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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보다더 솔직해지고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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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텃밭일지

지난 8월에 씨를 뿌린 채소가 싹이 나서 자라 주었지만, 봄 채소처럼 씩씩하게 자라

주지는 못했다. 대체로 싹이 나는 시간이 봄 보다 길었으며, 씨가 다 발아하지 못하고

듬성듬성 나고 말았다. 상추와 근대 갓 파 홍당무우 등인데 아래는 상추와 홍당무의

모습이고,다른것은 더 시원치 않다.

 

 

모란시장에서 사온 쪽파뿌리는 일주일 정도 차 안에서 방치했다가 심었는데, 새파랗게

싹이 잘 돋아 나오더니 어느 정도 자라고 난 후에는 잎사귀 끝이 마르는것이 시들해

진다. 윗밭 아저씨 이야기는 여기가 햋볕이 약해서 파도 잘 안된다고 한다.

 

 

좀 늦어 가을무우를 파종했는데 처음 싹부터 시원치않게 올라 오더니 성장이 영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 2년간은 배추는 시원치 않았으나 무우는 어느정도 수확은 했는데,

올해는 거꾸러 된듯 하다. 무우는 포기 상태에 다다랐고, 배추는 지난해 보다 훨씬

잘 자라고 있다. 지난해 보다 별로 달라진 환경이 없는것 같은데... 모종이 달라서인지

벌레도 그렇게 많지 않고 잘 자라 주도 있다. 여름에 모아둔 오줌을 물에 희석을 해서

두어번 주기는 하였고, 벌레 방제에 도움이 될까 해서 목초액도 몇번 뿌려 주기는 했다.

 

 

배추잎을 갉아먹는 까만벌레들이 있어 때때로 가서 잡아 주는데, 이 놈들이 사람의 손이

가면 땅으로 떨어져서 잡기가 곤란해서 좀 징그럽기는 하지만,  두 손가락으로 그냥

보는데로 터뜨려 버렸다. 배추 중에서 속이 영 시원치 않게 망해가는 배추를 보다가

배추 속에 2센티 남짓의 송충이 같이 크다란 벌레가 배추를 통채로 파 먹고 있는 놈이

있어 손으로 끄집어 내기가 징그러워 꼬쟁이로 꺼집어 내서 밟아 주었다.

몇마리를 그렇게 잡아 주니 다음부터는 그 놈은 사라졌다.


 

배추에 그간 보지 못햇던 메뚜기들도 보였고, 벌레 잡고 있다 보니 맹꽁이도 보였다.

이제 얼마지않아 날이 추워지면 배추와 다른 작물들을 수확을 하고, 상추와 근대 갓이

심겨진 자투리 땅에는 다 뽑아내고 월동할 수 잇는 시금치라도 심어야 할것 같다.

 

오랜동안 가 보지 못했던 콩밭에는 가니 콩이 알을 맺어가고 있는데, 아직 빈쭉정이로

있는 모습도 보였다. 다 큰 콩대이지만 넘어져서 말라는 것는 콩나무가 있어 뽑아보니

벌레가 뿌리를 갉아 먹어 넘어지고 말라죽고 있었다. 지난 태풍때 쓰려진 콩을 일으켜

세웠지만, 다시 쓰려진 콩들이 많이 있었다.

 

쓰러진 콩들을 뽑아 와서 집에서 삶아 먹어보니 콩 맛도 구수한게 먹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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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00일

5월 초순에 시작한 촛불이 100번이 넘게 이어 오고 있다.

5월 2일인가 첫번째 촛불에는 참여를 하지 못했다. 그 날 광우병소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는 있었다. 지난해 봄 코엑스에서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하는데

이에 대한 반대행동을 하는데, 사람이 모자라 급히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참여를 하게 되었다.그 후 그 분들은 광우병 소고기 반대카페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 게시판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지난날 답사모임하던 젊은 친구가 전화를 하던중에도 그날 하는 집회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였다. 첫 집회는 이전에 운동단체라고 하는 단체서 한 것도 아니고, 네티젼

들이 새로 모인 단체였다. 그러기도 하였겠지만, 모이면 몇명이나 모일것인가? 하는

마음에 시들하게 생각을 하였고, 약간의 일도 있어 참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촛불이 100번이 되었다. 100번째 촛불은 광복절날과 겹쳐 각종 행사로 대낮 부터

온통 서울 장안이 온통 사람들로 붐비었다. 오후에 종로를 거쳐서 인사동 광화문 시청

남대문 종각 파고다 종로에 이르는 걸음걸이를 하게 되었다. 한 밤중 12시가 넘으니

82쿡에서 마련한 따끈따끈한 '촛불100일떡'을 돌리고 있어 하나 받아 먹었는데,

배도 출출한 터에 백설기 떡을 맛있게 먹었다. 떡을 먹고 잠시후에 함께 있던

후배 영상촬영자가 프락치로 오인을 받아서 한참동안 티격태격 실랑이를 했지만....

맛있는 백일떡이었다.

 

이제 강남도 촛불이 100일이된다고 한다. 이 강남 촛불도 첫날은 알지를 못해 참석을

하지 못했다. 지난 5월인가 6월에 아셈에 총리인지하는 작자가 온다고 해서 코엑스앞

에서 모였다가, 테헤란로를 걸어서 수백명이 강남역까지 행진을 하고 강남역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힘차게 행동을 할때 그때는 같은 동네라 참석을 하였다.

 

그 후 강남역에서 촛불을 든다고 하여 같은 지역민으로서 참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여 초반부터 지금까지 가끔씩이지만, 아직 잊지는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촛불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지치지 않고 용감한 모습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깨우침을 주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번 촛불은 예측이 잘 안되고 정리도 잘 되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점이 많은것은 사실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를 잘 읽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아는 예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지 못해 세상을 읽지 못하고,

소통이 부족하면은 곤란하다는 생각은 우선 해 본다.

 

또한 처음의 촛불과 지금의 촛불이 차이가 있다고 어느정도 실망의 마음도 가질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껏 우리가 함께해 오면서 쌓은 그 노력들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다고 보면서, 속에 있던 힘이 언제 어떻게 형태로든지

크다랗게 활화산 같이 타 오를것이라고 믿는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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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불빛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1978년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의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선거시
어용 노조원들이 똥물을 뿌려 온 몸에 뒤집어 쓴 사건이 있었다. 동일방직의
여공들은 사람이 똥물을 먹고 살 수 없다. 라고 세상에 알렸고 이 일은 세상에
큰 방향을 일으켰고, 어려운 시절에 어려운 싸움을 했던 그들로부터 오늘의
민주노조의 싹을 자라고 있었다고 본다.

 

지난 추석때 어떤분이 이사를 간다고 집안에 있던 책을 정리한다고 하면서
차로 한차 정도될 수 있는 책을 내 놓으면서 필요한대로 가져다 읽으라고
내 놓았다. 연세가 있는분이라 70년대 80년대 90년대 책이 대부분인듯 하게
보였다. 그런 책들은 지난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책이었다.
그 중에서 몇권을 챙겨 오게 되었는데, '암태도' '넘어넘어' '모택동' '마당극
대본' '공장의 불빛'들이었다.

 

먼저 공장의 불빛을 펼쳐 들었는데  84년에 책을 만들었는데, 정가는 3,000원
이었다. 종이도 누렇게 바랬고, 글자체도 요즘 글자체 보다 어색하게 보였고
선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공장에서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언어도 요즘글 마냥 정제도 덜 되어 가끔은 욕까지도 그냥 표현하고 있어 읽기
에 편하고, 그 시절 그 공장에서 그들의 삶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 오는듯
하였다.

 

책으로 뿐만 아니라 그 때 당시의 소식지나 유인물 보도들을 통하여 어느정도
알고 있었던터라 더욱 그들의 삶과 싸움 자체가 멀리 느껴지지 않았는지 모르
겠다. 기억 하건데 78년 그 해 처음 인천의 어는 공장에서 여공들이 똥물을
뒤집어 썻다. 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때만 해도 반신반의 했었으나, 당시 흑백
사진이기는 하지만 똥물사진을 직접보고는 이럴수는 없다. 라고 분노한적이
있다.

 

책을 읽어 보면 옛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한노총' '한국노총' '초가집'

'일당 200~300원' '클럽' '상집' '도산' '조화순' '서경석' 'JOC' '대화' '아카데미'

'가명' '흑인영가' ' 블랙리스트' '신민당' '5가' 'YH' '신구교' '이총각' '방용석'

'대한모방' '동일방직' '반나체시위'....등등 지금은 생소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공장의 불빛' 인천 동일방직의 여공이었던 석정남씨가 70년대 동일방직에서
일하면서 민주노조을 이루고자 했던 노력들과, 해고되어 했던 각가지의 투쟁
의 기록들이다. '공장의 불빛'은 김민기에 의해 극으로 만들어지고, 지난해
인가 '우리들은 정의파다'락도 하는 영화도 만들어 졌다.

 

저 멀리 바닷가 또는 시골에서 국민(초등)학교를 졸업한 여자애들은 서울에
있는 공장에 취직을 하기 위해 먼저 가 있는 언니들의 소개로 그 당시 주종을
이루었던 봉제공장이나 방직공장에 어렵사리 취직을 하게된다. 그것도 나이가
어려서 자신의 이름으로 취직을 하지 못하고, 언니들의 주민등록등본으로
취직을 하기에 자신의 이름보다는 다른이의 이름으로 공장생활을 하게된다.

 

하루 일당 200원 남짓이지만 어렵게 취직한 탓에 열심히 일을 하여 고향의
부모님께 월급을 부쳐 드리고, 동생들의 학비를 보내는등 열심으로 살아간다.
꿈 많은 소녀들의 청춘은 하나도 피어 보지도 못하고 공장 생활을 하다가,
그것도 몇녖 지나면 공장에서 반기어 주지 않으니, 시집을 가거나 잘못되면
유홍가로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노동현장의 암울함을 알고 그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종교인들과 지식인
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희망을 키워 주는 이들이 있어, 이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유신체제 아래 어려운 시절에도 목숨을 내어 놓고 민주노조
를 만들겠다고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러렀다고 하겠다.

 

그 때 이들을 도와주고 이들과 함께 했던 기관들이 가톨릭의 'JOC'와 개신교
의 '도신산업선교회'들 이었다. 그 때 이러말이 있었다. '都産이면 倒産한다'라
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당시의 투쟁도 보면은 지금의 투쟁과 상당히 차이점은 보게 된다.
노동자들이 공부를 못해서 지식도 없었고, 암울했던 유신독재 시절이라 법이
통하지 않는 시대이고, 도움이 않되는 어용 노총 말고는 노동단체도 없었고,
아무리 싸워 보아야 언론의 보도도 되지 않게되니 오늘 보다는 너무나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어린 여공들은 자신들이 터득한 신념을 위해서 순박하게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면서 굶고 못 입어 거지꼴이 되도록 열심히
싸워 왔다고 한다.

 

30년전 '공장의 불빛'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형태로 비추고 있을까?
형태야 조금 다르지만 별반 달라진것이 없어 오늘 우리 주변에서도 지금은
중년의 아줌마들이 되어 있을 그들의 모습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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