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낙동강을 그대로 흐르게 하라.

 낙동강은 그대로 흐르게 하라.

 

지난 대통령 선거 막바지에 MB의 당선이 점쳐지고 있을 때, 만약 그가 당선 되더라도 공약으로 내세운 ‘한반도대운하’ 만큼은 하지 말았으면 했다. 대통령이 되고 촛불이 타오르면서 대운하는 포기하고,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강을 살리는 일이 아니고, ‘죽이는 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이 어느 정도로 강을 망치게 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내 눈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강을 보면서, 왜 보존을 해야 하는지 알고 느껴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2009년 마지막 주말에 낙동강 순례길에 따라 나섰다.

 

한겨울 새벽에 단단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 버스로 상주로 가서, 순례단을 만나 상주구간부터 순례를 시작한다. 처음에 다다른 곳은 낙동강 중에서 가장 낮은 다리라고 하는 강창교이다. 이제껏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라고 하면 거대한 교각위로 넓은 차선을 가진 대교만을 보아왔다. 그런데 이 다리는 강물 바로위로 다리가 놓여 있어, 가까이에서 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 들녘의 농로 같기도 하고, 얕은 시냇물을 건너다니는 다리 같아 정겹고 친근감으로 다가서는 다리이다.  이곳 첫 걸음부터 이미 강은 파헤쳐져서 옛 강창교나루터 표지석도 공사로 원래 자리에서 옮겨놓아 자리하고 있다.
 

 

강창교가 끝나는 지점에 급조한 공사현장사무실이 딱하니 자리하고 있다. 4대강사업이 강을 죽이는 사업이라고 하는 이유는 많으나, 곳곳에 높은‘보’를 설치하여 물을 가두어 두는 일이라고 한다. 이곳에 ‘상주보’를 설치한단다. 그 사전 공사로 경운기 정도만 다녔을 정도의 강둑길을 강에서 흙을 파와 길을 넓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길을 넓혀 놓고는, 강의 모래를 준설해서 덤프트럭으로 계속해서 실어 나르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 버스는 이곳을 지나 상주보 공사를 하는 코앞까지 들어가서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공사현장에 불청객이 들이닥쳐서 귀찮게 하고, 약간의 실랑이를 벌리면서 그들은 상당히 성가시게 여겼을 것이다. 이런 불편을 겪지 않으려고 앞으로는 공사현장에 통행을 통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

 

공사를 하는 주변에는 붉은 깃발을 강바닥에 꼽아 놓았다. 그 깃발 안쪽은 6미터 깊이로 준설할 구간이라고 한다. 보 건설현장에 다다르니, 몇 대의 건설 중장비가 자재를 옮기고 있고, 트럭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보를 만들 자리로 보이는 저 멀리 강바닥에는 쇠말뚝이 박혀있다. 4대강 공사를 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니 몇몇의 일꾼들이 보이기는 했다. 안전모를 쓰고 트럭의 출입을 관리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안전요원, 중장비를 운전하는 사람, 중장비의 작업을 도와주는 노동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알기는 힘드나 공사가 끝나면 아래와 같이 물이 저 높이까지 차게 된단다. 그러면 주변의 광활한 농경지 얼마만큼이 농사를 짓지 못할까 걱정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25%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데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다. 서울에서도 저지대에는 비가 많이 오면 배수 펌프장에서 한강으로 물을 퍼 옮기는 모습과 같이, 이 넓은 땅에도 그렇게 될것이라고 한다. 또한 안개 끼는 날이 많아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공사가 끝나면 보주위에는 생태공원이 만들어지고, 강은 살아나고, 녹색세상이 이루진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강 주변에는 습지와 숲이 있어 고라니를 비롯한 각종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공사현장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전망이 좋은 산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최근에 자전거길이라고 만들어 놓았다. 상주시가 오래전부터 자전거 모범도시로 노력해 왔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몇 년 전 풀꽃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올라가고 있는 자전거 길은 자전거길이라고 할수도 없고, 등산로라 할 수도 없는 참 어중간한 길이다.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보였다. 이 산속 자전거 길에 한해 몇 대의 자전가가 올라오게 될지 모르겠다.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니, 공사현장이 더 자세하게 보였다. 공사로 인하여 벌써부터 물길을 돌려놓았고, 강바닥을 파헤치는 바람에 우리가 건너온 강창교 아래에는 흙탕물이 흘렀다. 곱다란 모래와, 강가에는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있어 동식물의 서식처가 되어 있고, 굽이치는 강물줄기는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그 옆 모래사장에는 석축을 쌓고, 그 흉칙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모래로 덮어 놓은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줄기와 경관을 가지고 있기에, 주위에 ‘상도’를 비롯한 드라마 촬영지가 들어 서 있는 정도이다.

 

 

우리 흔히 알기로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의 황지라고 알고 있는데, 황지의 예성천, 문경의 금천, 영주의 내성천이 만나는 이곳이 삼강이라고 하고, 이곳 삼강부터 낙동강700리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곳 예천의 삼강나루터에는 유명한 삼강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주막에서는 나들이객, 보부상, 시인 등의 허기지 배를 채워주고, 숙식처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한 순례자는 지난번에 왔었을 때 동네어른께서 ‘전에는 집에서 강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강에 둑을 쌓고 부터는 강은 보이지 않고 강둑만 보인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둑이 강과 마을, 사람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다음은 비룡산 장안사 언덕에서 본 회룡포 모습인데, 그야말로 절경이다. 설명대로 용이 휘감고 비상하려고 하는 모양 그대로이다. 영월에 가면 한반도 모형의 땅이 있다고 하더니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게 보였다. 앞에 보이는 저 언덕 베기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더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저렇게 아름다운 우리 모두의 소유인 산하를 누구 마음대로 망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단 말인가?
 

 

안내판을 보면 굽이치는 강의 모습은 더욱더 강의 물줄기의 신비함을 볼 수 있다. 그 주위에 우리가 지나왔던 삼강주막과, 다음에 갈 ‘뿅뿅다리’가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이기에 추운 한겨울에도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오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산을 내려오다가 일행과 떨어져 하마터면 미아가 될 뻔했다.
 

 

산에서 내려와 회룡포로 건너갈 수 있게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그 다리가 ‘뽕뽕다리’다. 낮은 강물 위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정도로 철판을 이어서 만든 다리이다. 지역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다리는 나무와 나뭇가지를 엮어 섶다리를 만들어  이용했었는데, 그와 유사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건너오는 모습이다. 순례자 등에는 ‘낙동강은 그대로 흐르게 하라’는 몸자보를 붙이고 다니던 순례길도 어두워지기에 여기서 첫날 순례를 마친다. 상주 땅에서 출발하여 예천 땅을 거쳐 안동 땅까지 오는 여정이다.
 

 

이번 순례길에는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했다. 괴산에서 버스한대, 상주에서 두 대, 헌법 소원팀에서 한 대가 함께했다. 지역적으로도 서울, 대전, 김포, 인천, 진주, 부산, 대구, 팔당, 상주, 괴산, 충주 등 곳곳에서 모였다. 연령적으로도 갓난아기에서부터 어린이 청소년 장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직업적으로도 목사, 신부, 수녀, 스님, 교수, 직장인, 주부, 청년, 학생, 농민 등 다양하게 참여했다.

 

저녁 식사 후에 순례를 다니면서 느낀 점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아름다운 강을 왜 파 뒤집어서 망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강을 걸으면서 이제껏 강이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강과 가까이 해보니 강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알게 되었고, 눈물을 흘렸다. 라고 하는등 여러 느낌을 말해 주었다. 더 많은 사람들께 알려내야겠다. 인터넷을 통하여 알려내고, 주위의 사람들과 어울려 다시 와야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준비도 필요하겠고, 일의 분담도 이루어져야겠다고 한다. 등 스스로 할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조직부터 하는 것은 바람하지 않은 듯하고, 각 지역에서 연락을 맡을 정도의 망만 갖추면 되겠다. 그렇게 해도 강순례는 계속되어 나가리라 본다. 낙동강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주에서 안동구간에 집중했으면 한다. 라고 한다. 계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강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게 되면, 강을 파헤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강을 망치는 사업은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율스님께서는 당신 위주로 순례가 진행되어지고, 밖으로 알려지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도 조심해야할 점인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박죽으로 요기를 하고, 낙동강 물줄기를 휘감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부용대에 오른다. 내려다보이는 강물은 마을을 돌아서 흐르고, 강가에는 쪽배가 떠있고, 마을에서는 아침연기가 피어오른다. 이제 하회마을에도 상업화가 이루어져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옛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 볼 수 있고, 강변 소나무 아래와 모래사장에서는 재미있게 놀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이곳에 보를 만든다고 했다가, 워낙 반항이 거세니 계획을 수정한단다. 하회마을 이곳에다가 보를 만들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참 대단하다. 무식의 극치이다.
 

 

부용대에서 내려와 하회마을로 건너가는 쪽배가 있다. 춥고 이른 아침이지만, 뱃사공을 불러 우리는 배를 타고 하회마을을 건너갔다. 추운 날씨에 배가 잘 움직이지 않아 뱃사공을 온 힘을 다해 삿대질을 한다. 배위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배를 타고 오면서 보이는 부용대의 절벽의 경관이 참 아름답다.
 

 

하회마을을 지나, 병산서원까지는 높지 않은 산길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넘었다. 산 속에서 신부님은 ‘천리길’을, 수녀님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노래를 작은 소리로 부르신다. 갈대와 수풀이 잘 형성되어 있는 병산습지의 갈대밭을 걷기도 하고, 물가에 가서 얼음을 지치기도 한다. 물가에서 잠자는 물고기를 깨워 보기도 하고, 갯가의 납작한 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이틀 동안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를 보고 건너왔다. 마지막으로 건너는 다리에서는 추운 겨울이지만, 다리위에서도 저 아래 물속에서 물고기 떼가 노니는 모습을 잘 볼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둥오리를 비롯한 철새들도 물위에 있다. 이를 신기한 듯 스님을 비롯한 순례행렬이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님의 말씀대로 ‘어찌 이 곳을 흐트리려 합니까?’
 

 

순례길의 마지막인 안동댐이다. 안동댐이야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이곳에도 공사판을 벌려 놓고 있다. 우리가 돌아본 아름다운 낙동강물이 이곳 댐과 같이 흐르지 못하고, 갇힌 물이 될까 두렵다.
 

 

안동에서 순례를 마치고으로 오는데, 서울까지 2시간 50분 걸린다는 버스가 중부지방에 눈이 왔다고 해서 꼬박 6시간이 넘게 걸려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오는 눈이고, 지역적으로 눈이 왔는데도 이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이다. 이런 인간들이 어찌 거대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려고 하는지.....

 

버스 속에서 곤하게 잠을 자다가 깨면서, 병산습지로 가는 산길에서 수녀님이 작은 소리로 혼자 부르던 노래가 내 입가에서도 맴돌고 있다. 수녀님은 어제부터 이 노래가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고 했다.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따라 꿈속을 가듯 정처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울린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 걸어 봄 신령이 가슴에도 지폈네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싶네 보고싶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