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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 정치목사와 반공주의의 황혼

정치목사와 반공주의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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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장로님이 돈 들여 만든 시청 앞 광장은 아예 우익들의 집회장이 되었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그 곳에서는 종종 내 미감을 거스르는 일들이 벌어진다.
듣자 하니 또 다시 몇몇 얼을 결여한 목사님과 그분들이 인도하는 신도들이 그곳에서 우익 부흥회를 열었다고 한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려는 이 분들의 독특한 방식은 직사광선 받은 멸치젓으로 느껴진다. 굳이 저렇게 혐오스러워야 하나?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목사 집안에 태어나 교회를 수십 년 간 드나들었지만, 저렇게 정치적으로 광신적인 분들은 보지를 못 했다. 저런 분들 모여 있는 교회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시청 앞에서 그리스도는 모욕당했다. 생각을 해 보라.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스도가 저들처럼 시퍼런 군복 입고 다니며 북한에 저주를 퍼붓고 인공기나 태우려 드실까? 저들처럼 성조기나 흔들며 부시야말로 구세주라고 신앙고백이나 하고 계실까? 국보법 사수하여 그걸로 동료시민들이나 괴롭히라고 선동하고 계실까? 혹은 말썽 많은 사학재단 두둔하면서 입에 거품 물고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나 하고 계실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 옆에서 조갑제씨와 함께 “애국의 교과서”, 월간조선이나 팔고 계실까?

만약 그렇다면, 박근혜 대표에게 경사가 났다. 왜? 그리스도는 한나라당원이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만약 몇몇 정치 목사들이 하는 짓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한나라당 당원이다. 그리스도는 조갑제요, 정형근이요, 김용갑이요, 한나라당의 당원 중에 상당히 꼴통스러운 부류에 속하실 게다.
그리스도가 한나라당원이라면, ‘다빈치 코드’보다 더 선정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예수님 수준이 조갑제요, 정형근이요, 김용갑일까?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조용기 목사가 조갑제요, 정형근이요, 김용갑일 가능성은 농후하다.

조선일보는 일부 반공 기독교인들의 움직임에 꽤나 고무된 모양이다. 이들의 역할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사실 우익의 시위문화는 예로부터 돈 받고 동원되는 관제시위였다. 자발적 시위를 하려고 해도 동원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익 기독교인들이 나서주었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한국 기독교가 120여 년의 역사 끝에 고작 우익 집회장에 인원이나 대주는 우익정치조직으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얼빠진 목사들도 문제지만, 그런 목사님을 괴상한 집회장까지 따라 나가는 신도들의 맹신도 문제다. 기독교가 무슨 교주 따라 다니는 영생교도 아니고….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피식 웃었다. 다른 데서는 10만이라던데 혼자서 30만이란다.
시위참가 인원이 30만이라는 문장은 분명히 직설법 문장이 아니라, 아마도 원망법 문장이리라. 그 소망의 절실함이 내게 절절히 전달되는 듯하다.
그래, 애국시민의 물결이여, 10만이 되고, 30만이 되고, 300만이 되고, 마침내 3000만이 되어, 국보법 폐지를 저지하고 나아가 저 간악한 좌익 정권을 타도하라. 그 심정, 내가 왜 이해 못 하겠는가?
80년대에 나도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는 시민의 물결이여, 10만이 되고, 30만이 되고, 300만이 되고, 마침내 3000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 경험이 있다. 그 절절함,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10만이면 어떻고, 30만이면 어떤가? 어차피 갈 물인 것을.
다른 기사를 보니 집회에 참가한 이들의 평균 연령이 50~60대라고 한다. 이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동시에 반공주의의 사회학적 나이다. 저들이 죽으면 이제 반공 데모는 누가 할까나?
촛불도 꺼지기 전에 크게 한번 타오르는 법. 우리가 보는 것은 저물어 가는 한 시대의 요란한 황혼이다. 아, 주부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 애국 주부들의 정체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이 사회에서 저런 데에 주부를 동원해 낼 권력을 가진 것은 단 하나, 목사님들뿐이다.

시청 앞의 광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오랫동안 행패를 부려온 극우 반공주의 패러다임이 정말로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기득권을 누리다 잠시 변방으로 밀려난 세력이 제 스스로 중심에 복귀할 가능성이 없음을 (꽤 요란한 방식으로 아프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한국 기독교의 일부 세력은 그 동안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속의 권력자들과 같은 길을 걸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그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건대, 정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에는 미래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정말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들의 희망을, 이런 사람들에게 걸고 있는 걸까? 참 안 됐다.


진중권 /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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