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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감옥 바깥이 모조품입니다

[한겨레를 읽고] 양심의 감옥 바깥이 모조품입니다 / 은국
한겨레를 읽고 / 서경식 선생님께


‘디아스포라의 눈-눈보라처럼 진실이 몰아치다’(<한겨레> 11월21일치)를 읽고 편지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고 지금 저의 상황과 선생님의 글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저는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서준식 선생님 동생이라고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중인 젊은이입니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병역거부 선언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징병제에 반대하며 군대와 국가같이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시스템 자체가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보라처럼 진실이 몰아치다’의 마지막 단락에서 ‘지금의 내 생활이 어쩐지 모조품 같고 그 바깥에 위험으로 가득 찬 진실이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는 말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병역을 거부하고 (저는 4주 군사훈련만 받으면 공익근무를 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제 처지가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나는 좀더 진실에 다가서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신념과 양심을 뒤로하고 군사훈련을 받았다면 제 삶과 인생이 여전히 ‘모조품’ 같다고 느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감옥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이 비일상적인 곳이고 아나키스트에게는 지옥과 같은 국가권력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모조품과 같은 평온하고 안전한 삶을 거부하고 위험으로 가득 찬 진실의 공간인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잖아요. 허상의 매트릭스 세계는 화려하고 안락합니다. 하지만 진실의 공간인 우주선 속은 누추하고 삭막한 세계이죠.

저에게 이 감옥은 진실의 세계입니다. 무덤과도 같은 감옥에서 오히려 ‘살아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네요. 하지만 신념과 양심이 없는 삶은 모조품일 뿐이겠죠. 제가 이 진실의 세계를 선택한 것에 대해 오늘은 안도감이 듭니다. 몸은 비록 감옥에 묶여 있지만, 이 선택이 제 자신에게 솔직한 삶이었고 더 진실한 삶이라는 확신이 저를 충만하게 만듭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가 이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좀더 분명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아마 선생님과 제가 모두 ‘소수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러한 공명이 가능한 듯싶네요. 제 얘기를 들으시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의 생각이라도 해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은국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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