월 5일 일요일부터 아래 강좌가 개강합니다. 그간 많이 논의되어온 88만원 세대론, 불안정노동론에 대한 총정리 및 새로운 접근을 해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한 강좌강좌마다 긴박하면서도 절박한 현실 문제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총괄적 관점, 실제적 대안, 각 투쟁의 연결 등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꼭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좋은 강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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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불안정노동, 그리고 인지자본주의

 

강사 조정환, 김종휘, 박권일, 성낙경, 강동진, 정남영, 김혜진, 김원, 정여울, 고병권
일시 2009년 4월 5일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 730~930분(10강, 130,000원)

 

강의큐레이터 : 우공, 언저리

 

강좌취지
지난 1월 이명박 정권은 생존을 위해 건물 옥상에 올라간 용산 철거민들을 학살하며 사기와 폭력, 야만으로 점철된 국가의 본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이후 추모 촛불의 흐름에는 철거민, 노숙인, 노점상, 빈민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현실의 비참하고 불안정한 삶과 가진자들의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그리스에서 '700 유로'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이 가망없는 체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을 발단으로 전 유럽에 봉기의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실업과 불안한 삶에 내던져진 오늘날의 젊은이들을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로 칭한 것에 대한 논쟁이 일어 주목을 받고 있다. 본 강좌는 용산 철거민 참사와 '88만원 세대론'이 함축하는 오늘날 다중의 현실에 정치(철학)적 비전 구축을 통해 실천적으로 응답하고자 하는 다지원의 시도이다. 철거민과 빈민의 문제를 최근의 88만원 세대론을 둘러싼 논쟁과 그간 오래 논의되어온 불안정노동, 비정규직 노동과 연결시키고, 계급간 갈등과 계급내 갈등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자본주의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이에 기초하여 가능한 민주주의와 코뮤니즘의 전망을 성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1강  인지자본주의, 불안정노동, 그리고 코뮤니즘 _조정환 _2009년 4월 5일

2강  88만원 세대, 경제적 빈곤과 문화적 풍요, 사회적 기업가 정신 _김종휘 _2009년 4월 12일

3강  88만원 세대론의 성과와 한계 _박권일 _2009년 4월 19일

4강  철거민 투쟁의 역사, 현황, 그리고 진로 _성낙경 _2009년 4월 26일

5강  反빈곤 전략의 모색 _강동진 _2009년 5월 3일

6강  빈민의 잠재력([혁명의 시간]을 중심으로) _정남영 _2009년 5월 10일

7강  불안정노동을 넘어서는 노동권 생활권의 전망 _김혜진 _2009년 5월 17일

8강  노동의 불안정화와 촛불운동 _김원 _2009년 5월 24일

9강  문학작품으로 본 우리 시대의 불안정노동 _정여울 _2009년 5월 31일

10강  비정규직과 민주주의의 문제 _고병권 _2009년 6월 7일

 

참고문헌

추후공지

 

강사 소개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상임강사,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대표, 문학평론가, 자율주의자.

김종휘  하자센터 부센터장, 노리단 단장, 『일하며 논다 배운다』, 『아내와 걸었다』 저자.

박권일 『88만원 세대』(2008),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2007) 공저자.

성낙경  전국철거민연합 사무국장.

강동진  빈곤 철폐를 위한 사회연대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정남영  다중지성의정원 상임강사, 경원대 영문과에서 20년 동안 영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장

김원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공동연구원.

정여울  문학평론가.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2006),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2003) (공저),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2008)등 저자.

고병권  연구공동체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자.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003),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2001) 『추방과 탈주』(2009) 등 저자.

 

수강신청 안내
1) 다중지성의 정원 수강신청을 위해서는 개강 전에 수강료를 입금하셔야 합니다.
2) 입금계좌번호 479001-01-179485(국민은행) 예금주 조정환(다지원)
3) 수강료를 입금 한 후 웹페이지(daziwon.net) 수강신청 게시판에 회비납부 사실을 기록하시거나 전화(02-325-2102)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할인제도 안내
두 강좌 이상 수강 시 각 강좌당 최소 10%에서 25%까지 할인됩니다.
정액회원(학기 내 개설된 모든 강좌 수강 가능) 회비: 450,000원
19세 이하 청소년 수강료 50% 할인

*환불, 할인, 폐강 등 수강신청 관련 유의사항은
다지원 홈페이지(http://daziwon.ohpy.com/154610/1)에서
좀 더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 출구 - 홍대입구역 방면 약 150M 전진 - 우리은행에서 좌회전 후 - 건너편 현대슈퍼 우측 골목 sbi와 카페sol을 지나면 예쁜 다지원 간판이 우측에 보입니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1번 출구 - 합정역 방면 200M 전진 - 지하도 통과 150M 전진 - 우측 경남예식장과 현대자동차 골목으로 들어감 - 대성설렁탕 앞에서 좌회전 후 20M 앞에 좌측에 다지원이 있습니다.   

약도는 http://daziwon.ohpy.com/147217/1 참조.

 

기타문의
□(02) 325-2102, daziwon@waam.net
□webpage : http://daziwon.ohpy.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75-13 성지빌딩 3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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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삶정치의 모색, 88만원 세대, 불안정 노동, 인지자본주의, 다중지성의 정원 2009년 봄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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