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자본가들은 어떻게 이 세계의 주인이 되었는가?

 <기사>

 프랑스 혁명의 두 얼굴 <프레시안>...↗


자본가들은 어떻게 이 세계의 주인이 되었는가?

 흔히 근대화라든지 산업화는 미화되는 한편 그것이 본래 의미하는 바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화>라는 것인데 이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대중이 가진 용어상의 혼란이고 이는 또한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이념(이데올로기)적 조장에 의한 혼란이다. 근대화라고 하면 사회가 상층 지배계급과 하층 피지배계급이 그저 순탄하게 누구의 고통도 없이 희생도 없이 생활수준이 고르게 높아진 것 같은 이미지를 준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화되는 과정은 여타의 자본주의화되는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피지배계급이 수탈과 착취를 당함으로 인해 그들의 고통과 눈물이 수반되는 과정이었다. 도시화의 진행으로 인해 농촌은 더욱 생활기반을 잃어가게 되었고, 농촌이 피폐해짐을 감당하지 못한 농촌 인구의 도시로의 도피 - 저임금, 하층 도시 노동자로의 유입을 초래하였으며, 그들이 소위 '산업화의 역군'이 되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현재도 자신의 생산물과 산업 생산물과의 불비례로 인해 몰락해가는 소부르주아지(농민)의 피난은 이어지고 있다.

 어떠한 자본주의화되는 사회라도 초기축적을 거치는데 한국 사회에서의 자본주의화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시초축적(단계)을 거쳐 그리고 경쟁하는 <자본>의 경쟁 단계를 거쳐 지배적인 자본의 독점이 이루어지는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별 사회(국가)에서의 자본주의화는 이렇게 진행되는데 한국에서 처음 자본주의가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필시 지구상 어느곳에서는 먼저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그것이 세계적으로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띄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역사상 고찰이 필요한 지점이다.

 대체 자본가는 어떻게 이 세계의 주인이 되었는가? 알다시피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다. 사업장의 사장이 살 수 있는 한계는 인간이 생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되는 일반적인 한도를 넘지 못한다. 그는 단지 수십년을 자본가로 생존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시의 부르주아들, 자본가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또한 당시의 자본가가 지금의 자본가와 생물학적으로,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물도 아니다. 알다시피 실패한 자본가도 생기는 것이고 성공한 자본가도 생기는 것이다. 헌대도 이런 자본가가 몇세기를 사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자본주의 태동과 더불어 지금까지 지배계급이 될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라는 것은 자본가의 생물학적, 유전적 연계같은 것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자본에 의한 지배-피지배관계를 뜻하는 것이고 이는 생산관계에 기반한다. 이는 자본(생산수단)을 소유한 자가 임금노동자를 기반으로 노동생산물(잉여)을 독점하는 지배체제이다. 임금노동자는 자신을 생산하고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노동인력을 생산한다. 그러고도 잉여생산물을 남김으로써 자본가의 이윤을 생산한다. 임금노동자는 임금관계 그 자체를 계속해서 생산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재생산한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자본가들의 지배는 처음에 급격한 변화를 통해 만들어졌고 이런 점에서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는 점이다.

  헌대 <기사> 글에서 참으로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말미부분에 가서 맑스주의에 대한 막연한 의혹이 제기된다는 점인대 그 정도는 담은 내용에 비한다면 독자들이 기꺼이 용서해 줄만한 점일 것이다. 또 한가지 있다면 부르주아들은 항상 어쩐 일인지 역사적으로 기념만(!)함으로써 실제 살아 숨쉬는 것으로서의 혁명을 박제화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야 할 것이다. 이것도 또한 부르주아들이 현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하는 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