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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재산과“Born with…”
“타고 난다”, “갖고 태어 난다 (Born with...)” 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라면서 무엇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인가?
우선 성격, 체질, DNA, IQ 등을 부모로부터 받아 갖고 태어난다. 그 다음엔 무엇이 있는가?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재산이다. 지위의 양위도, 신분의 세습도 모두 사라진 오늘 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대물림이다. 그런데 이 대물린 재산은 100% 불로 소득 -간디는 불로 소득을 5대 사회악 중 하나로 꼽았다-이다. 왜냐하면 자기 손가락 하나 까닥 않고 거저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는 친일 행각을 한 조상(들)에게서 물려 받은 재산(토지)을 강제 환수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 동안, 항일 독립 투사들의 후손들이 한결같이 몰락하고, 친일 부역한 사람들의 자손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을 숱하게 보면서 많은 울분을 머금었던 터라,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민족 정기를 세우기 위해” 이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언가 부족/미급한 감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연좌제가 없는 오늘을 사는 그 후손들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을거다.
자신들의 과오가 아닌 조상들의 잘못을 왜 지금 우리가 뒤집어 써야 한단 말인가? 한 개인의 행위의 책임은 어디 까지나 그 개인에 국한된다는 현대적인 법 정신을 들어 아마도 헌소를 제기하리라.
그런데 여기서 잠깐,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 날 때 ”타고 나는” 것들의 내용을 좀 더 분석해 보자. 재산에 더 해, 교육/학벌, 직업 등은 “타고 나는 “ 것이 아닌가? 가문/ 혼맥 (婚脈)은 또 어떤가?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대졸 아버지를 둔 자녀 대졸 82%--중졸 아버지를 둔 자녀 대졸 32%”라는 최근 조사 발표 (05/04/07)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흔히 뼈대/족보 있는 집안, 명문가 자손 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결정짓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돈 (資)이 근본(本)이 되는 사회에서 첫 째는 돈 (재산) 이다. 두 째는 교육/학벌, 직업이다. 그리고 세 째는 혼맥으로 이어지는 혈연이다. 그런데 이 셋은 너무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 밀착된 고리는 한통속이 되어 거의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친일 재산 문제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오직 재산 (땅) 만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었는가? 아니다. 자녀들을 잘 교육 시켰고, 그리해서 좋은 직업을 갖게 했고, 그리고 다시 시집/장가를 잘 보내 좋은 혼맥을 유지케 했다. 다시 말해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모든 것들을 물려 줬다. 그렇다면, “타고 난 “ 것의 일부분인 재산만을 환수한다고 해서 역사가 바로 잡히고, 민족 정기가 바로 설 것인가.
해방 공간, 일제가 물러 간 후 정치, 경제, 교육, 학계, 사법, 검/경 등 전 분야에 걸쳐 그 텅 빈 자리—교육계의 경우, 초등학교 선생은 중/고 교사로, 중/고 교사는 대학 교수로 수직 상승할 정도였다--를 어떤 사람들이 차지했는가? 강점기, 대부분의 씨울들이 입에 풀칠 하기도 어려운 때에 고등 교육을 받고, 각종 고시에 합격하고, 식민 통치 기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은 비록 일제에 자발적인 협력/협조는 안 했더라도, 적어도 그 통치 정책에 순응/순종/편승 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해서 사회/경제적으로 득세, 그들은 편안한 삶을 살았고, 또한 자손들을 잘 뒷받침하고, 잘 교육시켜 오늘 날 사회 각 분야에서 상부 계층에 자리잡게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볼 때, 그들은 삶의 중요한 거의 모든 것을 그 조상들부터 물려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잘 되도 조상 탓, 못 되도 조상 탓이란 말이 있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조상 덕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여기서, 비단 친일 자손만이 아닌, 그 조상/부모 대 (代)에 부의 축적 과정/삶의 모습이 떳떳지 못했던 그 후손들-특히 거대한 부를 물려 받은/받을 재벌 2/3세들-에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사상이다
기독교에선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 난다고 한다. 이 교리를 세속적으로 바꿔, 멀리는 “양반 / 쌍 (‘떳떳할 ‘ 常 ’의 된소리)놈”을 가리던 이조 때 부터 최근세 친일파들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다시 그 핏줄을 직/간접으로 이어 받은 오늘 날의 그 후손들에 이르기 까지, 그들은 어떤 형태로건 어떤 ‘원죄’를 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 몸엔 그 부끄러운 조상들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역사가 바로 잡히고 민족 정기가 새롭게 서려면, 그들이 이 ‘원죄’를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죄’를 씻어내기 위해 기독교적인 회개/참회/선행을 역사와 민중 앞에 행동으로 내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기독교의 원죄가 인류 대대로 이어지듯이 그들의 자자손손도 이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할거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미 대륙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무수히 학살하고 오늘 날 미국을 만든 백인들,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사고 팔았던 서구인들,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강탈했던 제국주의자들, 그 후손들에게 이제 와서 그 책임을 묻는 것 만치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장동만: e-랜서 칼럼니스트>
저서: ‘조국이여 하늘이여” & “아, 멋진 새 한국”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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