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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새해부터 총동창회한테 얻어 맞기나 하고 ㅜ.ㅡ

1월 2일. 동국대학교 총동창회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다.

아침부터 할아버지들이 속속 도착하신다. 계절학기가 끝나고 학생회실로 넘어갈때

까지만 해도 그리 많이 계시지는 않았다.

 

침묵시위를 준비하느냐고 마스크에 테이프질도 하고 피켓도 만들었다.

본관앞으로 올라갔을때, 학교 정 중앙에 있는 불상 바로 앞에 왠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들고 서계시다. 그 앞으로는 탑골공원에서나 모여계실 법한 양복 차림의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모여계시다. 피켓을 들고 가는 우리들을 급하게 민주노동당 학생위 준비위 분들이 막아서신다. 이미 한바탕 하신 모양이다. 안경도 없고 아프다 하시는 걸 보시니...

그렇게 우리의 피켓은 숨겨졌다.  

 

"김정일의 하수인, 강정구! " 뒤의 구호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처구니 없었던 것만 기억나고...  뭐 이런 피씨를 들고 강단있게 서 계신 분들의 얼굴에서 단호함과 꺽지못할 신념이 느껴졌다는 내 말에 누군가가 비웃었다.

 

그 회합(?)을 뒤로하고 본관앞으로 가서 침묵시위를 시작했다. 모두 X를 붙인 마스크를 쓰고 피켓을 하나씩 집어 들고 두줄로 늘어섰다. 사실 저 뒤로 100명에 가까운 선배님(? 이겠지) 들이 흥분해있었기 때문에 겁났기도 했다.  

 

김일성 대학으로 가! 이놈들 동국대 학생들 맞아?  를 연발하시던 분들은,

우리의 피켓을 빼앗아 마구 밟기 시작했고, 마스크를 벗기기 시작했다. 궁지의 몰려서 된통 다구리를 당하던 우리들은 결국 만해시비로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럴때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를 읊을 줄이야 -_-;

 

그리고 강정구선생님의 직위해제방침에 총장의 도장이 찍혀졌다.

 

이제 이사회의 결정만이 남아있다.

 

어떤 후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언니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사회학과도 아니면서 왜 자꾸 그 투쟁에 가요? 아주 단호하고도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가슴이 질퍽해짐을 느꼈다.

 

난 왜 강정구선생님 대책위에서 활동하게 되었을까?

나는 공부하는 학생이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강정구 선생님의 수업들 듣고있는 학생이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기도 하고. 난 강정구 선생님의 논지에 동의하지도 않고 잘 모른다. 단지, 얼마전 서울지검에서 본 강정구선생님의 재판이 내 뇌리를 강타했고, 내 심장을 찔렀다.

 

대가리를 법의 잣대로 심판받아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싫고, 또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쉬쉬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 땅의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강정구 선생님은 용감했다.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학계에서 논쟁하면 되니까. 황우석 처럼 학계에서 논쟁도 논쟁이지만 언론에서 밝혀질 수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그래야 한다면 밝혀봐라.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옳고그른지 판단기준이 뭐냐. 더구나 구체적 증거물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글을 반박하려면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 증거물이라도 들이대면서 해야지. 니네가 한국전쟁을 겪어봤어? 니네가 빨갱이들을 알어? 이런 말로 백날 떠드시는데... 내가 동의하나.

 

사실 관심없는 후배들이 원망스럽다. 토론회 하자. 같이 집회 하자. 얘기해도 관심없다는 말로 일관하는 후배들이 사실. 이해가 안간다. 집회나가거나 전경과 대치중일때는 안그럴 애들이.

 

2006년. 새해 액땜 잘 했다.

 

강정구 선생님의 일이라고 민족주의자냐고 묻는 편협한 사고에서 난. 내 입에서 나왔을 편협한 사고를 바탕으로 한 무수히 많은 단어들을 반성하고 반성했다. 그리고 대충 알면서 아는 척 말해왔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

 

2006년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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